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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4

   솔직하게 말을 해서 팔이 부러져버리는 사태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공격력이 줄어든다는 게 설마 이런 형식일 줄은 몰랐지.

   

   탈진 상태가 된다거나. 아니면 근육에 피로가 간다거나 하는 정도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팔이 박살나버릴 줄은.

   

   나를 더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팔이 부러진 이후의 상황이었다.

   

   아픔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것보다 더한 고통도 많이 겪어봤는데 팔이 부러진 정도야 뭐. 아프긴 아파도 충분히 참을 만 해.

   

   근데 주변에서 난리가 나는 건 내 의지와는 별개의 영역이라 많이 당혹스럽더라.

   

   앞에서 죄송하다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칼을 진정시키고.

   

   내가 준 축복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우는 곰을 달래고.

   

   미간을 찌푸린 것도 좋다는 얼빠여우를 걷어차려다 녀석이 부러진 팔에 부목을 대주는 걸 보고는 내버려 두고.

   

   옆에서 당혹스러워 하는 아서에게 페이비를 불러와 달라 그러고.

   

   팔이 덜렁거리는 게 신기하다 그러는 프레이를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소란 끝에 달려 온 조이가 비명을 지르는 걸 듣고.

   

   하여튼 이 모든 소란이 지나간 후 돌아온 페이비는 덜렁거리는 내 팔을 보고서 눈동자를 떨었지만 다른 이들처럼 난리를 치는 대신 침착하게 내 팔을 치유했다.

   

   페이비의 신성마법은 여느 때처럼 훌륭한 효과를 보였다.

   

   우선 고통을 달랜 다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천천히 팔을 치유하는 페이비는 나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숙련된 치유사였다.

   

   내가 스스로 치유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했을 거냐고?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아프건 말건 이 꾹 깨물고 견뎠겠지.

   

   난 그런 거 말고는 할 줄 모른다고.

   

   어느새 멀쩡해진 팔이 신기해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으려니 페이비가 입을 열었다.

   

   

   “영애님.”

   

   페이비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온화했지만 기이하게도 그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싸늘하게 들렸다.

   

   내가 저지른 게 있어서 그런 걸까?

   

   페이비는 평소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냥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 뿐일까?

   

   그리 생각을 하며 슬며시 고갤 들었더니 눈가에 그늘이 진 페이비가 보여서 다시금 시선을 내렸다.

   

   “영애님께서 숲을 맡겨 달라 이야기하셨을 때 저는 얌전히 고갤 끄덕였습니다. 저는 영애님을 믿었으니까요.”

   

   그…랬지. 약간 망설이면서도 날 보내줬어.

   

   “던전 안에서 다시금 만난 후에도 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영애님께서 다쳐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죠.”

   

   그건 문제가 되나? 내가 던전 공략을 제일 잘하는데다가 내가 탱커 역할을 맡고 있는데 선두를 안 설 이유가 없잖아.

   

   원래 탱커의 역할이란 게 그런.

   

   아뇨. 알겠습니다. 그냥 입 다물고 있을게요.

   

   “영애님께서 무리를 하다 쓰러졌을 때에도 전 가만 있었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을 꾹 견디며 영애님을 치유했어요.”

   

   그건 나도 쓰러질 줄 몰랐어.

   

   할아버지도 방법이 있다고만 했지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 안 했다고.

   

   그러니까 이건 할아버지의 잘못! 내 잘못은 아냐!

   

   물론 할아버지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이상 내 잘못이 되어 버리지만!

   

   젠장!

   

   “그런데 또! 모든 일이 끝난 지금 또 이렇게 다치시면!”

   

   페이비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울상이 된 페이비의 얼굴이 있었다.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 할아버지!’

   <네가 알아서 해라.>

   ‘네?!’

   <이런 건 좀 혼자 할 줄 알아야지. 그래야 어른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틱틱대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짙은 짜증이 묻어나 있었다.

   

   뭐야!? 할아버지도 내가 팔 부러트린 것 때문에 화가 난 거였어!?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걸 알면서 왜 화 내는 건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할아버지는 내가 억울하단 걸 알아줘야죠!

   

   “영애님.”

   “…응?”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동안 페이비는 홀로 감정을 다스린 채였다.

   

   “죄송합니다. 영애님께서도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니었을 텐데.”

   

   흐아아. 제발. 차라리 나한테 뭐라고 해주라.

   

   왜 자기 말 안 듣고 딴 생각 하냐고 다그쳐주라!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래!

   

   “편애가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숨이 막히는 느낌에 눈동자를 떨고 있으려니 슬그머니 나타난 아서가 목소리를 냈다.

   

   “저희한테는 어제 하루 종일 잔소리를 하셨으면서.”

   “맞아. 돌아오고 나서 하루 종일 뭐라 그랬어.”

   “솔직히 그 정도면 설교가 아니라 고문에 가까웠던 듯 한데.”

   “고문 맞지 않아?”

   “…페이비의 설교는 고문이 맞긴 해요.”

   

   아서가 물꼬를 트기 무섭게 뒤편에서 나타난 친구들이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조이마저도 시선을 돌린 채 무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어제의 페이비는 상당히 무서웠던 모양이다.

   

   내가 쓰러졌을 때의 일이라 말을 아끼고 있던 난 페이비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깨닫고는 슬며시 고갤 돌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울상이었던 페이비의 얼굴은 잔뜩 벌게져 있었다.

