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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5

       내가 황제 때문에 그럭저럭 심각한 고민을 해본 적은 꽤 많지만, 이런 이유로 고민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거 아는가? 나는 앨리스와 클레어, 그리고 황제한테 각각 20만 원씩을 주었다.

        

       애초에 이건 불려서 쓰라고 준 게 아니다. 일단은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혹은 뭔가 하고 싶은 순간에 쓰라고 준 거지.

        

       굳이 세 사람에게 같은 돈을 준 건 별 이유 없었다. 괜히 나만 안 주느니, 적게 주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피곤해지니 모두에게 똑같이 맞춰준 거다. 사실 황제에게는 돈을 조금 적게 줄까도 생각했고.

        

       그런데, 황제는 그 돈으로 돈을 다시 만들어서 역으로 나에게 3일에 한 번씩 십만 원씩 따박따박 주었다. 그렇게 준 지 2주일째다.

        

       우리가 밖에 놀러 갈 때도 황제는 눈치 없게 따라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아침마다 근처 카페에 가서 스마트폰을 들고 가 에스프레소를 한 잔 시켜 우아하게 마시곤 했다.

        

       뒤를 따라가 봤으니 확실하다.

        

       당연히 스마트폰에는 주식이니 뭐니 하는 앱이 틀어져 있었고.

        

       “뭐, 괜찮지 않아?”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자기 돈 자기가 벌어서 쓰겠다잖아.”

        

       “…….”

        

       “3일에 한 번씩 돈이 들어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야?”

        

       내 표정을 본 앨리스는 웃으며 물었다.

        

       “그건…….”

        

       “일단, 우리는 그 점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는 처지잖아? 두 사람 다 황실의 사람이었으니까. 너나 나나 황실 돈은 아낌없이 썼었다고.”

        

       “…….”

        

       그…… 맞는 말이긴 하지, 응.

        

       내가 마지막 전투에서 썼던 대구경 마르마로스 탄이나, 시대를 앞서간 자동권총이나, 증기 기관으로 돌아가는 외골격 슈트 같은 건 당연히 전부 황실의 돈으로 산 거다. 애초에 나는 황실에서 돈을 벌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게 전부 황제의 돈은 아닙니다만.”

        

       “굳이 따지자면, 황제의 돈 맞아. 물론 지금이야 내 돈이 되긴 했겠지만. 아래 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 소유주 자체는 황실의 우두머리로 되어있으니까.”

        

       앨리스의 그 말을 듣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뭐, 그렇다고 다시 갚거나 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야. 네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긴 하지. 그걸 황제가 전부 벌어들인 건 아니잖아? 굳이 따지자면 선대에서부터 축적되어 온 걸 황제가 굴려서 불렸다고 봐야지.”

        

       내가 그래도 찝찝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클레어가 끼어들었다.

        

       “언니가 당한 걸 그 사람이 갚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 사람이 과연 갚고 있다는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 그건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솔직히, 게임 같은 데서 보던 인상은 좀, 사이코패스 같잖아? 사람을 철저하게 장기 말 취급하고.

        

       “아니, 그것보다.”

        

       나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보다 제가 진짜로 고민하던 게 따로 있습니다.”

        

       “뭔데?”

        

       앨리스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클레어도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주고 있는 돈을 조금 더 늘리면 돌아오는 것도 더 커지는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

        

       앨리스와 클레어는 둘 다 잠깐 할 말을 잃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 그러니까 돈을 받는 게 문제가 아니었단 말이야?”

        

       앨리스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대가 돈을 주는데 그게 문제가 되는 겁니까? 애초에 그 수익의 종잣돈은 제가 댄 돈입니다만.”

        

       “아니, 뭐, 따져보면 그렇긴 한데.”

        

       앨리스는 이마를 짚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저희가 지내는 이 방은 조금 좁지 않습니까? 성인 남성과 십 대 여성 셋이 쓰기에는 여러모로 지나치게 개방되어있기도 합니다. 서로가 선을 지키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건 그래.”

        

       옆에서 듣던 클레어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까놓고 말해서 나로서는 그냥 아저씨라고. 피가 섞였다느니 뭐라느니 하지만 날 키워준 적이 1분도 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클레어의 말은 매우 지당했다.

        

       “그러니까, 조금씩 투자금을 늘려서 최종적으로는 이사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방송하는 것도 조금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지내는 방은 완전한 원룸 형태다.

