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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탁자에는 작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작다는것은 어리다는 말은 아니었다. 

    하얗게 센 머리칼과 길게 늘어진 수염, 자글자글한 얼굴의 주름이 그의 나이가 충분히 오래되었음을 짐작케 하고 있었다.

    그가 작은 이유는 소인족, 그가 드워프이기 때문이었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는 책상위의 서류를 열심히 쫓는 중이었고, 고요한 방에는 별다른 소리 없이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채워진 상태. 

    그 소리에 또 다른 소리가 덧씌워진다.

    똑똑.

    갑작스러운 소음이었지만, 그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이미 누군가의 방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들어오거라.”

    철컥, 문이 열리고 들어온것은 도저히 잊기 어려운 인상의 10살남짓한 소녀였다.

    매끄러운 백금발 머리칼, 나잇대에 걸맞는 귀여운 얼굴과같은 특징은 오히려 평범하겠다.

    청록의 색과 황금의 색이 각각 따로 나타난 오드아이, 머리 위로 솟은 고양잇과 수인의 귀와, 얼굴 옆으로는 염소의 것이 아닌가 추정되는 한쌍의 뿔.

    게다가 나이에 걸맞지않는 차분한 분위기는 그런 특징에 전혀 묻히지않고 또다른 개성으로 드러났다.

    “이런, 입학시험 만점자 이루시양 아닌가. 어서 앉거라.”

    루크는 그의 제안에 예의바르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의자에 앉는다.

    그의 시선이 한차례 그 탁자위에 놓여진 명패를 훑는다.

    젠페이 사라디브, 교장.

    루크가 명패를 읽는사이 그는 몸을 일으켜 아장아장(그의 키가 작았기에 이 이상의 어울리는 의성어를 찾을 수 없었다.)걸어서 루크의 앞에 털썩 주저앉듯 몸을 의자에 집어넣었다.

    의자는 조금 작은감이 있어서 그가 앉으니 꽉 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상태로 짧은 팔다리로 팔짱비슷한것을 끼고 억지로 다리를 꼬아앉은 그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우스꽝스러웠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는 그런 아이들의 우스워하는 시선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저 아이는 그것이 별로 우습지는 않은 모양이다.

    혹시, 감정이 없는걸까?

    “그래, 이루시, 할말이 있다면서? 말해보거라.”

    그 말에 드디어 발언권을 얻었다는듯, 루크는 실짝 미소지은 상태 그대로 말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하여 감사를 표한다, 젠페이 교장. 땋은 수염의 모양이 굉장히 깔끔하군.”

    “흐하하, 매일 관리하는 보람이 있구만!”

    젠페이는 아이의 갑작스런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서 호탕하게 웃고말았다.

    수염 칭찬을 싫어하는 드워프는 없으니.

    반면, 루크는 예상한 대로였기에 다행이란 생각을 하였다.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드워프는 매일 수염을 관리하고있는 것인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것도 있다는것이 반가워진 루크는 그제서야 인상을 풀며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드워프의 성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엘프가 숲을 떠나고, 정령이 모습을 감추고, 수인이 인간에 녹아들고, 신이 사라진 이 시대에도 드워프는 수염을 관리하고있다.

    루크는 그 사실이 퍽 우스웠다.

    정말이지 드워프같아서.

    과거에도 드워프는 가장 고집스런 종족이었다.

    왜냐하면 기술에 관해서는 언제나 그들이 옳았는데, 기술과 재물외의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발전시키는 가장 진취적인 종족이 가장 보수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아이러니.

    어쩌면 그건 신의 장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신이 없으니 물어볼수도 없겠지만.

    드디어 루크의 웃음을 본 젠페이는 이제야 아이가 표정을 좀 풀어내는구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10살짜리 아이에게 고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건 그도 바라는게 아니었으니.

    “좋아, 인사는 잘 받았다. 이제 할 말을 하거라.”

    루크는 그의 말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졸업시험에 관해 묻고싶군. 내가 지금 치를 수 있겠는가?”

