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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아니, 노인장, 그만하고 좀 돌아가쇼. 댁네 아들인지 누군지 여기로 안 왔다니깐? 이러다 안에 들리면 아주 큰 일 치른단 말요.”

         

       “분명, 여기로 간다고 했어요……, 네? 우리 아들, 하삼이, 분명, 대정문에서 큰일을 받았다고. 이번 일만 끝나면 며느리 다시 찾아 잘 살아 보겠다고. 분명히 그랬단 말이에요. 무사님, 제발 우리 하삼이, 이하삼이라고 한 번만 더 확인을 해 주시면…….”

         

       “거 참. 노인네가. 빨리 꺼지쇼. 재수가 없으려니 내 근무 때 난리를 피우나……”

         

       굳이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끼어들지 않을 이유도 없다.

       청이 꼴뵈기 싫은 광경을 두고만 바라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청이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었다.

         

       “이보시오. 그렇게 매정할 필요까지 있겠소? 자식 찾는 어미 심정이야 그대도 춘부장과 자당을 보아 알 것이 아니오?”

         

       의외로 창빈이 먼저 나섰다.

         

       청이 깜짝 놀랐다.

       뭐야, 말을…… 하잖아!

       그것도 청산유수였다.

         

       무인이 창빈을 보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칼 밥 좀 먹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매화 문향 그려진 도복은 화산파의 징표다.

       긴장하지 않으면 무림인의 자격이 없었다.

       물론, 청은 자격이 없는 쪽이었다.

         

       “화산파의 도장이십니까?”

         

       “본도는 창빈이라 하오. 길 가다 본 광경이 썩 유쾌하지 않아 끼어들었소만.”

         

       “창빈 도장님이시군요. 그것이, 사실 이러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딱히 여겨서 이하삼이라는 사내를 찾았지만, 본 문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흐음.”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찾아오기를 벌써 달포가 넘어가니 저도 말이 곱지 못했나 봅니다.”

         

       청은 노인을 부축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무사 나리세요? 그럼 우리 아들 좀 찾아주세요. 제발……”

         

       “어. 그럼. 저희가 한 번 찾아볼 테니, 일단 오늘은 집에 들어가 계시겠어요? 아드님 성함이……”

         

       “이하삼, 이하삼이에요. 소명촌의 하삼이라고 하면 알아들을 겁니다.”

         

       장삼이사라는 말이 있다.

       중원에 가장 많은 성씨가 왕이장이다.

       장씨네 셋째아들, 이씨네 넷째아들이라는 뜻으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을 말했다.

         

       이하삼이면 여름에 태어난 이씨네 셋째다.

       중원에 이하삼을 찾으면 수백명은 능히 나올 흔한 이름이었다.

         

       그렇다고 님네 아들 이름이 흔해서 못 찾겠어요, 할 수도 없는 노릇. 청이 힘을 써 보겠다고 노인을 달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사 나리.”

         

       노인이 한결 안도한 태도로 연신 감사를 중얼거리다 굽은 등으로 사라졌다.

         

       청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어색하게 물었다.

         

       “근데, 사람 찾는 법 아는 사람? 손?”

         

         

       —-

         

         

       의외로 창빈이 척척 움직였다.

         

       문지기 무인에게 방문 허락을 넣어달라 부탁을 하고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본 도사가 하오문과 개방 쪽으로 수소문을 해 보리다. 팽 소형제가 나와 같이 가고. 남궁 소형제와 서문 소저는

        대정문에 머무르며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고.”

         

       청이 보기엔 너무 점잖은 수전증 무인 같아도, 창빈은 잠룡지회의 맏형이었다.

       올해 스물아홉, 명가의 청년 고수 중 이만큼이나 다양한 강호 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이 없었다.

         

       “오올, 우리 창빈이. 똑똑한 친구였네?”

         

       청은 진작 친구 먹자고 선언했다.

       권유가 아닌 선언이었다.

       창빈은 나이가 많고 청은 배분이 높으니 그냥 둘이 합쳐서 없는 일로 하고 친구야 안 그래?

         

       청에게 있어서는 아주 큰 양보였다.