        

       전셋집이라 천장에 커튼을 달기도 조금 그렇고, 가운데 칸막이를 두기에는 여러모로 자리가 없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방송하게 되면 황제는 바깥에 나가 있거나, 아니면 어딘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세 사람 얼굴이 다 나올 만큼 화각이 넓은 카메라는 우리 원룸의 절반 정도가 그대로 보이게 되니까.

        

       그렇다고 벽에 붙어 앉아서 방송하는 건 불편할 것 같고.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괜찮다니요?”

        

       “아버지가 정말로 돈을 많이 벌어 버리면, 그때는 네가 아버지를 재워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아버지 집에 딸려 사는 게 될지도 모르는데.”

        

       “…….”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이 전셋집을 빼는 건 생각을 해보기로 하죠. 일단 집을 사기만 할 수 있게 된다면 황제는 밖에 나가서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조금 전 당신의 논리대로 따지면 저희는 언제나 황제의 집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몇 개월 정도 더 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앨리스는 내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일단 나는 찬성이야.”

        

       클레어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도 한 손을 들었다. 우리 두 사람이 앨리스를 바라보자,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손을 들어 보였다.

        

       “우리 세 사람이 여기서 지낸다고 해도 나는 크게 불만 없어.”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그리고 그 순간 우리가 지내는 집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황제였다.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황제를 향했는데도 황제는 별달리 놀라지도 않았다.

        

       “사이 좋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냐?”

        

       “잠깐 돈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돈이라면 아직 그렇게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황제가 웃으면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저 양반 왠지 이쪽에 오고 나서는 뭔가 늘 신나 보인다. 안 보이는 갑옷을 한 꺼풀 벗어버린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여기서 제국이라도 새로 세우려고 하나?

        

       하긴 집에서 주식이나 하는 쪽이 정계 입문을 노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딱히 위험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당신도 관련 있는 이야기이니, 와서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호오.”

        

       황제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와 조금 거리를 두고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양반다리를 하고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둔 모습이 아주 단단해 보였다. 뭔가 주먹으로 쳐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 같아.

        

       아니, 실제로도 그러겠지.

        

       “제가 모아둔 돈이 있습니다.”

        

       “호오.”

        

       황제는 나의 말에 씩 미소를 지었다.

        

       저 미소 진짜 마음에 안 든다니까.

        

       “통장에 2천만 원 정도 있습니다. 물론 이 돈을 무조건 다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3백만 원 미만의 돈이라면 투자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거 훌륭한 제안이구나.”

        

       황제는 턱에 손을 올린 채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그 정도 돈은 나도 근시일 내로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네게 보내주는 돈을 빼더라도 남는 돈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씨익, 다시 한번 웃어 보인다.

        

       정말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는 그래도 잠깐 고민해보았다.

        

       “나를 믿지 못하느냐? 오히려 믿어서 그런 제안을 했다고 생각한다만.”

        

       “…….”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돈을 준다면 만족할까.

        

       “반드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십니까?”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보고도 믿지 못하겠느냐? 나는 아제르나의 현대 자본주의를 설계한 자다. 그 근본적인 부분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지. 내가 젊었던 시절에 온갖 실수를 범해가며 쌓아 올린 것들이니.”

        

       그런데 그 경험이 과연 21세기에서도 통할까?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혹시 코인도 하시는 겁니까?”

        

       “위험 부담이 크긴 하지만 조금씩 하고는 있다. 수익은 의외로 크지 않더구나. 나로서는 오히려 주식 쪽이 취향이다.”

        

       “……빚을 지지 않는 선에서 하고 계신 겁니까?”

        

       “빚을 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더구나. 나는 이쪽에선 아직 직업이 없어서 말이지. 그리고 네 말대로 선물에는 손대지 않고 있다. 아무리 나라도 미래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자칫 잘못했다가는 네가 나를 살해하려 들 테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쪽 세상에서 살인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덮을 방법이 없으니까. 차라리 내가 이 세계의 시스템에 등록이 되지 않았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꼽아볼 법하지만, 웬걸, 나는 한국인으로서 지문등록까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못 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으니 불만은 없다.

        

       “……700만 원은 어떻습니까?”

        

       내 물음에, 황제는 턱에 대고 있던 손을 내렸다.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고마운 제안이구나.”

        

       부디 내 쪽에서도 고마워 할만한 제안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의) 이 소설은 판타지 소설입니다
    진지한 경제 관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황제가 유튜브 스타가 될테니까!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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