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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8

    아무리 레니에가 날고 기는 연산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외부에서 접근 가능한 방법이 없어서야 해킹이 불가능하다.

    그야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마도기기를 네트워크로 해킹한다는 건 마법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니까.

    바로 이곳의 제어실이 그런 구조였다.

    오직 건물 내부의 회선만으로 이뤄진 폐쇄회로를 통해서만 정보를 주고받는, 일방향적이고 고립된 상태의 구조.

    따라서 다른 해킹들처럼 원거리에서 암호화를 푸는 식의 간편한 해킹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그게 시설을 구석구석 지켜보는 수많은 감시자들을 아군으로 만드는 것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절대 되지 않는다.

    접근 가능한 방법이 없어 해킹할 수 없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접근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해킹할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여기있었군.”

    어차피 내부 회선을 직접 건드리면 안 될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루크는 마력시를 이용해 CCTV가 연결된 회선들이 모인 분배기를 찾아내었다.

    이곳의 신호를 취득하면 제어실에 직접 가지 않고도 CCTV의 화면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하다.

    “레니에, 이제 시작하지.”

    -네!

    루크가 코트자락을 한번 털어내고는 분배기 옆에 앉아 케이스 위에 컴퓨터를 올려놓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루크님. 

    “뭐지?”

    -왜 하필 첼로 케이스인가요? 혹시, 첼로 연주할 줄 아세요?

    레니에의 질문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래, 물론 할 수 있지.”

    -정말요? 옛날엔 악기에 관심 전혀 없으셨잖아요! 

    그래, 예전엔 악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때의 자신에겐 쓸모도 없었고 의미도 없었으니까.

    “관심이 생겼지, 파이 때문에 말이다.”

    -파이라면, 그 파란색 정령 말씀이시죠?

    “그래. 너를 볼 때마다 살살 피해다니던 바로 그 녀석 말이다.”

    -네, 알아요. 귀여웠죠.

    파이는 리브때와 마찬가지로 레니에가 낯설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그녀의 실체없는 모습이 무서운 것인지 몰라도 그녀를 볼 때마다 호다닥 도망치며 이리저리 숨어다녔다.

    그렇다보니 파이리스는 요새 레니에가 침식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마도기기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밖에서 노는 것을 선호하고 있었다.

    단 한가지, TV로 정령소녀 메루루를 볼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메루루가 방영하는 시간이면 TV에서 레니에가 나타날까 안달복달하면서도 계속 바라보고 있는 꼴이 마치, 공포영화를 보던 메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연주실력은 어때요? 잘 하세요? 재능은 있었나요?

    “그야 물론이지. 이 몸은 그런 재능도 있더구나.”

    -에이, 루크님에게 있었던 거죠! 제가 말했죠! 옛날에도 했으면 분명 잘 했을거라니까요?

    “글쎄, 그건 어떠려나.”

    루크는 회의적이었다.

    레니에의 말대로 그때에도 과연 악기에 재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일단 관심이 생긴 건 이 몸의 정령 친화력 때문임이 분명하니까.

    -루크님의 연주, 저도 나중에 꼭 듣고 싶어요!

    “그러고보니 그대의 앞에선 연주한 적이 없었나?”

    -네!

    그녀가 듣고 싶어한다니 어쩔 수 없나.

    집에 돌아가면 한번 연주해 주도록 하자.

    “그래, 돌아가면 한번 들려주마.”

    -신난다! 약속이에요? 마법사는 거짓말 못한다고 했죠?

    루크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래.”

    그거 연주 한번 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약속까지 받아내야 한단 말인가?

    마법사인 자신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는데 말이다.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1년 남짓 되는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루크에게는 그동안 쌓여온 이야깃거리가 굉장히 많았다.

    어린 아이의 몸으로 처음 낯선 시대에 눈을 뜬 이야기부터, 이 몸의 영향인지 처음으로 정령을 보게 된 이야기, 그동안 맛본 현대 음식의 발전이라던가, 본의아니게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어린 아이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야 했던 이야기, 심지어는 시가르마타와의 대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별 일이 아니었던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보니 레니에와는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회포를 풀어낼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서는 몇날 며칠을 가만히 이야기만 나누어도 부족할 지경이었으나 그럴 수는 없으니까.

    루크는 마력 회선을 조작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이지…, 그래, 내가 방송이라는 걸 좀 하고 있는데 말이야. 아, 방송이 뭔지 아나?”

    -알아요,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이라죠? 

    “응, 그런 것 같더구나. 나름대로 재미 있더군. 돈도 꽤나 벌리는 모양이고. 나도 실제로 용돈벌이를 좀 했지.”

    -그래요? 루크님은 무슨 방송을 하시는데요?

    레니에는 꽤 흥미롭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루크는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듯이 대꾸했다.

    “별 방송은 아니다. 그냥 비공개 잡담방송이랄까. 요새 내가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서 친한 숲지기들과 만나 대화하지 못하니 대신 그런 식으로 소통하는 게지.”

    루크의 말을 들은 레니에는 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으음, 그럼 용돈벌이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네요.

    “음, 비유라고 한 적은 없네.”

    방송을 하며 번 돈들이 실제로 아는 어른들이 건네주는 돈이었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용돈인 셈이다.

    잠시 후, 레니에가 물었다.

    – 공개적으로 게임 방송같은 건 안 하세요? 최근 컴퓨터 사용내역을 보니까 게임도 자주 하시던데…

    방송에서의 대세라함은 뭐니뭐니해도 역시나 게임이었다.

