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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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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9화. 막을 수 없는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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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가 일을 엄청나게 잘해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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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원이 붕괴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2일. 

        발가르는 깜짝 놀랄 정도로 엄청난 작업 속도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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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씩 확인할 때마다 눈에 띄게 달라지는 작업 진척도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

        나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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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원이 무너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15일. 골조를 설치하는 건 발가르가 며칠 안에 마무리할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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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할 건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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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발가르에게 선물한 용의 알, 그것마저도 내 의도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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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마 그 부정의 존재가 바뀔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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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이 많이 그리웠던 것 같아요. 은근히 쉽게 마음을 여는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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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D 케넬름과 SD 리아는 새끼 용과 놀고 있는 발가르를 보며 말했다.

        나 또한 저 말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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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 척하면서도 챙겨줄 거 다 챙겨주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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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는 투덜거리지만 해달라는 것이나 부탁하는 건 전부 들어준다.

        하는 행동이 김 첨지 같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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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삐이이익! 삐이이. 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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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잇. 이 못난 녀석. 그것이 어딜 봐서 날 따라 만든 것이란 말이냐! 팔은 너무 길고, 다리는 짧고, 무엇보다 얼굴이 없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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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삐, 삐이이익. 삐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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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 그렇다고 해서 네 녀석의 공물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내놓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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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는 새끼 용의 흙덩어리를 받았다. 행여나 부서질까 봐 극도로 주의하며 주머니에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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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있자니 흐뭇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만하고, 파괴적이고, 냉소적이며, 잔혹하던 발가르가 조금씩 변하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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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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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 * * * *

        .

        .

        .

        “삐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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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석. 재촉하지 마라. 네가 그러지 않아도 이 몸은 한번 한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왕의 말이란 그런 무게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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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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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가 얼어붙은 탄식으로 허공을 갈랐다. 큼직하게 균열이 열리며 시커먼 내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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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야 덜컥 겁이 난 것인지, 새끼 용은 조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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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리 와라. 나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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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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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가 뻗은 팔에 와락 몸을 던진 새끼 용.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제 꼬리로 발가르의 팔을 칭칭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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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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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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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용은 안아 든 발가르가 균열을 통과했다. 새끼 용은 눈을 꾹 감은 채 발가르의 품에 몸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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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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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부유감, 그리고 사방천지의 방향감각이 뒤틀리는 오묘한 감각이 몰려온다.

        새끼 용은 행여나 놓칠까 두려워, 발가르의 팔을 감싼 꼬리를 더욱 단단히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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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떠라.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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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용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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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용은 갓 태어났을 때의 기억, 이 공간 자체에서 쏟아지던 막대한 압력을 기억했다.

        몸이 간헐적으로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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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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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눈치챈 발가르가 새끼 용을 조금 더 강하게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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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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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 떨지 마라. 이 몸의 보호를 받는 존재라면, 언제 어디서라도 두려움 없이 맞설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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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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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내가 있으니, 크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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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는 있지도 않은 먼 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새끼 용은 끔뻑끔뻑 발가르를 바라보다가, 화악- 태양 같은 미소를 짓더니 발가르의 얼굴에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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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이이이! 삐익! 삐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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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읏, 퉷, 퉤퉵! 이, 이 녀석! 핥지 마라! 핥지 말라고 하였다! 으퉷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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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나서야 간신히 발가르가 일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발가르는 골조 설치 현장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새끼 용을 앉힌 다음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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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해라.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아무거나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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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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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용은 다부지게 대답했다. 움직이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보호자를 바라만 봐도 즐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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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난 이만 가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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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는 저 멀리서 열심히 골조를 나르고 설치했다.

        새끼 용이 보고 있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몸이 훨씬 더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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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 처척!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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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저리 뻗은 나뭇가지 같은 기둥을 능숙하게 조립하고 끼워 맞추며 골조를 세우는 발가르.

        새끼 용은 눈을 반짝이며 발가르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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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스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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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원의 틈 특유의 압력이 새끼 용에게 쏟아졌지만, 새끼 용의 육체는 이를 거뜬히 이겨냈다.

        이겨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성장의 양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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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욱, 뚜두둑…. 뚜득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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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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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용의 몸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뼈와 근육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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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리 없는 새끼 용은 당황하여 이리저리 제 몸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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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드드득! 우득! 콰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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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커진다.

        비늘이 자라나고, 발톱이 날카로워지더니, 날개가 커다랗게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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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비룡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성장하기 시작했다.

        품 안에 쏙 들어오던 크기에서, 작은 오두막으로, 커다란 저택 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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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손쓸 도리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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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 삐이?! 삐이이이! 삐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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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쩔 줄 몰라 하던 새끼 용이 그렁그렁 눈물 맺힌 채 목청껏 울었다.

        골조를 설치하던 발가르의 고개가 부러질 듯 회전하더니 번개처럼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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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냐, 무슨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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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걱!! 슈카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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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은 탄식으로 새끼 용의 주변을 마구 베어냈다.

        발가르는 새끼 용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던 무형의 기운을 끊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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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의 반응은 절대 느리지 않았다.

        다만, 차원의 틈에서 일어난 연쇄 작용은 그보다 아주 조금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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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용의 육체는 본능적으로 성장의 양분을 게걸스럽게 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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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숨에 비룡에서 아룡의 끝 무렵으로 성장할 정도였다.

        아주 잠깐이지만, 차원의 틈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균형의 추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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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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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 삐이이…? 삐이? 삐이이이?”

        ​

        자기 몸에 일어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새끼 용은 발가르의 품에 머리를 묻고 덜덜 떨었다.