   

   “허접 성녀?”

   “그. 어. 어제의 설교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건 압니다. 저희가 잘못한 게 맞으니. 그렇지만 어째서 루시 알른에겐 설교를 하지 않으십니까?”

   “맞아. 치사해.”

   “그. 그게. 영애님은 다르다고 할까.”

   “루시가 뭐가 다른데? 페이비?”

   

   조이가 말을 꺼낸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얼굴이 터져버릴 듯 했던 페이비에게서 조이에게로 시선이 쏟아진다.

   

   가만 페이비를 바라보고 있던 조이는 뒤늦게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왜. 왜 다들 갑자기 절 보세요?! 페이비의 잔소리에 복수하는 분위기 아니었나요!?”

   “루시. 라고 그랬어.”

   “루시 알른이라고 네가 그랬잖은가.”

   “루시라고 했어요.”

   

   그를 본 나는 활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이 분위기 그대로 조이한테 시선을 넘기면 난 곤란함에서 빠져나갈 수 있어!

   

   “그치. 조이가 얼빵한 어투로 내 이름을 부르긴 했어.”

   

   자연스럽게 조이를 조이라고 불러주었더니 친구들의 시선이 한층 더 짜게 변한다.

   

   조이는 배신당했다는 듯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갤 갸웃거리기만 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난 내 친구를 이름으로 불러줬을 뿐인데?

   

   “조이. 잠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 데요.”

   “저도 성녀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나도. 꼭 말을 듣고 싶어.”

   

   점점 곤경에 처하는 조이를 보며 내가 한 생각은 하나였다.

   

   고마워! 조이! 덕분에 살아남았어! 이 희생은 잊지 않을게!

   

   한 삼십 분 정도는!

   

   *

   

   알른 가문의 시녀이자 루시 알른의 전속. 지금은 자신의 주인을 따라 아카데미에 찾아온 시녀인 에린은 아카데미에서 시녀가 해야 할 여러 잡무를 하고 있었다.

   

   루시는 왜 다른 허접들을 위해 일을 하냐면서. 그렇게 시간이 남아돌면 자기라도 갈고 닦으라고 그랬지만 에린은 그를 거부했다.

   

   전속시녀로 온 것만 해도 충분한 특권인데 거기에 더해서 에린이 아무것도 하질 않고 있으면 루시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더 커질 테니까.

   

   루시의 도움이 되고 싶은 거지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을 하겠다고 고집을 했다.

   

   물론 아예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외부인은 다른 이들에게 견제를 당하기 마련이니까.

   

   외지인으로써 텃세를 감당하겠노라 결심했던 에린이였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다른 시종들은 그녀에게 무어라고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에린을 어려워했다.

   

   따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쉬라 이야기를 하고.

   

   굳이 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무조건 쉽고 편한 일을 내어주었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에린은 새삼 자신의 주인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꼈다.

   

   얼마나 아가씨께서 하신 일이 많으면 한낱 시종에 불과한 저에게까지 그 분의 위광이 덧씌워지는 걸까요.

   

   루시에 대한 찬양을 하면서도 그녀의 위광 아래에서만 머물 생각은 없었던 에린은 그냥 다른 이들이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을 찾아서 했다.

   

   루시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루시는 시녀마저도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리게 하기 위해.

   

   에린은 알른 가문에서 익혔던 여러 가지를 사용인들 사이에서 펼쳐 보였다.

   

   낮은 귀족 가문의 사람들이 시녀로 일하던 알른 가문에서도 칭찬 받던 그녀의 능력은 아카데미의 사용인들 사이에선 놀라운 수준이었고 어려움의 대상이었던 에린이 사용인들 사이에서 의지의 대상이 되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루시가 일 때문에 잠시 바깥으로 나간 지금.

   

   에린은 루시가 무사히, 그리고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며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저. 에린님.”

   “네?”

   “잠시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저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 있어서.”

   “물론입니다. 무슨 일이죠?”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서. 잠시 따라와 주세요.”

   

   에린은 고갤 갸웃거리면서도 다른 사용인의 뒤를 따랐다.

   

   그 사용인이 안내하는 장소는 아카데미에서도 약간 구석진 장소였다. 이런 곳에 사용인이 할 일이 있던가?

   

   가만 생각을 하던 에린은 무언가 불길한 낌새를 느끼고 발을 멈췄다.

   

   “에린님?”

   “당신. 누구죠?”

   “네?”

   

   의심을 가진 채 사용인을 살펴보니 위화감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말로 할 수는 없지만 역겨운 무언가가 느껴지는 듯 했던 것이다.

   

   “당신. 뭡니까.”

   “…쯧.”

   

   에린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기 무섭게 사용인인 척 하던 것이 에린에게로 달려들었다.

   

   단순한 사용인인 에린은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손을 가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손의 속도는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 내가 잘못되면 아가씨께서 슬퍼하실 텐데.

   

   느려진 세상 속에서 에린이 자신의 주인을 걱정하던 그 순간.

   

   갑작스레 튀어나온 손이 그 손을 가로 막았다.

   

   “이야. 공허의 권능이 귀찮긴 하네. 나름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꼴일 줄은.”

   “…네 놈. 무슨.”

   “하마터면 고용주님한테 혼날 뻔 했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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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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