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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7

    직업 박람회.

    그것은 이제 곧 사회인이 될 아이들이 진로를 찾거나 선택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국가기관 주도로 기획된, 다양한 종류의 직업을 보고 들으며 체험 할 수 있는 박람회였다.

    이 행사를 통해 아이들은 평소 막연하게만 가지고 있던 직업에 대한 흥미를 조금 더 구체화시키거나, 반대로 자신에게 더 맞는 새로운 진로를 찾아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실제 그 직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하는 멘토링 활동까지 할 수 있었다.

    만일 아이들이 자신의 직업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직업을 가질 시기를 놓쳐버린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국가적인 손실이었으므로, 행사는 아이들이 흥미를 끌 수 있도록 공을 들인다.

    그 덕분일까, 분명 대부분의 아이들이 싫어하는 ‘교육적인 목적’을 띤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은 그것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커다란 행사장이 북적거리도록 채운 인파.

    국가의 주도로 기획된 행사이니만큼 전시된 직업들이나 직업인들의 수를 비롯해 행사는 꽤 규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인파들 사이, 어딘가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의 한 소녀가 있었다.

    성숙함과 앳된 느낌이 공존하는, 이러한 행사에 더없이 어울리는 연령대의 소녀.

    그녀는 이 모든 것들에 흥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한 공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녀는 아무래도 음악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소녀는 등에 커다란 현악기 케이스를 메고 있었지만, 음악과 관련된 부스에조차 제대로 된 눈길 한번 주지 않고는 주변을 둘러보기를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이곳에 전시된 어느것 하나도 소녀의 흥미를 끌지 못한 모양이다.

    결국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듯, 소녀는 벤치를 향해 다가와 악기케이스를 옆에 내려둔 채 휴대전화를 꺼내어 온 신경을 그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녀에게 이 모든 행사는 그저 무의미할 뿐이었으므로.

    사람이 많은 곳이 불편한 것일까, 소녀는 그렇게 금세 손바닥에 쥔 조그만 화면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렇게 소녀가 벤치에 가만히 앉아 휴대전화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다가와 그림자를 드리웠다.

    소년이라고 칭하기엔 꽤나 큰 키와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 거기에 더해 얼굴을 가리려는 듯 후드를 깊게 눌러쓴 음침한 행색은 아무래도 이러한 행사와는 영 관련이 없어 보였다.

    그에 누군가 본다면 소녀에게 당장이라도 해코지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게 만들 정도였으나, 걱정이 많은 누군가가 행사 관계자에게 신고를 하기 전에 소녀가 먼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는 체를 했다. 

    “그래, 왔느냐?”

    그에 남성도 화답하듯 목소리를 내었다.

    “네, 스승님.”

    그가 소녀를 향해 부르는 호칭은 누군가 본다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종류의 것이었으나, 소녀의 곁에 놓인 커다란 악기용 케이스를 본 사람들은 소녀가 그의 음악 스승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얼핏 하며 지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시선이 조금씩 흩어지는 걸 확인한 소녀는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그가 도착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가 됐다.

    그렇게 서드는 벤치에 앉아있던 루크와 합류해 어느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얌전히 루크의 뒤를 따르던 서드가 묻는다.

    “저, 스승님. 이런 곳은 왜 오신 겁니까? 이제는 말씀해주시지요.”

    설마하니 정말로 자신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갖는 데 도움이 되라고 부른 건 아닐테고.

    일단 불렀으니 오기는 했다만, 그녀가 자신을 부른 그 이유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전화나 텔레파시로는 중간에 누군가에게 가로채일 염려가 있다며 제대로 된 설명을 일체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직접 만날 시간도 없다며 만남을 피했으니, 그로서도 별달리 사전에 정보를 획득할 방법은 전무했다.

    다만 자신을 부른 것에서 어렴풋이, ‘그’와 관련이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

    그의 질문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은 가면서 설명해주지.”

    이유를 아는 것이 반드시 도움이 되리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루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일 바로 이곳에서 루체스트의 사업 설명회가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지.”

    결론부터 설명하는 방식은 루크가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청취하는 대상이 어느정도 비슷한 지식수준을 갖춘 상태라면, 설명하는 데에 낭비되는 시간이 가장 짧고 집중도가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기반지식이 없는 이에게는 굉장히 난해한 방식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으로 되물었다.

    “루체스트의 사업 설명회… 말입니까?”

    “그래.”

    그는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대체 무슨 사업 설명회이기에 그녀가 신경을 할애하고 있는 것일까?

    그에게서 그러한 궁금증을 읽은 그녀는 다시금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와 루체스트는 분명히 어떻게든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루크는 이후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차근차근 늘어놓기 시작했다.

    딜런트의 죽음과 아티팩트의 출처에 대한 의문부터 정체모를 연구소에서 확인한 약의 존재와 연관성까지…

    물론 그것조차 굉장히 간추리고 간략화하여 개요만 짚었을 뿐, 주변에 듣는 귀가 너무 많다며 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말하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보기엔 조심성이 거의 편집증 수준이 아닌가라고 하겠지만, 루크에게는 그것도 모자란 수준이었다.

