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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내 말을 들은 프란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조용히 프란체를 응시했다. 마치 숨겨왔던 비밀은 다 말했다는 것처럼. 덕분에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거짓말이지…?”

         

       이내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내 손을 붙잡는다. 부정의 단계인가.

         

       “허…….”

         

       허탈한 숨을 내뱉는 프란체. 착잡한 얼굴로 테이블을 바라보더니 뭔가 깨달았다는 듯 다시 나를 올려봤다.

         

       “설마 전부터 자주 느끼던 두통과 관계가 있니?”

       “…맞습니다.”

       “치료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거야?”

         

       유일한 방법은 너에게서 벗어나는 건데. 이걸 말하면 상처받겠지.

         

       “치료는 불가능합니다만, 때를 늦출 수는 있습니다.”

       “그럼 지금 사업이나 할 때가 아니잖아…!”

         

       후. 협상 얘기하다가 좀 이상해졌는데. 일단 어떻게든 이 불편한 분위기를 돌려야 한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카자르가 있으니까요.”

       “그 마법사가 도움이 되는 거니?”

       “네. 마법으로 병세를 늦출 수 있습니다.”

         

       거짓말은 새로운 거짓말을 만든다.

         

       나는 지금 시작을 알리는 거짓말을 했고, 이 거짓말로 인해 끝도 없는 거짓이 만들어질 거다. 원래도 내 정체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해왔다만, 지금 한 거짓말은 기존에 했던 것과는 다르다.

       

       명백하게 목적이 다르니까.

         

       ‘…일시적으로 안심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거짓말.’

         

       내가 생각하는 가장 잔혹한 거짓말. 보이지 않는 희망을 만들어내 안심시키는 것.

       

       기만에 가까운 거짓말.

         

       나는 복잡한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여기서는 괜한 걱정은 하지 않도록 최대한 가볍게 넘어가는 게 좋겠지.

         

       “마법으로 보조만 한다면 소드 마스터의 생명력을 바탕으로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시한부도 소드 마스터 기준이지요.”

         

       하아, 프란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 거였으면 진작 말하렴. 놀라서 심장이 달아나는 줄 알았잖니.”

         

       프란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정시킨 듯 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살 수 있는데 왜 곁에 있겠다는 말은 안 하는 거니? 왜 떠나지 않겠다고는 말하지 않는 거니?”

         

       걱정이 가득한 프란체에게 옅은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모종의 이유로 상황이 바뀔지도 모르니까요. 괜히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어린 시절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게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으니까. 허울뿐인 말이었으니까.

         

       “그래. 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런 거니 이번은 넘어갈게. 하지만 다음부터는 내게 숨기는 게 없도록 해.”

         

       내게 숨겨진 비밀이 몇 개인 줄 알고? 하지만 여기서 해야 할 답은 정해져 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이 또한 거짓말이지만.

         

       “그런데 병이 어떻게 되길래 그렇게 된 거니? 전쟁과 관련이 있니?”

       “예. 제국과의 전쟁에서 마법사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이 네게서 많은 걸 빼앗았구나. 괜히 내가 미안해지네.”

         

       이 공녀님은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하네.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진짜 진 바렌베르크도 아니고. 무엇보다 공작가에서 핍박받는 공녀가 뭘 할 수 있겠나.

         

       “이젠 아무 생각 없습니다. 지나간 일에 얽매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요.”

         

       프란체가 피식 웃었다.

         

       “좋은 말이구나.”

       “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이제야 분위기가 좀 살아났다. 싸늘해진 공기 속에서 냉기를 삼키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나는 이때다 싶어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수업으로 돌아갈까요?”

       “그래, 중간에 다른 길로 빠져버렸네.”

         

       나는 프란체에게 협상에 관해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진지한 얼굴로 조용히 필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의 이론 수업이 끝났다.

         

       “예습으로 한 번만 해보면 안 되니?”

       “예습이요?”

       “그래. 무작정 실전으로 들어가면 좀 떨릴 거 같아서.”

         

       예습이라. 하긴, 면접도 연습이 있는데 협상이라고 다를 게 있나.

         

       “그럼 예습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 *

         

         

       이튿날. 드디어 도게자 백작과 만나는 날.

         

       나와 프란체는 셀다스가 알려준 찻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잘 할 수 있을까?”

