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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

        

        

        언젠가 회고했듯이, 연합 왕국은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정보 조직을 육성하고 있다.

        

        12개국으로 이루어진 연합왕국 중에서 그나마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4강. 드로안, 칼리온, 틸레스, 크라실로프의 경우. 다른 왕국들보다 조금 더 전문적인 편이다.

        

        이를테면 드로안의 정보 조직은 4대원소의 신봉자들이다.

        

        언제나 답을 알고 있는 물.

        태우면 진실을 토하게 만드는 마법의 불.

        장대에 매달면 과거를 털어놓는 신비로운 바람.

        파묻으면 모든 진실을 은폐해버리는 고요의 땅.

        

        네 원소의 사랑을 모으면 드로안식 정보조직이 완성된다. 사실 그냥 데려와서 줘팬다는 의미였다.

        

        반면 칼리온 군도의 엘프들은 굉장히 세련된 방식을 선호했다.

        

        마인드 소서리(정신주문 학파)의 선두주자인 만큼, 이들의 첩보는 굉장히 세련되고 친절하다.

        

        친해지기(세뇌), 장난치기(기억조작)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펼치는 친근한 정보 수득이 이들의 주특기였다.

        

        

        틸레스, 기사들의 왕국. 이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물어본다. 대단히 의로운 행동이다. 대답하지 않을 경우 모욕으로 간주해 결투 재판을 시작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반면, 이반이 소속되었던 절멸부대와 그 전신. ‘엔리케의 아이들’, 그리고 그 후예인 크라실로프 방첩사령부의 경우,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첩보 활동을 선호한다.

        

        ‘관찰’과 ‘증거수집’, ‘신호정보수집’, ‘기술정보취득’, ‘지형정보파악’, ‘인간정보망 수립’….

        

        그러니까, 다른 열강들이 ‘미련하다’라고 표현하는 정통주의적 첩보 활동을 펼친다는 의미다.

        

        

       -오늘도 점심 메뉴로 샌드위치를 먹음. 재료는 닭가슴살. 소스는 머스타드로 추정. 영양 불균형이 우려됨. 토마토를 제외한 야채가 부재함. 채식 위주의 식단을 권할 것.

        

        

        용사 파티 자제들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이반은 수첩에 중대한 수집 정보 메모를 남기며 망원경에서 손을 뗐다.

        

        

       

       ep10. 스토커 vs 스토커

        

       

        

        기사학부 신입생 전원이 병실에 처박히는 초유의 사태는 예상 외의 후유증을 가져왔으니.

        

        

        “이런 건 현실이 아니야아아악!!”

        

        

        시험기간이, 일주일 늘었다.

        

        시험을 볼 당사자들 한둘 정도만 빠졌다면 낙제를 줬거나 추가 시험을 치뤘거나 했겠지만.

        

        학부생 거의 전원이 중대 부상 환자가 된 시점에서, 학부는 일주일 간 휴교를 선언했다.

        

        실기라면 상관없다지만 필기라면 조금 다른 문제. 시험 공부라는 것을 난생 처음 해보는 체대생들은 이를 아득아득 깨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 대상은 주로 신학, 마법학, 미대, 음대….

        

        개중에서도, 음대생들이었다.

        

        

        “어째서 너희들마아아안!!”

        “같은 예대인데!! 너희들만 이렇게 행복한 거냐아앗!!”

        “믿을수없어이런건현실이아니야현실이어선안되는거야기사가왜필기를공부해야하는거야?”

        

        

        참고로 음대 또한 필기를 공부한다. 음악사조, 형식분석학, 대위법, 화성학. 오히려 기사학부보다 더 많은 교과목이 필기로만 구성되어 있다 하겠다.

        

        물론 그런 사실은 칼 든 무부에게 중요하지 않다.

        

        음대 놈들.

        

        동방에서 고래고래 지들끼리 갑자기 무반주 성악을 조지거나(성악과 실기 연습이다.)

        

        교정에서 걸어가며 뜬금없이 악기를 뚱땅거리질 않나(관현악과 합주 연습이다.)

        

        건실한 사회인들이 힘겹게 땀 흘려 하루하루 먹고 살 때에도, 저 녀석들은 그냥 시장 바닥에 앉아 노래만 불러대면 돈을 버는 놈들이다! (버스킹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어휴. 땀내 봐. 아저씨 식당에 들어올 땐 샤워라는 걸 해야 해요. 그건 물을 몸에 끼얹고, 비누로 충분히 거품을 내고 몸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다시 물로 씻는 과정을 의미해요.”