    컨텐츠를 위해 들어가는 노력이나 금전도 비교적 적을 뿐더러, 가장 많은 수의 시청자가 있고 동시에 가장 많은 돈이 풀리는 곳.

    방송계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큰 물이다.

    효율을 중시하는 루크라면 분명 그런 쪽을 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록을 보면 승리한 전적도 꽤나 많았고 말이다.

    그에 루크는 한번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으음, 다른 방송을 몇번 찾아보는데, 아무래도 채팅반응이 좀 많이 거슬리더구나.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예의없이 구는 사람들도 많고…. 나는 그런 걸 일일이 관리할 자신이 없어서 말이다.”

    아무래도 루크는 한번 보고 들은 건 잘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라 걱정은 더했다.

    소위 ‘악질’들이 채팅을 통해 보내는 각종 모욕이나 성희롱 등, 사람을 화나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수많은 문장들.

    한번 그런 글을 보게되면, 그건 평생동안 자신의 기억에 남을테니 말이다.

    헌데 자신이 게임방송을 하게 된다면 그런 상스러운 채팅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그저 평범하게 불쾌하다.

    그렇다보니 루크로서는 ‘그러느니 차라리 아예 안 하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득보다 실이 많으니까.

    그에 레니에가 답했다.

    -어머? 그래서 그런 거였어요? 그럼 시켜주면 제가 할게요, 그 역할. 제 연산력이라면 루크님이 그런 채팅을 보기도 전에 밴해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니까요!

    레니에의 의기양양한 목소리.

    초고성능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고작 채팅방 관리 하나를 못할 리 있나?

    웬만한 악성 채팅은 나노초 단위로 삭제하고 밴 처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신상정보까지 낱낱이 파헤쳐버릴 수도 있다.

    채팅창은 유례없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그에 루크도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호, 그건 조금 흥미로운 얘기군. 정말 괜찮겠나?”

    -물론이죠! 

    그동안 루크가 방송이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한 건 모두 ‘채팅반응이 걱정되어서’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해결된다면야.

    -저요, 루크님이 방송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분명 엄청나겠죠? 루크님께선 못 하는 게 없으시니까.

    “하하, 글쎄. 그럴까.”

    -그럼요, 분명해요.

    레니에의 띄워주는 말에 멋쩍게 웃던 루크는 문득 찾아온 적막에 깨달았다는 것처럼 말을 멈추고는 헛기침을 했다.

    왜냐하면 이 구도, 옛날에도 많이 겪어본 구도였기 때문이다.

    루크는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끝까지 다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편이었다.

    반면, 레니에는 시도때도 없이 질문을 하는 성격이었고.

     

    그렇다보니 레니에는 자연스레 자신의 말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지루한 내용이면 코를 골며 자버린다거나, 때때로는 맞장구를 쳐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보니 괜히 추억에 잠겨서 너무 신나게 떠든 건 아닌가 싶다.

    그녀도 분명 자신에게 하고 싶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이야기할 기회를 빼앗은 건 아닌지, 그런 걱정이 든다.

    “흠, 흠. 이제보니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것 같군. 레니에, 이제는 슬슬 그대의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그에 레니에는 모르겠다는 듯이 목소리에 의문을 담아 물었다.

    -제가요? 글쎄요, 루크님께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그, 왜. 아린세이아는 어떻게 되었는지, 오랜 세월 힘든 건 없었는지……. 뭔가 많지 않은가? 그대도 몇천년은 살아왔을 터인데. 그중에 정말 나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나?”

    무려 몇천년의 세월이 지난만큼, 그녀로서도 쌓여온 이야기가 결코 적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녀가 겪은 일들 중엔 분명 재미있는 일도 많았을 것이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겠지.

    루크에게는 그런 이야기에 대한 흥미가 있었다.

    레니에 못지않게 잘 들어줄 자신도 있었고.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입 밖에 전혀 꺼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제게 이미 멸망한 나라의 이야기 따위는 지금 당신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에 대한 근황 이야기보다도, 사소한 말싸움보다도 무가치한걸요.

    “무가치하다니…, 아린세이아가?”

    -네. 당신과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면, 저는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느라 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

    루크는 레니에의 슬픈 목소리에 그만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린세이아가 무가치하다니? 

    심지어 그것을 위해 잠깐 떠드는 이 짧은 시간조차 낭비하고 싶지 않다니…?

    레니에에게서 나온 그 말의 뜻을, 루크는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레니에는 분명 아린세이아가 인류의 온전한 자유를 향한 발판이 되기를 그 무엇보다 소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그런 아린세이아보다 자신과의 이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건가?

    그렇게 사고를 확장하던 중, 문득 든 생각.

    자신이 레니에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했던 일은 어쩌면….

    “레니에, 혹시 내가 잘못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삐, 삑. 삐, 삑.

    귓가에 울리는 미묘한 신호음.

    서드의 연락이었다.

    뭔가 급한 일이 생긴걸까?

    루크는 레니에를 향해 양해를 구한 뒤, 귓가로 손을 가져가 서드의 연락을 받았다.

    “받았네, 말하게.”

    -스승님, 발견했습니다!

    응답을 받자마자 격정적으로 터져나오는 서드의 목소리에 루크는 살짝 표정을 찌푸리고는 귀를 떨며 되물었다.

    “발견하다니, 뭐를?”

    마법사로서 주어를 생략하는 버릇이 든 것은 좋다만, 이 경우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나중에 무어라 조언을 해 주어야 하나 생각하던 루크에게 이어진 대답은 놀라웠다.

    -제게 했던 실험을 주도한 녀석이요!

    “뭐라?”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우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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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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