       “걱정 마세요. 예습했던 대로만 하면 됩니다.”

       “후우. 엄청 긴장되네.”

         

       스읍, 하. 반복하며 심호흡하는 프란체. 괜히 저런 모습을 보니 나까지 긴장된다.

         

       ‘잘되어야 할 텐데.’

         

       도게자 백작의 상단은 우리 사업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가진 상단의 인력은 평범한 인력이 아니다. 몸을 쓰는 일이 익숙하고, 직업이 직업인지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예측이긴 한데,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법이지.’

         

       대학교가 종강을 하고, 나는 급전을 벌기 위해 다녀온 곳이 있었다. 소위 말해서 ‘노가다’라고 불리는 현장. 그때도 기가 막히게 일 잘하는 아저씨들이 있었는데 이 세계라고 해서 다를 거 없겠지.

         

       참고로 나는 거기서 얼만 존나 타다가 ‘이 새끼 똘개이가?’ 소리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딸랑- 찻집의 문이 열리며 어떤 한 남성이 들어왔다.

         

       원형탈모. 빛이 반사되어 광택이 나는 대머리가 특징.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젊은 남자.

         

       새하얀 정장을 입고 왔는데,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인해 터질 듯한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저 나이에 대머리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저쪽 분들입니다.

       ―안내 고맙네.

         

       셀다스의 암흑 길드원이 도게자 백작을 우리에게로 안내했다.

         

       “그럼.”

         

       할 일만 하고 떠나는 암흑 길드원. 그가 나가자 도게자 백작이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아르몸 도게자라고 합니다. 인력소를 운영 중이지요.”

       “데카르트 공작가의 공녀, 프란체 데카르트예요.”

         

       본인의 입으로 이름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크흡, 거리는 소리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게자 백작은 나를 힐끗 쳐다보곤 관심을 끄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제가 듣기론 사업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으시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아요. 제가 이번에 사업을 하나 하는데, 인력이 필요한 일이라서요.”

       “아아- 그러십니까? 저희가 또 인력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곧바로 나오는 자기 어필. 과연 프란체는 내가 알려준 대로 협상을 진행할 것인가.

         

       “백작님의 상단에 대해선 익히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 백작님과 같이 사업을 하고 싶은 것이고요.”

         

       일단 시작은 좋아.

         

       “제국에 난다, 긴다 하는 수많은 인력소가 있지만, 백작님의 인력소가 가장 특별하지요? 그래서 앞으로 있을 사업을 생각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요.”

         

       귀족의 화법으로 해석하자면, 저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굳이 네가 아니어도 사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를 존중해 우리와 함께할 기회를 주겠다. 이 정도.

         

       “하하,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공녀님과 사업을 같이 할 기회가 있어 영광입니다만, 그것이…….”

         

       백작은 곤란한 얼굴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공녀님께서는 이번이 첫 사업 아니십니까? 저희가 다른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투자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습니다.”

         

       저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줄이야. 맞는 말이긴 하다. 저들에게도 예약이 있다. 그런데 그걸 캔슬하고 이쪽에 투자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

         

       “그런가요? 이번 사업이 끝나면 앞으로 인력을 이용할 대규모 사업들이 남아있었는데. 믿지 못하시는 거면 아쉽게 됐군요.”

         

       오, 굉장히 잘 말했다. 어제 가르쳤던 협상술이 잘 들어가고 있군. 그 결과로 백작의 호기심을 끌었다.

         

       “대규모 사업이시라면, 어느 정도나…?”

         

       힐끔. 프란체가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자세한 사업 내용은 말 안 해줬지. 나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프란체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지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백작에게 말했다.

         

       “이 제국에서 가장 거대한 탑을 세울 거예요. 그 탑이 만들어지면 제국의 상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거고요.”

         

       프란체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 그 탑이 견고하게 완성이 되어 제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거야, 난생처음 보는 건물이니 누가 건설했는지 궁금하겠지요.”

         

       도게자 백작이 아!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제게 주신다는 겁니까?”

       “그래요. 그 탑만 완성된다면 도게자 백작가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겠지요?”

         

       여기까진 좋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우리와 함께하면 상대방이 얻는 이득, 우리의 포부, 사업 내용까지. 나머지는 ‘우리를 믿을 수 있느냐’다.

