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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아르의 말랑한 젤리를 연신 주물거렸다. 

       

       ‘저런 얼굴로 자꾸 의미심장한 말을 하니까 농담이 농담 같지가 않잖아.’

       

       그나마 아르를 안은 채 귀여운 뀨우 소리를 듣고 있으니 좀 진정이 되긴 하는데….

       

       ‘진짜 아르 아니었으면 엊저녁부터 홀랑 넘어갔을지도 몰라.’

       

       빙의 전, 숱한 소설을 보고 게임을 해 왔지만 항상 스토리 진행 중 이해가 안 되는 등장인물의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미인계에 넘어가는 것이었다. 

       

       도대체 예쁘면 얼마나 예쁘다고 자꾸 뻔한 미인계에 홀라당 넘어가서 일을 그르치는 건지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게 직접 당해 보니까 다르네. 달라.’

       

       눈앞에서 이상형에 완전히 부합하는 외모를 가진 여자가 날 빤히 바라보고 웃으며 ‘제 스타일이셔서요’ 같은 말을 하니 평정심을 유지하려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정신 차려라, 레온. 건실한 청년답게 이런 거에 흔들리지 말고. 지금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아르야. 그리고 새로 알아낸 정보가 무려 두 개나 있잖아.’

       

       바로 그녀의 이름이 실비아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4성의 검사라는 것. 

       

       ‘자, 생각해 보자. 실비아라는 이름을 가진 금발 녹안의 4성 검사…. 금발 녹안의 검사….’

       

       나는 새롭게 추가된 정보를 내 머릿속 「레키온 사가」 지식과 대조해 보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실비아라는 이름도 흔한 편이라 좀 빡세긴 한데.’

       

       하지만, 거기에 ‘아르가 드래곤임을 단번에 알아볼 정도의 인물’ 혹은 ‘드래곤이라고 의심할 정도의 인물’이라는 필터를 넣어 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물론 실비아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드래곤이라고 한 건 농담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아직 못 믿겠어.’

       

       어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의심스러웠는데, 이렇게 다음날 공교롭게도 같은 호위 임무를 맡아 함께 출발한다? 

       

       ‘나와 아르를 만난 이후 마침 바로 온천에서 나가 마이어 씨가 의뢰 공고를 내자마자 자신의 실력에 맞지 않음에도 바로 수주를 하고, 심지어 마이어 씨의 납품까지 도와 다음날 바로 출발하도록 해서 내가 도주하거나 대책을 세울 시간조차 없어졌는데, 이게 전부 우연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물론 내가 그렘 마을에서 히파르까지 볼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호위를 맡은 것처럼, 실비아도 캐머해릴에 볼 일이 있어서 그랬다고 하면 할 말은 없긴 한데….

       

       ‘그래서 슬쩍 떠 보려고 질문도 던져 봤는데 또 농담 역공이나 맞아 버렸고.’

       

       근데 드래곤이라고 한 게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으면, 내가 자기 스타일이라고 한 것도 혹시 진담….

       

       ‘아니, 자꾸 무슨 생각을.’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쀼우?”

       “아, 아냐. 아르야, 간식 먹을까?”

       “쀼웃!”

       

       간식이라는 말에 아르의 눈이 빛났다. 

       

       “잠깐만 기다려 봐, 온천에서 사 온 게….”

       

       온천 내부의 기념품 및 선물용 간식을 파는 가게에서 잘 포장된 간식을 잔뜩 쟁여 온 내가 가방에 손을 넣는 순간.

       

       “레온 님! 꺼내실 필요 없습니다. 이것부터 우리 아르에게 줘 보시지요.”

       

       마차 좌석 구석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던 마이어 씨가 내 말을 들었는지 재빨리 나를 제지하며 자신의 가방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이건….”

       

       마이어 씨가 상자를 뜯고 내용물을 꺼내자, 나와 아르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허허, 이건 이번 납품 품목은 아니었습니다만…. 납품하는 가게 중 하나에서 파는, 품질과 인기가 보장된 상품이라 아르도 줄 겸 직접 구매해 왔지요.”

