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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소울 아카데미의 교장 주디 알버는 다크서클을 길게 늘어트리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어제의 일을 수습하느라 여태까지 쉬이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안녕하세요. 교장님.’

   “안녕하세요. 늙다리 교장님.”

   

   교장을 부르는 호칭은 늙다리인거야?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데다가 얼굴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게 확실히 늙은 티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카데미 교장이잖아.

   

   늙다리라는 호칭은 너무한 거 아냐?!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다행히 주디는 늙다리라는 호칭을 듣고도 허허 웃어넘길 뿐이었다.

   

   성격이 좋은 주디에게 늙다리 정도의 호칭은 괜찮은 건가?

   

   아님 내가 피해자의 위치에 서 있으니 다소의 무례는 넘겨주는 건가?

   

   어느 쪽이건 간에 그리 기분 나빠하는 거 같진 않아서 다행이다.

   

   ‘항의를 하러 왔는데요.’

   “이 허접한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항의를 하러 왔는데요.”

   

   항의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 주디가 쓴웃음을 지었다.

   

   “항의라. 영애께는 그럴 권리가 있지요.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만 일단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알른 영애?”

   

   ‘네. 괜찮아요.’

   “영애를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다니. 수상하긴 하지만 일단은 어울려 줄게요.”

   “허허. 제가 어찌 알른 영애께 해를 끼치겠습니까.”

   

   소울 아카데미의 교장실은 내가 게임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여러 고서들이 꽂혀 있는 책장도.

   

   그 옆에 기대어 진 낡은 스태프도.

   

   게임 속에서 BGM과 함께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앵무새도.

   

   여기가 완전히 게임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면 저 책장 뒤편에 있는 비밀 통로도 그대로 있겠지?

   

   쇼파에 앉아 정겨운 교장실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던 중에 주디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알른 영애.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멀쩡해요.’

   “그러니까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겠죠?”

   

   “그렇지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죽을 뻔하긴 했지만 멀쩡한 건 사실이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디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우선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어젯저녁에 깨어난 파트란 영애와 리즈 영식의 증언에 따르면 알른 영애께서 전두지휘를 해주신 까닭에 아무런 피해 없이 그 곳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더군요.

   알른 영애의 기지가 아니었더라면 저희 아카데미 측의 불찰로 인하여 인명의 피해가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를 막아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 음. 네?

   

   “동시에 사과를 드립니다. 저희가 제대로 방비하지 않았기에 알른 영애께서 크나큰 위험을 겪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말로만 하는 사과가 무의미함을 압니다. 혹여 바라는 것이 있으시다면 말씀을 해 주십시오. 저희 측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되도록 협력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기에 고개를 숙이는 주디의 모습이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잠시나마 할 말을 잃어버렸을 정도로.

   

   침착하자. 저 쪽에서 잘못을 인정했다는 건 나한테 유리한 쪽으로 굴러가고 있단 거잖아.

   

   ‘어. 그러니까. 제가 바라는 건…’

   “제가 바라는 건 간단해요. 이 허접 아카데미 측에서 보관하고 있는 마도구 중 하나인 케르타의 수정구. 그것만 준다면 제 큰 아량으로 어제의 잘못 정도는 넘어가 드리죠.”

   

   마력의 샘을 배우기 위한 마도구를 언급하자 주디가 침음성을 흘렸다.

   

   케르타의 수정구는 소울 아카데미 내에 존재하는 여러 마도구 중에서도 귀중품 취급을 받던 녀석이다.

   

   그런 것을 내놓으라 했으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겠지.

   

   “그 마도구를 어찌 아시는 겁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절 추궁하려고 하는 건가요? 기분이 나쁘네요. 늙다리 교장.”

   

   이제야 조금 내가 생각했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네.

   

   이제 주디가 내 제안을 거절한다면 미리 생각을 해뒀던 대로.

   

   “그런 건 아닙니다만… 예.  알겠습니다.”

   

   주디가 지닌 약점을 언급해서 협박을…

   

   네? 뭐라고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 이야기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주디는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주디가 케르타의 수정구를 가지러 간 거야?

   

   협상이라던가 회유라던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쿨하게 수정구를 넘겨주기로 결정했다고?!

   

   <뭐가 문제냐. 네가 바라는 대로 된 것 아니더냐?>

   ‘그건 그런데요.’

