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58

   못생긴 아저씨에게 하도 오래 안겨 있었던 탓일까 얼빠여우의 털에서는 그 땀내가 폴폴 풍겼다.

   

   그것이 기분 나쁜지 얼빠여우는 실시간으로 헛구역질을 해댔고 나 또한 그녀를 데리고 있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난 에린에게 얼빠여우를 깔끔하게 만들어 놓으라 이야기해두고는 다시금 아카데미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하아아. 공허의 추종자들을 상대하는 게 이렇게 귀찮은 일이 될 줄이야.

   

   이게 게임 속 스토리와 별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지식을 그대로 적용시키면 그만일 테니까.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게임 속과는 다르다. 나라는 변수에 의해 뒤틀려 버린 이 세상의 추종자들은 내가 아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더더욱 그럴 테고.

   

   그러니 게임 속 지식에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겠지.

   

   진짜 방법이 내 장신구밖에 없나?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을까?

   

   미간을 찌푸리며 내 지식을 뒤지고 있으려니 저 멀리에서 조이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평소에는 귀족 영애답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없다며 걸음걸이 하나 조심하던 애가 왜 뛰고 있대.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건가.

   

   “루… 시… 찾고 있었어요…”

   “왜? 또 무슨 얼빵한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 거야?”

   “…네.”

   

   어?

   

   진짜?!

   

   무슨 일을 저질러 버린 거야!?

   

   놀라서 눈을 크게 떴더니 조이가 심호흡을 하고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방금 전에 악신의 추종자와 마주했습니다.”

   

   조이의 눈은 진중했다. 분명한 사실이겠지.

   

   그리 생각한 나는 반지에 마력을 담아 주변과의 소리를 차단하고서 조이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방금 전 저는 영애들의 다과회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귀족 영애들이 모이는 다과회의 자리.

   

   아카데미 1학년 중에서 참여를 허락 받은 몇몇 영애들.

   

   그 사이에 끼어 들어 있던 악신의 추종자.

   

   “그녀의 주변에서 기이한 위화감이 들더군요.”

   

   얼마 전 악신의 권능과 대적을 했던 조이는 자그마한 위화감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귀족 영애 특유의 어휘로 상대가 가짜임을 알아차렸고 그 자를 따로 떼어내어 나나 페이비가 있는 곳으로 데려오려 했지만.

   

   “…설마 자기 팔을 포기할 줄은.”

   

   누가 얼빵이 아니랄까봐 마지막 순간에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게 머리를 노렸어야지. 제압을 하기 위해선 일단 정신부터 날리는 게 기본이라고.

   

   알른 기사단에서 분명 알려줬을 텐데.

   

   할 말이야 많았지만 난 일단 입을 다물었다. 조이가 하고픈 말은 끝나지 않은 듯 했으니까.

   

   “진짜 클레브 영애를 찾아야 합니다. 그 분은 도움을 바라고 있을 거에요.”

   

   가짜에게 무대를 빼앗긴 사람을 찾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부정적인 대답이었다.

   

   누군가의 탈을 쓰려는 자가 그 누군가를 살려두리라 생각하긴 어려웠으니까.

   

   허나 나는 부정을 입에 담지 않았다.

   

   조이라 하여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녀도 머리 한 켠에선 그 자의 죽음을 확신하고 있을 테지.

   

   그럼에도 조이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친구인 나도 희망을 버려선 안 됐다.

   

   “그래서?”

   “…예?”

   “맨 입으로 부탁을 하려는 거야? 파트란 가문의 공녀께선 갑질에 익숙하신가봐?”

   “어. 그. 그게. 뭘 드리면.”

   “내가 물건을 바라는 속물로 보여? 얼빵이는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구나? 실망이야.”

   “어. 어어어.”

   “하아. 어쩔 수 없지. 조이가 멍청한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니까.”

   

   당혹스러워하는 조이의 앞에 다가간 나는 웃으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자. 따라해 봐. 도.와.주.세.요.”

   

   조이는 눈썹을 살짝 치떴다가 이내 힘없는 웃음과 함께 어깨를 늘어트리며 입을 움직였다.

   

   “부디 도와주세요. 알른 영애.”

   “어라아? 알른 영애애애?”

   “…루시.”

   “푸흫. 알겠어. 얼빵아. 허접한 바보인 널 친구로 둔 건 내 잘못이니까. 좀 고생을 해야겠네.”

   

   어깨를 피면서 머리를 굴린다.

   

   솔직히 말해 실종된 누군가를 찾는 건 내 특기가 아니다. 지능 58의 영애가 탐정 노릇을 해봐야 무얼 찾아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겐 나보다 훨씬 똑똑한 도우미가 있지!

   

   ‘도와줘요! 할아버지!’

   <…친구 앞에서 그리 멋있는 체를 하고는 속으로는 이런 말이나 하고 있다니.>

   ‘뭐 어때요! 할아버지말고는 아무도 모를 텐데!’

   <하아아.>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알고 계셨잖아요!’

   <그건 그렇다만. 어째 가면 갈수록 뻔뻔해지는 것 같구나.>

   ‘그쵸?’

   <칭찬 아니다.>

   

   할아버지는 제발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나서 도움을 청하라고 투덜거렸지만 그렇다 하여 내가 도움을 청하는 걸 거부하진 않았다.

   

   <일단은 언제 그 자작 영애가 바뀌었는지를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옳다. 그 기간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터이니.>

   

   조언을 들은 나는 조이를 데리고서 아카데미 안 쪽으로 향했다.

