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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엔리를 보며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여러모로 고생을 시켰으니 이럴 때라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줘야지.

       

       이렇게 보면 방송이라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구나.

       

       이상한 이들도 많겠지만 그만큼 자신을 좋아해주는 이들도 많지 않은가.

       

       수천 명 가운데에서 환호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그녀가 방송을 하기 때문이니 말이다.

       

       기분이 어떨까. 나는 잘 모르겠다. 수천에게 저주는 들어보았어도 환호는 들어본 적 없는 인간이라서.

       

       신교에서 비슷한 것을 겪어보긴 했으나 그건 환호가 아닌 찬양이었다. 그 속에서 느끼던 감정도 기쁨이 아닌 역겨움이었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나 보니 절로 곰방대에 손이 갔다.

       

       좋은 기억보다 좋지 않은 기억이 항상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라는 인간의 문제일까.

       

       허공으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있다 엔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거기서 처량하게 뭘 하고 계세요?”

       “끝났느냐?”

       “아직 난리긴 한데.”

       

       내 눈에도 그래 보이는 구나.

       

       채팅창이 올라가는 속도가 너무도 빨라서 어지간한 이들은 눈으로 따라가지도 못할 것 같으니.

       

       더 놀라운 것은 저 글자 하나하나가 엔리에 대한 호의를 담고 있다는 거겠지.

       

       순간 약간이나마 부럽다는 감정이 스쳐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같이 즐겨요. 화령 씨.”

       “되었다. 네 성공을 기뻐하는 자리에 어찌 끼어들겠느냐.”

       

       내가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직접 가르친 이의 영광을 빼앗을 생각은 없다.

       

       “진짜 노친네처럼 왜 그래요.”

       

       어쩔 수 없잖느냐. 본인은 진짜로 노친네이니 말이다. 증거를 보이라 그러면 할 말이 빈곤하기야 하지만.

       

       말하지 않고 곰방대를 입에 물자 엔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나를 어찌 골릴 지는 생각해 보았느냐?”

       “아. 그런 내기도 했었죠?”

       

       공포게임 같은 건 전혀 안 무서워 하실 거고, 그렇다고 어려운 걸로 가봐야 보란 듯이 깨버리실 거고. 으음…

       

       혼자서 무어라 중얼거리던 엔리는 이내 팔짱까지 낀 채로 고민을 이어나갔다.

       

       “아냐. 이럴 때는 집단 지성을 활용해야죠.”

       

       엔리는 나를 내버려 두고 구석으로 향하더니 시청자들과 함께 무어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정작 내 옆에 띄워 둔 채팅창을 없애지 않은 것이 어설픈 구석이었으나 그 채팅창은 내가 직접 치워버렸다.

       

       나를 놀려먹겠다고 저리 노력을 하는데 어울려주어야 하지 않겠나.

       

       한참 동안 열렬한 회의를 거친 끝에 결정을 내린 듯 다시 엔리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정했느냐?”

       “네! 아라 씨는 똥겜을 해주셔야겠어요!”

       

       똥겜? 그것은 또 무얼 하는 게임인가?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든다만.

       

       엔리가 저리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리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무얼. 어떤 것이 닥친다 해도 헤쳐 나갈 자신이 나에겐 있었다.

       

       “단! VR이 아니라 컴퓨터로요!”

       

       *

       

       요즘 들어 내가 현대에 익숙해졌음을 느낄 때는 버스를 타고서 창 밖을 바라볼 때다.

       

       처음 버스를 탔을 때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바보 같았다.

       

       요금을 내지 않아 한 소리를 듣는다거나.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도 감탄스러워 내릴 곳을 잊는다거나.

       

       갈아탈 버스를 헷갈려 같은 도로를 몇 번이나 빙빙 돈다거나.

       

       거기에 초기에는 아직 한국어가 능숙치 않았던지라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갈 수도 없었다.

       

       특히 가야하는 장소가 버스와 지하철을 동시에 이용해야하는 경우라면 참으로 끔찍했지.

       

       그래도 이젠 버스를 탈 때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버스비는 손수 넣어 주고, 버스에 탄 후엔 노선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내릴 곳을 알아둔다.

       

       이제는 바깥 풍경에도 익숙해져서 매혹될 일도 없다.

       

       버스 기사가 켜둔 라디오의 음악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 내리자 아파트 단지가 눈에 보였다.

