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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9

       시간이 약이라고, 결국 황제와 지내면서 시간이 지나니 조금은 관계가 회복되는 기분도 든다.

        

       상대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였다는 소리는 아니다. 사실 나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황제가 우리 세 사람을 떠나서 살게 했을 때의 리스크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 나라는…… 지금은 나의 나라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었다. 황제가 우리에게서 벗어나서 이 나라를 경제식민지로 만들어버리는 꼴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이게…… 별로 현실적이지 못한 걱정이라는 생각은 한다.

        

       코인이나 주식으로 떼돈을 번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경제를 쥐고 흔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회사마다 가질 수 있는 주식의 양은 정해져 있고, 게다가 황제는 여러 회사에 분산투자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오히려 한 회사에 대한 영향력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냐고 한다면, 나는 그렇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황제이지 않은가. 그 세 치 혀를 움직여 세상 사람들의 여론을 뒤집어버리거나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 그렇게 되는데 몇 년에서 십수 년은 걸리겠지만, 황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아마 언젠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

        

       그 미약한 가능성이라도 일단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기에, 우리는 황제와 같은 곳에 살았다.

        

       같은 곳에 사는 이상 얼굴을 마주칠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관계도 나름대로 관리한다.

        

       이런 생각은 황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우리는 매일 밥을 먹을 때마다 식탁을 둘러싸고 다 같이 식사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나게 서먹한 성인 딸 셋과 아버지가 식사하는 모습’에 가깝다. 최대한 좋게 봐줬을 때.

        

       그냥 보자면 ‘모르는 사람끼리 처음 식사하는 모습’이었고.

        

       “불고기 맛있네!”

        

       그래도 ‘노력’은 한다. 클레어도 그건 마찬가지라 가끔 이렇게 요리를 칭찬하곤 했다.

        

       “마트에서 산 고기입니다. 처음 사봤는데, 양념을 맛있게 잘했군요.”

        

       나도 그런 클레어의 말에 감사히 편승했다.

        

       “앞으로 종종 가야겠네. 상가에 있는 곳이지?”

        

       “그렇습니다.”

        

       앨리스도 말을 하고, 나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몇 번을 먹어봐도 이 세계의 식사는 훌륭하구나.”

        

       황제 본인도 그렇게 편승했다.

        

       “사실, 아제르나의 식사가 지나치게 망가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그렇다고 느꼈느냐?”

        

       “고기 요리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맛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음식이니까요.”

        

       내가 느끼기에는, 뭐랄까.

        

       어째서인지 사이버펑크 시대의 ‘식재료가 없어서 대충 영양분만 채울 수 있는 요리’가 떠오른다. 직접 그런 요리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아제르나에서 먹을 수 있는 일반적인 식사는 그런 형태였다.

        

       “앨리스, 돌아가면 간단한 레시피라도 만들어서 교육할 수 있도록 해야겠구나. 사실 식량 사정 자체는 그렇게 나쁘지 않으니.”

        

       “사실,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닙니다.”

        

       나는 황제의 말에 반박했다.

        

       “식량 생산량 자체는 늘었지만, 백성들 전반이 느끼는 생활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이 미비합니다.”

        

       “흠, 그렇다고 생각하느냐?”

        

       황제는 웃으면서 나를 보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느냐?”

        

       “……황실의 재산을 어느 정도 예산으로 돌려서 제도 주변 백성들의 상황부터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안은 어떻습니까? 황실의 재산은 생각보다 견실합니다.”

        

       “하지만 그 재산 중 많은 부분이 식민지로부터 나오는 재산이지. 그리고 그런 경제 체계는 영원히 굴러갈 수 없다. 식민지의 재산이 바닥나는 순간 무너지게 되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당장 떠오르는 것은 부의 재분배지만—

        

       아니, 잠깐만.

        

       왜 평범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왜 아제르나의 경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클레어와 앨리스가 나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입에 쓴웃음이 감돌았다.

        

       원래 밥상머리에서는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건데.

        

       “……식사 와중에 죄송합니다.”

        

       내가 사과하자, 황제는 웃으며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다. 나도 꽤 즐거웠다. ……생각해보니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오랜만이군.”

        

       일방적인 가정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계라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일 자체가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굳이 그 말을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잠깐 식사가 이어지다가,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는 호칭 정리를 했었지.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겨서 말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황제를 보았다.

        

       황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말했다.

        

       “클레어는 내 조카고, 너희 둘은 내 딸이라는 관계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자매처럼 자라서, 그냥 서로를 자매로 인식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나는 잠깐 고민하면서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럼, 누가 첫째인 게냐? 너희 사이에서 결정해야 내가 나중에 헷갈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앨리스와 클레어가 서로를 보았다.