    “호오, 졸업시험을?”

    젠페이는 턱을 쓸어내리며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의외라는 표정.

    “흐음, 이루시양, 조기졸업을 원하는건가?”

    루크는 고개를 끄덕인다.

    젠페이는 안경을 고쳐올리며 말했다.

    “그래,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너무 뛰어난 능력탓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는 많이 보아왔다.

    티그아카데미는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을 배출하는 명문 아카데미니까.

    몇년정도 조기졸업을 하는 경우는 사실 흔하다만, 그래도 이 아이는 너무 어리잖은가?

    게다가…….

    “너는 입학한지 이제 한달도 안되었잖느냐?”

    루크는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정으로 배움이 결여된 교육은 교육자와 피교육자, 양자를 피곤하게 할 뿐이지. 젠페이.”

    무슨말인진 알겠다만, 일부러 저런 말투를 쓰는걸까.

    뭐, 그것도 아이의 개성이겠지.

    “흐음, 아카데미는 그저 수업만을 듣는게 아니지않느냐?”

    “……그러나 내겐 이런 환경이 너무나 불편하다.”

    루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젠페이의 시선을 피했다.

    아이들틈에 끼어서, 아이같은 대접을 받는다니.

    이전에도 이런걸 스스로 원한적은 없었잖은가.

    그가 상정했던 아카데미는 지금처럼 다수를 체계를 잡고 한번에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훨씬 개인적이었고, 훨씬 맞춤형이었다.

    서클마법의 경우엔 애초에 학생의 수가 적고 개인에 맞춘 지도가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글쎄, 루크가 원하는 방식은 절대 아니었다.

    자신같은 늙은이는 후학의 길을 잡아주는것이 역할이지, 같은 길을 옆에서 걸어주는 것은 역할이 아니잖은가.

    하필이면 이리도 어린 몸으로 깨어나다니, 이 몸은 정말…….

    어째서 이런 몸이 되어야 했는가가 오늘따라 불편할정도로 궁금했다.

    그렇게 루크가 말 없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있자, 젠페이는 긴 숨을 내뱉었다.

    “흐음.”

    젠페이가 방금까지 살펴본 서류는 사실 루크가 입학당시 제출한 인적사항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결과…….

    눈앞의 아이는 사실 수인도 혼혈도 아니고 인간이다.

    그리고 부모가 없고 임시보호자만이 있다.

    그는 상상력이 부족한 드워프가 아니었다.

    당장에 떠오르는 상황은…….

    젠페이는 루크를 향해 눈을 흘겨보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상상은 그만두는게 낫겠다.

    아이를 앞에두고 그런 상상을 해봤자, 표정이 험악해질 뿐이니까.

    ‘역시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것인가.’

    그렇다면 그런 과거를 지닌 아이에게 학교생활을 강제하는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이런 환경이 처음이라고 하니, 그런것도 힘들었으리라.

    게다가, 성적도 꽤, 아니 상당히 좋은건 사실이고.

    “원한다면 졸업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마.”

    “내 이렇게 부탁하겠다.”

    루크는 젠페이에게 말했다.

    간절함마저 섞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젠페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너무 전례가 없는 일이구나. 루크 이루시.”

    젠페이는 말을 이었다.

    “10살짜리 아이에게 아카데미의 졸업장을 주는것은, 우리도 조심스러울수밖에 없는 일이지.”

    확실히, 루크가 그 속이 어쨌건 겉과 신분은 분명 10살짜리 여아였다.

    티그아카데미의 졸업장은 단순히 학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학생이 티그아카데미의 졸업생에 걸맞는, 충분한 교양과 지식을 겸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아직 너를 모른단다. 세상도 너를 모르고.”

    10살짜리 꼬마를 조기졸업시키는것, 그것은 티그아카데미로서는 모험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보험이 필요한것이다.

    이 아이는 조기졸업을 따낼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알려야한다.

    젠페이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네 외부 수상경력이 필요해.”

