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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전서구로 연락이 닿았습니다.”

     

    다음 날, 브루노의 보고와 함께 업무를 시작했다.

     

    타냐에게도 내 생존 소식을 알렸다.

     

    텔레포트로 돌아오는 황제 친위대와 다르게 그녀는 본대와 걸어 돌아와야 하니 며칠이 더 걸린다.

     

    걱정할 게 분명했으니 브루노에게 전서구를 부탁했다.

     

    “원, 쉴 틈도 없구만.”

     

    “월광궁에 사룡 토벌 훈장이 수여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아, 훈장 장식하기 귀찮고 좋지. 포상 휴가는 안 나온대?”

     

    “흠, 제가 선생님으로 변장하고 대신 근무할까요?”

     

    “브루노, 너는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르겠으니 정색 좀 그만해.”

     

    나보다 체격이 두 배는 큰 녀석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나는 상태창을 터치하며 아셀라를 진찰하러 나섰다.

     

     

    [의학이 C랭크로 랭크업했습니다. 새로 배울 스킬을 두 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신규 스킬이 무려 두 개였다.

     

    전에 잡았던 방향대로 [처방] 루트보다 [진단] 루트를 타려고 한다.

     

    “어디, 혈액검사 다음 스킬은.”

     

    스킬명을 확인한 나는 절로 나오는 감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의학 랭크 상승과 함께 열린 스킬트리.

     

    진단과 혈액검사에서 이어진 스킬은 바로 그것이었다.

     

     

    [엑스레이 촬영 D]

     

     

    생각할 것도 없었다. 상태창을 터치해 습득을 완료했다.

     

    엑스선은 진단계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표현이 안 좋았다. 파장으로 따지면 감마에 가깝다.

     

    이게 있으면 그동안 촉감에 의존한 골절 치료를 직관적으로 할 수 있을뿐더러, 온갖 질환을 확실히 잡아낼 수 있다.

     

    작동 방식은 실험해봐야 알겠지만 뭐.

     

    설마 눈에서 레이저가 나간다거나, 갑자기 시야에 뼈만 보인다거나 하진 않겠지.

     

    “또 뭐가 있나 보자.”

     

    처방 루트에서는 [처방전작성]이 습득 가능 상태였다.

     

    이 루트는 연금술과 연계할 수 있겠지만 당장 필요하지는 않다.

     

    다음, 응급처치 루트에서도 눈길을 끄는 단어가 나왔다.

     

     

    [수술(기본) C : 기본 난이도의 외과수술을 실패 없이 진행합니다.]

     

     

    “오.”

     

    외과수술이라, 이것도 상당히 관심 가는 스킬이었다.

     

    견학한 적은 있어도 외과 수술을 직접 실습해본 적은 없었다.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은 있지만 내 기술만으로는 개복까지 필요한 수술은 절대 불가능하다.

     

    바느질은 잘 하지만.

     

    스킬 설명을 보니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수술에만 적용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몸에 칼을 들이는 걸 허락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텐데.”

     

    치유술이 당연한 이 세상에서 메스를 몸에 대는 행위는 암살로 보이겠지.

     

    나 자신을 수술할 일도 없을 테고, 거의 쓸 일 없는 스킬이 아닐까 싶다.

     

    다음 스킬트리로 성형수술이라도 있으면 그건 잘 써먹겠는데 말이야.

     

    라우가가 마스크를 보고 눈이 돌아갔듯 미용 수요는 어디에도 있으니.

     

    나중에 진짜 성형수술이 개방되더라도 기본 수술 경험치가 쌓여야 열린다.

     

    우선 선택을 보류하기로 했다.

     

     

    “황녀님, 오전 진찰 시간입니다.”

     

    큰 사건이 있었기에 더더욱 일과대로 주치의 업무를 다한다.

     

    아셀라의 상태를 체크하니 혈압이 평소보다 낮은 것이 아직 마나가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생각됐다.

     

    반면 심박수는 전보다 더 빨라졌다.

