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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4

       나는 말이다.

        

       솔직히 황제가 내 생활에 그렇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음, 이렇게 말하기는 조금 그런데, 나이가 많지 않은가.

        

       내가 이쪽 세상에서 보아온 나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스마트폰이나 PC 사용법을 가르쳐주려고 하면 손사래를 치면서 나는 이런 거 못 한다, 젊은 사람이 좀 대신해주면 안되냐, 컴퓨터 전원이 안 켜지는데 어떻게 좀 해줘라……같은 말을 굉장히 자주 했다.

        

       그래, 이해는 한다. 나도 솔직히 새로운 걸 배우기 귀찮을 때가 있고, 머리에 안 들어오면 그냥 시원하게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니, 이 사람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일단 첫날은 그냥 잤다.

        

       정말 다행히도 내가 집에서 입던 옷은 아슬아슬하게 황제한테 맞았다. 어째서인지 나보다 수십 년은 더 산 황제가 내 남자 시절의 어깨보다 더 넓은 어깨를 가진 것이 굉장히 짜증 났지만, 일단은 참고 입혔다.

        

       “이 옷은 누구의 옷이냐?”

        

       만약 앨리스와 클레어만 넘어왔다면 내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황제에게만큼은 그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까……황제가 아닌가. 그걸 어떻게 활용해서 약점으로 써먹을지 모른다. 내가 저쪽 세상으로 다시 넘어갈 예정이라는 걸 생각하면, 과거는 들키지 않을수록 좋았다.

        

       이미 늦어버린 것도 같지만.

        

       ……돌아갈 때 그냥 두고 갈까?

        

       클레어와 앨리스는 내가 입으려고 사 온 여성용 운동복이 그럭저럭 맞아서 일단 입혔다.

        

       옷은 우리 모두 화장실에 가서 갈아입는 것으로 타협했다.

        

       아무리 피가 섞였어도 딸이 아버지 앞에서 알몸이 될 수는 없지.

        

       “하긴, 내 딸들이 사춘기가 올 때가 되긴 했다고 생각했다.”

        

       황제는 내가 황제와 우리 셋 사이에 만든 장벽을 보고 허허 웃었다.

        

       장벽이 뭐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겨울에 종종 꺼내 쓰는 담요를 둘둘 말아서 나와 황제 사이에 두었을 뿐이다. 앨리스와 클레어는 내 옆자리에 차례대로 눕혀두었고.

        

       아무튼,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당장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범법행위는 저지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이쪽에서 한참 같이 있어야 하니까요.”

        

       물론 여기서 범법행위에 관한 이야기는 주로 황제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클레어와 앨리스는 내 목숨을 걸고 믿을 수 있었다.

        

       “응.”

        

       “알았어.”

        

       “알았다.”

        

       마지막 대답이 중년 이상의 굵직한 남성 목소리라서 조금 화가 났지만, 나는 일단 참았다.

        

       “오늘은…… 이 세상을 조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쪽 세상의 기술은 고도로 발달했습니다. 아마 처음 보면 다소 복잡할지 모릅니다만, 익숙해지면 웬만한 것은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증기 기관을 이용한 기계장치들보다 대부분 쉽고 간단하게 움직이니까요.”

        

       기계장치는 고장 날 부품이 적을수록 고장이 나지 않는다. 전자기기가 아주 작은 회로의 집합이라 쉽게 고장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불량이 아닌 이상 오히려 복잡하고 작은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보다 훨씬 덜 고장 나는 경우가 많다. 회로가 고장 나지 않도록 잘 보호해주기만 한다면 말이지.

        

       전자시계와 기계식 시계를 아파트 2층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보통은 전자시계 쪽이 살아남는다.

        

       “그럼, 아침 식사 후에 나가도록 하죠.”

        

       내 말에 클레어는 얼굴에 기대감을 품었다. 앨리스는 조금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고— 황제는 씩 웃고 있었다.

        

       왜. 뭐 하려고.

        

       뭘 하든지 간에 말이나 하고 했으면 좋겠는데.

        

       *

        

       “자동차인가. 과연. 제도의 도로를 한 번쯤 정비할 때가 된 것 같군. 적기조례도 밀어붙여 폐지해야겠구나, 앨리스.”

        

       “……그래도 돌아가면 황제 자리를 잃을 거라는 생각은 하시는 모양입니다.”

        

       “물론이다. 그 전투에서 졌으니 어쩔 수 있느냐?”

        

       허허 웃는 황제를 보니 할 말이 없다. 본인이 그냥 인정해버리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나저나 그 스마트폰이라는 것,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구나.”

        

       “……아마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는 이용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만.”

        

       스마트폰의 한계라.

        

       뭘 한계로 규정하는지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약 게임을 두고 물어보는 것이라면 한계가 꽤 명확하겠지만, 단순히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에 관해 물어본 것이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그러게. 대체 뭐까지 할 수 있을까?

