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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7

        

         

       모리스는 이제는 쓰레기 더미가 되어버린 인형에게 다가가 배낭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배낭을 열었고….

         

       “오오….”

         

       배낭이 열리자마자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에 감탄을 내뱉었다.

         

       “아주 훌륭한 주물이군요….”

         

       배낭 안에 있는 것은 주물이었다.

       그것도 그냥 주물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뼈를 재료로 만든 주물들.

       평범한 사람이라면 지닌 것만으로 병에 걸리거나 안 좋은 일이 들이닥칠 수준의 물건들이었다.

         

       명백히 사람을 해할 악의(惡意)로 만든 듯한 주물들은 단순히 사람의 머리뼈로만 만든 것도 있었고, 강렬한 사념이 깃든 것도 있었으며, 귀신이 깃들어 있는 것도 있었다.

         

       모리스는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길한 물건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거 부산물을 바라며 천칭 위에 점술을 올려놓았는데…. 하하하.”

         

       그가 진성에게 요청한 것은 백골탑을 만드는데 사용할만한 물건을 달라는 것.

         

       그냥 평범한 사람의 두개골이어도 좋고, 비범한 사람의 것이라면 더 좋다.

       그 숫자가 많아도 좋고, 적어도 좋다.

       그저 진성이 그가 만들기를 원하는 백골탑에 도움을 줄 만한 물건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괘를 얻었기에 도움을 요청했을 뿐이었고, 진성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부산물’에 불과한, 진성에게 있어서 쓸모없는 물건을 얻을 생각이었으나….

         

       그런데 이건 너무 좋지 않은가.

         

       사람의 두개골로 조각한 주물이라니.

       그것도 그가 만들려는 백골탑의 취지에 걸맞은 저주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주물이라니.

         

       주물에서 넘실거리는 사념은 절에서 평생 갈고닦으며 살아온 종교인의 몸에서 나온 사리와는 정반대의 성질을 품고 있는 것. 삿되고, 집착이 심하고, 번뇌가 가득하니 이것은 사리를 넣어 만드는 탑의 성질을 반대로 반전시켜 사람을 해하고 땅을 오염시키는 용도의 핵으로 사용하면 적합할 것이오.

         

       주물에 깃든 귀신은 사람을 해할 생각이 가득하다. 소유자를 파멸로 몰고 가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음험하고, 소유자의 뜻에 따라 타인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준비를 하니 사악하고 충실하다. 하니 이것을 핵으로 삼는다면 밤에 근처에 오는 이를 홀리고 괴롭히기에 충분할 것이다.

         

       게다가 사람의 뼈를 재료로 만들었으니 사람을 재료로 만드는 주물과 궁합이 잘 맞음이요, 그중 머리뼈로 만들었음이니 그것은 으뜸이자 머리를 뜻하는 것이라. 핵으로 써도 좋고, 단순히 벽돌처럼 사용해도 좋다. 겁을 집어먹게 만드는 토템처럼 사용해도 좋고, 핵처럼 보이는 함정으로 이용하는 것도 좋으리라.

         

       좋은 재료.

       그래, 좋은 재료였다.

         

       “이거 꽤 신경을 써주셨군요. 이거 참….”

         

       그가 거래의 대상으로 내민 점괘가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모리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기분 나쁜 난처함이 아닌, 기분 좋은 난처함이었다.

         

       “…선물을 준비해야겠군요.”

         

       그는 배낭을 챙기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밤의 공기.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

       건물과 나무 사이에 어린 짙은 어둠에서 느껴지는 시선.

       그리고, 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과 시선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모리스는 방긋 웃으며 자기 몸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자신이 메고 있는 팔찌에, 목에 걸고 있는 수많은 목걸이에, 허리에 두르고 있는 기묘한 허리띠에, 맨살에 박아넣은 보석에, 살갗에 꿰어있는 피어싱에.

         

       그는 의견을 구하듯 물었다.

         

       [ 그리운 향기. 무덤가의 풀잎에서 피어나는 내음. 달빛에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 기어 다니는 벌레가 품은 냄새. 살점을 뜯어먹고 토실토실 살이 오른 애벌레의 기척. 맥동하는 고치 속에서 느껴지는 썩은 살의 냄새. 냄새가 느껴진다, 냄새가 느껴진다, 냄새가 느껴진다. 배낭에서 그 냄새가 느껴진다. 무덤으로, 무덤으로, 무덤에서, 무덤의 향기가 난다. 무덤으로 가자. 무덤으로 여정을 떠나야 한다….]

         

       [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

         

       [ 간지럼이 느껴진다. 간지러움이란 무엇인가? 혈관 안에 자그마한 벌레가 꿈틀꿈틀 움직이며 썩은 피를 헤엄치며 벽을 뜯어먹는 그 감각이다. 날카롭지만 작은 집게발로 혈관의 벽을 뜯고, 근육을 뜯고, 내 내장을 뜯어먹는 바로 그 느낌이다. 개미가 다리를 움직이며 내장을 제집처럼 기어 다니고, 고기를 뜯어 포식하지. 일렬로 움직이는 개미들은 내 살을 뜯어 먹으며 내 살을 둥지로 옮기고, 그 둥지에서는 애벌레들이 나의 살을 만찬으로 먹으며 점차 세를 불려 나간다. 그래, 개미가 내 살을 다 뜯어먹을 거야. 이 끔찍한 벌레들이 증식하고 또 증식해서 내 부드러운 살을 모조리 뜯어 먹고, 내 썩은 피를 모조리 마실 거고, 내 내장도, 눈알도, 혀도 모조리 없애버리고 오직 뼈만을 남기겠지. 아, 혈관. 엉킨 실타래 같았던 실은 모조리 뜯겨 집의 재료로 사용되고 오직 뼈와 머리카락만이 남은 채 나는 간지러움에 고통받겠지. 근육이 없어 팔을 움직이지도 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해서 가려운 곳을 긁지도 못하고, 가만히 누운 채 흙 속에 묻혀서 나는 뜯어먹힐 거야. 나는, 나는, 간지러워. 간지러워….]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강렬하지만 두서가 없는, 제대로 된 답이라고 볼 수 없는 것.

