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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7

       이런저런 것들을 준비하던 반그로우가 처음으로 내 앞에 내민 것은 여러 채소들을 볶아서 만들어낸 물건이었다.

       

       객잔에 들어가서 가장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점소이가 흔히 이야기하는 음식.

       

       한창 여행을 하던 시절에 본인은 이를 지겹도록 먹어 보았다.

       

       새로운 지역에 갈 때마다 혹여 이 곳이라면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지던 적이 있었거든.

       

       분명 음식으로 특출난 곳이 있을 거라고. 본인의 입맛에 맞는 무언가가 존재할 거라고.

       

       그리 믿고 각 지역에 갈 때마다 그 곳에 이름난 음식점을 모두 뒤져보던 본인에게 이 채소 볶음이라는 것은 그 가게가 지닌 실력의 척도를 잴 수 있는 음식이었다.

       

       가게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이 채소볶음이 엉망인 곳 중에서 다른 음식이 맛있는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일정 시점이 지난 후부터 본인은 이 채소볶음만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잦아졌지.

       

       안 그래도 여러 괴악한 음식 때문에 혀를 고생시키고 있었거늘. 자그마한 희망에 걸고서 그 끔찍한 것들을 마주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차라리 벽곡단으로 배를 채우는 편이 이로울 터 아닌가.

       

       수많은 실패 속에서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본인은 수많은 식당에서 채소볶음을 한 입 하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더랬다.

       

       다른 음식을 먹은 적이 있냐고?

       

       아니. 있으면 본인이 결국 벽곡단만을 먹고 살겠다는 판단을 내렸겠느냐.

       

       “아라님의 혀를 만족시키지 못할 정도라. 확실히 화룡무인 초창기의 식문화가 좀 끔찍하긴 했죠.”

       “그대도 아는 바가 있는가?”

       “무협 1팀장님이 이딴 건 무림의 음식이 아니야!를 외치면서 구원을 요청하시기에. 본의 아니게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초창기 화룡무인 식문화 개선에 참여해보았다 이야기한 반그로우는 지금 이 음식도 그 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내게 설명해 주었다.

       

       “아라님께서도 그 세계 출신이시죠?”

       “정확하게는 그와 한없이 닮은 다른 세계지만. 무어. 음식이 쓰레기 같았단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하구나.”

       

       당장 백화령 그 녀석이 바루를 꼬시겠다고 들고 왔던 유부가 되려다 인생의 쓴맛을 본 듯한 두부 시체만 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 음식이 본인이 거주하던 무림의 평균이다.

       

       아니지. 최소한 음식 흉내라도 낼 생각은 했으니 나름 상위권이라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나?

       

       “굳이 본인이 살던 곳을 언급한단 것은 본인이 지니고 있는 편견을 깨줄 수 있단 자신감이겠지?”

       “물론입니다.”

       

       반그로우의 웃음에서 시선을 떼고 채소볶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충 훑어보기에 이 채소볶음은 본인이 아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결국 이것은 몇 가지 야채를 양념에 볶았을 뿐인 요리이니 말이다.

       

       다만 그 안을 세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여러 차이점이 보이지.

       

       예를 들어, 이 채소를 볶은 기름은 단순한 무언가가 아니라 고추기름이다.

       

       기름의 느끼함을 고추의 알싸함으로 잡음과 동시에 풍미를 끌어올리려 노력한 것이야.

       

       그리고 사이사이에 간고기를 집어넣어 고기의 맛과 고소함을 더했어.

       

       흐음. 겉모습을 보았을 뿐인데 벌써 과거의 무림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사치스러움이 느껴지는 구나.

       

       기대가 돼. 이것을 먹었을 때는 어떤 느낌을 줄까.

       

       눈웃음과 함께 젓가락을 움직인 나는 채소 볶음을 한 가득 집어 입 안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이빨을 움직인 순간 절로 웃음이 샜다.

       

       신기하군. 기름에 볶았을 터임에도 식감과 수분을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니. 그렇다고 생 채소 같은 느낌은 아니야.

       

       그 사이의 어딘가. 볶음이면서도 동시에 샐러드이기도 해.

       

       뭣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이 채소볶음의 맛을 담당한 것들이 실로 현대적이라는 게지.

       

       감칠맛. 짭짤함. 그리고 약간의 단 맛과 신 맛.

       

       채소 볶음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처음 나와 입맛을 돋우는 역할까지 해주는 이 요리는 본인이 채소볶음이라는 요리에 기대하는 여러 요소를 완벽히 수행해주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채소볶음이 있던 그릇은 텅 빈 채였다.

       

       몇 입 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벌써 음식이 자취를 감춘단 말이더냐.

       

       이거야 원. 그저 처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제부터 맛있는 것들이 연이어 나올 것 또한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리 아쉬움이 생기는 것인지.

       

       앞서 본인이 채소볶음을 통하여 그 가게의 실력을 잴 수 있다 이야기를 했었다만.

       

       이 가게는 본인이 무림에서 갔던 그 어떤 가게보다도 기대가 되는 곳이구나.

       

       흐뭇한 웃음과 함께 빈 그릇을 옆으로 민 순간 반그로우가 다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나무로 된 찜통 위에 놓여 있는 만두.

       

       이 또한 무림에서 자주 보았던 음식 중 하나구나.

       

       대개의 마을에 있던 만두는 보통 저 안에 든 것이 거의 없다시피했지.

       

       고기는 기대할 수도 없었고, 채소도 얼마 되지 않았으며 사실상 피로 텅빈 속을 감췄을 뿐인 무언가였다.

       

       거기에 더해 만두 대부분을 구성하는 피는 얼마나 푸석푸석한지.

