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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59

        

         

       “누추한 곳이지만, 어서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그 기묘한 공간의 중심부에서, 한 남성이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망한 도시에서 거닐다가 만난 토끼 같은 느낌의 남성.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풍경과 어우러지는 듯한 분위기를 가진 남자.

       귀여워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큰 키로 그들을 맞이해주는 사람.

         

       박진성이었다.

         

       진성은 방긋 웃으며 그녀들을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었고, 미리 세팅해놓은 의자에 앉으라는 듯 손을 내밀어 그녀들을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하나, 둘, 셋, 넷.

         

       오딜리아, 아그네스, 엘라, 아나스타시아가 자리에 앉았고, 진성은 그녀들이 모두 앉자 음료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달칵.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휴대용 버너의 불이 켜졌고, 버너 위에 올려진 자그마한 편수 냄비의 물이 끓기 시작했다. 한 번 끓였다가 채 식지 않은 물이었는지 물은 금방 다시 끓어올랐다.

       진성은 물이 끓기 시작하자 테이블 위에 놓인 자그마한 천 주머니를 냄비에 퐁당 빠뜨렸고, 뒤를 이어 채를 썬 생강을 안에다가 잔뜩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덩어리져 있는 하얀 설탕을 넣은 뒤 휘휘 저었다.

         

       보글보글.

         

       물이 끓는 소리.

       생강이 익으면서 나는 향기.

       검게 변하면서 진하게 풍기는 커피의 내음까지.

         

       사람이 머무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던 건물의 최상층은 어느새 향긋한 음식 냄새로 가득 차올랐다.

         

       “와아, 이거 냄새 좋네요.”

         

       아나스타시아는 커피와 생강이 합쳐져서 나는 냄새가 마음에 드는 듯 눈을 반짝이며 냄비와 진성을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마치 이것을 언제 맛볼 수 있냐고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혹은 빨리 맛보게 해달라고 재촉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진성은 아나스타시아의 반응에 방긋 웃었고, 잠시 기다리라는 듯 손을 펼쳐서 제지했다.

         

       달칵.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진성은 휴대용 버너의 불을 꺼트린 뒤 냄비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촘촘하게 짜인 천으로 거름망을 만든 뒤 4개의 머그잔에 똑같은 양의 음료를 따른 뒤, 각자의 앞에다가 놓았다.

         

       “생강 커피입니다. 입맛에 맞으시면 좋겠군요.”

         

       진한 생강의 향기와 익숙한 커피의 냄새.

       그리고 그사이에 미미하게 있는 달콤한 냄새까지.

         

       4명에게 대접할 음료가 완성되었다.

         

       “어머, 잘 먹을게요.”

         

       “크, 크흠.”

         

       “헤어 박, 잘 먹겠습니다.”

         

       “와아!”

         

       4명은 생강과 커피라는 생소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음료수를 앞에 두고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컵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가장 먼저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아나스타시아였다.

       언제 커피가 완성될지 궁금해서 냄비와 진성을 번갈아 쳐다볼 정도로 기대하고 있던 아나스타시아는 망설임 없이 머그잔을 쥔 뒤 꼴깍꼴깍 음료수를 넘기기 시작했다.

       펄펄 끓던 커피를 막 옮긴 것이라 입이 델 정도로 뜨거웠지만, 아나스타시아는 넘치는 생명력을 이용해 뜨거움을 기합으로 견뎠다.

         

       그렇게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 아나스타시아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맛있네요!”

         

       아나스타시아가 감탄하며 맛있다고 하자, 그 옆에 있던 엘라는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더니 천천히 머그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마치 티타임을 하는 것처럼 우아한 자세로 입가에 가져다 댄 뒤, 작게 후-후- 불어서 펄펄 끓는 커피를 식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음료수를 입 안에 넣었다.

         

       품위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입 안으로 들어간 커피의 맛은….

         

       “어머.”

         

       딱 엘라의 입맛에 맞는 것이었다.

         

       진하지는 않지만 향긋하게 퍼져나가는 커피의 냄새. 그리고 그 커피와 함께 입 안을 가득 메우는 생강의 향과 끈적하게 혀에 들러붙는 단맛. 그리고 불쾌해지기 전에 다시 한번 들이닥치며 끈적하게 남는 미미한 달콤함 위에 덧칠하는 생강의 향기.

         

       “신기하네요….”

         

       처음 먹어보는 조합이지만 놀랍도록 엘라의 취향이었다.

       생강의 양부터 약간의 달콤함, 거기다가 엘라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딱 맞는 커피 원두까지.

         

       하나하나가 그녀를 저격해서 만들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으음…. 생강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물론 모두의 입맛에 맞을 수는 없는 법.

         

       다리를 꼰 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오딜리아는 생강의 향이 조금 더 강하고, 목을 매콤하게 자극하는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박진성에게 그런 불평을 늘어놓기에는 좀…. 눈치가 보였으니까.

         

       그녀는 불만을 삼킨 채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있는 아그네스는….

         

       “…이거.”

         

       기억을 자극하는 향과 맛에, 살짝 표정을 굳혔다.

         

       “…한국에서 즐겨 마시는 음료인가요?”

