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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6

       늘 눈에 밟힌다.

         

       제 곁에 있는 누군들 눈에 밟히지 않겠냐마는.

         

       유화연과 신예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알게 된 이후의 두 사람은 무엇보다 더 눈에 밟혔다.

         

       그녀들을 볼 때마다 일종의 죄책감 또는 부채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러한 상황이 제 탓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연인이었던 이의 몸을 이고서 움직이기에.

         

       제 존재만으로 그들에게 끊임없는 고통이 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뒤를 받쳐주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함을 알기에.

         

       제게 가르침을 달라는 유화연을 데리고 시장 곳곳을 누빈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제 연인의 죽음을 알고 난 이후, 그녀의 삶에서 없어져 버린 여유를 되찾아주기 위해서.

         

       “음…, 어떻게 하긴 했는데, 잘 된 건지 모르겠네.”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왜 여기에 왔냐는 둥 의아함을 표출하기는 했으나, 가는 내내 잘 따라주지 않았나.

         

       마지막에 비녀를 준 것은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그 정도야 뭐.”

         

       막말로 반지나 목걸이 같은 것도 아니고, 고작 비녀 아닌가.

         

       더군다나 절대 큰 의미 갖지 말라고 얘기해 두었으니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테지.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진짜로 그녀와의 첫 번째 수련이 시작되었다.

         

       가볍게 끼니를 챙긴 뒤 향한 연무장에는 언제 왔는지, 유화연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허공에다 대고 표홀하게 검을 휘두르는 그녀.

         

       하나 검술보다도 단단하게 고정되어있는 그녀의 머리 쪽으로 시선이 갔다.

         

       하도 오래되어 빛이 바래버린 낡아빠진 비녀.

         

       그것을 보니 굉장히 묘했다.

         

       ‘비녀가 마음에 안 들었나?’

         

       혹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나.

         

       아니면 자신이 준 선물이 부담되어 사용하지 않은 걸까.

         

       ‘어떻게 대하든 선물 받은 사람 마음이기는 한데….’

         

       막상 사용하지 않으니 굉장히 찝찝하여 신경 쓰인다.

         

       “으음….”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그가 고민하는 사이, 기척을 느낀 유화연이 수련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오셨어요?”

         

       그녀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백우진이 대답했다.

         

       “응…, 식사는?”

       “하고 왔어요.”

       “그렇구나.”

         

       순간 찾아온 정적.

         

       그러다 유화연이 말을 걸었다.

         

       “수련…, 시작할까요?”

       “어? 아, 그래, 그래야지.”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유가 수련을 위해서라는 것을.

         

       백우진이 연무장 한쪽에 놓인 목검을 들어 올리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진검으로 부탁드려요. 최대한 실전에 가깝게 임하고 싶어서요.”

       “괜찮겠어? 아무리 조심해도 상처가 제법 많이 날 텐데.”

         

       혈수마녀와 실전에 가까운 비무를 할 때마다 백우진은 제법 많은 피를 흘렸다.

         

       실전이라는 것은 결국 목숨이 오가는 싸움.

         

       거기에 가까운 비무를 펼치려면 노골적인 살수는 지양하더라도, 치명적인 수가 오갈 수밖에 없기 때문.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각오했어요.”

       “그렇단 말이지.”

         

       연무장 한쪽 구석에 목검을 내던진 백우진이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흉터가 남을 정도로 깊은 상처가 생길지도 몰라.”

         

       흉터.

         

       제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그녀는 여인.

         

       아리따운 몸에 누군들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고 싶겠냐마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그녀가 이내 고개 저었다.

         

       “상관없어요.”

         

       고민하던 그녀는 깨달았다.

         

       제게 더 이상 아름다워야 할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던 상대는 이미 떠나갔는데, 아껴서 무엇할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백우진은 손에 쥔 검이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위태로워 보여.’

         

       그녀의 마음가짐이, 삶의 태도가 너무나도 위태롭게 느껴졌다.

         

       세상에 매달릴 것이라곤 제 뒤를 받치는 것밖에 없다는 듯한 모습.

         

       그것이 꼭 죽기 전 남겨둔 단 하나의 숙제를 해결하고 떠나려는 사람처럼 보여서.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자신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에게서 경멸 어린 시선을 받았을 때.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자신을 칭송하는 사람들의 환호성도, 이곳에서 살아가게 될 찬란한 미래도.

         

       전부 무채색으로 변해 의미 없게 되어버렸더랬다.

         

       그녀 또한 자신과 다르지 않을 터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할 테지.

         

       적어도 제 연인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뿐, 살아는 있으니까.

         

       ‘아, 볼 수도 있구나.’

         

       생각해 보니 볼 수도 있다.

         

       적으로 보게 되어 문제긴 하지만, 아무튼.

         

       의미를 잃어버린 삶의 미래는 뻔하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그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해.’

         

       물론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그녀를 구하려면 삶의 의미를 되찾아주어야만 하는데, 이미 무뎌진 가슴에 새로운 자극과 활력을 되찾아주기란 결코 쉽지 않을 테니.

         

       그러니 지금은 수련에 집중할 때다.

         

       “그럼 갈게요.”

       “얼마든지.”

