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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9

       *** ***

         

       “호남의 구운전장이 본교에 자금을 대고 싶다고 합니다.”

         

       “운남의 오독문이 협조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강서를 중심으로 교의 추종자들이 불어나고 있습니다.”

         

       혈인들의 보고를 들은 혈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무림은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법.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물론이고 천하의 굵직한 문파들이 다 속해있는 무림맹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며 만천하에 그 힘을 떨치고 있는 혈교였으니 손을 잡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영물이라는 전력 외에는 모든 점에서 부족했던 혈교는 이제 빠른 속도로 거대 세력으로서의 구색을 갖추어나가고 있었다.

         

       혈존은 흡족한 시선으로 자신의 앞을 내려다보았다.

         

       커진 세력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책상에는 수많은 보고서가 쌓여 있었다.

         

       눈앞에 쌓인 보고서들은 모두 우호 세력이 보내준 무림의 정보들이었다.

         

       혈교가 조직으로서 가장 취약한 점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정보였다.

         

       혈교는 지금까지도 무림공적으로 분류되고 있었고 혈교의 무공을 익힌 혈인들은 혈안이라는 너무나도 확실한 외향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도무지 정보망이라는 걸 형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혈존은 손을 잡은 세력들, 혹은 손을 잡고 싶어하는 세력들이 보내온 풍부한 정보에 가 흡족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무림맹 세력의 동향은 물론이고 무림의 판도까지 모두 알 수 있다니.

         

       평생 거리에서 떠도는 소문과 부족한 혈인을 파견해 한땀한땀 정보를 모아야만 했던 과거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영물이라는 막대한 힘이 불러온 풍부한 정보.

       

       그런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혈교가 천하를 지배하기 위해 걸림돌이 될만한 변수들을 파악하고 제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게 선순환이 아니면 무엇일까.

         

       분석된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전을 지시하던 혈존은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천하 모든 세력과 합격대에 대한 소식이 쏟아지고 있거늘 어째서 오성진에 대한 언급이 없는가.

         

       아무리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들 흔적 정도는 드러나야 정상인 것을.

         

       “호천안에 대한 소식은 없는가?”

         

       혈존을 도와 정보를 분석하던 혈인들이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았다.

         

       “들은 바는 없습니다.”

         

       “저 역시…”

         

       “…쯧.”

         

       혈존은 이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깨달았다.

         

       혈교의 동맹 입장에서 호천안은 과연 어떻게 취급해야 할 존재인가. 호천안은 혈교를 적대시하고 있지만 정작 혈교의 수장인 혈존은 그런 호천안의 행동을 철없는 반항으로 치부하며 후계자 자리를 언급했다.

         

       혈교와 호천안의 관계는 쉬이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괜히 호천안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가 나중에 호천안이 혈교의 후계자가 되기라도 한다면?

         

       혈교의 후계자와 척을 지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다른 세력들이 혈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은 어디까지 혈교의 호의를 사는 것이 목적. 그런데 딱 봐도 어지러운 호천안과 혈존의 관계에 끼어들어 괜히 원한을 사느니 아예 호천안에 대한 사안은 전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호천안을 고립시키고 무림맹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푼 정보가 다른 세력들의 귀에 들어가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셈이었다.

         

       “지금이라도 알아볼까요?”

         

       “그리하도록.”

         

       “존명!”

         

       혈존은 호천안에 대해서 떠올렸다.

         

       소식이 끊긴 지는 대략 두 달인가.

         

       무언가를 획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으나 호천안을 둘러싼 상황은 좋지 않았다.

         

       무림맹에서 끈 떨어진 연처럼 쫓겨났고, 신뢰도에 치명적인 소문이 도는 상황이었으니 무엇이든지 뜻대로 되지는 않았겠지.

         

       ‘지금이라도 행적을 파악한다면 될 일이다.’

         

       혈존은 자신의 걱정을 일축하고 다시 서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천안에 관한 일은 사소한 일은 아니었으나 지금 현재 그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일들은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혈교에서 놓친 호천안의 향방을 파악하기 시작했을 때.