         

       진성은 아그네스의 물음에 방긋 웃었다.

         

       “아뇨.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음료입니다.”

         

       진성은 말했다.

         

       “탄자니아에서 즐겨 마시는 음료거든요.”

         

       탄자니아.

         

       그 단어가 진성의 입에서 나오자, 오딜리아를 제외한 세 사람이 반응을 보였다.

       아그네스는 무언가 떠올리기라도 하듯 눈동자가 움직였고, 엘라는 조금 놀란 듯 눈이 커졌으며, 아나스타시아는 흥미롭다는 듯 음료와 박진성을 바라보았다.

         

       “탄자니아….”

         

       “네. 매력적인 나라죠. 다만 안타까운 것은 치안이 좋지 않고, 위험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겠네요.”

         

       진성은 엘라와 아나스타시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특히 프라우 빈터와 프라우 렌츠같이, 눈처럼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루비를 떠올리게 하는 눈동자를 가진 분들이 가기에는 더더욱 말입니다.”

         

       “…”

         

       아그네스는 진성의 말에 놀랐는지 눈이 조금 커졌다.

         

       하얀 머리카락.

       붉은 눈.

         

       알비노, 혹은 백색증(Albinism)이라고 불리는 선천적 유전 질환 환자들의 대표적인 특징.

         

       “위험한 곳에 가는 것은 용감한 모험가나 개척자들에게 맡겨야 하는 것. 두 분은 그런 위험한 곳을 피하는 것이 옳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진성은 엘라와 아나스타시아, 둘과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답을 구하는 것처럼, 하지만 오직 ‘동의’만을 강요하는 뜻을 담아서.

         

       “네? 네에….”

         

       엘라는 그런 진성의 의도에 너무나도 쉽게 따라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아나스타시아는 잠시 고민했지만, 진성과 약 3초간 눈을 마주친 뒤에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배시시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용.”

         

       두 사람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진성은 방긋 웃었다.

         

       “모험하는 이에겐 용감함이 미덕이고, 개척하는 이들에게는 용맹함이 필요한 법이지요. 하지만 그 둘에게 미덕이라고 모두가 미덕일 수는 없는 법. 일반적으로는 위험한 곳은 피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특히나 그 위험한 곳에 가는 이유가 전장으로 향하는 군인과 같은 사명을 띤 것도 아니고, 단순히 여행이 목적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달그락.

         

       “그렇기에 탄자니아는…음. 안타깝지만 프라우 빈터와 프라우 렌츠와는 긴 시간 동안…. 어쩌면 평생 연이 없을 만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나라는 두 분께는 너무나 위험한 곳이니까요. 어쩌면 맹수들이 가득한 정글보다도 더더욱, 말입니다.”

         

       진성은 냄비의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하지만 또 영영 가지 못한다고 하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법이지요. 그렇기에 두 분을 위해 이 음료수를 준비했습니다. 탄자니아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기를 빌면서 말입니다.”

         

       환한 미소.

       호선을 그리며 휘어지는 눈.

       신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태도.

       귀에 달콤하게 들어오는 친절한 말투.

         

       “어찌, 만족스러우신지요?”

         

       “네? 네에….”

         

       “넹!”

         

       “그럼 다행입니다.”

         

       진성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탄자니아에 가지 않겠다는 언질을 들었고, 둘의 머릿속에 ‘위험하니까 가지 않는 것이 좋은 나라.’라는 감상을 각인시켰다. 게다가 그녀들이 혹시나 가지게 될 관심 역시 조금 특이하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딱히 엄청나게 이국적이라던가, 현지에 직접 가서 체험해봐야겠다는 욕망이 들지 않을 수준의 하찮으면서도 일상적인 음료를 통해 낮추는 데 성공했고.

         

       참으로 교묘한 수법이었다.

         

       ‘설마….’

         

       그리고 이런 진성의 수작을 눈치챈 아그네스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품었다.

         

       혹시.

       혹시 저 세 사람이…탄자니아에 있을 때 겪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아샤랑 엘라는 모르겠지만….’

         

       의심.

       그래. 의심이다.

         

       아나스타시아와 엘라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을지는 모른다.

       그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문제일 것 같다.

         

       하지만…박진성은.

       저 순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저 남자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저 박진성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뭔가를 알고 말하는 것 같다.

         

       특히나 저 청년이 주술사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저 남자가 한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그네스는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 것일까?

         

       엘라와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고 있던 진성의 고개가 슬쩍 돌아갔다.

         

       그리고 마주치는 시선.

         

       방긋.

         

       진성은 아그네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자 방긋 웃었다.

       경계심을 절로 낮출 것만 같은, 순진무구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을 받고도 아그네스의 경계심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의미심장한 박진성의 말을 생각해본다면….

       엘라와 아나스타시아의 과거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말을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무언가 불길한 미래를 암시라도 하는 것처럼, 경고라도 하는 것처럼 가지 않겠다고 동의까지 구했던 그 모습을 생각해본다면.

         

       저 웃음 뒤에는 무언가가 있는 듯 보였다.

         

       그것은 신비로운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옛적 마녀들의 이미지에 따라오던, 불길한 무언가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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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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