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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8

       5억 원은 이미 빌려줬다.

        

       그리고 남은 15억 중 10억 조금 넘는 돈으로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그러고도 돈은 꽤 많이 남았다.

        

       평생 살 수 있을 돈인가? 그렇게 물어보면 잘은 모르겠다. 4억 남짓한 돈은 아주 많은 돈이긴 했지만, 나 혼자 살아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뭐, 사실 우리가 그걸로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아파트에는 방이 세 개 있었다. 그중 하나는 황제가 쓰기로 했고, 나머지 하나를 우리가 쓰기로 했다.

        

       왜 세 사람이 한방을 쓰게 되었냐면, 클레어와 앨리스가 나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방 하나는 우리 세 사람의 방송용 방이 되었다.

        

       클레어는 원룸에서 지낼 때부터 꾸준히 방송하고 싶어 했고, 앨리스도 거기 관심이 있었으니까.

        

       황제도 방송을 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본인은 컴퓨터에 모니터가 이미 많이 달려있으므로 방에서 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어째 배려받는 것이 조금 기분이 미묘했다.

        

       “그래도 언니 표정이 많이 밝아졌어. 역시 방을 따로 써서 그런가?”

        

       “방을 따로 쓰는 것보다도, 이 집은 제 돈으로 샀다는 사실 때문이겠죠.”

        

       그렇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집을 산 다음에는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이건 내가 생각해도 매우 긍정적인 일이었다.

        

       클레어와 앨리스는 내 대답을 듣고 웃었다.

        

       하지만 이건 한없이 진심이었다.

        

       뭐, 여신이 얽혀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여신이 그렇게 얽혀들 수 있었던 것도 ‘나’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럼…… 방송은 어떻게 할까요? 역시 일상적인 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게임 같은 걸 하면 좋긴 하겠다.”

        

       클레어는 잔뜩 신나서 그렇게 말했다.

        

       “뭐, 그래도 일단 감부터 잡는 게 중요하겠지.”

        

       앨리스의 말에 우리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

        

       방송은…… 내 예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

        

       도네 같은 것을 여는 방법을 배우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세팅 자체는 이미 완성해둔 상태였다. 내가 원래 쓰던 컴퓨터에 모니터를 세 개 달아두었으니 솔직히 초보 방송인으로서는 과하다고 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게임 같은 거 하려면 이 정도는 필요하다면서. 방송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모르니 미리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고 본다.

        

       어차피 돈도 많고 말이야.

        

       [코스프레 엄청 잘하셨네요]

        

       “코스프레가 아닙니다. 저희는 원래 이 이름이니까요.”

        

       [ㅋㅋㅋㅋㅋ]

       [컨셉 확실하네 ㅋㅋㅋㅋㅋ]

        

       뭐, 그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했다.

        

       클레어도 앨리스도 글은 이미 배워두었기에 채팅을 읽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청자가 그렇게까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채팅장은 꽤 활발했다. 우리 세 사람의 외모 때문이겠지.

        

       이대로만 계속 시청자가 나와도 생활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때.

        

       [님 혹시 황제님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황제 말씀이십니까?”

        

       나의 말에 짧은 영상 도네가 왔다.

        

       한순간 내가 느꼈던 불안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러니 종목은 이쪽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이쪽이 미래가 있으니까. 또, 어느 나라의 시장인지도 중요한데—]

        

       그런 말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사람은, 우리와는 다른 방을 쓰는 황제였다.

        

       “…….”

        

       [진짜 황제네ㅋㅋㅋㅋㅋ]

       [이쪽도 컨셉확실하네 ㅋㅋㅋㅋㅋㅋ]

       [근데 목소리 진짜 좋다]

        

       그렇지. 좋을 수밖에.

        

       나와 클레어, 앨리스도 당연히 목소리가 좋다. 모두 일본의 전문 성우와 같은 목소리였으니까. 물론 나야 게임에서 정말로 나왔는지 아닌지도 모르니 이 목소리가 ‘성우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데 황제는…… 원래 이런 게임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는 정말 비싼 성우가 배정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간지나는 중년 남성 목소리는 귀에 쏙쏙 박힐 정도로 개성적인 경우가 많다. 낮고 굵은 목소리라도 다 연기가 조금씩 다르니까.

        

       황제의 성우도 그런 사람이었다.

        

       [어?어?]

       [대답 못하는 걸 보니 진짜 아빠 맞나보네ㅋㅋㅋㅋ]

        

       나는 잠깐 고민했다.

        

       여기서 거짓말을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맞다고 인정하는 쪽이 좋을까.

        

       양옆에 앉은 클레어와 앨리스가 내 눈치를 보는 걸 보고, 나는 그냥 빠르게 결정해버렸다.

        

       “아버지가…… 맞습니다.”

        

       여기서 내가 그걸 부정해버리면 나중에 어떤 후폭풍이 오겠는가.