         

       호천안은 천마신공의 전수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 ***

         

       “흐음. 이 녀석인가?”

         

       찍찍!

         

       혈존과 피가 이어져 있다던가, 아니면 혈교와의 연관점이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늘 비천마차에 숨어있었던 서공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무림에서 나와 혈교의 관계를 모르는 이가 없어졌으니까.

         

       서공은 좁은 비천마차 안에서도 잘 지내고 있었지만 산과 들을 활기차게 들쑤시고 다니던 녀석을 계속 마차에 가두어 놓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러니 기왕 위서련의 손님으로 지내게 된 것 그냥 서공을 풀어놓기로 했다.

         

       위서련은 아무래도 그런 서공에게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서공은 그런 위서련의 관심이 영 달갑지 않은지 혁기린의 등 뒤에 매달려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으음.”

         

       나는 위서련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처박고 있는 서공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뭐랄까.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위지천의 반응을 돌이켜보면 내가 천마신공을 전수받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위지천 역시 짐작만 할 뿐 완전히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공여부를 떠나 내가 흑룡기를 지닐 가능성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슬쩍 혁기린의 등 뒤에 매달려 있는 서공을 들어올려 위서련에게 다가갔다.

         

       찍?찍!

         

       잠시 멍때리던 서공이 꼬리로 내 팔을 휘감으며 조여왔다. 서공이 사람이었다면 ‘너 이새끼 뭐하는 짓이야? 이거 배신이야 배신!’이라고 외쳤을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미안한 일이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고려해보면 서공이 흑룡기에 적응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호오.”

         

       위서련이 망설임없이 서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서공이 다급하게 꼬리를 들어 위서련의 손을 막아 보려고 했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꼬리에는 아무런 힘도 실려 있지 않았으니 위서련은 가볍게 서공의 꼬리를 치우고 들어가 머리를 덥석 잡았다.

         

       …이건 누가 봐도 머리를 터트리고 싶어하는 처형 동작인데.

         

       서공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며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만지는 방식이 좀….”

         

       “아? 아아. 그렇군.”

         

       위서련이 아주 먼 추억을 되새기는 듯한 아련한 표정을 짓더니 역동적인 처형 동작을 벗어나 평범하게 손바닥을 펴 서공의 정수리를 문질렀다.

         

       조심스러운 쓰다듬이 이어지자 서공도 조금씩 긴장이 풀렸는지 바짝 굳어 있던 몸이 점차 늘어지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부드럽군.”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으십니까?”

         

       “언제 마지막으로 짐승을 직접 손으로 만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군.”

         

       아무 생각 없이 물은 질문이었는데 생각보다 묵직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어지간한 짐승들은 손을 대기는커녕 내가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난리가 나니 말이다.”

         

       “…그렇군요.”

         

       “흐음. 그런 의미로 이 녀석은 확실히 영물이로구나. 귀여운 것.”

         

       위서련의 얼굴에 드물게 환한 미소가 걸렸다.

         

       “이 녀석에게 간식이라도 주고 싶구나. 무엇을 먹고 사는가?”

         

       “영초입니다.”

         

       “식성 한번 비싼 녀석이로군.”

         

       그렇게 말하면서 위서련은 망설임없이 천마신교의 창고를 열었다. 온갖 영초이 줄줄이 대령되고 그런 영초들이 내뿜는 향 때문에 주변에 서 있는 내가 박하사탕을 삼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먹거라.”

         

       아까보다 많이 편해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여전히 위서련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던 서공이 어쩔 수 없이 영초 하나를 받아먹었다.

         

       서공은 위서련의 손에 들린 영초를 집어들고는 깨작깨작 영초를 갉아먹다가 볼주머니에 저장했다.

         

       그나마 먹은 것도 위서련의 눈치가 보여서 억지로 먹은 눈치였다.

         

       소진된 기운을 보충할 때나 왕성하게 먹어댔지, 서공은 본래 소식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서공의 모습이 위서련의 눈에는 감사를 표하며 복스럽게 먹는 것으로 보였던 것일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영초를 내미는 위서련.