    상대는 ‘시가르마타’와 엮인 실체를 모르는 거대한 존재고, 자신은 그저 한낱 개인에 불과한 셈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특정되는 순간 죽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에겐 충분한 이야기였다.

    그에겐 어차피, ‘그’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뭐든 상관이 없었으니까.

    중요한 건, 그녀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으니.

    그렇게 서드가 납득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루크가 말을 이었다.

    “따라서, 네가 이곳의 구조를 눈에 익혀둘 필요가 있어. 나 또한, 이곳의 자세한 정보를 알아볼 필요가 있고. 이곳의 구조를 잘 보아두거라. 카메라의 사각이라던가, 도주경로같은 것 말이지.”

    이번 사업설명회가 다른 큰 일로 번질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계획이든, 준비가 철저할수록 리스크가 줄어드는 법이었으니까.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라면 충분히 납득이 되고도 남았다.

    “그래, 이해했다면 됐다. 아, 그리고 이후 돌아갈 때에 건물의 도면을 보내줄 테니 내일까지 잘 숙지해 두도록. 당일에는 현장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루크의 말에 서드는 곧 건물의 구조를 공들여 눈에 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루크가 말한 장소로 진입하기위한 루트는 무엇이 있는지, 카메라가 잡아내지 못하는 구석진 곳은 어디인지.

    잠시 후, 루크가 서드를 향해 말했다.

    “자, 그럼 나는 여기서 잠시 흩어지도록 하지. 그동안 너는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거라.”

    “예? 갑자기 흩어지다니, 어디로요?”

    “나는 따로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루크는 자신이 들고 온 첼로케이스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오늘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평소와는 달리 첼로가 아니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가 없거나, 좌표지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벽을 뚫어 탈출로를 만들 수 있는 원격 폭파마법이 인챈트된 스크롤, 불안정하거나 일치하지 않는 공간좌표계를 고정시켜 아공간을 보다 수월하게 열 수 있도록 돕는 작용을 하는 토템, 구조적으로 원거리 침식이 불가능한 폐쇄형 텔레파시 네트워크를 해킹하기위한 원격 침식툴, 마계화 가스를 대비하여 만든 공기정화 필터 등.

    그 외에도 자잘한 아티팩트들이 있었지만, 모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위한 보험용 아티팩트들이었다.

    다들 섬세한 마력을 지닌 물건들이라 아공간으로 옮길 수가 없어 적당한 케이스에 담아올 수밖에 없었으니까.

    본래, 마법사는 무대를 짜는 사람이다.

    가능한 모든 상황을 예측하여 대비하고,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저울질하여 리스크를 최소화시키는 존재.

    “부디 내일 사용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대비는 확실히 해 두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내 생각이라는 게 항상 딱 맞게 돌아가는 상황만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아직도 자신은 현대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스런 기술이 무엇이 있는 지 전혀 모른다.

    일전의 그 마력을 굳히는 가스라던가, ‘드워프의 지팡이’라 불리는 현대식 병기에 대해서는 정말 놀랐으니까.

    혹시 또 그것과 비슷한 물건이 있을 지 어떻게 안단말인가?

    사실 고작해야 정보취득을 위한 계획에 이 정도의 대비는 과할수도 있다고 하지만, 앞선 몇번의 실패가 루크를 자만으로부터 벗어나 겸손하게 만들었다.

    “으음, 그건 그렇지요.”

    그 이야기를 들은 서드는 당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그다지 과한 대비는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준비해두었지만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준비조차 하지 못해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것은 크게 다르니 말이다.

    “자, 혹시나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이 아티팩트로 연락하게. 극도로 암호화시킨 통신문법이 적용된 거니까, 그리 간단히 도청될 일은 없을거다. 간단히 귀에다 끼우고 말하면 돼.”

    “네, 알겠습니다.”

    루크는 첼로 케이스에서 묘한 빛을 내는 마석을 꺼내 서드에게 건네며 사용법을 간략히 설명했다.

    암호화에 집중한 탓에 통신거리는 그렇게 길다고 할 수 없지만, 같은 장소 내에서 통신하는 데엔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용건이 끝난 루크는 서드가 귀에 그 마석을 끼우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몸을 돌리며 인사를 건넸다.

    “그럼, 나는 이만 가지. 적당히 구조가 눈에 익었다고 판단되면 쉬고 있어도 좋네.”

    “아,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스승님.”

    “그래.”

    그렇게 등을 돌린 루크의 모습을 보며 서드는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저 악기 케이스, 처음 자신을 만났을 때도 본 물건이었지.

    이미 생각했던 것이지만, 단순히 첼로를 메고 다녔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때도 저런 흉악한 아티팩트들을 담고 다녔던 걸까?

    하지만 서드는 그런 의문을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일부러 물어볼 정도로 가치있는 질문은 아니었기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보) 사실 그때는 진짜 첼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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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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