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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EP.46

     

   구파일방 九派一幇

     

   아홉 개의 거대 문파와 개방을 합쳐 부르는 명칭.

   ‘구파’가 구파라고 불리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강한 무공과 그들만의 비전절기.

   그 외에도 다양하고 깊은 심결을 가지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만큼 세력이 넓고 강자가 많았다.

     

   하지만 개방은 그렇지 않다.

   물론 고수가 부족하거나 역사가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다른 아홉 개의 파에 비해 확연히 수준이 떨어지는 건 거지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일반인들이 무심코 넘어가는 한 가지가 있었다.

     

   「비무대회의 우승자는 한 명의 고수에게 비무를 신청할 수 있다더라!」

     

   「이번 비무대회 우승자는 비무 대상으로 의약당의 의원을 선택했다더라!」

     

   정보력.

     

   거지는 어디에나 있다.

   가난한 동네는 가난한 동네라서 있고 부유한 동네에는 그곳이 부유하기에 빌어먹는 거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그놈의 ‘카더라’ 통신 때문에 정보가 엇나가는 경우도 있었으니.

     

   「굳이? 왜?」

     

   「의약당에서 김시인이 매일 같이 불쾌한 냄새를 풍기며 걸어 나왔다던데 그거랑 연관이 있는 것 같다더라!」

     

   「그럼 복수?」

     

   「그렇다 카더라!」

     

   십만양개방도설 十萬養丐幇徒說

     

   말이 십만이지, 정보 단체인 하오문은 개방의 거지들의 수를 세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거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 증원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곳,

   비무대회장이 시끌벅적해진 것에는 그들의 공이 큰 자리를 차지했다.

     

   “의약당의 당휘소 안 계시오?”

     

   심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관객석 구석에 앉아 비무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던 당휘소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

   물론 자신이 개발한 단약의 효과가 궁금해서 새로 들인 제자 놈의 비무를 꼬박꼬박 지켜보긴 했지만, 이런 전개는 달갑지가 않았다.

     

   김시인은 쾌청단을 이용해 음한지기가 가득한 몸에 열양지기를 때려 넣는 걸 성공한 놈이었다.

     

   물론 단약발이 아니라 김시인이 무극지체에 가까운 몸을 가진 탓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단약의 효능은 검증이 된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진짜 나를 골려 먹으려는 건가?’

     

   분명히 당휘소는 비무장에 올라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김시인에게 못을 박았었다.

   그리고 그저 농담이라 생각하며 까먹고 있었더니만…

     

   조금 전부터 아래에 있던 거지들이 동화 속 제비마냥 정보들을 물어 오는 게 눈에 들어온다.

     

   – 의약당에서 단약 임상시험 같은걸 했는데, 그것에 대한 복수라더군…

   –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을 절호의 기회인데 너무 허무하게 날린 건 아닌가? 그렇게 단순하다고?

     

   개방도들의 입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유언비어.

     

   물론 김시인이 ‘단순한 인간’이라는 점과 ‘단약 임상시험 같은걸 했다’는 부분은 완전한 구라가 아니었지만,

   나름 무공 스승인 당휘소에 대해 복수니 뭐니 떠들어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이었다.

     

   정무학관 의약당 의원 당휘소!

     

   심판의 외침에 당휘소의 고개가 비무장을 향했다.

   그곳에는 뻔뻔한 제자 놈이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아……”

     

   당휘소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충분히 귀찮고 짜증나는 상황.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제자에게 먹인 것이 있었기에 이번 한 번만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물론 모자란 제자 놈이 기회를 놓친 머저리로 낙인찍히는 게 짜증났던 건 덤이었다.

     

   ***

     

   – ……?

   – ……?

     

   당휘소의 이름이 거론된 이후로 관객들은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멍하니 비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본 나는 그들의 어떤 심정으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뭐 당연한가?’

     

   정무학관의 비무대회에서 우승을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단 한 번의 기회.