        순식간에 커다란 저택의 크기로 자라났기에 발가르의 품에는 머리도 제대로 숨겨지지 않았지만.

        ​

        《…진정해라. 난 여기 있다. 그래, 떨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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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이. 삐이이…. 삐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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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용의 머릿속으로 거대한 정보가 쏟아졌다.

        수천, 수만 년을 살아온 무지막지한 기억이, 추억이 폭력적으로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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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스러워진 새끼 용은 눈을 꾹 감았다. 발가르의 품에 더욱 깊게 머리를 파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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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워하지 말아라. 진정해라. 내가 옆에 있다는 걸 명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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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 또한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새끼 용을 진정시키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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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저적…! 쩌억, 쿠구구궁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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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이, 이런! 차원의 틈이…! 골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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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는 건 작은 구멍인 것처럼. 한번 균형이 흔들린 차원의 틈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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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원의 틈을 떠받치고 있던 골조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며 요동쳤다.

        발가르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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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쿠구구궁!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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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골조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높게 쌓은 카드 탑이 일순간 넘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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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안 돼!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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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우선 얼어붙은 탄식으로 균열을 열어 새끼 용을 피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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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이이이이이이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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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있어라! 금방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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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가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발가르는 구태여 뒷말을 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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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가 이런 나약한 생각을 하게 할 정도, 그 정도로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

        쿠르르릉! 콰릉! 쿠웅!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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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가지처럼 이어진 골조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발가르의 시선이 매섭게 움직였다.

        ​

        ‘이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

        무너지는 골조를 떠받쳐야 한다.

        발가르의 힘이 온전했다면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

        하지만 현재 발가르는 3할의 힘밖에 쓸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

        ‘가장 중요한 기둥만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면 된다. 그러면 일단 버틸 수는 있어.’

        ​

        수천 개의 골조를 직접 설치한 발가르였다.

        어떤 골조가 제일 중요한지 모를 리 없다.

        ​

        《14번, 239번, 582번, 1390번, 2530번, 5289번 골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친다.》

        ​

        콰드드득! 콰지직!

        ​

        높게 뛰어오른 발가르의 손에서 순수한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평소와 달리 기세가 조금 약했지만, 몇몇 기둥을 받아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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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뻗어나간 기운은 밧줄처럼 움직이며 골조의 곳곳을 휘감았다.

        발가르는 양손으로 기운을 강하게 붙잡으며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

        《크으으으읍!》

        ​

        맨몸으로 골조 한 개를 나르는 것조차 버거운 환경이었다.

        하물며 지금 발가르가 잡아당기고 있는 골조는 전부 6개. 어깨와 팔이 뜯겨 나갈 듯했다.

        ​

        《버… 버텨야……! 버텨야 한다…!!》

        ​

        발가르는 필사적으로 버텼다. 지상과 심연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

        쿠구구궁! 쿠웅! 콰르르릉!!

        ​

        발가르가 붙잡은 6개의 골조를 제외한 나머지 골조들은 연쇄적으로 무너지고 붕괴했다.

        무수한 골조들이 발가르를 스치며 무너졌다.

        ​

        붕괴를 막고 있던 골조들이 사라졌음에도 차원의 틈은 아직 건재했다. 

        발가르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골조들 덕분이었다.

        ​

        《끄흐흐흡…! 커헉, 끄으으으으으ㅡ!!》

        ​

        발가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력을 다해 골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툭ㅡ

        ​

        한순간이었다.

        ​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은 골조 하나가, 발가르의 옆으로 추락하며 허리춤을 스쳤다.

        앙상하게 자라난 골조가 망자처럼 손을 뻗어 발가르의 주머니를 탐했다.

        ​

        후두두둑.

        ​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주머니 안에 있는 작은 흙덩어리들.

        새끼 용이 발가르를 위해 만든 흙덩어리들이 떨어진다.

        ​

        《아.》

        ​

        자신도 모르게.

        정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

        발가르는 떨어지는 흙덩어리들을 향해 손을 뻗고 말았다.

        ​

        쿠르르르릉ㅡ!!

        ​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핵심 골조들의 균형이 무너졌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발가르는 사색이 되었다. 

        ​

        《아,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

        처절하게 매달리며 골조를 잡아당겼지만,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골조는 쉽사리 돌아오지 못했다.

        ​

        《끄아아아아아아!!》

        ​

        양손에서 피가 흐른다. 어깨가 탈구되어 덜렁거렸다. 근육이 찢어지고 갈라진다. 혈관이 터졌다.

        ​

        발가르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

        버텨야, 버텨야 하는데.

        어째서.

        ​

        어버이께서 자신을 믿고 맡기셨음인데.

        나는 왜, 도대체 왜.

        ​

        그 순간 손을 뻗었을까. 어찌하여.

        이 흙덩어리들을 버리지 못했을까.

        ​

        쿠구궁! 쿠릉! 콰아아앙ㅡ!!

        ​

        골조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둥이 사라진 차원의 틈은 무너지는 댐과 같았다.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이었다.

        ​

        《……아.》

        ​

        발가르는 망연자실하게 무릎을 꿇었다.

        ​

        무너지기 시작했다.

        차원의 틈이.

        ​

        모든 것이 무너진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조금 늦어버렸네요… 엣큥★!!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요즘 정말 절실하게 그 어느 때보다 부족함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작법서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요…?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하던가요…! 저는 지금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추락하는 중입니다…!! 끄아앙 떨어진다ㅏㅏㅏ!!! 그래도,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대유쾌 마운틴을 오르는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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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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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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