        

       나는 그사이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는 걸 봤다고 확신한다.

        

       “그야 쟤가 막내죠.”

       “당연히 제가 첫째입니다.”

        

       클레어와 앨리스가 동시에 그렇게 말하고, 서로 감히 그런 이야기를 할 줄 몰랐다는 듯 마주 보았다.

        

       “실비아 언니는 내 언니잖아. 그러니까 네가 막내여야지.”

        

       클레어의 주장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조금 저 정확하게 따져야지.”

        

       “정확하게 어떻게? 실비아 언니가 네 동생이기라도 하다는 소리야?”

        

       “그야 당연히 실비아가 내 동생이지. 나보다 늦게 황실에 들어갔잖아? 아니, 그보다. 실비아가 네 언니라고 쳐도 내가 네 동생인 이유는 뭔데?”

        

       “그야 당연히, 실비아 언니와 나 사이에 다른 사람이 들어갈 자리는 없으니까.”

        

       “무슨 논리야, 그게?”

        

       나는 그냥 말없이 젓가락을 움직여 고기나 한 점 더 집었다.

        

       황제는 우리가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걸 모른다. 머릿속이 경제니, 정치니 하는 것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고, 취미로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이 둘은 언제나 이러느냐?”

        

       “‘누가 언니인지’ 결정할 때만 이럽니다.”

        

       “으음.”

        

       나의 말에 황제는 침음을 흘렸다.

        

       황제가 이렇게 당황하는 건 또 처음 보네.

        

       아, 그런가. 하긴 황제라면 커다란 식탁 앞에 혼자 앉아 식사하는 일이 많았을 테니까. 다른 사람이 앉더라도 이렇게 밀접하게 앉아있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런 황제의 반응이…… 조금은 신선했다.

        

       연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굳이 이런 면에서 연기를 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테니까.

        

       “폐하도 의견을 한 번 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나의 질문에 앨리스와 클레어의 말이 딱 멈췄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나를 봤다가, 황제를 보았다.

        

       “나는…….”

        

       황제는 고작 두 소녀의 강렬한 시선을 받고 당황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의 눈에는 그런 태도가 보였다.

        

       아, 이거 조금 재미있는데.

        

       한순간이지만 황제에게 가지고 있던 악감정이 약간 미약하게 느껴졌다.

        

       “나는…… 실비아가 앨리스보다 언니라고 생각했다만.”

        

       “…………예?”

        

       황제의 말에 앨리스가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음.

        

       정치니, 경제니 하는 건 다 잘 다루면서 자기 딸은 못 다루는 황제라니, 너무나도 정석적인 아버지가 아닌가.

        

       하긴 애초에 아버지 노릇을 해봤어야 알겠지만.

        

       나는 다시 말없이 불고기나 한 점 더 집었다.

        

       “그야…… 실비아가 언니라고 부른 적이 없지 않으냐.”

        

       “저도 실비아를 언니라고 부른 적은 없는데요……?”

        

       앨리스가 자기가 황녀라는 것도 잊은 채 되물었다.

        

       “네가 투정 부리고 나면 실비아가 언제나 위로해주지 않았던가?”

        

       “오.”

        

       그 말에는 클레어가 바로 반응했다.

        

       “그 이야기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삼촌?”

        

       나는 물을 마시다가 뿜을 뻔했다.

        

       간신히 기침은 하지 않고 침착하게 잔을 내려놓고 황제를 보았다.

        

       황제의 표정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잠깐 멍하니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삼촌…….”

        

       앨리스도 클레어를 보았다.

        

       “음. 그때의 이야기 말이지.”

        

       황제가 약간의 버퍼링을 극복하고 다시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비아가 종종 나를 보러 올 때마다 앨리스는—”

        

       “아버지.”

        

       앨리스가 경고했다.

        

       사실 경고의 말은 전혀 섞여 있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황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을 법했다.

        

       여기서 사람을 죽이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여긴 과학수사가 발달해서 웬만큼 운이 좋지 않은 이상 시체를 손쉽게 숨길 수가 없거든.

        

       “음…….”

        

       “삼촌, 얘기해주세요!”

        

       클레어의 저 붙임성은 좀 배워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눈을 반짝거리는 것까지 내가 제대로 따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

        

       “으음…….”

        

       앨리스의 눈빛이 다시 위험하게 빛나고, 황제는 침음했다.

        

       …….

        

       그래도 오늘은 좀 일반 가정집 같은 분위기가 나네.

        

       이건,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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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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