       엄밀히는 나이도 배분도 청이 위였으니까.

       

       모자라는 것은 재력과 상식뿐이었다.

         

       한편, 창빈은 조금 많이 부담스러웠다.

       배분은 본래 나이보다 훨씬 우선했다.

       게다가-

         

       “창빈이, 의지가 된다. 이야, 든든하다.”

         

       청이 팔꿈치로 연신 창빈을 쿡쿡 찔렀다.

         

       ……무슨 여인이 이리 스스럼없이 사내에게!

       남녀가 유별한 법이거늘 이토록 허물없이 군단 말인가!

       여인이 조신할 줄을 모르고 어찌!

       ……혹시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건가?

         

       물론, 정작 여인 앞에서 조신해지는 인물은 창빈이었다.

       창빈이 벌건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그……, 가지, 팽 아우.”

         

       팽대산이 그 꼴을 한심하게 보다 말했다.

         

       “형님, 그런데 굳이 저와 가십니까?”

         

       “그야 하오문에 간다 하지 않았나.”

         

       하오문은 강호에서 가장 기묘한 방파였다.

       본래 하오는 강호에서 가장 미천한 다섯 직업을 뜻했다.

       그런 미천한 이들의 문파.

       즉, 없이 사는 하류 인생들의 모임이었다.

         

       이런 하찮은 최하층들이 모여봤자 무얼 하겠느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특기를 살려 힘을 발휘했다.

       바로,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놀라운 은신술!

         

       하류 인생들은 은신의 대가, 투명 인간이다.

         

       중원 사람들이 객잔에 앉으면, 객잔 바닥을 닦는 점소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간혹 눈으로 보고 나서도, 그런 천한 생물이 인간의 말을 알아들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짐꾼도 마부와 뱃사공도 투명했다.

       잡상인과 기생들은 귀머거리쯤으로 여겨졌다.

         

       하오문은 이를 통해 제일의 정보상이자 밀수, 암상, 거간 등등의 만능 사업체로 성장했다.

         

       그리고 하오문의 정보 판매인은 아름다운 기녀들이 담당했다.

       여인의 무기를 적극적으로 써먹는 이들.

       정보를 팔면서도 능숙하게 바가지를 씌우고 역으로 정보를 뜯어낼 줄 알았다.

         

       그런데 모든 여인의 약점을 후벼파는 존재가 있었다.

       그 위엄 넘치는 천하제일미남이었다.

         

       “팽 아우가 같이 가야 제대로 된 정보가 좀 나오겠지. 아주 사람 등쳐먹는 데는 도가 튼 놈들이고.”

         

       팽대산이 바로 납득했다.

         

         

         

       한편, 얼마 지나지 않아 문파의 쪽문을 발칵 열고 들이미는 얼굴이 있었다.

       대정문 문주 왕개육이었다.

         

       본래 쪽문은 하인이나 찬모, 침장이 같은 고용인들이나 쓰는 통로였다.

       거기에 문주가 직접 드나드는 꼴이 체면에 영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왕개육도 내내 고민한 결론이었다.

       왜냐하면 손님이 쪽문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없었으니까.

         

       “귀한 분들을 모시기엔 적당하지 못한 장소인 것 같으니, 이보게, 정문으로 모셔드리게나.”

         

       대충 둘을 만족시키는 절충안이었다.

         

       문주가 직접 나와 맞이했으니 손님을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 없고, 쪽문을 넘지는 않았으니 체면이 상하지도 않았다.

         

       손님의 입장에서도 쪽문을 통과하지 않았고 집주인이 직접 마중을 나왔으니 이만하면 거의 감탄스러운 한 수라 할 것이다.

         

       그러나 청이 보기엔, 대체 왜?

         

       “오잉. 굳이 정문까지 가야 하나?”

         

       “검우가 소탈함은 알지만, 그래도 대장부가 쪽문으로 드나드는 것이 아니오. 검우도 일대 절세의 검객으로 항상 염두에 둬야 하오.”

         

       예컨데, 쪽문으로 드나드는 것은 검객으로서 수치라는 것이었다.

         

       청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역시 원조 장궤 놈들 아니랄까봐.

