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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6

        

       노산 북쪽을 빙 둘러 북동쪽 해안을 낀 소도시의 이름은 김가촌이다.

       해안과 항구를 끼기는 했지만, 큰 가도를 끼고 번화한 항구인 즉묵현을 둔 탓에 딱히 번화하지는 않다.

       다만, 라오산의 봉우리 중 높이 대비 그 길이 만만하다는 천원봉에 오르려는 객과, 노인해변이라 불리는 백사장을 끼고 어찌 도시라 할 규모까지만 갖춘 촌동네다.

         

       김가장이라니. 그 김씨인가? 배 타면 저 건너편이니까 혹시 또 모르지 않나?

       물론,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본래는 노산 진입로를 끼고서 길잡이며 짐꾼이나 인력거꾼, 그리고 잡상인들로 북적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분위기는 축 처지고 노산 진입로에는 그저 잡상인들 몇이 호객도 안 하고 눈치만 슬슬 살핀 채로 좌판에 붙어 있을 뿐이었다.

         

       이것만 봐도 흡정마공 찾겠다는 놈들이 얼마나 패악질을 부려댔는지 알만 하다.

         

       “차라리 아침을 지금 먹을까요? 요리점에서 먹고 들어가는 게 낫지 않아요?”

         

       “무슨 아침. 아니다. 그래. 먹자, 먹어.”

         

       순식간에 섭섭해지는 청의 표정에 천유학이 그냥 그러자꾸나 했다.

       아침 한 끼 먹는다고 뭐 살중살이 도망이라도 가겠냐면서.

         

       그렇게 간단하고 단촐한 조식, 그러니까 요리점 주인장이 뛰쳐나와 직접 담근 술이라면서 공짜 술을 한 잔씩 올릴 정도?

         

       그때였다.

         

       “아이고, 저 새끼 또 왔네.”

         

       젊은 점소이, 아마 주인장 아들인가 싶은 청년이 인상을 팍 찌푸린다.

       청이 고개를 돌리니 넝마를 입은, 뭐지 넝마가 넝마를 입고 있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눈두덩이는 꺼멓게 물들고 부풀어 앞이 보이나 싶을 지경이고, 뺨은 터질 것처럼 빵빵하고 입술은 이미 다 터져서 피딱지가 얹혔다.

       거기에 손도 퉁퉁 부은 것이 뼈가 상한 모양인데.

         

       텅 빈 요리점을 두리번거리던 거지가 청의 일행을 보고는 다급히 소리를 지른다.

         

       “협사님! 협사님!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산꾼 복장은 인적 없는 데서 몰래 갈아입어야 하기에, 아직 평상복을 입고 있던 일행이다.

       사람은 넷, 검도 넷, 물론 한 사람이 두 개를 들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무림인으로 보였는지 대뜸 협사님을 찾는 것이다.

         

       “이것아, 자꾸 왜 이래? 진짜 죽고 싶어? 썩 꺼지지 못해?”

         

       점소이가 쌍심지를 켜며 넝마 사내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안 그래도 성한 데 없어 측은한 거지를 너무 야박하게 대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점소이가 드물게 파란 숫자를 한 이라서 청이 일단은 지켜보았다.

         

       선업을 쌓은 사람은 정말로 선량한가?

         

       “협사님- 읍.”

         

       점소이가 넝마입은 넝마 거지의 입을 거칠게 틀어막는다.

       주먹이 아니라 주먹밥으로.

       거지가 우물우물 밥을 씹어 꿀꺽 삼키자, 점소이가 푹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임마. 산 새끼는 살아야지. 저번에도 존나 처맞더니. 괜찮냐?”

         

       “하지만, 그 놈들이……!”

         

       “복수해 달라다가 죽으면 그게 무슨 개죽음이냐. 게다가 그 뭐시기가 되게 유명한 문파라며? 관군도 어쩌지 못한다는데 누가 어쩌겠냐는 말이야.”

         

       “하지만, 그 새끼들이, 그 찢어죽일 개새끼들이, 크윽, 협사님! 협사, 읍.”

         

       또다시 주먹밥 한 입.

         

       그야 선량한 일을 하면 선업이 쌓이니까.

       당연히 숫자가 파랄 정도면 선량한 사람 맞지.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착한 사람은 착한 일을 한다. 왜냐하면, 착하기 때문이다. 수준의 논리가 아닌가.

         

       그에 청이 일행을 둘러보았다.

       무심한 눈빛 하나.

       안 도와줄 거냐고 물끄러미 보는 시선이 하나.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모양으로 특특대 초대형 궁둥짝을 동동 구르는 주제에, 그러면서도 나서질 못하고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는 시선이 하나.

         

       으음. 삼 대 일.

       그에 천유학의 표정이 상하지만.

       흥, 하고 콧김을 내뿜고 말아버린다.

         

       스승님,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에요.

       소수의 의견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죠.

       억울하시면 감성으로 선동하셔야 해요.

         

       “이봐요. 점소이. 무슨 일이죠?”