   심지어 남은 3년간, 비무대회를 참가해도 우승을 또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이번 비무 신청의 기회는 정말 천금 같은 경험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상대로 고른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의약당에서 약제나 지어 주는 노인.

     

   해남파의 장로가 왔다.

   무당파의 무당지검이 왔고 화산파의 절정 매화검수가 이곳을 방문했다.

     

   그런데 왜?

   왜 하필이면 다른 누구도 아닌 의원이란 말인가? 게다가 사천당문 출신의……

     

   “그…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확실한지 묻고 싶군.”

     

   심판이 비무장에 올라온 당휘소를 눈동자로 훑으며 나에게 물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뒷짐을 진 호리호리한 몸.

   아무리 봐도 무인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기운.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나는 심판을 향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예 확실합니다.”

     

   당휘소의 모습에 나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애초에 나를 가르친 당휘소는 결코 이렇게 경로 우대가 필요할 것 같은 허약한 무인이 아니었다.

     

   분명 노인이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기백.

   신뢰할만한 의원이라는 것을 눈을 증명하듯 빳빳하게 세워진 허리.

   그리고 나에게 사천당문의 보법인 추뢰신법을 가르칠 때의 그 방대한 양의 지식과 경험까지.

     

   그랬다.

     

   이 할아버지는 지금 극적인 연출을 위해 연기를 하고 있었다.

     

   “스승님.”

   “뭐.”

     

   내가 당휘소를 부르자 그가 퉁명스럽게 답한다.

     

   “저한테 미안한 거 있으십니까?”

   “무슨 헛소리냐.”

   “아뇨, 아니면 됐습니다.”

   “이잉, 쯔쯧… 싱겁기는…”

     

   하지만 그의 표독스러운 표정에서 나는 그의 생각을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다.

   내가 의약당에 머무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의약당을 방문하는 관도를 본 적이 없었다.

     

   이곳은 무림의 정파에서 운영하는 학관이다. 병장기를 쓰는 법을 익히는 곳인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이상할 만했다.

     

   ‘웃기지도 않지.’

     

   그리고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왜 학관의 관도들이 당휘소의 의약당을 방문하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그 이유인 즉, 사천당문 출신의 의원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것.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무학관의 관도들은 당휘소가 사천당문 출신임을 알고 있었다.

     

   정무학관의 모든 관도는 상처를 입으면 정무학관 밖에서 치료를 받았다.

   약이 필요하면 학관 밖으로 나가 약제를 달여 왔고 약제가 떨어지면 그냥 아픈 걸 참는 관도까지 있었다.

     

   ‘그놈의 무공이 뭐라고.’

     

   달리 특별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사천당문의 무공이 암기와 독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정파의 무인들은 그들을 꺼림칙하다 여겼다.

     

   단지 그뿐.

     

   직접 알아본 것도 아니요, 그들의 무공을 배워 본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순히 남들이 그렇다 하니 그렇구나 하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주시죠.’

     

   나는 멀뚱히 관객석을 둘러보는 당휘소를 바라봤다.

   사천당문의 장로였던 자. 온건파의 수장이자 당문 무인들의 정신적 지주.

     

   “그럼 비무를 시작하겠소만…… 혹시 따로 무기는 필요하지 않으시오?”

     

   심판의 물음에 당휘소가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시건방진 제자 녀석을 손봐주려면 칼 한 자루는 필요할 것 같군.”

     

   당휘소의 말에 심판이 손짓하자 뒤에 대기하고 있던 무인 하나가 적당한 길이의 장검을 가져와 그에게 건넸다.

     

   “여기 있소.”

   “고맙소이다.”

     

   스릉.

     

   당휘소가 가볍게 검을 뽑아 검신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뿐, 당휘소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며 뽑았던 검을 다시 심판에게 돌려주었다.

     

   검집만 남기고.

