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6

       평면상에서 직선 형태로 배열되어있던 스크롤이 1차로 격발되었다. 정제되지 않은 플레어가 출력부를 뚫고 나왔다.

         

       이때 필요한 마소량은 얼마 안 된다. 비록 발동에 필요한 시간은 요구 마소량이 줄어든 만큼 늘어났지만, 상관없었다. 저번처럼 시전자가 마력 고갈을 일으킬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으니까.

         

       플레어를 구성하는 화염계열 마소가 두 광학기기를 차례로 통과했다. 각각 파브리-페로 간섭계와, 편광 필터였다.

         

       여러 파장을 지녔던 빛무리는 간섭계를 통과하면서 적색 빛깔만을 남기고 전부 걸러졌다. 편광 필터를 통과한 뒤로 빛의 편광상태가 직선에서 원으로 변형되었다. 원편광이 일어난 것이다.

         

       원편광 상태에서 플레어는 출력부를 지난다. 여기까지 하면 처음 실험했을 때 봤었던 낮은 효율의 플레어가 완성된다.

         

       그걸로는 재앙급 마수를 일격에 잡기 어렵다. 그래서 플레어의 펄스를 증폭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프레이에게 한 가지를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작성 : 처프 펄스 증폭기(Chirp Pulse Amplifier)]

         

       펨토초 레이저가 펄스 증폭기를 지나며 극초단 초고첨두 출력을 지닌 괴물로 바뀌었다. 제곱센티미터 당 10의 40승 와트에 달하는 에너지가 호마루스의 이마에 직격했다.

         

       갑각류형 마수도 공룡이나 조류형 마수와 마찬가지로 머리가 있는 쪽에 마석이 존재한다. 그 부위에 명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마루스는 ‘키에에엑!’하는 요란한 소리 대신에, 일정한 주파수를 지니는 기계음을 내며 앞으로 몇 발자국을 내딛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빛줄기가 끝난 직후, 머리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고출력 레이저가 중금속을 때리면 플라스마를 형성한다. 그 플라스마로부터 여러 하전입자가 여기되고, 가속된다.

         

       대전입자가 가속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그 가속이 주파수 대역이 높은 전자기파를 방출하기 때문이었다.

         

       막대한 감마선과 엑스선이 뿜어져나왔다. 그 세기만 해도 테라헤르츠 단위를 훌쩍 넘어섰다.

         

       감마선 일부는 공기 중의 질소나 산소 분자를 때려 EMP를 발생시켰다. 막대한 에너지를 담고 있을 그 EMP를 100% 기계로 된 마수가 버틸 리가 없었다.

         

       플레어의 핵심 기재인 레이저로 장갑의 표면을 뚫은 뒤, 그 충격으로 내부까지 관통한다. 레이저이니만큼 관통 효율 자체는 낮겠지만, 플레어는 그걸 무시하고도 남을 출력을 지닌 마법이었다.

       

       이후 관통된 부분에 자연발생한 EMP와 플라스마를 지져 내부 회로를 파괴한다는 전략은 유효했다. 플레어는 재앙급을 한 번에 골로 보낼 수 있는 수단임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방사선에 의한 피해가 없도록 프레이는 기저에 잠들어 있던 땅을 끌어쳐서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 콘크리트벽을 만들어냈다. 

       

       “……!!!”

         

       최후의 발악으로 녀석은 단말마를 내질렀다. 그 탓에 순간적으로 높은 음압이 발생했고, 산사태를 일으켰다. 고지대에 있던 눈이 저지대로 쓸려나갔다.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괜찮아?”

       “…어.”

         

       지진이 골을 울렸나? 잠깐이었지만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제자리에 섰을 때 호마루스의 머리에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눈보라가 그 연기를 걷어내자 녀석의 머리통은 저 멀리 날아가고 없었다.

         

       “……해치웠나?” 

       

       이변은 없었다. 말하면 없던 위기도 생겨나는 클리셰조차도 플레어가 만들어낸 광선 앞에선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

         

       공간이동진을 타고 동아리 부실로 돌아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미쳤네! 금안족은 다 저런 데 살고 있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먹을 것도 없는데 저기서 어떻게 사냐?”

       “우리가 간 데는 최북단이었잖아. 금안족은 대부분 남쪽 소산맥에서 유목생활을 한다고 들었어.”

         

       로테 말이 맞겠지. 실제로 내가 스폰된 지역도 남부의 산맥지대였으니까. 엘랑카야 대산맥은 종단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기 때문에 남쪽 산맥과 북쪽 산맥의 자연기후가 크게 달랐다.

         

       “어디 보자, 카메라 영상은 제대로 찍혔고. 스크롤에 손상이 생기거나 한 건 아니지?”

       “문제 없어.”

         

       어떻게 보면 기적이었다.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마대륙이 가까운 곳에서 아카데미 1학년생들이 살아 돌아온 것이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재앙급 마수도 쓰러뜨렸다. 중급 마수조차 대처하지 못하는 동급생들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격차였다.

         

       나는 곧바로 데이터들을 뽑아 정리했다. 내가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들고 다니는 양장본에 트리 형태로 자동 저장되어 있어서 분류하는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로테는 실험장비를 정비했고, 프레이는 맥주를 사야 한다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버멜은 공간이동진을 정리하면서 무언가를 되뇌듯이 중얼거렸다. 빙의자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겠지.

         

       마음 같아선 너랑 동향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당장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저 엘프가 아직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으니 당분간은 더 지켜보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쯤하면 슬슬 밝힐 때도 되지 않았나요? 서로 같은 세계 출신이라는 걸요.]