       

       인터넷의 지도가 가리키는 곳도 분명 저곳이었다.

       

       어젯밤 나에게 현실의 컴퓨터로 게임을 해달라 말한 엔리는 자신의 집에서 방송을 진행하길 권유했다.

       

       자신의 집에는 방송 세팅이 다 되어 있으니 몸만 가지고 와 게임을 하라면서.

       

       엔리의 집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기에 나는 기꺼이 그녀의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엔리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해 1층 입구를 열어달라 하려 전화를 걸었으나 엔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고 있기에 묵묵무답인 것일까.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자 전화가 끊어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엔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수면 아래에 잠겨 있었다. 꼭 방금 전까지 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엔리. 저 도착했어요.”

       [네… 네?! 벌써 왔어요?! 왜 이렇게 빠르세요?!]

       

       이건 좀 이상하지 않으냐?

       

       나는 어디까지나 그대의 초대를 받아 온 것에 불과하거늘 나를 무어라 하다니.

       

       내 방문이 그리 곤란했다면 애초에 나를 초대하지 않았으면 될 것 아니더냐.

       

       “근처에서 기다릴까요?”

       [아뇨! 그건 아니고. 그러니까. 으으. 일단 올라오세요.]

       

       진작에 그럴 것이지.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엔리의 집 앞에 도착을 하니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정리를 하려면 한참 남은 모양이구나.

       

       아무리 보아도 지금 안에 들어가면 엔리가 당혹스러워 할 것 같았다.

       

       나는 문에 기대어서 소란이 그치길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켰다.

       

       최근의 내 취미는 마이튜브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마이튜브 속에서 동물들이 노는 영상을 찾아다니는 것이었지.

       

       복슬거리는 것이 다른 복슬거리는 것과 장난을 치는 걸 보고 있으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서 곤란할 지경이었다.

       

       정말이지. 귀여운 것은 진리구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샌가 엔리의 집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그쳤다.

       

       이제는 들어가도 되겠지.

       

       벨을 누르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어서오세요!”

       

       엔리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 떡이 되어 있었고, 입은 옷은 먼지가 잔뜩 묻어서 건드리면 회색의 안개를 만들어낼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얼굴은 살아 움직이는 시체마냥 퀭했고, 비틀대는 다리에선 그녀가 여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 지가 느껴졌다.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괜찮으니까 일단 씻으셔야 할 것 같네요.”

       “어. 보기 좀 안 좋아요?”

       “많이요.”

       

       담담히 말하니 엔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평소 방이 얼마나 엉망이었기에 그것을 치운다고 자기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던 게냐.

       

       “그럼 집 천천히 둘러보고 계세요! 대충 씻고 올게요!”

       “건드리면 안 되는 건 있나요?“

       “딱히? 아. 방송 장비는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고장나면 곤란해서.“

       

       내가 기계를 잘 못 다루기는 한다만 그렇다 해서 툭 건드리면 퍽 하고 고장이 날 정도는 아니다.

       

       입술을 삐죽 내밀었더니 엔리가 웃으며 섬세한 물건들이 가득해서 그렇다고 변명을 했다.

       

       그 소리는 본인이 섬세하지 않단 소리 아니더냐.

       

       그건 인정할 수 없구나. 본인이 다루는 무공 중에서 섬세함을 요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허나 변명에 답을 하기도 전에 엔리가 떠나가 버려서 나의 말은 입 안에서만 회오리치다 사그라 들었다.

       

       엔리의 집 안에 발을 들였다.

       

       그녀의 집은 솔직히 말해 좀 난잡했다.

       

       급하게 정리를 한 덕분인지 나름 깔끔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이곳저곳에 거슬리는 것들이 있었다.

       

       물기가 잔뜩 묻은 채 뒤엉켜있는 식기들이나 탁자 위에 난잡하게 늘어진 과자 봉투 같은 것들이 그랬다.

       

       평소 그리 깔끔하게 생활하진 않은 모양이구나.

       

       외투를 옷걸이에 걸치고 나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엔리는 편하게 둘러봐도 괜찮다 이야기했으나 주인의 허락 없이 집 안을 둘러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엔리의 머리는 꽤 긴 편이니 그녀가 사람 같은 몰골로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겠지.