         

       서공은 그런 위서련의 강요 아닌 강요에 울상을 지으며 계속해서 볼주머니에 영초를 수납했다.

         

       “볼이 빵빵해지니 더욱 귀엽구나.”

         

       찍? 찍찍! 찍!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위서련의 비위를 맞추려고 필사적이라는 것만큼은 알겠다.

         

       볼을 콕콕 찌르는 위서련과 움찔움찔하는 서공.

         

       간간히 서공에게서 왜 안 구해주냐는 원망스러운 시선이 날아들었지만 위서련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인지라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서공이랑 놀아(?)주던 위서련이 서공을 풀어 주었다.

         

       곧바로 도망쳐 당소열의 곁에 붙는 서공. 당소열이 앉아 있는 의자에 꼬리를 휘감고 빵빵해진 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소열이 말없이 담뱃대로 녀석의 머리를 슥슥 긁어주었고 그제야 안심한 듯이 바닥에 배를 깔고 추욱 늘어지는 서공.

         

       위서련은 말없이 그런 서공의 모습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이로군.”

         

       “예.”

         

       천마신공의 계승을 위한 의식은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내일 있을 결행 뿐.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일행들의 얼굴이 바뀌었다. 마음이 심란해졌는지 서공을 안아들고 쓰다듬는 혁기린. 애써 나에게 굳건한 표정을 보여 주려 하는 여일예. 여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흑묘. 한가득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모용연화와 긴장감 어린 얼굴로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독고이설.

         

       그리고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당소열과 가볍게 웃어주는 당도연까지.

         

       표현은 제각각이었지만.

         

       본인들 나름대로 나에게 힘을 볻돋아주는 응원을 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같아 보였다.

         

       “벌써 밤이 되었군. 그대는 내일을 맞이할 준비나 하도록 해라.”

         

       저녁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직 밤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거늘 위서련은 그런 말을 담으며 몸을 일으켰다.

         

       뭐 이것도 위서련 나름대로의 응원이겠지.

         

       “자, 자 우리도 선배를 좀 쉬게 해주자고요.”

         

       “내일 뵙겠습니다. 은공. 몸조리 잘 하십시오.”

         

       일행들과 깔끔하게 헤어져 내 방으로 돌아왔다.

         

       “후우.”

         

       그 뒤로는 물을 주문해서 공들여 박박 닦은 뒤 몸을 뽀송뽀송하게 말리고는 침상에 벌렁 드러누웠다.

         

       고수가 되면서 쓸데없이 예민해진 감각조차 만족시키는 소천마 귀빈용 침상의 감촉을 만끽하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새삼 일행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사실 일행들 입장에서는 내가 사지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보이겠지. 뭐 실제로도 그렇고.

         

       천마신공의 계승에 실패하면 죽는다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까.

         

       그러니 자신의 마음속에 남은 미련을 털어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평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을 수도 있고 하다못해 품에 안겨오거나 입맞춤이라도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음.

         

       생각해보니 그리 나쁘지 않았을지도?

         

       나쁘지는 않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천마신교에 도착하기까지, 그리고 천마신교에 도착한 뒤로 유지하고 있던 평정심은 깨어졌을지도 모르지.

         

       격한 감정은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도 움직이니 말이다.

         

       결국 일행들은 최후의 최후까지도 날 배려해 준 셈이었다.

         

       뒹굴거리던 나는 몸을 일으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우우웅.

         

       언제나 시끄러운 뇌륜과 함께 온몸 구석구석을 청소하듯이 점검한다. 어째 오늘따라 뇌륜의 웅웅거림이 청소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처럼 들려서 더 청소하는 기분이 나는구만.

         

       대청소를 하듯이 운기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나만의 힘으로 유지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여러 요인들이 맞물리며 내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딱 정지한 것에 불과했다.

         

       그냥 운이 좋았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감상.

         

       천마신공의 원본이라는 미지에 대한 궁금함.

         

       나와 함께 땀흘리고 노력해 준 일행들.

         

       부모님과 조부님 생각이나 혈존에 대한 분노까지.