    “외부 수상 경력이라?”

    “그래, 외부수상경력말이지. 그게 있으면 심사를 통해 연말에 있을 졸업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주마.”

    “……그말은, 내게 이 아카데미를 1년 더 다니란 말로 들리네만.”

    루크에게 현재 아카데미의 생활은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배움도 없고, 두근거림도 없다.

    아, 식사시간만은 조금 기대되긴 하지만.

    하지만 식사만을보고 아카데미에 온다니, 어불성설아닌가.

    그럴거라면 아카데미가 아니라 식당을 가는게 맞겠지.

    루크는 차라리 자퇴를 하는게 어떤가 고민했다.

    예르나가 분명 자퇴를 하고도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있을거라고 했는데.

    허나 젠페이는 루크에게 안심하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우리 아카데미로서도 너같은 천재적인 인재를 놓치고싶지는 않구나. 그러니 제안을 하나 하지.”

    “무슨?”

    “네게 ‘자율출석’을 하도록 허가하겠다. 어떻느냐?”

    “자율출석이라……?”

    ———

    루크는 간만에 기분좋은 표정을 지은채 상자안에 들어가 즐거운듯이 아린세이아에 관한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 이 안정감.

    사람이 많은곳에선 느껴볼 수 없는 감각이다.

    ‘흐음……. 어쩌면, 다수의 관계를 꺼리는것은 내 몸에 내재된 본능탓일지도 모르겠구나.’

    고양이는 개인적인 생물이니까.

    학교내에서도 고양이수인은 한두명과 어울리고 많은 무리를 짓지 않곤 했으니까.

    아예 본능을 따르니 편해진걸까?

    평소보다 기분이 좋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책을 읽는 루크는 바라보는 예르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루크는 평소에도 예르나에게 웃어보이긴 했지만, 거기에 진심이 담겼는가 물으면 글쎄, 별로 그렇지는 않았었다.

    “루, 그렇게 좋니?”

    “흐음, 그저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좋을 뿐이라네.”

    “그래, 그래.”

    혼자서 교장과 담판을 짓고 자율출석을 받아낸다니.

    10살짜리답진 않지만, 루크답기는 하다.

    ‘참 신기하다니까.’

    자퇴보다는 이편이 루크의 미래를 보아도 훨씬 낫다.

    또 언제든지 학교에 가고싶으면 돌아갈 수도 있고!

    얼마나 좋은가?

    외부 수상 경력이라……. 

    그건 자신이 좀 찾아볼 필요가 있겠지만.

    일단은 식사시간이 되었으니, 밥을 먹는게 좋겠다.

    “루크, 이제 식사시간이니까 준비하자.”

    “하하……. 그러도록 하지.”

    루크는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박스에서 몸을 일으켰다.

    턱, 하고 눈앞에 놓여지는건 역시 샐러드와 통조림.

    특별히 싫어하는 메뉴는 아니다만, 역시 ‘급식’을 경험한 입장에서 다시 삼시세끼를 이 샐러드와 통조림으로 연명하기는 꺼려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먹기만해도 행복해지는 맛있고 새로운게 얼마나 많은데, 어째서 그 즐거움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과거엔 식사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었지만, 루크는 벌써 식사에 관해서는 현대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예르나, 내일부터는 내가먹을 요리는 내가 하는게 어떨까 싶구나.”

    “응?”

    이 시대의 요리에 호기심도 생기고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 이제 일상물 비중을 늘리고 가끔은 학교에피소드도 챙길 수 있겠죠?
    생각해보니 그냥 다니게 두고 아카데미에피소드를 안쓰면 되지않나 싶었는데, 그러기엔….. 이게 완벽히 분리가 안될 것 같아서 이렇게 해버렸내요.

    어휴 힘드렀다….

    그냥 교복좀 입히려고 충동적으로 만든 에피소드가 이리도 길어지고 힘들었을줄은….!
    다음화부터는 기존의 분위기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주십쑈!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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