   

   그렇지만 이대로 주디가 케르타의 수정구를 가져와 버리면 그의 과거를 가지고 협박을 할 생각을 했던 난 뭐가 됩니까?!

   

   이거 순전히 나만 나쁜 놈이 되는 거잖아!

   

   주디 당신 왜 이렇게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건데!

   

   게임 내에선 온갖 귀찮은 퀘스트를 클리어 하고 나서야 선심 쓰듯이 보상으로 케르타의 수정구를 넘겨줬었잖아!

   

   근데 그걸 이렇게 선뜻 주겠다고 하다니!

   

   따지고 보면 잘 된 일이다.

   

   잘 된 일이기는 하지만 상대의 인품과 내 인품의 격차가 느껴져서 자괴감이 드는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주디 이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좋은 사람이구나.

   

   메이스 안에 틀어박혀선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나 해대는 할배랑은 다르게.

   

   <여아야.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냐?>

   ‘…전혀요?’

   

   하여간 쓸데없이 눈치 빠른 사람이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방으로 돌아온 주디는 내 앞에 보랏빛의 수정구 하나를 내밀었다.

   

   “바라시는 것이 이게 맞습니까?”

   

   반투명한 보랏빛의 수정 아래에 마력으로 된 호수가 펼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생긴 것만 보면 이건 분명 케르타의 수정구가 맞았다.

   

   ‘이게…’

   “이게 케르타의 수정구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대마법사인 케르타가 자신의 지식을 수놓아 만들어 낸 귀물이죠.”

   

   게임처럼 감정을 할 수 없다는 게 이럴 땐 너무 아쉽다.

   

   이게 게임이었다면 바로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분할 수 있었을 텐데.

   

   당장은 주디의 인격을 믿는 수밖에 없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어찌 알른 가문의 영애께 거짓된 물건을 드리겠습니까.”

   

   의심을 하는 게 티가 난 걸까.

   

   주디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입니다. 제가 이걸 그냥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뇌물입니다.”

   

   ‘뇌물이요?’

   “뇌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철혈백의 분노가 이 아카데미에 닿았을 때 그 분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알른 백작께선 영애께 약하니 말입니다.”

   

   갑자기 여기서 왜 베네딕의 이름이 나오는가 싶었지만 주디의 설명을 듣고 나니 납득이 됐다.

   

   전후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어제 나는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르다 죽을 뻔 했다.

   

   베네딕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자신의 딸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인간이 무슨 일을 저지를 지는 뻔하다. 아카데미에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겠지.

   

   그 분노는 분명 거대하고 거셀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은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그렇지만 여기서 나만은 예외였다.

   

   내가 적당히 하라고 한다면 베네딕은 분명 내 눈치를 볼 것이다.

   

   지난번에 칼과 관련된 일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었으니까.

   

   그러니까 케르타의 수정구는 보상임과 동시에 거래의 물품이었다.

   

   이걸 건네줄 테니 베네딕의 분노를 줄여달라는 거겠지.

   

   베네딕이 대단한 사람이긴 한가보네.

   

   거대한 위상을 지닌 소울 아카데미의 교장인 주디가 눈치를 볼 정도라니.

   

   ‘알겠어요. 도와드리죠.’

   “늙다리 교장은 교장이면서 가문 하나의 눈치를 보는 건가요? 좋아요. 바보 아버님이 바보 짓을 한다면 도와드리도록 하죠.”

   

   그 딸바보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린 건가.

   

   나중에 감사인사를 전해야겠네.

   

   메스가키 번역 때문에 고맙단 말을 할 순 없으니 적당히 애교를 부리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바보 아버님 소리를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었지만 괜찮았다.

   

   이미 자존심은 어느 정도 내려 놓은 상태라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디가 굳어 있던 입가가 살짝 풀렸다.

   

   “감사합니다. 알른 영애. 아. 그리고 하나만 더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뭔가요?’

   “무슨 부탁이죠?”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듯 하여 죄송스럽습니다만 어제 던전에서 일어났던 일에 관해 들을 수 있을까요?”

   

   아. 그거?

   

   루카 대신에 당신이 직접 이야기를 듣기로 한 거야?

   

   잘 됐다. 나 루카 그 인간이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거든.

   

   주디 당신이라면 얼마든 이야기를 해줄 수 있지.