         

       그야말로 모든 감정과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리며 마음의 흔들림이 정지한 상황에서 천마신공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만약 어느 날 내가 지금과 같은 명경지수의 마음가짐을 지니고 싶다고 뭔 짓을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니는 것은 불가능했겠지.

         

       이렇게 마음이 평온해지는 순간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맞이할 수 있는 때겠지만.

         

       하필 그 순간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행운일 것이다.

         

       행운이 찾아온 것에 감사하며 말단에 있는 세맥까지 뽀득뽀득 닦아냈다. 운기를 게을리하지는 않았지만 내 몸에는 이런저런 기운들이 가득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육성진을 연마했으니 알게 모르게 일행들의 기운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일행들의 기운을 내 몸에서 쫓아내는 대신 차곡차곡 정리했다.

         

       천마신공의 전수에 방해가 될지 모를 일이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대신 흑룡기의 찌꺼기를 발견했을 땐 득달같이 달려들어 쫓아냈다.

         

       그렇게 뿌듯할 정도로 깔끔한 운기조식을 마치고 눈을 뜨니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오….”

         

       세상에 계승식은 오늘 아침에 시작하기로 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서둘러 몸을 일으키니 천마전에서 나온 무인들이 말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을 미루며 내가 준비되기만을 기다린 것일까.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비단 천마전의 무인뿐만이 아니었다.

         

       위지천의 숙소에서 계승 장소까지 가는 길에는 수많은 교인들이 말없이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했다고?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긴 기다림 때문인지 교인들의 시선은 은근히 사나웠다. 뭐…사실 교인들 입장에서야 내가 천마신공에 도전하건 말건 무슨 상관일까. 막말로 나는 교인들에게는 외부인에 불과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 때문에 말 한 마디 못하고 몇 시진을 서 있었으니 짜증이 날 법도 하지.

         

       나는 그런 교인들의 시선에 기시감을 느꼈다.

         

       교의 중요한 행사이니 차마 불만은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고 은근히 노한 눈빛을 보내는 분위기가 어째 사천성에서 사천낭인을 대하던 사천인들과 닮아 있었다.

         

       욕은 하고 싶지만 사천낭인에게 해코지를 당할까봐 적대적 시선만 보내던 그 분위기가 똑같았다.

         

       문득 사천낭인 시절이 생각났다.

         

       바람 불면 날아가는 연약한 이류 무사의 몸으로 풍둔아가리술 하나만 믿고는 사천성의 뒷골목을 휘젓고는 했지.

         

       그 추억을 떠올린 나는 문득 입을 열었다.

         

       “쎅.”

         

       내가 입을 열자 마교의 교인들이 모두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이 느껴졌다.

         

       “쓰.”

         

       순간 느꼈다.

         

       내 말을 들은 모두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물음표가 떠올랐음을.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마음속의 명경지수가 와장창 깨어지는 것이 느꼈다. 그리고 개판난 내 마음속 풍경을 가득 채우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그래 이거지.

         

       나는 사이다패스였고.

         

       요런 시선을 받으면 갚아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좀생이었다.

         

       그러니 명성치 0을 유지하며 숨죽이며 살겠다고 찾아간 사천성에서, 흑립을 쓴 채 사천낭인이 되어서도 그 난리를 치며 살았지.

         

       명경지수는 무슨 얼어죽을 명경지수여.

         

       마음이 편했던 것은 내 마음속에 부담감이 찰 대로 가득 차버려서 더이상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로 나를 옭아매었기 때문이었다.

         

       전신이 빈틈없이 포박당한 채 누워 있어도 누워 있는 건 맞으니 편하기야 했겠지.

         

       이제야 온몸이 가벼워졌다.

         

       천마신교 교인들의 말없는 술렁임을 느끼며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 무림천하에는 영어가 존재하던가? 지도에서도 아시아 일대만 나와있을 뿐 유럽의 국가들이나 영국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네.

         

       뭐 천마신교의 교인들이 내가 이 중요한 순간에 외친 말이 무슨 뜻임을 알아봐야 별일이야 있겠는가.

         

       뇌검낭인이라는 별호가 광검낭인으로 바뀌는 정도겠지.