       

       상자 안에서 나온 건 아주 먹음직스러운 조각 케이크였다. 

       

       ‘그것도 티라미수 조각 케이크잖아!’

       

       꿀꺽.

       

       빵 위에 모카 버터 크림 층을 얹고, 그 위에 다시 얇은 빵 층을 얹기를 반복하고 마지막 위에 초코와 커피가 섞인 가루를 뿌려 마무리한 고급 티라미수 케이크였다. 

       

       ‘심지어 가운데 즈음에는 모카 버터 크림과 카카오 크림을 섞이지 않게 번갈아 쌓아서 보기에도 좋고 먹을 때도 카카오의 풍미가 싸악 파고들 것 같아.’

       

       진짜 히파르에는 무슨 디저트 만드는 장인들만 모였나?

       

       아니, 정확히는 마이어 씨나 월튼 씨가 납품 계약을 맺은 가게들의 디저트 퀄리티가 좋은 거지만….

       

       ‘근데 사실 그렘 마을 야시장에서 먹은 것들도 이런 초고급 퀄리티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먹던 것들에 비해 절대 맛없다는 느낌은 아니었지.’

       

       그러고 보면 이렇게 과학 및 첨단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세계에서도 이런 퀄리티 높은 음식들이 많다는 게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아닌가? 오히려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먹을 거 만드는 데에 집중을 할 수 있었던 건가?’

       

       게임도 없고, 넷플렉스도 없고, 뉴튜브도 없는 시대에서 결국 가장 즐거운 오락이란 식도락이 아니겠는가.

       

       ‘뭐, 아무튼.’

       

       하루아침에 21세기 첨단 IT강국 대한민국에서 검과 마법의 판타지 세계로 떨어진 나에게 이렇게 먹는 즐거움이라도 충만하게 즐길 수 있다는 건 꽤나 감사한 일이었다. 

       

       “뀨우…!”

       

       츄릅.

       

       먹음직스런 케이크를 보자마자 입에 고인 침을 한 번 삼킨 아르는 간절한 눈빛으로 케이크를 향해 짧뚱한 팔을 뻗었다. 

       

       “응. 금방 잘라 줄게, 아르야.”

       

       나는 마이어 씨에게 케이크와 작은 포크를 받아, 포크로 티라미수 케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포크의 옆면으로 지그시 누르는 것만으로도 케이크는 마치 푸딩을 가르는 것처럼 부드럽게 잘라졌고.

       

       나는 그것을 포크로 조심스레 찍어 아르의 입에 넣어 주었다. 

       

       “뀨웁.”

       

       입을 벌려 냉큼 케이크 조각을 받아 먹은 아르의 입이, 일순 동영상을 정지한 것처럼 멈추었다. 

       

       “왜 그래, 아르야?”

       

       생각보다 맛이 없었나? 아니면 혹시 커피 불호파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쀼우웃!”

       

       부드럽고 달콤한 케이크를 꿀꺽 넘긴 아르의 코에서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아르는 더 달라는 듯 나와 케이크를 반짝이는 눈으로 번갈아 바라보았고.

       

       “그래, 그래. 맘에 들었구나. 자, 아아.”

       “뀨웁!”

       

       안심한 나는 아르에게 케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입에 넣어 주며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우리 아르가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어할 줄은 몰랐는데, 사 온 보람이 있군요.”

       

       마이어 씨 역시 아르가 말랑한 앞발을 허공에서 잼잼 하듯 쥐며 아기새가 모이를 받아 먹듯 케이크 조각을 받아 먹는 모습을 보고는 거의 광대까지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지 못했다.

       

       “먹는 모습만 봐도 정말 귀엽네요.”

       

       꽤나 기본기가 뛰어난 검사인 듯,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자세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로 이쪽을 바라보던 실비아도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 그러고 보니 이거 실례했군요. 레온 님과 실비아 님도 어서 하나씩 드셔 보십시오.”

       “엇, 감사합니다.”