       

       본인이 젓가락으로 겉부분을 슬쩍 누르면 피에 구멍이 나 텅 빈 겉부분이 그대로 드러날 지경이었다.

       

       맛? 모습이 이러한데 맛이 있을 수 있겠느냐?

       

       쉬어버린 피 안 쪽에 썩은 음식을 감추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이 본인이 아는 무림의 만두였다.

       

       허나 이 음식은 그렇지 않을 듯 하구나.

       

       겉에 피부터가 윤기가 흐르는 데 어찌 그런 쓰레기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

       

       기대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아이마냥 젓가락을 뻗으려는 순간 반그로우가 옆에서 그를 말렸다.

       

       “이 숟가락에 담아서 피를 살짝 찢어보세요.”

       “…피를 찢으라고?”

       “네.”

       

       저 쫄깃해 보이는 피를 굳이 찢어야 한단 말이더냐?

       

       반그로우의 이야기에 절로 저항감이 생겨나긴 했지만 난 그래도 녀석이 시키는 것을 따랐다.

       

       이 음식을 만들어낸 것이 반그로우일지니. 음식을 어찌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지에 대해 아는 것도 그녀이지 않겠나.

       

       만두 전체를 품을 수 있을만큼 앞이 커다랗고 깊은 숟가락에 만두를 담은 후 젓가락으로 슬쩍 겉의 피를 찢은 순간 피에 난 상처에서 액체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기름…인가?

       

       아니. 단순한 기름과는 거리가 멀군.

       

       그렇다기에는 이 안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향을 설명할 수 없어.

       

       본인의 지식 안에서 이와 비슷한 것을 찾아보자면.

       

       “육수군.”

       

       육수. 고기를 우려낸 육수로 이 안을 가득 채워 넣은 것인가!

       

       피를 슬쩍 찢자마자 주르륵 새 나올 만큼 이 안을 채워 넣었단 말이더냐!

       

       눈썹을 치켜 든 본인은 옆에서 반그로우가 무어라 이야기하는 것을 무시하고 그를 입 안에 집어넣었다.

       

       쫄깃한 피가 이빨에 의해 무너지는 것은 육수를 품고 있던 댐이 무너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홍수가 난 듯 입 안에 퍼져나가는 육수의 풍미를 느낀 본인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맛있군. 너무도 맛있어.

       

       찜기 위에 있는 만두가 단 세 개 뿐이라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이보게. 반그로우. 이 맛있는 것을 몇 개 주지 않은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만.”

       “아직 남은 음식이 많으니까요. 살짝 아쉬운 정도가 좋답니다.”

       

       반그로우는 아쉽다는 감정과 다음 음식을 기다리는 그 과정조차도 코스 요리의 묘미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본인은 거기에 담긴 것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감질나는 감정을 어찌 즐기라는 것인지 원.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반그로우가 음식을 내오는 속도가 거의 끊임이 없었다는 것이다.

       

       살짝 아쉽다 싶은 감정이 드는 순간이면 언제나 바로 옆에 음식이 제공되었으니.

       

       본인은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음식의 향연 속에서 맛을 즐기는 데에 집중을 하면 됐다.

       

       단순한 물에 뚝뚝 끊기는 면을 말았을 뿐인 것이 아니라 풍부한 맛을 지닌 국물에 재미난 식감을 지닌 면이 들어간 소면.

       

       고기조각인지 요리인지 알 수 없었던 무언가가 아니라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아버리는 동파육.

       

       이외에도 반그로우는 본인에게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요리들을 대접해 주었다.

       

       그러면서 본인은 반그로우가 이 코스요리를 통해 본인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려는 지를 깨달았다.

       

       그녀는 이름 아래에 도사린 것이 얼마든 바뀔 수 있노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요. 간판이 같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안에 담긴 것이 변화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말이다.

       

       분명 이는 본인의 혼에 관한 이야기겠지.

       

       자그마한 아이가 말해주었듯 비틀려 있다는 혼엔 관한 것 말이다.

       

       육신이 뒤바뀜에 따라 혼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지언데 본인이 그를 인정하고 있지 않으니 비틀림이 일어났다 말하려는 것이야.

       

       웃기는 군.

       

       헛웃음을 흘린 나는 마지막이라며 차와 간식을 내어 주는 반그로우를 보고 곰방대에다 불을 붙였다.

       

       “우선 감사를 표하마. 그대 덕분에 본인의 생 동안 먹었던 것 중 가장 맛있는 것들을 먹게 되었으니.”

       “즐겨주셨다니 영광입니다. 아라님.”

       “그리고 하나 더. 코스 요리에 대해 알려준 것도 고맙구나. 이어지는 요리를 통해 자신의 뜻을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니. 이것은 음식을 통해 만들어내는 극이라 불러 마땅하겠어.”

       “배움이 빠르시군요. 그 또한 바로 알아차리시다니 말입니다.”

       “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어.”

       

       목소리를 낮추며 반그로우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기운을 겉으로 내진 않았다.

       

       그렇다고 살의를 표출하지도 않았다.

       

       본인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해 준 이에게 무얼 하러 그런 짓을 하겠는가.

       

       대신 본인은 그저 스스로의 감정을 반그로우에게 눈으로 전했다.

       

       주제넘게 훈수를 둔 것에 대한 불쾌감을 말이다.

       

       그러자 주방의 열기 속에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반그로우의 이마에 식은땀이 새겨진다.

       

       “반그로우. 자네. 본인이 과거와 현재의 괴리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으리라 생각하는가?”

       “…예?”

       “무림에 머무를 적의 본인이 정말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보는가?”

       

       만일 그렇다면 본인은 정말 화가 날 것 같아.

       

       네 놈에게 무의 길이라는 것은 마음의 미혹을 가지고서도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무언가라는 소리일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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