         

       “앗, 손님. 이놈은 신경 쓰시지 마시고-”

         

       “도와주십시오! 도와만 주시면, 평생을 섬기겠습니다! 제발, 제발……!”

         

       “음. 사부님, 혹시 하인 필요하세요?”

         

       “흥. 일 없다.”

         

       “일단은, 으음.”

         

       청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텅 빈 요리점에 개시 손님으로 들어와 막 처먹었으니 주인장이 공짜 술까지 돌리지 않았겠나.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그리하여 넝마 입은 넝마 거지가 사연을 털어놓는다.

         

       평화롭게 살던 촌락 왕가촌.

       그러나 갑자기 들어닥친 일련의 무리가 마을을 습격하였으니, 킬킬대면서 사람을 죽이고 여인을 겁탈하며 마을을 점거했다고 하는 것이다.

       밤중에 몰래 도망쳐 도움을 구해도 소용이 없고, 관아에 매달리다 흠씬 두들겨 맞고-

         

       “잠깐, 그 얼굴을 떡이 되도록 패놓은 게 관가에서 그런 거라구요?”

         

       “세금도 안 내는 쥐새끼가 귀찮게 한다고, 크흑.”

         

       다만, 그런 작은 촌락은 세금을 안 낸다.

       보통 으슥한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들켜서 내라 해도 배를 째시오 우린 가진게 없소 하면 그뿐이다.

       왜냐하면 실제로도 가진 게 없어서 굳이 건드려도 재미 볼 구석이 없으니 쥐새끼라 부르며 사람 취급도 안 한다.

         

       그러니 두들겨 팬 것은 심했지만, 관부 역시 할 말이 있기는 할 터다.

       저네들끼리 살겠다고 건들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일이 터지고 와서 나랏님을 찾는다면서.

         

       거지는 설움이 북받쳤는지 울음이 터져 이게 말인지 흐느낌인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다만, 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데.

       청의 눈매가 사나워진다.

         

       “왕가촌이 혹시 저기 북쪽 능선에 있는 촌락이에요?”

         

       흐느끼는 거지를 대신해 점소이가 대답을 붙인다.

         

       “아씨. 아마 거기는 단가촌일 겁니다요. 왕가촌은 여기서 남쪽으로 한나절 산기슭에 있는 촌구석입니다요.”

         

       그에 청의 눈썹이 꿈틀.

       그러니까 다른 촌락이다?

       쳐들어가 대뜸 사람을 몰살시킨 놈들이 또 있다는 말이야?

         

       “그 아씨, 소인이 듣기로는 강패천인가 하는 엄청 큰 문파라고 들었습니다. 괜히 휘말리시면 큰 곤욕을 치를 것입니다요.”

         

       “제발, 크흐흑, 도와주십시오, 제발…….”

         

       그에 청이 천유학을 돌아본다.

         

       “강패천? 음. 십대사파? 맞아요?”

         

       “대충 그렇게 부르지. 뭐? 사도십대천성. 사파 놈들도 열 개 꼽는다고 만들어놨는데 그렇다고 만만히 볼 정도는, 아니다. 하아. 어차피 말린다고 안 들을 거 아니냐?”

         

       “음. 진심으로 말씀하신다면요.”

         

       그에 천유학이 한숨을 푹 내쉰다.

         

       “잘 생각해라. 그냥 동네 마두 상대하는 일과는 성격이 달라. 아예 후환을 남겨두면 안 된다. 네 사문을 위해서도.”

         

       사문 이야기에 청도 심장이 덜컥.

         

       진장명이 청의 소매를 붙든다.

       청이 내려다보니 고개를 도리도리.

       진장명에게는 그깟 사도인지 뭔지 그보다 신녀문 식구들이 훨씬 소중한 것이라서.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인간 말종들을 모른 척해야 하나?

       사부님이 그걸 바라실까?

         

       청이 진장명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괜찮아. 우리가 누군 줄 어떻게 알겠어? 음, 연용이는 괜찮겠어?”

         

       연용은 모용주희의 가명이다.

       장녀 언연영 차남 언연이 차녀 언연용.

       쉽게 발음하면 어녀녕 언년이 어녀뇽.

       물론, 언연영 빼고는 청의 창작으로 실제 고증과는 다르긴 하지만.

         

       다만 가명을 쓰는 일은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가명을 들키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저를 불러도 알아듣지를 못해서.

       남의 이름 쓰면 남의 이름 부르는 것 같아서, 자기 이름 부를 때처럼 퍼뜩 알아듣지는 못하는 것이다.

         

       “녀뇽아?”

         

       “앗. 네. 녀뇽이가 바로 저, 저예요. 그, 저는 언니, 따라서 가고 싶어요.”

         

       우나람이 부를 때는 닭살 일백배 참을 수 없는 청이었다.

       하지만 장명이는 곧잘 부르고, 모용주희가 부르는 건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

         

       왜지?

       음? 장명이가 부르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청이 잠시 생각해보다가, 그렇지.

       꼬맹이한테 듣는 건 거부감이 별로 없는 모양이네, 하고.

         

       넝마 거지가 얼빠진 표정으로 일행들을 올려다본다.