        

       “그렇다는 건, 주식 거래나 투표 같은 것도 가능한 건가?”

        

       “아, 그건 아닙니다. 주식은 가능해도 투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지?”

        

       “주식은 잃더라도 잃은 사람의 손해일 뿐이지만, 투표는 국가 전체의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주식은 실시간으로 가격을 확인해야 하는데 투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가서 한 번 하고 나오면 되는 일이니까요.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자투표가 활성화된 곳이 있다고는 들었다. 브라질이었나?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보수적인 방법을 쓴다. 그게 더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설마 주식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설마 그렇게 작은 방에서 넷이서 같이 생활하자는 것이냐? 하다못해 그런 방을 하나 더 구하거나, 방이 두 개 더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

        

       황제의 그 말에 클레어와 앨리스가 내 눈치를 보았다.

        

       아니, 버스 안에서 그렇게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이대로 살아도 상관없다만.”

        

       “……주식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나도 해봤다.

        

       잃기만 해봤지.

        

       “그렇다고 생각하느냐? 주식이라면 나도 해봤다만?”

        

       “…….”

        

       설마 이득을 본 건가?

        

       그런데 그거 황제 이름이 있어서 이득 볼 수 있었던 거 아니야? 황제가 산 주식이라고 하면 무조건 떡상각 아닌가? 제국에서 지지율이 그렇게 높은 사람인데.

        

       아니 그보다, 우리나라였으면 대통령이 주식으로 떼돈 벌었다는 소리 아니야. 뭔가…… 법적으로 하면 안 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들으면 엄청나게 꼴 받을 것 같다. 적어도 대외적인 이미지는 시궁창에 처박히리라.

        

       “안 되느냐?”

        

       하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세 분께는 스마트폰을 하나씩 사드리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중고폰을 살 생각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로 연락할 수단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그리고 다음 한 주 동안, 나는 세 사람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여신의 힘 때문인지 세 사람은 한글을 순식간에 익혔다. 혹시 한국인으로 등록해두어서 한글을 못 읽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 봐 그랬을까?

        

       여신이라는 존재는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는 존재다.

        

       한글을 배운 세 사람에게는, 당연히 스마트폰을 사주었다.

        

       나, 클레어, 앨리스는, 당연하지만 딱 나이대에 맞는 용도로 썼다. 서로 연락하고, 누워서 동영상이나 보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읽는 용도.

        

       클레어와 나는 별생각 없이 놀았지만, 앨리스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우리 중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다름 아닌 황제였다.

        

       “이 세상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흥미로운 것들이 넘치는구나.”

        

       황제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주식은 선물로 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무조건 가지고 있는 돈 안에서 하십시오. 저는 가진 재산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물론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딸에게 빚을 남겨줘서 되겠느냐?”

        

       몸에 구멍 뚫는 건 되고?

        

       하지만 그런 말을 한다고 눈 하나 깜짝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그렇게 말한 지, 한 사흘 정도 지났을까.

        

       핸드폰에 알람이 와 있어서 확인해보니, 십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십만 원이 왜?

        

       보낸 사람은 ‘아서 팬그리폰’이었다.

        

       “……이건 무슨 돈입니까?”

        

       “아, 주식으로 얻은 수익이다.”

        

       “……예?”

        

       내가 황제에게 준 돈은 20만 원이었다.

        

       황제뿐만이 아니라 앨리스와 클레어에게도 같은 금액을 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정도면 한 달 동안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어차피 의식주는 함께 해결하고 있고.

        

       클레어는 아무래도 인터넷 방송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앨리스도 흥미를 보였다. 심지어 황제까지도 흥미를 보였다.

        

       솔직히 나도 흥미가 있어서, 일단은 나, 클레어, 앨리스 셋이서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황제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도 있었는데—

        

       주식을 하고 있었다고?

        

       “……지금 20만 원으로 수익을 내 10만 원을 보내셨다고 했습니까?”

        

       “그렇지. 사실 번 것은 20만 원이다. 하지만 다시 투자해서 더 벌면 더 큰 이득이지 않겠느냐?”

        

       “…….”

        

       나는 멍한 표정으로 클레어와 앨리스를 돌아보았다.

        

       클레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버지는 원래 주식으로 돈을 꽤 긁어모으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거야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는데…… 그게 황제라서 그랬던 게 아니었다고?

        

       “흠.”

        

       황제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네가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구나. 이렇게 보여도 나는 대제국을 내 손에 놓고 움직이던 황제였다.”

        

       …….

        

       그게…… 어…….

        

       아니, 대단하긴, 하지만.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황제의 수익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냥 판타지 세계에서 온 사람이니까 수익도 판타지로 낸다고 생각하고 써보겠습니다.

    어차피 이건 개그 외전이고 경제 외전이 아니니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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