     

    이 정도면 슬슬 부정맥을 의심해봐야겠다. 나이도 어린데 안 받는 음식이라도 있나.

     

    “오늘 마법 활동은 금지하겠습니다.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시군요. 그리고 상세 검사에 한 번 협조해주셨으면 합니다.”

     

    “상세 검사?”

     

    “예. 별 건 아니고 혈액검사와 더불어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합니다.”

     

    “사진을 어디에 쓰려고.”

     

    “물론 황녀님의 용태를 파악하는 데 쓰죠.”

     

    아셀라는 미심쩍은 눈치다.

     

    “수정구에 녹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경계하지 마세요.”

     

    “알았어. 진행해.”

     

    아셀라는 툴툴대면서도 얌전히 내게 소매 걷은 팔을 내밀었다.

     

    알콜 솜으로 채혈 부위를 닦아줄 때 움찔하는 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가볍게 회화를 시작했다.

     

    “리콜 마법은 어떻게 됐습니까?”

     

    “금지당했어. 비무대회장에 있었던 마법사 전부야. 주인은 스승님이 내 마법진을 역구축해서 만들었고.”

     

    “카밀라 황비님도요?”

     

    “응.”

     

    쭈욱 주사기가 피로 들어찬다.

    아셀라는 대화에 집중하느라 바늘이 들어왔는지도 몰랐다.

     

    “사룡을 불러낸 범인 처벌은 어떻게 됩니까? 꼼짝없이 반역죄인데요.”

     

    “근처에서 흑마술사 집단이 잡혔어. 그들이 강림술을 썼다고 몰아가는 분위기야.”

     

    “예?”

     

    이게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흑마술이라니.

     

    “정작 그들도 제대로 입을 열기 전에 자해 저주로 사망했어. 조사는 계속 이뤄지겠지만 정답은 안 나오겠지.”

     

    카밀라가 그들도 리콜로 준비해놨나.

    상당한 임기응변이다. 악행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줌마였다.

     

    “그리고 폐하 성격에는 진상 조사를 우선하기보다 사건을 외교 정치 수단으로 쓸 방법을 우선하라고 명령하실 테야.”

     

    범인 찾기는 유야무야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황녀님, 사룡이 나타났을 때 콜로세움에서 모습을 감췄던 인물이 있습니다.”

     

    “누군진 알겠지만 그 증언은 소용없어. 게오르크가 신원을 증명할 테니까.”

     

    “그렇게 돌아가는군요.”

     

    카밀라는 완전히 월광궁의 적으로 돌아섰다. 비무대회 이후로는 아예 게오르크의 토진궁에서 머무는 중이다.

     

    아셀라 역시 사룡 건이 계기가 되었는지 이 이상 카밀라를 비호하려는 태도는 없었다.

     

    “토진궁과 전쟁이 벌어지겠군요.”

     

    “내가 황제가 되려면 언젠가는 벌여야 했어. 황가의 모든 승계권자는 적이니까.”

     

    “황녀님은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황비님과 전쟁을 벌여도.”

     

    “하.”

     

    아셀라가 사악하게 미소지었다.

     

    “날 누구라고 생각하니?”

     

    그 당찬 목소리를 들으니 언젠가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원한은 열 배로 갚는다. 그것이 제국의 방식이다. 짐은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그럼 은혜도 열 배로 갚느냐고? 무슨 헛소리인가. 짐을 위해 공을 세울 기회를 줬으니 감사하거라.

     

     

    아셀라는 이런 사람이었지.

    잠깐 잊을 뻔했다.

     

    그런데, 나를 향해서 그렇게 당차게 고개를 돌리고 있어도 괜찮나.

     

    “황녀님, 아직 채혈 중인데요.”

     

    “히익.”

     

    무심코 자기 팔에서 주르륵 뽑혀 나오는 피를 본 아셀라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상처도 치료했고 대망의 새 스킬을 써볼 때가 됐다.

     

    엑스레이, 과연 어떻게 작동할까.

