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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5

   에린은 주먹을 막아준 사람을 보았다.

   

   그 남자는 남자치고 여리여리한 선을 지니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툭 건드리면 부서지겠다는 말을 농담 삼아 던질 만큼.

   

   허나 외견과는 달리 남자의 손은 에린을 노리던 사용인을 가뿐히 막아내고 있었다.

   

   “나중에 고용주님한테 방법이 있냐고 물어보긴 해야겠다. 감지가 전혀 안 되네.”

   

   남자의 태연한 목소리에 반해 그에게 손을 사로잡힌 사용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어떻게든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하느라 혈관이 잔뜩 오른 사용인의 모습은 저 가녀린 손에 담긴 힘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를 자연스레 알려주었다.

   

   “무능한 아줌마 소리 들을 게 열 받긴 하지만.”

   “이 새끼가!”

   

   참다못한 사용인이 자신의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칼날은 한 걸음 뒤에 떨어져 있는 에린에게도 섬뜩함을 선사했다.

   

   허나 남자는 그를 보고서도 여전히 여유로웠다.

   

   “그건 끝까지 감춰야지. 그래야 변명이라도 할 수 있잖아.”

   

   남자는 이런 수준 낮은 녀석에게 당한 것이냐며 툴툴거리면서 목을 비틀어 칼날을 피했다.

   

   그리고는 종아리를 걷어 차 상대의 중심을 무너트린 후 아래에서부터 위로 턱을 올려차는 것으로 사용인의 뇌를 뒤흔들었다.

   

   이상한 기운을 다룬다 한들 결국에 인간. 뇌가 흔들린 사용인은 그대로 바닥에 널부러지고 말았다.

   

   남자는 그를 보고서 자연스럽게 사용인의 목 위에 발을 올렸지만 자기 뒤에 에린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머리를 걷어차고 말았다.

   

   “안녕. 오랜만이야.”

   “…저를 아시나요?”

   “지난 번에 봤잖아? 알른 가문의 저택에서. 아. 맞다. 지금 나 변장 중이지 참.”

   

   잠시 까먹고 있었노라 이야기를 한 남자가 목을 툭툭 건드리자 남자의 목소리가 여성의 것으로 바뀐다.

   

   그를 들은 에린은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분명 아가씨께서 아줌마라고 부르던 분.

   

   이름이.

   

   …어. 음. 뭐였더라?

   

   아가씨께서 계속 아줌마라고만 불러서 기억이 안 나.

   

   아줌마라는 호칭을 듣기에는 워낙에 유려하신 분이라 얼굴은 생각나지만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카리아야. 너처럼 고용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

   

   에린은 아무 말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아 온 대답에 놀라 어깨를 움찔거렸다.

   

   표정에 드러났나? 방금 전에 내 얼굴은 평소랑 다를 거 없었을 텐데?

   

   당혹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에린은 고개를 숙였다.

   

   “카리아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냐. 신경 쓰지 마. 내가 원래 해야 할 일을 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거라.”

   

   손을 절레절레 내저은 카리아는 품 안에서 한 장신구를 꺼냈다.

   

   그것은 에린에게 익숙한 물건이었다.

   

   얼마 전 리나가 저와 비슷한 것을 잔뜩 쌓아둔 것을 본 일이 있었으니까.

   

   루시의 그림이 그려진 장신구. 저건 왜 갑자기 꺼내시는 거지?

   

   에린이 의문을 품은 그 순간 카리아가 그 목걸이를 사용인의 위에 올렸다.

   

   그러자 사용인의 얼굴을 구성하던 살이 녹아내리고 그 자가 지닌 본모습이 드러난다.

   

   “이건.”

   “공허의 추종자야. 이런 변장을 하는 데에 도가 튼 녀석이지.”

   “…아카데미에 악신의 추종자들이 들어왔다고요?”