       

       다시 마이튜브에 들어가 시간이나 때울까 생각하던 중 베란다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 곳엔 이상할 정도로 무언가의 그림자가 많았다. 저기에 무슨 물건이 그리도 많기에 그림자만 보아도 난잡해 보이는 것일까.

       

       호기심이 샘솟았다.

       

       어차피 엔리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에 슬쩍 구경을 하고 다시 자리에 앉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슬며시 일어나 베란다의 문을 열었다.

       

       베란다 안은 난장판이었다.

       

       집에 있던 지저분한 것들을 모두 여기에 밀어넣었나 보구나.

       

       잔뜩 쌓인 플라스틱들과 여러 잡다한 쓰레기들

       

       한 때는 파릇파릇했으나 이젠 노란 색으로 물들어 버린 식물들.

       

       쓰레기처럼 바닥에 늘어진 옷가지들까지.

       

       그곳에 있는 물건들의 종류는 무척 다양했으나 엔리의 신변을 위하야 말을 아끼겠다.

       

       물건을 이만큼이나 쌓아두고 살았으니 손님의 방문에 당황하지.

       

       “아라 씨! 왜 거기에.”

       

       엔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다 씻기에는 이른 시간 아니더냐? 어찌 벌써 나올 수가 있단 말이야.

       

       엔리의 모습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을 뿐 기다란 머리는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뒤로 묶어 넘긴 후 모자로 가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나아지기는 했구나. 그래봐야 퀭한 것은 여전하다만.

       

       “천천히 둘러보라면서요?”

       “아니. 그렇지만 왜 방 구경을 안하고 여기를.”

       “그림자가 흥미로워서요.”

       “커튼을 칠 걸!”

       

       이제와 후회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원망을 하려면 평소에 난잡하게 살던 자신을 원망해야 할 것이야.

       

       그리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나는 그대가 얼마나 지저분하게 살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이 좀 더러울 수도 있는 것이지.

       

       내 어설픈 위로에 엔리는 얼굴을 붉히더니 다급히 나를 베란다 바깥으로 끌어냈다. 그리고는 커튼을 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마실 건 커피로 괜찮죠?”

       “네.”

       

       알겠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꾸나.

       

       커피를 타주겠다 말한 엔리는 거실로 가서 원두가 담긴 봉투를 꺼냈다.

       

       가루가 아니라 원두 말이다.

       

       그리고는 여러 물건들로 가득한 찬장에서 능숙하게 도구 몇 개를 찾아내더니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본격적이네요.”

       “예전부터 이렇게 먹다보니 보통 기성품은 못 먹겠더라고요.”

       

       드르륵. 드르륵.

       

       경쾌한 소리를 내며 갈린 원두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어느새 가루가 된 원두를 거름종이 위에 얹고 물을 따르자 그 향기가 증폭됐다. 꼭 거실 안이 커피로 가득 차버린 것처럼.

       

       운치가 있구나.

       

       “그런데 엔리. 오늘 잠 제대로 못 자셨죠?”

       “그렇게 티나요?”

       

       눈 밑에 검은 것이 그리 늘어졌는데 눈치를 못 채면 신기하지 않겠느냐.

       

       내가 단호히 답하자 엔리가 어색한 듯 뒷목을 매만졌다.

       

       “사실 아라 씨가 오기 직전까지 자고 있었어요.”

       “뭘 하다가.”

       “제가 할 게 뭐 있겠어요. 게임 했죠.”

       

       어제 나와 헤어진 후에 엔리는 바로 잠에 들려 했다. 시간이 시간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엔리는 잠에 들지 못했다.

       

       눈만 감으면 신창 저격러를 이긴 그 순간이.

       

       나와 대련을 하던 그 때가.

       

       그 끝에 환호를 해주던 시청자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고 엔리는 설명했다.

       

       “그래서 다시 아피스에 들어갔어요.”

       

       지쳐 쓰러질 때까지 게임을 하고 나면 잘 수 있을 거라고 엔리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달랐다.

       

       아피스 속 투쟁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더 각성시킬 뿐이었다.

       

       나와의 대련을 한 후 현지의 사람들을 만나니 상대를 하는 게 너무나 쉬웠다고.

       

       실수로 거리를 내줘도 대처하는 법을 알게 되니 한결 여유를 가지고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며.

       

       엔리의 말에는 아직까지도 열기가 묻어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덥습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 7월 초네요.
    에어컨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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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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