     

    “촬영은 가능한 밀폐된 공간에서 진행했으면 합니다.”

     

    채혈의 보상으로 내가 준 벌꿀사탕을 할짝이던 아셀라가 미간을 찡그렸다.

     

    “공자, 그게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요. 황녀님의 안쪽을 찍어야 하는지라.”

     

    “뭐?”

     

    내 표현이 안 좋았다.

    신체를 투과하는 빛이라고 설명해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냥 제 말에 따라주세요. 혹시 옷에 금속 재질이 들어있을까요?”

     

    “그걸 말이라고 해?”

     

    “있으시면 빼주세요.”

     

    “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야!”

     

    아셀라가 버럭 화를 냈다.

     

    “너, 지금 다 알고 하는 얘기지.”

     

    “뭘요.”

     

    “그런 게 안 들어있는 옷은 잠옷 정도야. 지금 내게 잠옷을 입고 나오라는 소리니?”

     

    “그것도 괜찮네요. 어차피 오늘 마법 수업은 쉬셔야 하니 낮잠이라도 푹 주무세요. 나쁜 컨디션을 회복할 가장 좋은 방법은 수면입니다.”

     

    아셀라는 황당하다는 듯 입을 살짝 벌리고는 헛바람을 내쉬었다.

     

    “진심이구나, 공자.”

     

    “항상 그렇죠. 황녀님의 건강이 최우선이니까요.”

     

    꽤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아셀라는 내 말을 수긍했다.

     

    “하아… 알았어. 루시, 준비해줘.”

     

    나는 방에서 쫓겨나 시녀들이 아셀라를 환복시킬 때까지 기다렸다.

     

    “황녀님께서 준비되셨습니다.”

     

    시녀장 누님이 신호를 줘서 들어가니 방에 커튼을 쳐놨다. 빛의 조도가 적당하니 촬영에는 좋은 조건이다.

     

    아셀라는 펑퍼짐한 분홍색 나이트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조금 큰 치수인지 소매의 레이스가 나풀거렸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어디서 났는지 품에 곰인형을 안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뭘 그렇게 봐.”

     

    “인형은 내려놓으셔야 해요.”

     

    “아.”

     

    아셀라는 자기가 들고 있던 걸 자각하지 못했던 듯 곰인형을 침대로 휙 던져버렸다.

     

    곰인형은 베개 밑으로 머리를 향한 채 처박혔다. 옴짝달싹 못 하는 자세가 됐다.

     

    시녀장 누님이 내게 귓속말을 했다.

     

    ‘황녀님께선 애착인형이 없으면 못 주무셔요.’

     

    흠, 이건 몰랐던 정보네.

     

    ‘세탁하면 어쩌고요?’

     

    ‘쉽게 세탁을 허락하지도 않으시지만, 그럴 때는 막스를 안고 주무십니다.’

     

    막스가 순한 성격이라 다행인 줄 알아, 아셀라.

     

    내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촬영 때 금속 재질이 있으면 오류가 생긴다.

     

    “그 옷에 금속은 안 들어있지요?”

     

    “글쎄 안 입었다니까!”

     

    소리 지를 것까진 없잖아.

     

    아셀라를 벽 앞에 세우고 스킬을 준비한다.

     

    엑스선도 방사선이니 노출 시간은 최대한 적게 해야 한다.

     

    우선 한 번 사용해봐서 추가로 필요한 도구가 있는지 체크할 생각이다.

     

    “그럼 촬영하겠습니다.”

     

    “뭘로 찍는데?”

     

    “아, 그렇네요.”

     

    나는 품에서 대충 펜을 하나 꺼내들었다.

     

    “이겁니다. 새로 개발한 아티팩트에요.”

     

    아셀라를 바라보며 스킬을 발동했다.

     

    ‘오.’

     

    다음 순간, 상태창에 결과 사진이 직접 나타나 있었다.

     

    설마 진짜로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원리인가. 필름도 필요 없나?

     

    에이, 아니겠지. 상태창이 내 시야를 인식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자.