       별별 걸 다 따지고 앉았네.

         

       이렇게 손님들이 장원의 높다란 벽을 따라서 빙 돌고 있는 동안, 대정문 문주 왕개육은 조금 실망한 상태였다.

         

       화산파의 도사가 찾아왔다고 했다.

       옥기린이 도시에 들었다는 소문은 왕개육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때 찾아온 화산파의 도사와 그 일행이라면 누구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웬걸, 웬 청년 검객 하나와 도복을 입은 예쁘장한 소녀다.

       청년이 시원스레 생기기는 했지만, 천하제일미남의 광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문주가 직접 얼굴을 들이밀 정도의 급이 아닌 것 같은데.

       너무 경거망동 하고 만 것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수련 중이던 맏아들 왕손석이 대신 정문에 나서 손님을 맞이했다.

         

       왕손석은 지용대 소속이었고, 뜬금없는 방문자의 얼굴을 곧장 알아보았다.

         

       “남궁신재 대협! 본 문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왕손석이라 하는데, 혹여 알아보시겠습니까? 맹에서 몇 번 뵈었습니다만.”

         

       “그런가? 반갑소.”

         

       왕손석이 살짝 당황했다.

       남궁신재의 태도가 시큰둥했기 때문이었다.

         

       “대협?”

         

       “대정문이 반검문이었을 줄이야. 하지만 백도 정파의 동지이니 이해할 수밖에. 갑자기 방문해 미안하게 되었군.”

         

       반검문이 대체 뭐야?

       아마 반검문이라는 것이 남궁의 후계자가 이리 쌀쌀맞게 구는 이유일 것이다만.

       뭔가 우리 대 대정문이 잘못이라도 했나?

         

       그러나 전혀 집히는 바가 없는 왕손석이 식은땀을 흘렸다.

       나름 백도 정파의 일원으로서 그 품위를 잘 지키고 살았다고 자부하는 왕손석이었다.

         

       “아! 이러실 것이 아니라. 일정이 어떻게 되십니까? 묵어가십니까?”

         

       저녁 먹고 갈 거냐는 뜻이었다.

       미리 말해야 준비를 할 것 아니냐고.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일행은 더 있소. 취면복마검과 옥기린이 지금 잠시 일을 보러 갔으니.”

         

       잠은 몰라도 저녁은 먹겠다는 뜻이었다.

       사람 더 있으니 더 차리라고.

         

       “오오!”

         

       왕손석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무려 천무대의 일원이 세 명이었다.

       개중에서도 후계급의 진짜 잠룡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인맥을 둘 기회가 이렇게 찾아왔으니 당연히 얼굴이 펼 수밖에는 없다.

         

       “그럼 이쪽 소저께서는……”

         

       “서문청이에요.”

         

       자기소개가 조금 짧았다.

       가문도 문파도 별호도 없는 무명이라는 뜻.

       나름 미색이 빼어난 소녀 검객이었으니, 으레 한 명쯤 달고 다니는 여인이거니 했다.

         

       “서문 소저시로군요.”

         

       왕손석이 관심을 끊었다.

       천무대원의 여인에게 집적거려봐야 좋은 꼴도 못 볼 텐데, 더 친한 척을 해서 이득이 없다.

         

       “그런데 대협, 나머지 일행분들께서는 늦어지시겠습니까? 아버지께서 다과를 준비하셨습니다만.”

         

       “오우. 다과. 예의를 좀 아시는 분이신가? 이봐, 검우. 이럴 때는 나도 가는 거 맞나? 이미 차린 상을 무시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거 맞지? 맞다고 해 줄래?”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오. 세상에 감히 검우를 홀대할 방파는 없지.”

         

       그래서 이런 대화가 오갔을 때, 왕손석은 좀 많이 당황했다.

         

       검우가 뭔지는 맥락상 대충 알겠다.

       근데 남궁세가의 후계자가 감히라는 언행으로 대접해야 한다며 강조하는 여인이라니.

         

       뭐지? 차기 안주인인가?

       아까 조금 더 환대를 했어야 하는데. 이런!

       

       왕손석이 청의 평가를 세 단계쯤 격상시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1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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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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