   

   받은 것도 있겠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선에서 모두 다 이야길 해줄게.

   

   ‘알겠어요.’

   “그 정도는 해드리죠.”

   

   *

   

   난 케르타의 수정구를 얻었음에도 그걸 바로 사용하진 않았다.

   

   이전에 영약을 마셨을 때가 생각이 나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케라트의 수정구를 사용하게 되면 ‘마력의 샘’ 스킬을 얻게 되는데 이건 마력의 최대치와 회복력을 늘려준단 말이지?

   

   그럼 영약을 마셨을 때랑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게 분명해.

   

   나는 고통을 견디느라 길바닥을 나뒹굴고 싶지도 않고 고통 때문에 기절해서 하루를 날리고 싶지도 않아.

   

   그래서 난 이 마도구를 일정을 끝마친 후 숙소로 돌아가서 사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수정구를 칼에게 맡겨 놓은 난 소울 아카데미에서 빠져나와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주신 교회 쪽으로 향했다.

   

   조이와 제이콥이 멀쩡한 지 확인을 하는 김에 겸사겸사 세례를 받을 생각이었다.

   

   아르마디 그 허접 주신은 자신의 사도에게 무슨 스킬을 주려나?

   

   소울 아카데미에서 신의 사도가 되면 그에 걸맞는 스킬이 내려 준다.

   

   예를 들어 전쟁의 신이라면 단체전에 유리한 스킬을 주고, 예술의 신이라면 매력이나 손재주와 관련된 스킬을, 화염의 신이라면 화염 내성과 화염계 마법의 숙련도가 대폭 증가하는 식으로.

   

   신의 사도가 무슨 스킬을 얻는 지 완벽히 외우고 있는 나지만 허접 주신이 주는 스킬에 관해서만큼은 알지 못했다.

   

   왜냐면 소울 아카데미에선 아르마디가 직접 등장한 적이 없으니까.

   

   그 녀석은 이름만 언급될 뿐 하계에 아무런 관여도 하질 않았거든.

   

   그러고 보면 아르마디는 게임 속에서도 무능하고 게으른 녀석이었네.

   

   아르마디가 허접하고 무능한 신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모든 신들의 중심이 되는 녀석이다.

   

   신의 사도가 지니는 스킬이 신이 지닌 권능에 비례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분명 괜찮은 스킬을 주겠지.

   

   가슴이 뛴다.

   

   소울 아카데미를 만 시간 넘게 플레이 한 나조차도 처음 보는 스킬이라니.

   

   기왕이면 활용도가 넓고 재밌는 스킬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놀랄 정도로 어마어마한 스킬을 준다면 허접 주신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 줄 의향도 있는데.

   

   “알른 영애님.”

   

   교회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람은 어제 나를 치료해 주었던 사제 중 하나였다.

   

   그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뒤로 물러났다가 날 응대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음을 깨닫곤 발을 멈췄다.

   

   어제 교회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느낀 건데.

   

   루시의 악명은 안 퍼져 있는 곳이 없더라?

   

   소울 아카데미에 있는 주신 교회의 사제들도 하나 같이 나를 꺼리더라고.

   

   이유야 안 봐도 뻔하지.

   

   루시가 예전에 교회에서 벌였던 여러 패악질들을 이 사람들도 알고 있는 거 아니겠어?

   

   주신 교회의 십자가를 지녀서 호감도가 어느 정도 올라간 상태일 텐데도 이 꼴인 걸 보면 이 십자가를 얻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이었을지.

   

   진짜 상상도 하기 싫다.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전 여기 오면 안 되나요?’

   “허접 사제. 내가 악마야? 교회에 발도 들이면 안돼?”

   

   “아뇨. 그런 의도로 물어본 게 아니었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따지듯이 묻자 사제가 눈에 띄게 당황해서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반응이 재밌어서 더 놀려줄까 싶기도 했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그만 두었다.

   

   ‘농담이에요. 저는…’

   “농담이니까 허접 티 그만 내. 내가 여기에 온 건 세례를 받기 위해서야.”

   

   “예? 세례말입니까? 영애께서 왜.”

   

   ‘아르마디의 사도가 되었거든요.’

   “너네들이 믿는 주신님의 사도로 선택 받았거든.”

   

   “…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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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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