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59

   [역사 확인]이라는 스킬은 그 장소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능력이다.

   

   게임 속에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정보를 찾아내는 데에 주로 사용되었지.

   

   내가 기어코 얻어내고 싶다 생각할 만큼 이 스킬은 유용하지만 여기에 모든 사건이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 확인] 속에 기록되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역사에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뿐.

   

   누군가가 자고 일어나 식사를 하고 친구와 떠들고 잠을 자는 하루는 기록되지 않는다.

   

   이게 아직 게임일 적에는 리소스 문제 때문에 적당히 생략한 거겠거니 생각을 했지만 현실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나름의 기준이 있는 모양이다.

   

   [클레브 자작 영애 납치]

   

   [금요일 저녁.

   클레브 영애가 바깥에 나가 있는 틈을 타 외부에서 공허의 추종자가 잠입했습니다.

   악신의 권능을 이용해 자취를 감춘 자는 자작 영애가 잠드는 순간까지 기다린 끝에 그녀를 포박했죠.

   악신의 힘을 빌려 자작 영애에게서 여러 정보를 빼낸 추종자는 쓸모가 없어진 자작 영애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습니다.

   문제는 아카데미의 사용인들이 매일같이 방을 청소하고 다닌단 점이었습니다.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잠입을 들킬 가능성이 컸죠.

   벌벌 떠는 자작 영애를 바라보던 추종자는 사도에게 들었던 정보를 떠올리고 자작 영애를 어깨에 걸쳐 멨습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거기에서 끊어져 있었다.

   

   이 이후에는 방 바깥에서 사건이 펼쳐지는 거겠지.

   

   별 상관은 없었다. 기록이 이어지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따라가기만 하면 그만…

   

   “루시?!”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 한 것을 조이가 다급히 받아줬다.

   

   그녀의 팔에 안겨 몽롱해진 정신을 다잡은 나는 긴 한숨과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요?”

   “…큽. 당황한 것 좀 봐. 조이 너 진짜 멍청하네. 좀 약한 척 해주니까 기겁하는 것 좀 봐. 이러다 내가 쓰러지면 아주 오열하겠다? 응?”

   “그런 장난치지 마요! 깜짝 놀랐잖아요!”

   “큽. 크흐흡.”

   

   나는 조이의 걱정을 달래기 위해 입으로 웃음을 흘리면서 한편으로는 내면을 관조했다.

   

   내가 지니고 있던 신성 중 절반 이상이 날아가 있었다.

   

   내가 안에 품고 있는 신성이 작은 것도 아닌데 그 중 절반이 [역사 확인] 한 번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현기증이 차오르지.

   

   이상하네.

   

   [역사 확인]은 원래 이런 스킬이 아니었는데.

   

   이게 게임일 적에는 항시 패시브처럼 쓸 수 있는 기술이었다고.

   

   간슈 그 새끼. 내가 맘에 안 든다고 또 무슨 헛짓거리 해 놓은 거 아냐?

   

   도서관에 처박혀 있는 성격 더러운 꼬맹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해.

   

   아아. 젠장. 그 때 머리에 주먹이라도 한 번 박고 왔어야 했는데.

   

   질질 짜면서 화를 내는 꼴을 꼭 봤어야 했는데에에에.

   

   나는 속으로 간슈에 대한 원망을 토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할아버지에게 방금 전 보았던 내용을 설명했다.

   

   <네가 본 것이 정말이라면 이 방의 주인은 아카데미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구나.>

   

   밤중에 아카데미의 경비를 뚫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택하기보단 아카데미 내부 어딘가에 영애를 숨겨두는 것이 현실적이란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공허의 권능 때문에 뚫려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아카데미의 경비는 다른 때보다도 삼엄하다.

   

   이전에 벌어진 몇 번의 사건 때문에라도 그래야만 했지. 온갖 고생을 해가며 그를 뚫는 것보다는 아카데미 내부에 영애를 숨기는 쪽이 현실적이다.

   

   <추측 가는 바가 있느냐?>

   ‘으음. 있긴 한데요. 너무 많아서 좁히기가 좀.’

   

   아카데미 내부에 사람을 숨길 만한 장소가 있냐고?

   

   차고 넘치지.

   

   지금 당장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수십 개는 돼.