         

       아니, 미래를 아는 빙의자라고 해서 나에게 늘 호의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친해지기 전에 너와 같은 세계에서 왔다고 말했다가 뒤통수라도 맞으면 어떻게 대처하려고.

         

       [에이, 저 엘프가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적어도 오늘 일을 보면 주인님에게 잘해주려고 했잖아요.]

         

       그건 조금 더 기다려봐야 아는 일이다. 웃는 얼굴로 뒤에서 칼 꽂는 사람을 본 게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당장 하스펠트 교수만 하더라도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인간관계를 맺을 때마다 나는 늘 비즈니스를 생각한다고 했다. 서로 원하는 걸 인지하고, 목표가 같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계약을 맺는 걸 선호한다.

         

       그 이상 깊어지려고 한다? 글쎄.

         

       버멜의 구체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지금으로선 신중하게 나아가야만 한다. 적어도 한두 번 정도 더 호흡을 맞춘 후에 서로의 사정을 털어놓아야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 믿는 게 서투르네요. 전생에서 뭐 사기라도 당했어요?]

         

       “과거사를 너한테 털어놓을 이유는 없고.”

         

       지금부턴 논문에 모든 정신력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나는 비즈니스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기숙사로 먼저 돌아왔다.

         

       [□ 개발중 : 베테-파인만 방정식]

         

       이제 통찰력을 필요로 할 시간이다.

         

       **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신입생들이 입학한지도 한 달 하고도 절반이 흐른 시점이었다. 벚나무들은 진작 여름옷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이 시기가 되면 학부생 수업에 들어가는 교수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여러 행정처리를 결재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 중간고사 문제까지 출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메리가도 다른 교수와 다르지 않았다. 일말의 오류도 없이 시험문제를 내는 건 어느 교육자에게나 귀찮은 일이었다. 심지어 족보에서 숫자만 바꿔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더했다.

         

       “클라이스.”

       “…….”

       “클라이스?”

       “…….”

       “클라이스!”

       “…왜요.”

         

       메리가는 옆자리에 앉아 반쯤 멍을 때리고 있던 클라이스의 팔뚝을 콕콕 찔러댔다.

         

       “혹시 딴 생각해? 왜 펜이 멈춰있어?”

       “…그쪽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페이스는 제가 알아서 조절할 테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아하, 또 그 플레어 때문이구나.”

         

       정곡이었다. 클라이스의 미간이 한데 모아졌다.

         

       한창 집중하고 있을 때 타인이 간섭하면 싫어한다는 걸 그녀의 절친이 모를 리 없었다. 따라서 메리가가 클라이스의 집중을 깰 땐 무언가 중요한 용건이 있다는 소리였다.

         

       “뭐 문제라도 있어요?”

       “얼마 전까지 같이 연구하던 혼성마도 있잖아. 그때 내가 준 데이터 분석은 끝마쳤어?”

       “아직이요. 못해도 중간고사는 지나야 될 것 같은데요.”

       “으아, 4월 초까지 해서 준다고 말했잖아!”

       “미안하지만 당장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메리가는 더 이상 클라이스를 쪼지 않았다. 표정을 봤을 때 여기서 추가로 건드리면 언성이 높아질 게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혀를 차는 것으로 자신의 심정을 내비쳤다.

         

       ‘그 놈의 플레어, 플레어, 플레어!’

         

       물론 메리가도 하스펠트 가문의 비원이 플레어라는 것쯤은 안다. 아니, 그녀뿐만이 아니라 제국의 국민 절대다수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스펠트 가문은 제국의 북방을 수백 년에 걸쳐 보위해왔다. 마수들이 전선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대대손손 척박한 땅에서 스태프를 휘둘러왔으며, 억천에 달하는 마수를 불사르며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니까 그런 허상에 집착하는 걸지도 몰라.’

         

       절멸급을 가장 많이 조우한 가문일 테니까, 동료가 죽어가는 걸 가장 많이 본 인간들일 테니까. 또 절멸급으로 인해 가장 많은 친족을 잃어버린 집안이었을 테니까.

         

       하스펠트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난 이상 클라이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대하기 버거운 재앙급을 맞닥뜨렸을 때마다 그녀의 입가에는 항상 ‘플레어만 완성됐었더라도’라는 소리가 맴돌았다. 일종의 버릇이었다.

         

       ‘그래도 너무 과한데.’

         

       그녀가 최상급 마도 하나에만 쏟아부은 시간만 5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유의미한 진척은 없는 듯했다.

         

       메리가는 클라이스의 책상 너머를 슬쩍 염탐했다. 중간고사 시험지를 작성하다 말고 밑에 누르스름한 계산지와 논문 전용 용지를 깔아놓았다. 클라이스는 그 위에 필기하고 있었다.

         

       ‘일을 할 땐 한 가지에만 집중할 것이지.’

         

       클라이스는 메리가도 처음 보는 공식을 적으면서 남몰래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돌파구를 찾은 모양이었다. 곁눈질로 살펴보니 마소를 에너지로 치환한 뒤 시간에 대해 적분하는 식이었다.

         

       ‘저게 되나? 너무 비약한 거 아냐?’

         

       메리가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떨쳐버리기로 했다. 자신은 지계마도를 연구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제 전공분야 외에는 접근에 신중하겠다는 판단이었다.

         

       메리가는 바깥공기를 쐴 겸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중앙공원을 한 바퀴 돌려고 할 때쯤,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입학을 도와준 금안족 소녀, 에테르였다. 메리가는 손을 들어 인사하려다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는 그만두었다.

         

       ‘저긴…. 논문 낼 때 빼고는 들어갈 일 없는 곳인데?’

         

       에테르는 제국 마도학회가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양손에 두꺼운 종이 묶음을 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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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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