         

       두 사람의 피 튀기는 비무가 시작되었다.

         

       물론 연무장에 흐르는 모든 피는 그녀의 것이었다.

         

         

       * * *

         

         

       ‘백우진’의 죽음을 깨달은 뒤.

         

       언제나 서로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유화연과 신예화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하나로 묶은 것은 동병상련.

         

       동시에 한 사람을 좋아했고, 잘못된 선택으로 잃고, 눈물을 머금고 떠나보낸 경험이 두 사람을 더욱 돈독하고, 서로 의지하게 하였다.

         

       그들의 현재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침소다.

         

       한 사람당 하나씩 방을 쓸 수 있음에도 그들은 같이 쓰는 것을 택했다.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내다 잠드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유 소저가 늦네….”

         

       먼저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신예화는 오늘따라 유독 늦는 유화연을 걱정했다.

         

       “혹시 쓰러진 건 아니겠지…?”

         

       자신도, 그녀도 최근 수련은 혹독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이어오고 있다.

         

       약속했기 때문이다.

         

       제 사랑하는 이 대신 길을 걷는 그의 뒤를 받쳐주겠노라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뿐이었기에.

         

       저 멀리 앞서가는 그의 뒤를 따라잡기 위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빡빡한 삶을 이어오고 있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한쪽이 말없이 늦으면 쓰러진 것으로 판단하고 구해주자는 약속까지 나누었겠나.

         

       밤이 점점 깊어지자,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안 되겠어, 역시 찾으러 가야….”

         

       드르륵!

         

       평소보다 훨씬 늦는 그녀를 찾으러 나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던 찰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유화연이 걸어 들어왔다.

         

       당장 쓰러질 것만 같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온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을 입은 채.

         

       “유, 유 소저…!?”

         

       이를 보고 놀란 신예화가 한달음에 달려가 그녀의 팔을 부축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느껴지는 짙은 혈향(血香).

         

       “어, 어떻게 된 거야? 습격이라도 당한 거야?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그녀의 걱정 어린 물음에 살포시 미소 짓는 유화연.

         

       “습격 같은 건 없었어요.”

       “그럼 몸에 상처들은 어떻게 난 건데!”

       “비무…, 백 공자와 비무해서 난 상처예요.”

       “비, 비무? 그것도 우진이랑…?”

         

       눈이 휘둥그레지는 신예화.

         

       “그, 그러면 몸에 난 상처들이 전부 우진이가 낸 거란 말이야…?”

       “네, 맞아요. 제가 부탁했거든요. 최대한 실전에 가깝게 비무하고 싶다고.”

         

       그녀는 부탁했고, 백우진은 들어주었다.

         

       진심에 가까운 그의 검은 실로 무자비했다.

         

       얼굴이나, 사혈은 철저하게 피해 갔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을 만한 곳은 가차 없이 베었다.

         

       “후후….”

         

       그래서 그녀는 만족했다.

         

       완전히 실전이라고 하긴 어려웠지만, 혼자 하는 수련보다는 훨씬 긴장감 넘쳤기에.

         

       한 수를 읽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상대의 빈틈을 파악하기 위해 노려보는 시간 전부가 그녀의 성장을 체감케 했다.

         

       “대체 뭐가 뭔지…!”

         

       아무리 실전 같은 비무라고 해도 이 정도 상처는 너무한 것 아닌가?

         

       그런데 정작 당한 사람은 헤실헤실 웃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지경.

         

       “안 되겠다. 일단 치료부터 해.”

         

       생각을 멈춘 그녀는 곧장 유화연을 침상 위에 앉혀두고서 치료를 시작했다.

         

       같은 여인이 보기에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눈부신 몸매 위로 드러난 곳곳의 상처들에 금창약을 바르며 그 깊이를 가늠한다.

         

       “다행히 흉터는 생기지 않을 것 같아.”

         

       그녀의 말에 유화연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말인가요? 깊은 상처들도 제법 많았던 것 같은데…?”

       “응, 아슬아슬하지만…, 약만 잘 바르면 괜찮을 거야.”

       “그런가요….”

         

       그녀의 대답에 유화연은 쓰게 웃었다.

         

       ‘거짓말쟁이.’

         

       흉터가 남을지도 모른다느니, 뭐니 하더니 결국 거기까지 다 고려해가며 검을 휘둘렀다는 것 아닌가.

         

       조금 자존심이 상하면서 또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그가 자신을 그만큼 아껴주었다는 생각에.

         

       그러한 감정이 그녀의 인식을 조금, 아주 조금 바꾸었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기던 몸뚱어리가 아주 조금은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연재를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엄니와 함께 코로나에 걸려서 잘 넘겼는데, 어제 계속 엄니 열이 올랐다가 내렸다가 반복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녁에 병원에 가보았더니 몸살에 걸린 것 같다고 해서 병원에 있다가 점심 지나 오후쯤에 모시고 퇴원했네요.

    요즘 들어 건강이 무엇보다 첫째라는 말이 와 닿네요.

    독자님들도 나가실 때 귀찮으시더라도 마스크 꼭 챙겨 다니시길 바랍니다.

    부족한 부분은 조만간 연참을 통해 벌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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