         

       여러 가지 의미로 더 강해보이는 별호이니 괜찮을지도?

         

       이딴 생각을 하고 있자니 마음속 부담감들이 산산조각나서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명경지수 상대를 유지한 것이 행운이 아니라.

         

       명경지수랍시고 부담감에 사로잡혀서 과도하게 운기조식을 하다가 늦은 것이 행운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이 중요한 날에 정신 바짝 챙기고 있는 놈이 늦잠으로 지각하는게 정상이냐고 어?

         

       그냥 자기최면에 빠졌던거지.

         

       그런 생각을 되새기는 사이 천마신교의 비처에 도착했다.

         

       그 비천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천마신교의 중진들일까. 그야말로 범상치 않은 기도를 지닌 무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위서련과 일행들 역시 비처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 늦어서 죄송합니다.”

         

       진중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인지 눈살을 찌푸리는 무인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반면 흑묘와 여일예 그리고 혁기린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갑자기 내 행태가 사천낭인 시절로 돌아갔으니 놀랄 만도 하지.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세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선배!”

         

       흑묘가 위지천과 천마신공의 비급이 기다리고 있는 도장으로 들어가려던 나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엄지를 세운 손을 내밀었다.

         

       아직도 엄지척을 기억하고 있었나.

         

       “뭐해요?”

         

       흑묘가 채근하자 다른 일행들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란히 내밀어진 엄지척을 바라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응원이로구만.

         

       마음속 부스러기의 부스러기까지 없어진 듯한 기분을 느끼며 도장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정철 때와 마찬가지로 묵색의 앉은뱅이 책상과 방석. 그리고 제목란이 빈 서책을 들고 있는 위지천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 자리에 정좌했다.

         

       위지천이 붓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각오는 되었나?”

         

       “아니오.”

         

       위지천이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싸늘하게 날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래도 천마신공에 도전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좋다.”

         

       위지천이 붓을 들었다.

         

       “천마신공의 계승을 시작하겠다.”

         

       천마신공이라는 글자가 조금씩 완성되어갈때마다 비급서에서는 검은 기운이 물씬 피어 올랐다.

         

       “계승자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다. 천마신공의 이치 안에 깃든 흑룡을 극복하고 그 별의 이치를 쟁취하라.”

         

       츠즈즈즈즈!!

         

       비급서가 불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흑룡기가 천마신공의 비급서를 휘감았다.

         

       그리고 위지천은 정철 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비급서를 내 앞에 내려다 놓은 뒤 정철 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도장을 나섰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문을 닫기 전 돌아보고 한 마디를 남겼다는 것 뿐이었다.

         

       “행운을 빌지.”

         

       행운은 이미 거머쥐었지만 또 와서 나쁠 것은 없으니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위지천은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나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끝으로 나는 천마신공의 비급서에 손을 올렸다.

         

       흑룡기가 내 손을 감싸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팔락.

         

       나는 망설임없이 비급서의 첫 장을 펼쳤다.

         

       [무공(武功)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몸과 정신에 우주의 이치를 담고자 하는 기술이다.]

         

       [본인은 후대가 바로 그 이치에 닿기를 바라는 바.]

         

       [이 비급에 내가 이해한 기술과 깨달은 바를 남긴다.]

         

       [허나 연자여 잊지 말지어다.]

         

       [설령 이 비급에 담긴 모든 이치를 깨닫더라도 그대는 인간이며.]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인연(因緣)이라는 것을.]

         

       서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흑룡기가 내 몸을 덮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내 몸으로 침범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서장은 서장일 뿐, 천마신공 그 자체는 아니라는 뜻이겠지.

         

       이제 다음 장을 넘기는 순간 이 흑룡기는 내 몸을 파고들 것이고 흑룡과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망설임없이 다음 장을 넘겼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도, 이제와서 망설일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내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초심 찾은 호천안.

    *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신 분량은 낭낭하게 넣었습니닷!

    두편으로 자를까도 싶었지만 뭔가 절단점이 애매해서 그냥 한편으로 넣었습니닷!

    닷!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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