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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다, 당장 내놓아라!”

       

       주머니 속의 종이가 사라졌다. 

       

       올리비아가 마력의 이질적인 흐름을 눈치챘을 땐, 종이는 이미 멜리나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굳이 그것을 뺏으려 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지켜보았다.

       

       “…….”

       

       멜리나는 서둘러 내용을 확인했다. 그녀는 쉴새없이 종이와 허공을 번갈아 살피며 무언가를 끄적여 나갔다. 허공에 그려진 황금빛 수식들이 점차 늘어났다. 수식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황금빛은 점점 밝아져, 마치 등대처럼 주변을 밝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멜리나의 손이 뚝 멈췄다.

       

       그녀에게 허락된 지식은, 거기까지였다.

       

       “더…….”

       

       멜리나가 말을 하다 멈췄다. 목이 탔다.

       

       “조금만 더 보여다오. 이, 이걸로는 부족하다. 드디어 볼 수 있다. 조금만 더 하면 볼 수 있는데…….”

       

       황금빛 눈동자가 미친듯이 떨렸다.

       

       “네가, 아니. 당신이 어떻게 이것을 아시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누구신지도 묻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그러니까 제발……. ”

       

       “조금만, 조금만 더 보여주세요.”

       

       멜리나의 손이 떨렸다. 자세는 더 낮아졌다. 그녀는 진리를 알 수만 있다면, 수습 마법사에게도 얼마든지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젠 아예 머리가 땅에 닿을 기색이었다.

       

       소녀의 탈을 둘러쓴 악마? 아니, 악마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욕망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다른 모든 것을 제시할 수는 있을지언정 진리만큼은 제시할 수 없었다.

       

       만약 악마들이 진리를 보여줄 수 있었더라면,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타락했을 것이다.

       

       “제, 제발…….”

       

       터억.

       

       “일어나세요.”

       

       올리비아는 멜리나의 어깨를 붙잡고 그대로 일으켜 세웠다. 평소 일체의 접촉을 허락하지 않는 멜리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올리비아가 멜리나와 눈을 맞췄다. 키는 멜리나가 약간 더 컸다.

       

       “끙차, 됐다. 이제 좀 시야가 맞춰졌네요. 앞으로 저랑 대화하실땐, 고개 숙이지 마세요.”

       

       올리비아는 멜리나에게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었다. 멜리나가 이 미소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올리비아의 성향 정도는 유추할 수 있을것이다.

       

       “무, 무엇을 원하십니까? 뭐든지 다 하겠습니…….”

       “앞으로 존댓말도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하, 하지만…….”

       “부디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편해요.”

       “알겠, 알겠습니, 아니. 알겠다.”

       

       올리비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건이 있어요.”

       “그, 그래. 얼마든지 들어주겠다.”

       

       멜리나가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들어줄 기세였다. 그것이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내어줄 생각이었고, 줄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구해다 바칠 생각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어떻게든 구해서…….”

       “그만.”

       

       올리비아는 점점 내려가는 멜리나의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어깨도 펼치고, 허리도 쫙 세웠다.

       

       “평소대로 하세요. 표정도 기왕이면 웃는 편이 더 좋겠지만……. 그건 앞으로 천천히 바꿔보죠.”

       

       올리비아가 제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튼, 제 조건은 하나 뿐이에요. 절 당신의 제자로 받아주세요.”

       “어, 얼마든지 수락하겠다! 노예도 아니고, 제자가 되는 것 쯤이야 얼마든지…….”

       

       올리비아의 손을 잡으려던 멜리나가 멈칫했다.

       

       그리고 천천히, 올리비아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멜리나의 표정이 묘해졌다.

       

       “방금……. 뭐라고……?”

       “저를 제자로 받아달라고요.”

       

       멜리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치 ‘왜?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못해주세요?”

       “아, 아니! 당연히 해 줄 수 있다!”

       

       제자로 받아 달라는게 조롱의 의도이든, 노예처럼 부려먹겠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든 상관 없었다.

       

       뭐든 상관 없다.

       

       “그럼 지금 당장 제자로 삼아…….”

       “지금 말고, 조금만 있다가요.”

       

       굳이……?

       

       멜리나는 얼떨떨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비아는 지붕 끝에 걸터 앉았다. 그녀는 이리 와서 앉으라는 듯,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바깥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멜리나는 일단 시키는 대로 옆에 앉기는 했지만, 도무지 풍경에 집중할 수 없었다.

       

       ‘……왜지?’

       

       아무리 생각해도, 눈 앞의 소녀는 수습 마법사 따위가 아니다. 수백년 동안 살아온 자신도 감히 진리를 엿보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 편린조차도.

       

       하지만 눈 앞의 소녀는 달랐다.

       

       ‘닿아 있어.’

       

       비록 겉보기에는 자신보다 약할지언정, 그녀는 분명 진리에 닿아 있었다.

       

       폴리모프한 드래곤인가도 생각 해봤지만, 그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로드의 칭호를 획득한 드래곤들을 만나 본 적이 있었기에 안다. 그들은 분명 강했고, 마법 하나로 수십만을 죽일 능력이 있었지만, 진리에 닿을 만한 그릇은 아니었다.

       

       드래곤은 천성이 나태하고, 게을렀다. 인생의 대부분을 잠 따위에 할애하는 그들은 애초에 목적의식이라는 것이 없는 종족이었다. 당연히 진리를 보겠다는 의지 또한 없었다.

       

       악마도, 드래곤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건 인간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했다. 재능이 뛰어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진리는 고작 하루이틀 살아온 이에게 허락될 정도로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니. 높은 확률로 눈 앞의 소녀는 소녀가 아닐 것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현자 중 한 명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남는 가능성은 그것뿐.