       “실례라니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아르가 케이크를 다 먹자 마치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정신을 차린 마이어 씨는 나와 실비아에게도 티라미수 케이크를 하나씩 내밀었다. 

       

       솔직히 아르에게 케이크를 먹여 주는 동안 한 입 정도는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재빨리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고.

       

       “와….”

       

       생각했던 그대로의 맛, 아니 그보다 더 깊은 맛에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씹기도 전에 혀를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사르르 녹아 내리며 진한 커피 향과 함께 버터 크림 특유의 꾸덕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게다가 아까의 예상대로 중간에 얇게 세팅된 초코 크림이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모카 버터 크림의 맛을 적절하게 잡아 주었고.

       

       지나치게 입에서 사르르 녹아 식감 자체가 없어지는 걸 막아 주는, 폭신폭신한 빵 층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케이크라고 할 수 있었다. 

       

       평소에 아무리 맛있어도 급하게 먹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이미 다음 조각을 포크로 잘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으음…! 정말 맛있네요. 먹어 본 케이크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 같아요.”

       

       실비아 역시 케이크를 한 입 먹어 보더니 한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와….’

       

       그 사람 홀리는 미소를 본 나는 다시 한번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냐, 자꾸 홀리면 안 돼. 그보다 빨리 저 실비아란 사람의 정체를 알아내야 하는데…. 진짜 조건이 딱 맞는 사람이 아무도 생각이 안 나네. 진짜 그나마 외형이랑 직업이 맞는 사람이 한 명 떠오르긴 했는데….’

       

       「레키온 사가」에서 주인공이 아닌 랜덤 가챠 캐릭터 플레이를 하며, 재능 없는 캐릭터로 혼자 스토리 중후반부까지 살아남는 챌린지를 하던 시절.

       

       대륙 북부의 숲에서 혼자 마물을 잡으며 레벨링을 하다가, 하필이면 현재 레벨에서 절대 잡을 수 없는 고등급 마물을 만나 버렸던 적이 있었다. 

       

       컨트롤로 극복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이건 그냥 운이 너무 없다고, 아깝지만 새로운 캐릭터 키울 준비나 하자고 생각하던 찰나. 

       

       ‘금발 녹안의 검사 하나가 나타나서 혼자 마물을 썰어 버리고 날 구해준 적이 있었지.’

       

       당시에 레키온 사가의 그 구진 그래픽을 뚫고도 예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캐릭터 디자인을 가지고 있어서 기억하고 있던 검사 캐릭터.

       

       하지만.

       

       ‘이 사람이 그 사람일 리는 없어.’

       

       왜냐하면, 일단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숲에 거주하는 종족인 ‘엘프’였기 때문이고. 

       

       ‘당시 마물을 썰었던 실력으로 볼 때 최소 8성의 검사였으니까.’

       

       엘프족이 종종 뾰족한 귀를 마법으로 감추고 숲 바깥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엘프는 비밀스러운 종족이라 인간이 접하기가 쉽지 않고, 나아가 인간이 우글거리는 히파르 온천 같은 곳에 들어올 리는 더더욱 없다. 

       

       ‘그때 날 구해 줬던 엘프도 ‘이런 위험한 곳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지.’

       

       그 뒤로 해당 캐릭터로는커녕 다른 캐릭터로도 그 엘프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일단 추가적인 단서가 나올 때까진 최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겠어. 냠. 이거 근데 진짜 맛있네.’

       

       티라미수 케이크가 어찌나 술술 들어가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나는 마지막 조각을 다 먹고 빈 접시에 포크질을 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으로 접시를 내려놓으려던 그때.

       

       “레온 씨, 아아 해 보세요.”

       “네? 아아….”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나는 별 생각 없이 입을 벌렸고. 

       곧바로 입 안에 들어온 티라미수 케이크를 자연스럽게 받아 먹었다. 

       

       “맛있어요?”

       “…….”

       

       그리고 잠시 후, 어느새 내 옆에 실비아가 붙어 앉아 있음을 깨달은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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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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