     

    ‘뿌옇네.’

     

    대략적인 아셀라의 내부 구조라고 할까, 형체는 보였지만 화질이 영 좋지 않았다.

     

    ‘아셀라의 체형은 작고 마른 편이고, 지금은 0.1초 정도 노출이었으니 이 느낌이면 전류 200mA 정도로 가정해도 되겠어.’

     

    실제 장치와 계기판이 있는 게 아니라서 어느 정도 눈대중으로 계산을 해야 한다.

    불편하긴 해도 있는 게 어디야.

     

    촬영을 이어간다.

    노출 시간을 조정하며 아셀라의 자세를 여러 번 바꿔본다.

     

    특히 그녀가 주로 불편해하는 복부는 세심하게 촬영을 진행했다.

     

    “완료됐습니다.”

     

    “끝났어? …예쁘게 나왔니?”

     

    “예. 8번과 9번 갈비뼈가 이쁘시네요.”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궁금하시면 나중에 수정구에 녹화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진찰은 여기까지입니다. 결과 판단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주세요.”

     

    내 선언에 아셀라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다야? 나를 잠옷으로 갈아입혀 사진까지 찍어놓고?”

     

    “검사 끝났으니 더 있을 건 없죠?”

     

    “나가.”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재촉하지 마세요.”

     

    왕진가방을 챙기니 아셀라가 무관심하게 나에게 말을 던졌다.

     

    “공자, 그러는 네 몸은 어떠니? 피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거든.”

     

    “사룡의 저주를 맞았으니 그럴 만하죠. 잘 모르시겠지만 일반인은 황녀님만큼 마력이 없어서 그런 주문에 저항을 못 해요.”

     

    “그때 좀 더 고통스러워하게 내버려 둘 걸 그랬어.”

     

    “아이구, 황녀님이 그래서 기쁘시다면야.”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뻔뻔하구나.”

     

    “절 철판 위에서 구우실 생각은 아니시죠?”

     

    “어떨 것 같아?”

     

    비슷한 엔딩도 있었습니다.

    물론 진행시키겠지요.

     

    사담은 여기까지.

    어쨌든 이번 건은 이번 건이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이를 가는 아셀라에게 말했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요. 감사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황녀님.”

     

    아셀라는 못마땅하게 나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난 잘 거야.”

     

    환자의 휴식은 소중하게. 물론 자리를 비켜드려야지.

     

    나는 아셀라의 방을 나섰다.

     

     

     

    ***

     

     

     

    “이게 뭘까.”

     

    엑스레이로 살핀 아셀라의 신체.

    뼈에 문제가 없는 건 뭐, 당연했지만.

     

    내장은 역시나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색반전을 해 보기 쉽게 표시하고 사진을 살핀다.

    척추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쪽 좌측, 시커먼 것들이 가득하다.

     

    “게오르크가 말했던 그건가.”

     

    아셀라에게 흑마술로 주입된 영혼이나 저주, 그런 종류다.

     

    “이게 대가의 근원이야.”

     

    재능에 따라오는 디버프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첫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명확한 부위를 알기는 힘들고 병명도 모르겠어.”

     

    무심코 관자놀이를 눌렀다.

    좀 더 상세한 검사가 필요하다.

    더 높은 수준의 스킬이.

     

    하지만 이게 무엇이든 간에.

     

    “적출해야 해.”

     

    해야 할 일은 확실했다.

     

    나는 아셀라를 짼다.

     

    상태창을 열어 망설임 없이 [수술] 스킬을 습득했다.

     

    “이 수술은 혼자서는 불가능해.”

     

    단순한 외과 수술도 아니고 흑마술이 얽혀있는 복잡한 상황이다.

     

    준비물도 많이 필요하다.

     

    정확한 병명은 의학 스킬을 더 올리면 알 수 있겠지.

     

    그때까지 준비할 건.

     

    “의료팀을 만들어야겠어.”

     

    우선 간호사부터.

     

    나는 내의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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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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