        “이 미친년들…!!”

        

        

        이 시기 대학 교정 곳곳에선 이와 같은 광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분노에 찬 기사학부 학생들과 그런 그들의 모습을 비웃는 음대 학생들의 모습이.

        

        대체 누가 기사학부와 음악대학을 같은 예술대학으로 묶을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의 저주 있을진저.

        

        에시디스는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슬픔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음.”

        “미친년… 미친년….”

        

        

        예대 교정의 야외 체육관.

        

        에시디스는 깡깡이를 거꾸로 쥔 채로 뒤틀린 지판을 섬뜩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엔 학과 동기들이.

        

        그녀의 앞엔 전의를 잃은 기사학부 학생들이.

        

        그녀의 발 밑엔 머리 한 구석이 터진 다섯 구의 시체(아니다.)들이 있다.

        

        이는 모두, 사상 최강의 음대생이 정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선 결과다.

        

        

        깡깡이 1세가 친구를 위해 한 몸 바쳐 희생하고,

        깡깡이 2세는 허망하게도 비명에 가버렸으며,

        

        지금 이 자리. 깡깡이 3세는 그녀의 명예를 위해 옥쇄하고 있었다.

        

        언젠가 회고했듯이, 악기란 악공의 생명이다.

        

        에시디스는 자신의 생명을 휘두르는 마음으로, 음대의 정문을 밟은 무도한 자들을 징치하고 있었다.

        

        

        “음대 1학년한테 줘터진 기사학부가 벌써 다섯!”

        “아하하하!”

        “보았느냐, 이 무지몽매한 것들아. 극도로 발달한 ‘음악’은 ‘무력’과 구분할 수 없는 법….”

        “돌아가라. 그리고 모두에게 전해라… 이제 음대가 예대 전 학부에 ‘군림’하리라….”

        

        

        1학년들끼리 노는 데 고학년 학생들이 참가할 리가 없었다.

        

        기사학부 고학년들은 1학년이 얻어맞고 울먹이는 것을 팝콘 먹으며 구경하고 있었고, 음대 고학년들은 애초에 기사학부 1학년을 이길 자신이 없었으므로.

        

        그러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 ‘대련’은 예대 1학년 학부생들의 축제로 변하고 있었다. (참고 : 기사학부는 여전히 시험기간이다.)

        

        유리, 이자벨, 오스칼 등의 학과 수석 라인 배신자들은 참람하게도 이 비사를 무시한 채 자신의 시험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으므로, 학생들에게 남은 수는 하나뿐이었다.

        

        공부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서도 실기 하나만으로 학과 전원을 무릎 꿇린… 천마(天魔)…!

        

        

        “그분을… 형님을 모셔와!!”

        “형님. 그래… 형님이 나타난다면 너흰 끝이다!”

        

        

        길거리 삼류 악당 같은 소리를 하며 신입생 하나가 어디론가 뛰어갔다.

        

        곧, 우락부락한 중년 남성 하나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사상 최강의 기사학부 1학년, 모르드였다.

        

        

        “아니 나 다음 시험 준비를….”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형님!! 그리고 학부의 명예가 지금 흙바닥에 굴러 떨어졌는데 그깟 시험이 대수롭습니까!”

        “이 새끼들은 지금 뭐라는 거지?”

        

        

        분명 자기들만 시험기간이라 화를 내는 중 아니었나? 그런데 이젠 시험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한다면, 애초에 화를 낸 이유가 무엇이었단 말인가.

        

        이 현명한 드로안 허스칼은 순식간에 진리를 깨달았다. 아, 그냥 시험에서 도망쳐서 놀고 싶은 거구나.

        

        그가 정신을 차리고 정면을 바라보자, 반쯤 부서진 바이올린을 꽉 움켜쥔 에시디스가 보였다.

        

        

        “이번엔 몇 개월 썼니 에시?”

        “한 달이요 삼촌….”

        “장하다. 그래도 3주는 넘겼구나.”

        

        

        모르드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돌았다.

        

        

        “기권. 내가 졌다. 아, 음대는 너무 강하다. 역시 에이나르 형님의 딸이야.”

