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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인간들의 도시라는 것은, 사실 나에겐 그렇게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전생의 기억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기도 하지만, 내가 지나쳐왔던 수많은 차원들에 존재한 인간들의 도시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차원마다 인간들의 도시는 다양했다.

        판타지라고 칭할 수 있는 도시도 존재했고, 석기시대의 원시 도시라고 칭할 만한 곳도 존재했고, 우주 정거장에 존재하는 도시도 존재했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지금 내가 머무는, ’21세기 인간 도시’라고 칭할 만한 곳도 많이 구경했다.

       

        “특별한 것은 없구나.”

       

        “…….”

       

        내 말에, 내 앞자리에 타고 있던 정장 입은 인간 남자가 조용히 침묵했다.

       

        그렇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나는, 이번 기회에 인간들의 도시를 구경해 보자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헌터 협회에서 보내준 사람의 안내에 따라, 리무진이라는 차를 타고 서울 시내에 들어선 참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혼자서 몰래 나가 볼까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방송으로 얼굴이 잘 알려진 상태였다.

        물론 얼굴이 알려졌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나를 알아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생물답지 않게, 뜻밖에 타인에게 무관심한 동물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일반적인 인간과는 조금 이질적이고, 행동 역시 이질적이다.

        결국 빠르든 늦든, 내 정체는 인간들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을 터.

       

        그래서 그 과정에서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보다는, 그냥 빠르게 인간 쪽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것이 헌터 협회의 인간이 내 옆에 있는 이유이며, 내가 인간들의 자동차를 타고 서울 시내에 들어서고 있는 이유다.

       

        “특별히 구경하고 싶으신 곳이 있으십니까?”

       

        “흠.”

       

        오늘 일일 가이드 겸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된 헌터 협회의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선글라스라는 검은 안경으로 눈빛을 숨기려 했으나, 나는 검게 칠해진 렌즈 너머에서 덜덜 떨리는 인간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속으로는 떨고 있으나,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는구나.

        훌륭하군.

       

        “그저 구경하고 싶었을 뿐이란다. 딱히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

       

        “그렇다면 관광명소 위주로 스케줄을 짜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한 헌터 협회의 직원, 통칭 ‘가이드’는 귀에 끼워 넣은 기기를 통해 몇 가지를 전달했다.

        동시에 그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의 렌즈 위로 여러 그림이 떠오른다.

        호오…… 그냥 선글라스가 아니라 컴퓨터의 기능도 겸하고 있었던가?

       

        본체만큼의 성능은 아니지만, 아바타가 장착하는 눈 역시 보통의 눈은 아니다.

        약한 ‘마안(魔眼)’ 정도는 될까?

        덕분에 가이드의 선글라스에 떠오른 그림들을 볼 수 있었는데, 전부 서울 시내의 관광명소들을 표시한 지도였다.

       

        갑자기 부탁한 내 하루의 즐거움을 위해, 이렇게 성심성의껏 노력해 주다니.

        매우 대견한 인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버렸다.

       

        쓰담 쓰담.

       

        “???”

       

        당황한 얼굴로 내 쓰다듬을 받는 가이드.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흐뭇한 얼굴로 가이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이 서울 시내에서 가장 높았’었던’ 한 빌딩이었다.

       

        “지금은 ‘결계탑’에 그 자리를 내준,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인 ’63빌딩’입니다.”

       

        “호오.”

       

        63빌딩. 기억에 남는 건물이다.

        그야 전생의 나도 한국 사람이었고, 다른 차원에서도 63빌딩을 본 적이 있으니까.

        문득 호기심이 생겨 본체의 천룡안을 떠서 63빌딩을 살펴본다.

       

        “딱히 다를 것은 없구나.”

       

        “네? 뭔가 필요하신 것이 있으신지……?”

       

        “별건 아니란다. 그저,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차원의 한국에 존재했던 63빌딩과 큰 차이가 없어서 말이다.”

       

        “……네?”

       

        가이드가 입을 헤~ 벌리며 나를 바라본다.

        이해되지 않는 기색이기에, 나는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말을 풀어 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차원’이라는 개념은 매우 심오한 개념이란다.”

       

        일반적인 인간들은, 다른 차원이라고 하면 대체로 자신들이 있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생각하고는 한다.

        이를테면 판타지라던가, 무협이라던가, SF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이 ‘차원’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일까?

        같은 인간들이 존재하는 것?

        아니면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지구가 존재하는 것?

       

        나는 그것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딱히 본격적인 연구를 해 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차원을 돌아다닌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본다면…….

       

        “차원이라는 것은, 일종의 ‘평행세계’라고 할 수 있단다.”