   

   단순한 학생의 입장에서는 들어가기 힘든 곳까지 합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첨언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작 영애가 있는 곳을 찾고 싶다고.

   

   [유령을 찾아가라.]

   

   유령이라면 아드리를 말하는 건가?

   

   …맞네.

   

   물리적인 한계에서 벗어난 그 녀석이라면 일반적인 사람과는 비할 수 없는 속도로 아카데미 내부를 뒤질 수 있겠지.

   

   아드리에게 불온한 기운을 감지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단 걸 생각해보면 더 효율적일 테고.

   

   나는 새삼 이런 스킬을 택한 과거의 자신이 자랑스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조이와 함께 방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

   

   다시금 아카데미 거리로 돌아온 순간 비시는 다른 건 아무래도 좋으니 기숙사로 돌아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주말 동안 겪은 일들이 너무도 많아 쉬어도 쉬어도 몸에 힘이 없었다.

   

   말 한 마디로 그녀의 가문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인물들과의 동행.

   

   진심으로 그녀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흑마법사들과의 사투.

   

   그 속에서 마주한 무수한 죽음.

   

   – 비시.

   “괜찮아.”

   

   대개의 경우에서 비시는 그저 아드리가 움직이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지만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투의 와중에 비시는 분명 자신의 의지로 다른 이를 해쳤다.

   

   그리고 그 죽음을 발판 삼아 또 다른 이를 해쳤다.

   

   사령술사로써 죽음 사이에 끼어들었다.

   

   – 제가 정신을 강화해주는 마법을.

   “정말 괜찮아.”

   – 그렇지만.

   “괜찮다고 했잖아.”

   

   으르렁대듯 목소리를 냈던 비시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아드리를 향해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미안.”

   – 비시…

   “걱정 마. 좀 쉬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야.”

   

   아드리의 제안을 거부한 그녀는 아카데미로 무작정 걸어가다 문득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진한 기미가 끼어 있는 그녀의 눈가는 폐인을 연상케 했다.

   

   와아. 난 정말 사령술사의 재목이 아닌가봐. 죽음을 언제나 곁에 두어야 하는 마법을 배운다는 녀석이 겨우 하루 고생했다고 이렇게나 흔들리다니.

   

   “비시 양.”

   

   스스로의 무능에 한탄을 하던 비시는 옆에서 들려 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조심스레 고갤 돌렸다.

   

   그 곳에는 현재의 비시가 가장 꺼리는 상대가 서 있었다.

   

   “괜찮으세요?”

   

   주신 교회의 성녀. 페이비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비시는 페이비라는 사람의 호의에 거짓이 있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적은 가식으로 묘사하기에는 너무도 경건한 것이었으니까.

   

   이렇게 착하고 순수한 사람도 내가 사령술사라는 사실을 알면 혐오를 내비치겠지.

   

   내가 다른 사람을 죽였단 사실을 알면 규탄을 할 거야.

   

   어차피 거부당할 거라면 차라리 내 쪽에서 먼저.

   

   “으음. 말이 통할 상태는 아닌 것 같네요.”

   “…응?”

   “조금 과격하게 할게요. 이해해주세요.”

   

   성녀라는 호칭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에 비시가 눈을 끔뻑이던 그 순간. 페이비의 손이 비시의 이마에 닿았다.

   

   성녀의 신성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낀 비시였지만 그 때는 이미 비시의 사지가 힘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지려는 비시를 페이비가 조심스레 안는다.

   

   – 너! 무슨 짓을!

   “걱정 마세요. 유령 씨. 해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페이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짓자 아드리의 얼굴에 당혹이 깃든다.

   

   – …날 알고 있었어?

   “당연하죠. 이래 봬도 주신 교회의 성녀로서 온갖 일을 해 온 저입니다. 사령의 존재를 모를 리가 있나요.”

   – 근데 왜 여태까진.

   “영애님께서 내버려두는 것을 보면 나쁜 분은 아닌 듯 했으니까요. 제가 아는 체를 하면 비시 양이 불편해하실 것 같기도 했고요.”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비시의 상태가 멀쩡했다면 그냥 내버려두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에 아드리가 미간을 찌푸린다.

   

   – 성녀란 사람이 교회의 방칙을 어겨도 되는 거야?

   “괜찮아요. 저 가짜니까. 조금 나쁜 일을 해도 아무 문제없답니다.”