        “세상에… 학연보다 혈연이 중요해요, 형님…? 기사학부 명예는!?”

        “참고로 에시와 나는 혈연이 아니다. 지연이지.”

        “드로안… 잊지 않겠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가서 시험 공부나 더 해라 이것들아.”

        “오늘부터 당신은 내 형님이 아니야아악!!”

        

        

        틸레스 소속 귀족 자제 하나가 울먹이며 학부 본과동으로 달려가고 나서야 그 날의 소란이 끝났다.

        

        이반은 조용히 나무 뒤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는 펜을 들어 메모를 수정했다.

        

        

       -에시디스. 현악기보다 타악기가 어울림.

        

        

       *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에시디스는 화들짝 놀랐다. 이 소동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본분을 잊고 말았다.

        

        물론 그녀의 본분은 학생이다. 그러나 관혁학과 1학년 에시디스 에이날스도티르와 ‘이자벨의 친구’ 에시디스는 전혀 다른 인물이어야 했다.

        

        평범한 음대생이 아니라, 의와 협으로 무장한 한 사람의 전사가 필요한 시점이었으니.

        

        마침 깡깡이도 적당히 피를 먹었다.

        

        에시디스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 걸음을 옮겼다. 이 교정 어딘가에 숨어 있을 간악한 악적을 찾기 위해서.

        

        그 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죄악을 징치하기 위해서.

        

        아버지 또한 그녀의 의로운 무력을 응원해주실 것이므로.

        

        

       *

        

        

        다시 한번 강조하기를, 이반은 전적으로 무해하고 평범한 생김새의 교직원이다.

        

        애초에 그는 은폐와 잠입, 특수 공작의 달인이었다. 그가 평범함을 가장하고 싶었다면 그 누구보다 평범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굳이 그런 고도의 잠입 테크닉이 필요하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그는 특출난 구석이 없는, 스쳐 지나가면 잊히기 쉬운 외관을 한 탓이다.

        

        

        “히익…!”

        

        

        마법학부 학생 하나가 경기를 일으키며 이반의 시선 밖으로 도망쳤다.

        

        이반은 지금 나무 꼭대기 위에 한 손으로 매달린 채 그림자 뒤에 은폐해 있었으므로, 그를 발견한 학생의 눈썰미를 칭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반은 이 교정 전원의 신상명세를 외우고 있었으므로, 지금 도망간 청년이 언젠가 담배 꽁초를 무단 투기했던. 그래서 ‘금연 클리닉’을 베풀어주었던 학생이란 것을 알아챘다.

        

        부끄럼 많은 학생이군.

        

        대학생다운 풋풋함이다. 이반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옮겼다.

        

        엘피헤라.

        

        베올그린의 딸.

        

        마법학부 1학년 수석, 입학실기평가에서 학부 전체 최고점을 갱신한 천재.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엘피헤라를 바라보며 수첩을 들었다.

        

        

       -추종자 몇을 제외하면 교우 관계가 원활하지 않음. 아버지를 닮음.

        

        

        아무런 악의 없이 진솔함만을 담아 프로필을 작성하길 한참.

        

        

        “음.”

        

        

        이반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

        

        

        “…벨라뿐만이 아니었어….”

        

        

        이자벨도, 어쩌면 엔리케조차도 저 사내의 유일한 ‘사냥감’이 아니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먼 발치에서 누군가를 ‘관찰’하며 ‘약점’을 찾고 있는 저 포식자의 공포가 그녀를 짓누른다.

        

        기사학부 신입생 50명을 모두 신학부 집중치료실로 보냈던 소문의 주인공, 미치광이 담배수집가, 나무 뒤의 악몽, 수염 괴인…. 눈매는 잘생긴 아저씨(이건 이자벨의 견해다)….

        

        ‘정원사’에 대한 풍문을 수집할 때마다 끔찍한 진실에 점점 근접해가고 있는 에시디스는, 수풀 속에 숨어서 이반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법학부의 누군가를 바라보며 메모를 적어 내리는, 나무 위에 매달린 괴인의 모습을.

        

        

        “스토커….”

        

        

        그녀는 아카데미 스토커를 스토킹하는 스토커가 되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고) 작가는 예대 출신이며, 음대생들은 진짜 동아리동에서 합주 연습과 성악 연습으로 소음을 유발한다.

    음대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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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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