         

       “도와주신단 말씀이십니까……?”

         

       “딱히 기대하지는 말고 있어요. 괜히 얽히면 화를 입을 테니 어디서 입도 뻥긋하지 말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

         

       “은인의 성함이라도-”

         

       “방금 내 말 못 들었어요? 괜히 얽히지 말라니까 벌써 이름부터 묻고 앉았어. 그냥 됐으니까 몸이나 추슬러요. 사람이 아주 호떡처럼 부풀어 가지곤. 음, 호떡 먹고 싶다. 여기 호떡집 없어요?”

         

         

       —-

         

         

       호떡집은 없었다.

       그리하여 이유 있는 분노가 강패천을 덮친다!

       호떡의 원수! 다 죽여버리겠다!

         

       “그만한 놈들이 괜히 마을을 몰살시키진 않았을 테니, 아마 정보보다는 마을 그 자체가 목적이었을 게다. 거점으로 두고두고 쓸 예정인 게지.”

         

       노산에 올라 보고는 분명 저들도 이 탐색이 하루이틀에 끝날 일이 아님을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노산 동쪽 산기슭에 자리를 딱 잡은 촌락이 있었으니.

       노산 어느 산줄기로도 뻗어나가기 좋은 요지에 허름하나 사람 사는 민가가 있으니 거점 삼기가 얼마나 좋겠는가.

         

       “음. 정말 죽일 놈들인데요.”

         

       “이래서 보물을 치워야 한다는 거다. 원래 인간답지 않은 놈이 욕심을 부리면, 그 패악질이 이러하니까.”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파의 세계.

       사람 새끼들인가?

         

       “그리고, 거점이 필요할 정도라면 제법 마릿수가 된다는 뜻일 거다. 겨우 몇 명 쯤 될 것 같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겠나. 강패천쯤 되면 고작 촌락 밀어버리는 일로 악명을 쌓고 싶지는 않을 테니, 그냥 제일 좋은 집 차지하고 앉아서 군림했겠지.”

         

       “음.”

         

       “하지만 이제 아침이니 대부분은 산으로 기어들어 갔을 터다. 남은 놈들은 별 볼 일 없는 쭉정이거나, 아니면 궂은일 하기 싫어 남은 엉덩이 제일 무거운 놈이겠지.”

         

       그에 진장명과 모용주희의 시선이 저절로 청의 하체로 향한다.

       청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모용주희의 드넓은 골반으로 향하다가-

         

       “뭐지? 왜? 나를 보는 것이지? 아니, 뭐 모용 소저는 그렇다 치고. 장명이 너는 왜 날 봐? 도드라지는 곡선으로 따지면 여기 모용 소저를 봐야 하는 거 아냐? 막 허리서 이렇게 뻗어나가는데?”

         

       청이 손을 아예 좌우로 수평으로 밀어버린다.

       그에 모용주희가 얼굴을 붉힌다.

         

       “그, 그 정도는 아니예요.”

         

       “흥. 엉덩이는 언니가 더 커.”

         

       진장명이 어째 의기양양한 투로 말한다.

         

       그야 키가 있는데 당연히 더 크지.

       애초에 키가 내 어깨쯤에 닿는 모용 소저인데, 엉덩이가 더 크면 이상하잖아.

         

       청이 엉덩이가 크다고 할 때는 절대적인 질량보다 신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곡선이 반달인지 처진달인지 모양까지 감안해야 엉덩이의 경중과 대중소, 그리고 크기만 한지 큰데 예쁜지 엄중히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유학이 거기에 의견을 더한다.

         

       “아니 엉덩이가 뭐가 중요해? 진지하게 쫌. 어? 진지하게. 이런 때까지 장난질이냐?”

         

       “에이, 너무 긴장하면 될 일도 안 되니까 잠깐 분위기 좀 풀어낸 거죠.”

         

       어쨌든, 청은 감탄했다.

       촌락이 털렸다는 사실 하나로 아주 줄줄이 알아낸 것들이 쏟아져나오지 않나.

       솔직히 스승님께서 언행이 막 똑똑하신 느낌은 아닌데. 역시 시강학사, 그러니까 교수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구나.

         

       “그러니까 잔챙이만 있거나, 잔챙이 사이에 센 놈이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거죠?”

         

       “사파 놈들 특성상 자긴 놀아도 제 아랫 사람 노는 꼴은 못 볼 테니, 센 놈이 있어도 한 놈 정도겠지.”

         

       “음. 그럼 제가 정문에서 소란을 좀 피워 볼게요. 장명이랑 모용 소저는 그 틈에 담을 넘고, 스승님은 하고 싶으신 대로 하시면 되고. 그리고, 후환을 남겨두지 말 것.”

         

       그리 말하는 청의 눈빛이 스산하다.

       후환을 남겨두지 말 것,

       다 죽이자는 소리다.

         

       그에 천유학이 한숨을 푹 내쉰다.

         

       “하아.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내 사부, 는 됐고 사조님들 앞에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신투가 재물이 아니라 목숨을 훔치게 생겼으니 하는 한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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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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