         

       “저런. 진성 박을 두려워하고 있군요.”

         

       모리스는 주물에 갇힌 망령들의 한탄에 방긋 미소를 지었다.

         

       “이거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친근함을 느끼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라…. 하하하. 이거 선물을 들고 다시 만날 때가 기대되는군요.”

         

       [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무얼 선물로 주는 것이 좋을까요. 혹시 좋은 의견이 있습니까?”

         

       [ 무덤 위를 가로지르는 밤하늘의 날갯짓 소리의 궤적에 느껴지는 초승달의 시림에서 느껴지는 얼음 같은 커다란 피막(皮膜)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취(屍臭)에서 느껴지는 기척에는 발자국이 없는 듯하지만 이상하게도 물결처럼 자국이 남아서 한 발자국을 걸으면 두 발자국을 뛰게 만드는 것이고 발이 없어도 한 발로 콩콩 뛰게 만드는 소음 속의….]

         

       “선물, 선물이라. 뭘 줘야 할지….”

         

       모리스와 주물이 나누는 대화는 기묘한 것이었다.

         

       모리스는 주물에 깃든 귀신들에게 답을 구하는 것처럼, 대화를 하려는 것처럼 질문을 던지고는 있지만 망령들의 대답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혹은 사람을 앞에다가 세워두고 혼자서 질문하고 혼자서 답변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뿐이다.

         

       귀신들은 모리스의 질문에 대답하기도 하고, 대답하지 못할 만큼 마모된 귀신들은 정신병자들이 중얼거릴만한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평행선.

         

       모리스는 대화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사색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귀신은 답해주는 것처럼 보여도 자신의 사념을 쏟아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둘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마치 산 자의 세상과 죽은 자의 세상이 엄격히 구분된 것처럼 말이다.

         

         

         

        * * *

         

         

       “소리가 들린다.”

         

       어둠 속에 잠겨있자면 가끔 귀가 떨리는 느낌이 들곤 한다.

       너무 적막해서 내가 살아있기는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침묵 속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하는 귀는 가끔 소리를 잡아내었다는 듯 쫑긋 움직이곤 한다. 아무 소리도 없음에도, 뇌는 아무 소리도 인지하지 못했음에도 오직 귀만은 자신이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경련하듯 움직이는 것이다.

         

       발이 땅에 닿았다가 떨어지면서 나는 특유의 소리는 없다. 바닥을 쓸고, 뒤꿈치를 들었을 때 신발에 들러붙었던 흙이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도 없다. 발이 끌리는 소리도 없고, 단단한 것이 땅을 누르면서 나는 소리도 없다. 땅이 푹 꺼지는 소리도 없고, 갑작스러운 이동에 놀란 자그마한 생물들이 놀라며 움직이는 소리도, 동물을 경계하는 생물들의 소리도 없다.

         

       소리가 없고, 기척이 없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들을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청각이 듣지 못한다고 해도 촉감이 인지한다.

       촉감이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도 육감이 인지한다.

       육감이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도 본능이, 영혼이 인지한다.

         

       그것은 마땅히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며, 생물이 무엇보다도 경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필멸적이고, 필연적이며, 운명적이고, 마침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낮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빛 속에 몸을 숨기고, 밤에는 깜깜한 어둠을 몸에 둘러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날카로운 빛이 눈을 멀게 만들 듯 산 자의 시야에 어둠이 가득하게 만드는 것이며, 밤의 장막이 사람의 눈을 가리고 사람을 영원한 잠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뒤집어쓴 가죽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땅의 진동이 들리고, 지저 깊숙한 곳에서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불길을 머금은 대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 속에 나에게 던지는 말이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달가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것을 피하고자 발버둥을 친다.

       뛰고 뛰어서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리려 발악하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위협을 가한다.

       칼로 찌르기도 하고, 총을 쏘기도 하고, 몽둥이를 사방으로 휘두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것은 찾아온다.

         

       “아, 말발굽 소리가 들리니 기수가 등장했구나….”

         

       칼의 휘두름에 상처 입지 아니하고, 총을 맞았음에도 구멍이 뚫리지 않고, 몽둥이로 얻어맞음에도 멍조차도 들지 않는다.

         

       “불길을 머금어 새빨갛고, 뒤에 함성과 하나 된 발소리가 들리니 군세를 이끄니…. 오오, 전쟁. 붉은 말을 탄 전쟁의 기수가 땅에 발을 디뎠다…. 악인들의 함성이, 피를 갈구하는 악한 자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그것은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바다를 건너, 건너고 또 건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하여.

         

       “전쟁에는 악이 태어나는 법이니…. 수확할 자들이 있겠구나….”

         

       그것의 이름은 죽음이다.

         

       세상을 배회하는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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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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