   “아카데미 녀석들이 무능하다! 라고 설명하고 싶은데 마냥 그러기도 힘들어. 공허의 추종자들을 알아차리는 건 나도 어려운 일이라.”

   “그…런가요?”

   “이번에 널 구한 것도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서 계속 따라다니다 발견한 거야.”

   

   주신 교회의 성녀조차도 지난번에 알아차리질 못했는데 다른 이들이라고 방법이 있겠느냔 카리아의 설명에 에린은 저도 모르게 고갤 끄덕였다.

   

   “그래서 어떡할까요? 일단 교수님들을 데리고 올까요?”

   “아니. 그래봐야 더 큰 혼란이 생길 뿐이야. 이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너는 나중에 고용주님이 오면 나 좀 찾아와 달라고 이야기해 줘.”

   

   카리아가 악신의 추종자를 한 쪽 어깨에 메면서 이야기를 하자 에린이 고갤 끄덕였다.

   

   “아. 그리고 열등이한테도 나 찾아오라고 이야기 해 줘. 아무래도 그 녀석 좀 더 굴러야 할 것 같으니까.”

   “열…등이요?”

   “고용주님의 시녀인데 몰라? 알른 가문에서 자주 들어봤을 텐데.”

   “아. 버로우 가문의 공자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걔.”

   

   카리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서 떠나간 후.

   

   홀로 남은 에린은 자신의 심장이 퍼뜩 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방금 죽을 뻔 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에린은 자연스레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아가씨께서 없으셔서 다행이야.

   

   그 분이 이런 모습을 보셨다면 날 무척이나 걱정하셨을 테니까.

   

   루시의 도움이 되고 싶은 것이지 그렇다 하여 루시의 방해가 되고 싶진 않았던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다스렸다.

   

   *

   

   호칭 문제로 조이가 탈탈 털린 후 친구들의 화살은 자연스레 내 쪽으로 향했다.

   

   결국 조이가 질투를 사게 된 까닭은 내가 그녀를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이니까.

   

   내가 그에 대응한 방법은 단순했다.

   

   “나한테 이름으로 그렇게나 불리고 싶어? 내 귀여운 목소리로 이름을 불리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구나? 푸하핳. 어떡할까? 어떻게 해줄까? 간식을 앞에 둔 애완동물마냥 눈빛이 간절한 게 재밌네. 그러니까 싫어. 안 해줄 거야. 너희 허접한 변태들은 평생 침이나 흘리고 있어. 그게 어울린다고.”

   

   꼬우면 지들이 어쩔건데.

   

   메스가키 스킬의 어투 앞에서 나한테 뭘 할 수 있는데.

   

   나한테 무력으로 처발리는 너네들이 뭘 할 수 있냐고!

   

   이 메스가키는 참교육을 당하지 않아요!

   

   가뿐하게 친구들을 제압한 나는 기가 잔뜩 죽어 있는 칼을 한 번 더 걷어차 준 후에 다시금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주말의 아카데미 거리가 보여주는 분위기는 여느 때처럼 부산했다.

   

   아직 학기가 시작 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중간고사가 시작되려면 얼마간 기간이 남아 있기도 한 지라 다들 신학기를 즐기는 것이다.

   

   물론 거리에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1학년들이었다.

   

   2학년들은 지금 외부 던전 공략 권한을 얻기 위해 던전에 머리를 들이박는 중이고 3학년들은 넘쳐나는 과제 속에서 죽어가는 도중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중 사이에 내가 아는 얼굴이 있는 지 확인했다.

   

   그 중에는 안면을 트면 좋은 이들이 몇 있으니까.

   

   안타깝게도 나의 관찰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처음 보는 얼굴 밖에 없었다.

   

   이것도 내가 이 세상에 발을 디딘 영향인 걸까?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아카데미에 복귀한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행정실 쪽으로 향했다.

   

   우리가 던전을 공략하고 돌아왔음을 알리기 위해서.