       

        A라는 사람이 그날 아침 식사로 밥을 먹을지, 혹은 빵을 먹을지 고민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 A라는 사람이 밥을 먹은 경우가 존재할 것이고, 빵을 먹은 경우가 존재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 먹은 경우가 생길 수도 있겠고, 갑자기 탈이 나서 둘 다 못 먹게 된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기에, 하나의 선택 이후엔 다른 선택으로 되돌릴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분기하게 된 각각의 미래를, 인간들은 평행세계라고 부른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다른 차원이기도 하지.”

       

        인간들은 이것을 ‘멀티 버스’라고도 부르던가?

        아무튼, 그런 개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차원의 개수는 무한하고, 모든 차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탄생이 존재한다.

        즉, 모든 차원은 그 뿌리가 같다.

        다만 그 근원에서 서로 너무 멀리 떨어졌을 뿐.

       

        “이를테면, 너희들이 판타지나 무협이라고 부르는 차원은 이곳과 대략 30%~50% 정도의 유사성을 보유하고 있지.”

       

        유사성이 5% 이하인 곳은…… 말할 필요는 없겠지.

        아예 ‘생명체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의 지구’였으니까.

        끊임없이 마그마가 들끓고, 메탄과 황산으로 이루어진 대기가 휘몰아치던 그 차원을 떠올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반대로, 이곳과 90% 이상의 유사성을 보유한 차원 역시 존재한단다.”

       

        다른 차원과 교차점이 생겨 버린 이곳과는 달리, 아예 ‘마법’과 ‘초상 능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지구.

        뒷세계에서 괴물과 고대 주술이 몰래 숨어 있던 지구.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한 경우의 지구.

        그 외의 기타 등등…….

       

        나는 그런 지구들 역시 방문했으며, 때때로 그곳의 63빌딩을 구경해 본 적도 있다.

        당연히 그 차원의 사정에 따라 다르기는 했으나, 대체로 이곳의 63빌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신기하군요.”

       

        “재미있었다면 다행이로구나.”

       

        이 이야기도 나중에 방송에서 풀어볼까?

        그렇게 고민하는 와중, 미리 63빌딩에 들어가서 다른 인간들을 통제하던 헌터 협회의 직원이 나와 우리의 앞으로 다가왔다.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그래.”

       

        양옆으로 물러선 인간들과, 그런 인간들을 막고 있는 헌터 협회의 인간들.

        영문도 모르고 63빌딩에서 물러서게 된 인간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귀빈이라도 방문했나?”

       

        “뉴스에서 무슨 소식 들려온 것 없어?”

       

        “어라? 저 여자아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그러곤 이내 나를 알아본 것인지, 인간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내 방송명을 부르는 이들부터, 내가 귀엽다고 환호하는 사람.

        심지어 나보고 우유빛깔 같다고 부르는 이들까지.

       

        “참으로 활기찬 이들이로구나.”

       

        “하하하…….”

       

        내 감상에 가이드가 어색한 목소리로 웃는다.

        느긋하게 승강기에 탑승하고, 이내 우리는 63빌딩의 위에 존재하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저를 불러 주시면 됩니다.”

       

        “그래.”

       

        나 혼자 놀라는 것인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는 가이드.

        그런 그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며, 나는 천천히 전망대의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서울 시내의 전경.

        일반적인 인간들이라면 좋아할지도 모르겠으나, 기본적으로 성층권 위아래에서 날아다니는 나로서는 평범한 풍경에 불과했다.

        오히려 나에게는 조금 낮은 높이 같달까?

       

        하지만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간과 같은 눈높이에서 보는 느낌이었으니까.

       

        ‘이렇게 구경하는 재미도 좋구나.’

       

        바람을 맞아가며 내려다보는 감각이 아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실내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라.

        우주 공간이 아닌, 행성 내에서 이런 기분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

        아마 인간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이런 것이 뭐가 재미있냐고 하겠지?

        후후후후…….

       

        다른 이들 하나 없는 공간에서 전망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길 잠시.

        충분히 즐겼다고 판단한 나는 빌딩을 나섰다.

       

        “꺅!”

       

        “나왔다!”

       

        “여기 봐주세요!”

       

        “귀엽다!”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에 막힌 인간들이, 나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저들에게 나는 무시무시한 몬스터일 텐데 겁이 나지 않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나에게 닿기 위해 환호성을 지르는 인간들을 지나쳐 리무진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다음에 도착한 곳은, 거대한 목제 건물들이 늘어선 곳이었다.

       

        “경복궁에 오신 것은 환영합니다.”

       

        “호오.”

       

        과거 이곳을 지배했던 인간 지배층의 거주지인가?

        나의 눈이, 이곳에 서려 있던 시간의 기억을 더듬는다.

        비록 본체만큼 자세히 볼 수는 없으나, 아바타인 나의 눈으로도 그 흔적을 어렴풋이 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기억이 남아있다.

       

        잠시 경복궁의 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그러자 나를 기다렸다는 듯, 경복궁의 앞에 선 인간들이 천천히 나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야무지게 서울 관광중이신 드래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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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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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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