   

   페이비는 그리 이야기를 하고서 비시에게 몇 가지 마법을 걸어주었다.

   

   – 잠깐! 비시한테 신성마법을 쓰면!

   “무얼 걱정하시는지 압니다만 괜찮아요. 아무 문제없을 거에요.”

   

   성녀의 단언은 거짓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사령술사인 비시에게 극독이 되어야 할 신성마법은 기이하게도 비시의 표정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만 했으니까.

   

   – …뭘 한 거야?

   “주신께서는 대지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을 포용하십니다. 거기에 예외는 존재치 않죠.”

   – 그게 뭔.

   “쉬이 표현하자면 잔재주를 부린 거랍니다.”

   

   부드러운 어투로 설명을 하면서도 여러 조치를 이어나가는 페이비의 모습에 아드리는 입을 꾹 다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드리가 아는 성직자라는 존재는 마의 앞에서만큼은 극단적인 이들이었다.

   

   일선을 넘은 자를 마주하는 순간 그 존재를 말살하기 위해 달려드는 자들 말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모든 걸 알면서도 먼저 선을 넘은 것은 사령술사들이니까.

   

   아드리의 어머니가 남긴 노트에 적혀 있던 것처럼 박해를 택한 것은 사령술사들이다.

   

   성직자들은 그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것일 뿐.

   

   그러니까.

   

   특이한 것은 어디까지나 눈앞의 성직자다.

   

   “저기. 유령 씨?”

   – 아드리야.

   “아드리님이군요. 예쁜 이름이네요.”

   – 겉치례는 됐어. 그래서 뭔데.

   “비시 양을 기숙사까지 데려다 드리고 싶어서요. 안내해주시겠어요?”

   – …따라 와.

   

   한숨과 함께 안내를 수락한 아드리였지만 그녀의 역할을 머지않아 끝나버렸다.

   

   페이비가 비시를 안고 몇 걸음 나아가기 무섭게 다른 이들이 페이비를 돕고 싶노라 청한 것이다.

   

   무수히 많은 이들의 호의 속에서 비시의 숙소에 도달한 페이비는 비시를 침대에 눕히고 몇 가지 조치를 더 취했다.

   

   그러자 비시의 표정이 한결 더 편안해졌다. 악몽 속에서 몇 분 마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벌벌 떨던 비시는 어디로 간 건지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비시의 모습에 아드리가 속으로 안도했다.

   

   “나중에 잠에서 깨시면 계속 말을 걸어 주세요.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에 대화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요. 아. 그리고 비시 양에게 제가 알아챘단 건 비밀로 해주세요. 괜히 마음 고생 하실 것 같거든요.”

   

   페이비는 보답에 대한 이야기는커녕 비시에 대한 걱정만 늘어놓았다.

   

   그녀의 말을 가만 귀에 담던 아드리는 허공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턱을 괴었다.

   

   – 너 있잖아. 방금 전에 스스로 가짜라고 그랬지.

   “네.”

   –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건지 대충은 알겠는데. 그런 거 신경쓰지 마. 다른 놈들이 널 성녀라 부른다면 넌 진짜 성녀인 거니까.

   “…아하하. 사령 분께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페이비가 끝까지 겸손을 유지하자 아드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 하아아. 그 건방진 꼬맹이가 아니라 네가 주신의 사도가 되었어야 했는데.

   “그런 불경한 말씀 하지 마세요.”

   

   단정짓듯 내뱉어진 말에 놀란 아드리가 슬며시 페이비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 전까지의 온화함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차디 찬 눈빛이 아드리를 쏘아 본다.

   

   “그건 오롯이 그분의 역할입니다.”

   

   그 눈빛에 압도된 아드리가 굳어 있던 도중 페이비가 문 바깥쪽으로 고갤 돌렸다.

   

   굳어 있던 페이비의 입가가 일순에 느슨해진다.

   

   “아드리님?”

   – …어. 어어?

   “다시는 그런 말씀 하지 말아주세요.”

   – 아. 알겠어. 조심할게.

   “네. 그거면 됐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발칵 열며 들어온 루시를 반갑게 맞이하는 페이비를 보면서 아드리는 페이비의 평가를 대폭 수정했다.

   

   저 여자는 무척 위험한 구석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