     

   “고맙소. 이거면 충분하오.”

     

   그의 말에 심판의 얼굴이 은근하게 찌푸려졌다.

   그저 의약당에 거주할 뿐인 사천당문 노인이 보여주기에는 그 모습이 생각보다 교만하면서 동시에 멋있었던 것.

     

   “정말…… 이걸로 괜찮겠소?”

     

   하지만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노인이 앞서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준 후기지수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심판이 재차 그에게 물어도 그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의약당 일도 밀려서 슬슬 시작하면 좋겠는데.”

     

   그의 반응에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저 의원이 미친 것이 아니냐는 소리부터 나중에는 다소 무례한 발언까지 난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스승님은 그런 잡것들의 말을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망할 제자야.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는구나.”

   “별말씀을요.”

   “뻔뻔한 아해로고…… 그래, 기왕에 제대로 보여주마. 나한테 배운 것들 잊지 않았겠지?”

     

   나는 당휘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거리를 벌렸다.

     

   긴장되는 순간.

   어느새 나는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

     

   내가 처음 당휘소에게 배운 것은 상대를 이기는 방법이 아니었다.

     

   「당문 무공을 이해하기 위해서 처음 알아야 할 것은 ‘암기는 멀리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독은 가까이서.

   그렇게 배운 것이 추뢰신법이었고 그것을 당휘소가 먼저 가르친 이유는 단약 실험 대상자인 내가 다른 놈들에게 맞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익히기 위해서, 나는 당휘소에게 맞았다.

   맞고 또 맞고 시간이 지나서야 그의 맨손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뭐…… 내가 이 말을 왜 하냐면.

     

   쐐애액!

   카아앙!

     

   비호처럼 날아든 당휘소의 신형에 나는 온몸을 비틀며 쏟아지는 그의 공격을 막아 냈다.

     

   “어쭈? 막아?”

     

   물론 막지 않고 피하고 싶었다. 피할 수 있었다면.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주먹을 피하기도 그렇게 어려웠는데 리치가 길어진 검집을 피하려니 아주 죽을 맛이다.

     

   “으윽!”

     

   막았다 싶은데 새로운 경로를 따라 당휘소의 검집이 날아든다.

   날이 달린 검이었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까지 미치니, 내가 가진 최종 임무가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스쳐갔다.

     

   —

   『스승과 제자 – 귀중한 연구 자료』

     

   주제 : 히든 / 연계

   난이도 : A

     

   설명 : 사천당문의 ‘당휘소’는 당신의 성취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비무를 펼치십시오. 당신이 그의 검을 ‘100’합 이상 버텨 낸다면 그는 당신을 인정할 것입니다.

     

   임무 : 당휘소와의 비무에서 ‘100’합 이상 버티기.

   제한 : 당휘소의 연구에 도움을 준 자, 당휘소의 제자.

     

   보상 : 당휘소의 인정 / 사천당가의 무공(D~A) 획득

   실패 페널티 : 당휘소의 실망 (실망의 정도에 따라 당휘소가 당신의 단전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

     

   처음에 받았을 때부터 불안했지만 괜히 A랭크 임무가 아니었다.

     

   “흐음…… 잘 막는구나. 역시 무극지체인가?”

     

   띠링.

     

   [20합을 버텨 냈습니다.]

     

   한 여름 소나기 같이 쏟아진 검의 폭격.

   이제는 기세가 줄어든 그의 검을 가까스로 막아 낸 나는 잡념을 떨치기 위해 머리를 털었다.

     

   ‘할 만하다.’

     

   돈으로 미친 듯이 끌어올린 능력치 덕분인지 버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안일한 생각이 클리셰로 작용했던 것일까.

     

   스멀스멀.

     

   당휘소의 몸에서 익숙하지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제자야, 몸 풀기는 끝난 것 같구나.”

     

   당휘소는 사천당문의 무인.

   검은 그의 주 무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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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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