         

       도게자 백작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목표가 큰 건 좋지만, 그에 대한 신뢰성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건 이번 사업으로 증명할 겁니다. 의류점 프리다를 이길 거니까요.”

       “의류점 프리다를요? 설마, 의복 사업을 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의류점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참에 백작님과 연도 만들 겸 의뢰하는 거예요.”

         

       도게자 백작이 다시 한번 고민에 잠겼다.

         

       “좋습니다. 결정했습니다. 공녀님의 의뢰를 받아보죠.”

         

       백작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만, 저희가 지금 예약이 가득 차 있는 탓에 돈이 좀 많이 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손해를 보는 만큼 따가겠다는 건가. 어차피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라서 많은 돈이 들어가진 않을 텐데. 프란체가 말했다.

         

       “음. 정가로 해주시지요.”

       “예…?”

       “정가로 해주세요.”

       “그건 좀…….”

         

       프란체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이번에는 그저 인연을 만들려고 의뢰를 드린 건데, 다른 인력소를 이용하는 수밖에요. 그럼 그쪽에 탑 건설권도 넘겨야…….”

         

       백작이 손사레를 쳤다.

         

       “아닙니다! 정가로 해드리지요. 대신 계약 하나만 해주십시오.”

       “무슨 계약을 말씀하시는지요?”

       “탑 건설 계획이 이행되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으셔야 합니다.”

         

       음. 보험은 들어두겠다는 건가.

         

       “좋습니다. 백작님의 말씀대로 계약하죠. 다만, 이쪽에서도 요구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계약이 이행되면 탑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을 3할 정도 깎아주세요.”

       “예…?!”

         

       한순간에 얼빠진 표정이 된 백작. 프란체가 이렇게 협상을 잘 할 줄이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어떻게든 이득을 보려고 하고 있다.

         

       촤락! 프란체가 부채를 펼치며 입가를 가렸다. 눈살이 호선을 그렸다.

         

       “백작님께서 그런 계약을 요구하시는 이유가 저를 못 믿으셔서 그런 게 아닌지요?”

       “마, 맞습니다…….”

       “그럼 약속을 이행하면 이쪽에도 돌아오는 게 있어야지요.”

         

       백작이 말없이 계속 곤란한 표정만 짓자 프란체는 말을 이었다.

         

       “사업 한두 번 하시는 것도 아니고, 뭐가 그리 고민이세요? 보는 눈이 남다를 거라 생각했는데요.”

         

       결정타까지 날려버렸다.

         

       “…좋습니다. 바로 계약서를 쓰시지요.”

         

       백작과 프란체가 계약서를 썼다. 계약이 이행되지 않을 시 위약금을 지불 해야 하고, 이행되면 도게자 백작 상단에서 비용의 3할을 깎아주기로.

         

       이 정도면 성공적이다.

         

       “그럼 얘기는 끝났으니 이번에 맡길 의뢰를 말씀드릴게요.”

         

       프란체는 도게자 백작에게 이번에 필요한 일을 설명했다. 건물을 보수해야 하고, 외형 개조와 내부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 재료는 이쪽에서 준비할 거고, 인력만 빌려주면 된다는 것.

         

       건물 크기가 크기인 만큼 인력이 꽤 들어갈 거다.

         

       “알겠습니다. 작업은 언제 시작하시는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군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럼 최대한 빠르게 준비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지요.”

         

       그렇게 계약이 끝나고. 도게자 백작은 가볍게 인사한 뒤 찻집을 나갔다. 프란체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내게 물었다.

         

       “어땠니? 괜찮았니?”

       “정말 잘하셨어요.”

         

       나는 손뼉을 마주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처음 하시는 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잘하셨습니다. 앞으로 일이 편해지겠군요.”

       “그러니? 일단 생각나는 대로 하긴 했는데, 다행이구나.”

         

       역시 배우는 게 빠르다. 이러면 가르칠 맛이 나지.

         

       내가 떠나기 전에 프란체에게 가르칠 게 정말 많다.

         

       경영, 정치, 마법, 등등.

         

       내 손에 의해서 프란체는 완벽한 사람이 될 거다.

         

       ‘그때가 되면 나는 곁에 없겠지만.’

         

       앞으로 정말 많은 게 달라질 거다.

         

       프란체도, 이 제국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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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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