   

   그 녀석이라면 분명 자기 주변인의 이상함을 눈치 챘을 테니까.

   

   “클레브 자작 가문의 영애 분이라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께 듣는 과목이 여럿 있으니까요.”

   

   뉴먼 가문의 영식. 체스터 뉴먼은 갑작스러운 물음에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분의 행동에 무언가 이상함이 있지 않았느냐라. 잠시만요.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그는 품 안에서 수첩을 꺼내서는 빠른 속도로 종이를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주말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별 다른 이상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제가 보기에는 말입니다.”

   

   단언하듯 내뱉어진 대답에 조이의 눈가가 살짝 찌푸려진다. 가볍게 나온 체스터의 말을 의심하는 것이다.

   

   “얼빵아. 지금 내 안목을 의심하는 거야?”

   “…네? 아뇨. 결코 그런 건.”

   “얼빵이는 자기가 도와달래놓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구나. 아주 자~알 알았어.”

   “아니. 저. 그치만.”

   

   곤혹스러워하는 조이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그제서야 자신이 놀림당했음을 눈치챈 조이가 살짝 볼에 숨을 불어 넣었다.

   

   나는 미안해하긴커녕 조이의 볼을 쿡 찌르고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은 좀 특이한 성벽을 지닌 꼬맹이라서. 주변 사람들의 이상은 모두 다 기록하거든.”

   “…성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만.”

   “거짓말. 밤마다 자기가 기록해놓은 걸 보면서 히죽대는 거 알거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파트란 영애. 아닙니다! 전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조이의 눈가가 좁아지는 걸 보고서 손을 내젓던 체스터는 이내 한숨과 함께 얼굴을 쓸어 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자작 영애께서 이상함을 보인 건 주말이 시작되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보통 주말 아침의 식사는 거르시는 편인데 이 때는 식사를 하러 나오셨죠. 식사는 여느 때처럼 시키셨지만 먹는 방식은 살짝 어설프셨고요.”

   “친우분들과의 대화에도 약간의 버벅임이 있으셨습니다. 잠이 덜 깬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는데도요.”

   “이외에도 제 관찰 범위에 들어올 때마다 자그마한 어설픔이 있었습니다. 무언가 이상이 생겨났다면 아마 주말이 시작되기 전 저녁이나 아침 무렵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체스터의 말이 쉴 새 없이 이어지던 걸 듣던 조이는 멍하니 그의 모습을 구경하다가 눈썹에 힘을 줬다.

   

   “당신. 정말로.”

   “오해입니다! 전 그저 병상에서 일어난지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의 모든 것이 신기한 탓에 그것들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체스터가 자신의 병증을 가지고서 목소리를 드높이자 조이의 눈에서 살짝 힘이 덜어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입니다만. 그 곳에 저에 대한 것도 기록되어 있습니까?”

   “…네.”

   “…어떤 내용이죠?”

   “제일 최근의 것은 오늘 오전 복귀하셨을 무렵의 일입니다. 부채로 감춰지지 않을 만큼 느슨한 미소를 짓고 돌아다니시는…”

   “다른 건?”

   “그. 그것이.”

   “지금 당장 저에 관계된 걸 모두 지우세요! 공작 영애의 명령이에요!”

   “알겠습니다!”

   

   체스터는 조이의 날 선 목소리 앞에서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기엔 공작 영애의 권위에 굴복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었지만 나는 실상이 다름을 알았다.

   

   저 수첩에 적힌 것 중에 정말 중요한 건 이미 체스터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을 테니까.

   

   지워지더라도 별 아쉬움은 없겠지.

   

   나중에 슬쩍 찾아가서 친구들의 흑역사에 대한 거나 물어봐야겠다.

   

   재밌을 것 같아.

   

   조이가 체스터의 수첩에 적힌 자신의 흑역사가 지워지는 걸 보며 기겁하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자작 영애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구나. 어설픔이 많았다면 그를 좁히기 위해서라도 저를 살려두어야 했을 테니.>

   ‘그럼 어디에 있을지만 찾아내면 되겠네요.’

   <흐음. 일단 자작 영애의 방으로 가볼까. 바뀌었다면 그 곳이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니! 당신! 도대체 왜 제가 넘어진 것까지 기록하고 계시는 건가요! 이건…”

   “얼빵아. 그런다고 네가 얼빵한 짓을 한 게 사라지진 않거든?”

   “루시! 잠시만요! 저 수첩. 수첩만 불태우고 나서어어!”

   

   발버둥치는 조이를 반쯤 끌다시피해서 체스터와 떼어 놓은 나는 그녀를 데리고 기숙사에 돌아왔다.

   

   “…나중에 반드시 모든 걸 지우겠어요.”

   “그게 의미가 있나? 어차피 또 얼빵한 짓을 할 텐데.”

   “으으으.”

   

   조이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나를 클레브 자작 영애의 방까지 안내해주었다.

   

   “루시를 만나기 전에 먼저 들려봤어요. 이 곳에 자작 영애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자작 영애의 방에는 크게 특이한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돌아가 있는 듯한 방은 언제라도 이 곳의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흐음. 귀찮게 됐는데.>

   ‘아뇨. 문제 없어요. 저한테 방법이 있거든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하고 나서 속으로 한 단어를 되뇌었다.

   

   역사를 열겠노라고.

   

   그러자 내 앞에 반투명한 책이 펼쳐졌다.

   

   [클레브 자작 영애 납치]

   

   책 속에는 이 방에서 일어난 사건이 기록 되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