       

       그러면 다시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힘들게 얻은 깨달음을, 왜 생판 남인 자신에게 알려주는가?

       

       멜리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멜리나가 감히 질문하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던 순간,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있다가 제가 여기로 올라올거에요.”

       

       언제부터였을까, 올리비아는 옥상으로 올라오는 사다리 근처에 있었다. 

       

       이미 올라와있는데 또 올라온다니. 멜리나는 올리비아의 말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숨겨진 의미라도 있는건가?’

       

       올리비아는 얼빵한 얼굴을 한 멜리나를 보고 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보란듯이 사다리에 발을 올렸다.

       

       “1층 갔다가 다시 올라올테니까,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 그래…….”

       “제가 방금 뭐랬죠?”

       “……고개 들고, 어깨 쫙 피라고?”

       “그래요. 잘 아시면서. 기왕이면 최대한 근엄하게 계셔주세요. 아무래도 그 편이 스승님한테 더 잘 어울리니까요.”

       “…….”

       

       올리비아가 사다리를 딛고 내려가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툭, 복도에 발을 내딛는 소리도 들렸다. 블링크를 사용하는 소리도 들렸다.

       

       멜리나는 점점 멀어져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분, 2분, 3분…….

       

       그렇게 10분이 흘렀다.

       

       그냥 놀아났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

       

       툭.

       

       누군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 온다!’

       

       200년 인생 통틀어 가장 긴 10분이었다고 자부했다.

       

       멜리나는 서둘러 몸 단장을 가지런히 했다. 구겨진 로브도 마법으로 쫙 펴고, 평소에 쓰지도 않는 떡갈나무 지팡이도 꺼내들었다.

       

       광대놀음 같기는 했지만, 진리를 알려준다는데 그깟 수치심이 뭐가 대수랴.

       

       진리만 알려준다면 여기서 동부 항구도시까지 앞구르기해서 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터억.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소녀와 다시 마주했다.

       

       움찔.

       

       올리비아는 놀란 얼굴로 눈 앞에 서 있는 멜리나를 쳐다봤다. 마치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내가 뭘 실수했나?’

       

       내심 긴장했지만, 멜리나는 최대한 엄숙한 얼굴을 한 채, 올리비아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금탑주님. 저를 제자로 삼아주세요.”

       “그래. 너를 내 제자로 삼아주마.”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올리비아였다.

       

       “어, 그……. 그냥 받아주시나요? 다른 조건 없이요?”

       

       멜리나의 얼굴이 묘해졌다.

       

       이건 또 무슨 빌어먹을 상황이란 말인가?

       

       “조건?”

       “네, 조건이요. 금탑주님은 백 년이 넘는 세월동안 제자를 한 명도 받지 않으셨잖아요.”

       “……그랬지. 그게 문제가 되는가?”

       “아니, 그……. 음…….”

       

       올리비아가 한참동안 입을 뻐끔거렸다. 멜리나는 그런 올리비아를 보며, 도대체 무엇이 그녀의 심기를 거슬렀을지 생각했다.

       

       “그……. 그럼 제가 멜리나님의 제자가 된 게 맞나요?”

       “그, 그래. 맞다. 넌 이제부터 내 제자다.”

       “…….”

       “……수제자로 바꿔주랴?”

       

       어차피 별 차이는 없겠지만.

       

       

       

       *****

       

       

       

       멜리나가 눈을 떴다. 암막커튼에 가려 바깥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아침이었다.

       

       어제 그 기묘한 일을 겪고 정확히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전날 아침, 멜리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올리비아가 제 제자가 되었음을 공인했다. 

       

       ‘……끄응.’

       

       멜리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제 주머니를 뒤졌다.

       

       환상적인 수식이 적힌 종이.

       

       그날 밤에 겪었던 일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이 종이가 전면으로 부인했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올리비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날 시험하는 건가?’

       

       멜리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집무실 바깥으로 나갔다. 문 앞에서 멜리나를 기침하려던 비서가 순간 흠칫했다.

       

       “이, 일어나셨습니까?”

       “됐다. 올리비아는 어디 있느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자부터 찾는다니.

       비서는 도무지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올리비아는 지금 식당에 있습니다.”

       “방은 위로 옮겼나?”

       “일단 43층으로 옮겼습니다. 그곳 말고는 자리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40층부터는 장로에게만 배정된다.

       그러니까 올리비아의 방이 43층에 배정됐다는 뜻은, 이미 권한만큼은 장로들에 준한다는 뜻이다.

       

       아니지. 제자니까 실 서열은 그보다 높으려나?

       

       ‘이제 들어온지 사흘 밖에 안 됐는데!’

       

       낙하산도 이런 낙하산이 없다.

       

       하지만 누구 하나 반박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금탑주가 꽂은 낙하산이다. 

       

       반박하는 순간 멜리나의 안목이 틀렸다고 말하는 꼴이니, 다들 그걸 아는 만큼 알아서 설설 길수밖에 없었다.

       

       “알겠다.”

       

       -파앗.

       

       멜리나의 신형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제 제자에게로 향한 멜리나를 보고, 비서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죽을 때가 되셨나?’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사실 저는 깨지고 부서져가며 하나씩 알아가는 게임을 참 좋아합니다.

    소울류 게임이나 로그라이크가 보통 그런 식이죠.

    정말 안타깝게도 현실 세계에는 락테아같은 게임이 없으니… ㅠㅠ

    그래서 저 대신 올리비아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매일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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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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