   

   

   “알른 영애. 잘 다녀오셨습니까?”

   

   거기에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루카가 있었다. 전투학 교수의 일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인간이 왜 여기에.

   

   “구석진 곳을 택하셨더군요. 영애시라면 좀 더 거창한 던전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러니까 네가 허접한 변태 교수인 거야. 머리를 그렇게 밖에 못 쓰는데 어떻게 교수가 된 건지.”

   “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의문이 자꾸만 차오르던 그 때 저 멀리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를 관찰하기 위해 미와 예술의 신이 택한 사람.

   

   그렇기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예술 교단 특유의 기운을 품게 된 이.

   

   에린의 기운이.

   

   “허접 에린… 너 얼굴이 왜 그래? 평소보다 더 추레해졌네?”

   

   처음에는 반갑게 그녀를 맞아주고자 한 나이지만 그녀의 표정을 본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에린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와 공포의 기색이 남아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아. 그것이.”

   “사실대로 말해. 허접 에린. 네가 말을 감춘다고 내가 못 알아차릴 것 같아?”

   

   에린은 입술을 우물거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타인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가. 그를 눈치챈 루카에게 종이를 떠넘겼다.

   

   “변태 교수. 알아서 처리해. 이 정도는 짐승처럼 멍청해도 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맡겨 주시지요.”

   

   맹세의 흔적이 새겨진 손으로 종이를 받은 루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행정실 바깥으로 나온 나는 에린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공허의 추종자의 습격.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도와 준 카리아.

   

   공허의 추종자가 또 다시 이 곳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저들이 집요하게 파고 든다면 아카데미의 입장에서도 한계가 있을 테니.

   

   카리아가 나를 부른 이유도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함이겠지.

   

   상황을 이해한 나는 훌쩍 카리아가 있는 곳으로 가려다 에린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여전히 에린은 습격 당시의 공포를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아가씨?”

   

   그래서 난 그 손을 붙잡았다. 에린의 손에 비해 자그마한 내 손은 에린의 얇은 손목조차도 제대로 끌어안지 못했지만 그래도 억지로 그 손을 붙잡았다.

   

   “시끄러. 허접 에린.”

   “허. 허나.”

   “아님 뭐야. 내 손이 불쾌해서 못 견디겠다는 거야? 흐응. 오냐오냐 해주니까 이렇게까지 들러 붙는.”

   “아닙니다! 그저 너무도 영광스러웠을 뿐입니다!”

   “그럼 입 닥치고 얌전히 따라와.”

   

   그녀를 혼자 내버려둬선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어 그녀와 함께 걸음을 옮기자 따로 시키지 않았음에도 얼빠여우가 자신의 능력을 에린에게 베풀었다.

   

   얼빠여우의 연기가 에린의 정신을 안정시킨다. 에린의 떨림이 살짝 멎은 것을 확인한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열등아. 내가 학업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일을 하라 그랬잖아. 그게 그렇게 어려워?”

   “아닙니다!”

   “아닌데 왜 내가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끝이야?”

   “아닙니다!”

   “넌 죄송합니다랑 아닙니다밖에 말 못해?”

   

   그렇게 아카데미 거리 뒷골목에 도착한 내가 보게 된 광경은 내 오랜 PTSD를 건드리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왕국에 다섯 개밖에 없는 공작 가문의 공자가 카리아에게 갈굼을 당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당혹스러워 눈을 끔뻑이고 있으려니 카리아가 우리 쪽으로 고갤 돌렸다.

   

   “왔어? 고용주님?”

   “아줌마. 노처녀 히스테리를 이런 식으로 푸는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교육을 하는 거야. 교육.”

   

   교육? 그런 것치고는 자칼이 할 말이 무척 많아 보이는데.

   

   “그보다 고용주님.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 게 있어.”

   “응?”

   “고용주님의 그림이 그려진 장신구. 아카데미에 뿌려 버릴 수 없나?”

   “…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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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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