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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8

        

         

       짧지 않았던 밤이 지나고 찾아오는 것은 낮.

       밤 동안 머물렀던 냉기를 쫓아내고 세상에 따스한 열기를 퍼뜨리는 환한 시간이다.

         

       날이 밝자 사람들은 제각기 이유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고된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고, 누군가는 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일어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 눈에 띄는 4명이 있었다.

         

       몸에 달라붙는 슬릿 드레스를 입은 두 명의 미녀와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직 앳된 느낌이 가시지 않은 소녀, 그리고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소녀였다.

       그녀들은 지나가는 사람의 고개가 절로 돌아가게 할 정도의 각기 다른 매력을 한껏 뽐내며 한 건물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까?

       이 아름다워 보이는 여성들은 미모만큼이나 강력한 가시를 품고 있는 여자들이라는 것을.

         

       이 네 명의 여자가 유럽에서는 미모만큼이나 괴팍한 성격을 가진 이들이 널려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마녀 무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쯧. 무슨 차가 이렇게 많은지…. 땅도 작은 주제에 무슨 자기가 미국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죄다 차를 가지고 다니니…. 대중교통만 타고 다녀도 충분할 것을 사치를 부린답시고 차를 끌고 다니는 게 아닌지 모르겠구나. 나라 꼴이 이래서야 어디 더 발전할 수 있을는지 원….”

         

       특히 그 ‘괴팍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도 이 자리에 있었다.

       아름답고 젊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대마녀라고 불릴 정도로 나이를 먹었으며, 고약한 성격으로 유럽 전역에 악명이 자자한 오딜리아 A 라이히(Odilia A Reich)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무엇이 불만인지 입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그녀의 다리는 ‘내가 이렇게 화가 나고 불만이 많다.’라는 것을 표현하기라도 하는 듯 바닥을 하이힐로 툭툭 쳐대고 있었다. 게다가 잠금장치가 열려있는 문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들어가지 않겠다는 듯 제자리에 우뚝 서 있기까지 했으니….

         

       오딜리아의 제자, 아그네스는 절로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 차가 밀린 건 스승님이 화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몇 번이나 고쳐서 시간이 늦어서 그런 거잖아요…. 그것만 아니었으면 출근 시간 피해서 여유롭게 올 수 있었어요….”

         

       “뭐?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거냐?”

         

       “맞잖아요….”

         

       “아니 네스야, 여자가 화장을 하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마음에 안 들면 지울 수도 있는 거지. 무슨 무뚝뚝하고 눈치 없는 독일 남자들 같은 그런 말을 스승에게 할 수가 있니?”

         

       “….”

         

       “게다가 말이야.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니. 무슨 출근 시간만 되면 차가 미어터지는 뉴욕 같은 대도시도 아니고, 이 좁아터진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가 말이야…. 아무리 수도라고 해도 이렇게 꽉꽉 들어차는 게 정상은 아니잖니? 솔직히 다른 나라 정도만 되었어도 내가 이런 말을 안 했을 텐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니 원.”

         

       “….”

         

       아그네스는 쉬지도 않고 불평을 쏟아내는 오딜리아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녀의 옆으로 향했다.

         

       스윽.

         

       그녀는 자연스럽게 오딜리아와 팔짱을 끼고는, ‘갑자기 얘가 왜 팔짱을 끼지?’라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딜리아와 눈을 마주치고는 슬쩍 웃었다. 그리곤 몸에 힘을 꽉 주고는 오딜리아를 이끌고 문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

         

       “자, 스승님. 빨리 가죠.”

         

       “자, 잠시만. 네스야….”

         

       오딜리아는 하이힐이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강하게 자신을 끌고 가는 아그네스의 모습에 당황해서 그녀를 불렀지만, 아그네스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오딜리아를 그대로 끌고 갔다. 아니, 오히려 오딜리아가 항의를 할 때마다 아그네스의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자, 잠깐만. 하이힐이 끌리잖니. 잠깐….”

         

       특히나 그녀들이 있던 곳은 문의 바로 앞.

       계단이나 턱 같은 것은 전혀 없는 평평한 돌이 깔린 곳이었다.

       그렇기에 혹시 계단에 발목이나 다리가 부딪치거나, 무리해서 일어서려다가 발목을 삐는 등의 사고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까지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편안하게 저에게 몸을 맡겨주시면 제가 알아서 데려다 드릴게요.”

         

       “아니 얘, 아니….”