        

       아버지를 두고 아니라고 한 패륜아가 되어버린다.

        

       인터넷 방송 같은 건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기록되어 남게 된다. 당연히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도 남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들켰을 때 위키에 ‘실비아(방송인)/논란 및 사건 사고/인성 논란’ 같은 항목이 생길 거다.

        

       부정하더라도 끝까지 잘 숨긴다면 어떻게 잘 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이미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니 언제 어떻게 들켜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바에는 처음부터 밝히는 게 낫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손에…… 자랐습니다.”

        

       나는 클레어의 눈치를 살짝 보면서 말했다.

        

       “어, 어! 그렇지! 같이 자랐지, 응!”

        

       나의 눈치를 정확하게 알아차린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고,

        

       “그렇다고 아버지 방송에 빌붙을 수는 없잖아.”

        

       앨리스가 말했다.

        

       “언젠가 함께 이야기하는 방송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따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쪽은 주제가 주식이니까요. 저희는 잘 모릅니다.”

        

       [ㅋㅋㅋㅋㅋㅋ]

       [어떻게 아버지마저 컨셉ㅋㅋㅋㅋ]

        

       “아버지도…… 컨셉은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호칭을 쓸 때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저희는 정말로 이런 이름이니까요. 나중에 인증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띠링.

        

       내가 말하는 와중에 다시 도네가 왔다.

        

       [음, 모두 내 귀여운 딸들이지. 내 쪽에서 여러모로 신세지기도 했고.]

        

       정말 ‘여러모로’ 신세 지긴 했지.

        

       내가 얼굴을 붉히자, 채팅은 나를 열심히 놀려먹었다.

        

       [아버지한테 칭찬받고 부끄러워하는 딸ㅋㅋㅋ]

       [서로 사이좋은 모습이 보기좋네요]

       [게임이랑은 완전 딴판이네]

        

       “……게임이라니요.”

        

       내가 물어보자, 채팅창이 말했다.

        

       [최신작 안해봄?]

       [아니 코스프레해놓고 그걸 모른 척하네]

       [가짜광기..]

        

       나는 인터넷 창을 틀어두고 아제르나 전기를 검색했다.

        

       최신작의 표지에는…… 대문짝만하게 내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오!”

        

       클레어가 눈을 반짝였다.

        

       사실, 방에는 이전 시리즈가 전부 있긴 했다. 나는 이전 세계관의 시리즈도 플레이하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왠지 황제에게는 보여주기 싫어서 굳이 꺼내 보지 않았다.

        

       참고로 피규어는 이미 앨리스와 클레어에게 들키긴 했다. 황제는 눈치는 챈 모양이지만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고.

        

       “……그럼 게임은 이 최신작으로 하기로 할까요.”

        

       내 말에 클레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황제의 방문에 노크했다.

        

       안에서 잠깐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실비아?”

        

       황제가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여유가 묻어나오는 얼굴이긴 했지만, 그래도 쉽게 볼 수 있는 표정은 아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내가 이렇게 지내고 있는 것도 네 덕이 아니냐?”

        

       나는 굳이 거기 대답하지는 않고, 황제를 데리고 식탁으로 왔다.

        

       식탁엔 이미 클레어와 앨리스가 앉아있었다.

        

       나는 클레어 옆자리에 앉았고, 황제는 비어있는 면을 차지하고 앉았다.

        

       “어쩌다 보니 우리 둘 다 방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저희가…… 아제르나에서의 호칭을 그대로 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음.”

        

       “제가 당신을…… 폐하, 라고 부른다면, 사람들 모두 이상하게 바라볼 테니까요.”

        

       “그건 동의한다. 이쪽에도 왕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이 나라의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서로 호칭을 정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미 너희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만.”

        

       사실 이름으로 불리는 것 치고는 나와 앨리스만 불리고, 클레어와 황제는 여전히 서먹한 관계였다.

        

       일상적인 대화는 나눈다. 하지만 서로를 ‘부르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이건…… 좀 미묘한 일이었으니까.

        

       “클레어, 괜찮겠어?”

        

       그도 그럴 게, 클레어에게는 이미 ‘아버지’가 있다.

        

       그레이스 남작이라는 아버지가.

        

       “음…….”

        

       역시, 클레어는 조금 싫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싫다는 사람한테 억지로 시킬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클레어가 나의 말에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면, 분명 ‘정말로’ 싫은 것일 거다.

        

       그래서 나는 사실 이미 생각해둔 호칭이 있었다.

        

       “그럼…… ‘삼촌’은 어때?”

        

       “삼촌?”

        

       클레어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크크큭.”

        

       황제는 웃음을 꾹 참았고.

        

       아니, 나는 그래도 진지하게 생각한 호칭이라고.

        

       뭐, 결국, 그 의견은 받아들여졌다.

        

       클레어는 삼촌이라고 부르고, 나와 앨리스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아버지라니.

        

       입에 더럽게 안 붙는 호칭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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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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