         

       아그네스는 스승을 공경할 줄 아는 제자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딜리아를 편안하게, 아무런 부상이나 쓸림 없이, 심지어는 옷이 바닥에 쓸리며 더러워지지 않도록 사역마(Familiar spirit)까지 사용해서 드레스의 끝자락을 살짝 들어주기까지 하고 있었다.

         

       참으로 기특한 모습이지 않은가.

         

       “자, 동생! 우리도 가도록 하죠!”

         

       “…네. 그러, 도록 해요.”

         

       그렇게 건물 앞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던 여자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약간의 설렘과 긴장을 품은 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살풍경한 모습을 보자마자 사라지고 말았다.

         

       “어머, 건물이 잘 안 나가나…?”

         

       가게가 없다.

       꽤 많은 가게가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공간은 텅텅 비어 있었고, 바닥에 깔린 먼지와 뭔지 모를 퀴퀴한 냄새, 그리고 임대 문의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A4용지만이 놓인 채 허무하게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아그네스는 텅텅 비어 있는 건물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양훈이 신경을 잘 안 써준 건가, 박진성이 이런 쪽에 관심이 없는 건가, 주술사가 주인인 건물이라서 사람들이 꺼리나…. 등의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지만, 이내 자신이 참견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죄다 지워버렸다.

         

       띠잉-

         

       그녀는 1층에 세워져 있는 엘리베이터 안까지 오딜리아를 끌고 간 뒤, 오딜리아를 엘리베이터 안쪽에 집어넣은 뒤에야 팔짱을 풀었다. 그리곤 자신을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는 오딜리아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스승님이 계속 머뭇거리셔서 그런 거예요. 화내지 않을 거죠?”

         

       “…어휴.”

         

       오딜리아는 무식하게 힘을 써서 자신을 끌고 온 아그네스에게 화를 내려다가도, 그녀의 애교 섞인 표정에 분노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화를 내는 대신에 한숨을 크게 쉬는 것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스윽.

         

       부드럽게 팔짱을 끼고는 머리를 자신 쪽으로 기대는 아그네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쓴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려다가도 쏙 들어가기도 했고.

         

       오딜리아는 결국 사람 많은 곳에서 그런 숙녀답지 않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를 내뱉고는 아그네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맨날 사고치고 다니는 어린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귀여워해 주듯이 말이다.

         

       띠잉-

         

       그렇게 그녀들은 최상층에 도착했다.

         

       휑한 빌딩의 꼭대기.

       박진성이 머무르는 그곳에.

         

       그렇게 4명의 여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참…닮았구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풍경에, 오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니, 이걸 풍경(風景)이라는 단어를 써줄 가치가 있기나 할까?

         

       나름의 기대와 긴장을 품고 내린 박진성의 거처는, 그야말로 끔찍했다.

       디자인과 인테리어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니, 모독까지는 아니지….’

         

       엄청 심각하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괜찮냐고 물으면….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고 답하리라.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이양훈은 전형적인 졸부 취향이었다.

       나름 인테리어니, 디자인이니 하는 것에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지식이 하나도 없어서 꼴사나울 수준이 되었을 뿐.

         

       하지만 박진성은 뭐라고 해야 할까.

       아예 미적 감각과 관련된 세포가 죽으면 이런 인테리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었다.

         

       사람이 머무는 곳임에도 제대로 벽지도 깔리지 않았고, 바닥은 장판이나 대리석을 깔지도 않았다. 그나마 먼지가 일어나지 않게 코팅해놓기는 했으나, 해놓은 부분이 있고 하지 않은 부분이 공존하고 있어서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거기다가 공간이라는 것은 용도에 따라 분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박진성의 거처는 그런 것이 없었다. 생뚱맞게 냉장고가 있는 곳에 음식이나 주방용품으로 보이지 않는 이상한 물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도 하고, 돌을 깎아서 만든 것 같은 침대 근처 주변에는 낡아빠진 물건들이 쌓인 채 ‘이곳은 창고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책상이 있는 곳 근처에 행거가 있고, 그 행거 근처에 슈퍼마켓에서 볼법한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있기도 하고….

         

       ‘허 참….’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그냥 대충 놓은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묘한 규칙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박진성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설치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테리어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자면 각 물체가 어떤 문양을 이루는 꼭짓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참 묘했다.

         

       ‘정말 특이해….’

         

       허영과 무지로 충격을 준 이양훈의 인테리어.

       실용성과 뭔지 모를 이유로 충격을 준 박진성의 인테리어.

         

       둘의 인테리어는 결도 다르고, 그 결과물도 달랐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대마녀에게 정신적 충격을 줬다는 점에서는…참 닮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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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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