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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석탄거래소의 3층 응접실.

         

       팔짱을 끼고 토라진 조카 앞에 삼촌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거 참, 미안하구나. 네게 다 맡긴다고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게 돼서. 하지만 말이다. 일이 어쩌다 보니…….”

       “거짓말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잖아요.”

         

       그때, 아래층에서 와 하고 함성이 들렸다.

       석탄거래소 전체가 들썩였다.

       일부는 오열하는 것 같았다.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건물 전체를 흔들었다.

         

       다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듯했다.

       그럴 것이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줄 알았는데, 살아남은 것이다.

       그것도 하던 일 그대로 하는 조건으로.

         

       피에르는 그의 모자를 손에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아냐, 생각해보렴. 애초에 이곳에 우리 직원들을 수십 명 파견할 여력이 어디 있니? 그 비용은? 그들을 교육할 여건은? 또, 그들이 자리 잡을 기간 동안 일어날 혼란은? 저들을 그대로 고용하는 게 최선이란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설명했으면 좋았잖아요. 이게 뭐예요. 저 혼자. 지난 며칠 동안 저 사람들이 절 노려보는 눈빛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알아요?”

         

       투덜거리는 아나이스를 보며 피에르는 미소지었다.

         

       “덕분에 예상 인건비를 70% 가까이 줄였지 않니. 처음부터 협상하자는 식으로 나갔다면 30%도 못 줄였을 거다. 네가 살벌하게 다 자르겠다고 나서니까, 나의 등장이 그들에게 구세주처럼 여겨지게 된 거지.”

         

       아나이스는 불만이 많았지만, 그의 말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이쪽이 아쉬운 게 있다는 태도를 보이면 거기서 뭔가 더 뜯어낼 건 없을까 궁리하는 게 상업의 세계였으니까.

         

       “이게 바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기’라고 한단다. 협상의 기본 기술이지. 상인이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협상을 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해. 설사 사막을 헤매다가 간절히 원하던 물을 들고 누군가 나타나 금화를 요구해도, 일단 딱 팔짱 끼고 여유로운 척하며 말하는 거지. ‘내가 그걸 왜 사야 하는데요?’라고 말이야.”

         

       그의 말에 아나이스는 화내던 것을 가라앉히고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밀고 당기기.

       비슷한 말로는 채찍과 당근.

         

       알고 있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건 몰랐다.

         

       집 안에서 서류만 읽고 있었다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네 공이 컸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광산권은 상회의 직원들 수십 명이 몇 달은 달라붙어야 할 텐데, 그걸 혼자서 다 처리하다니.”

       “혼자가 아니에요. 다른 직원분들도 몇 분 계셨고, 거기다 마르스…….”

         

       아나이스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마르스는 음지에서 베르그송 상회를 돕는 해결사였다.

       그는 정보 탐색과 소문 추적의 전문가였다.

       이번에 그녀가 복잡하게 얽힌 광산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뛰어난 머리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의 정보 지원 덕이 컸다.

         

       같이 모여서 샴페인이라도 터트리면 좋으련만,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이름이 뒤에서 불리는 걸 싫어했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세상 어디에 있든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만약 대중들이 그의 존재와 이름을 알게 된다면, 그는 아마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 때문에 잠자는 것조차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숨기고 살았다.

       그의 이름을 아는 것도 상회 내에서 오직 세 사람뿐이다.

       제랄과 피에르 그리고 아나이스까지.

         

       보통 다른 사람들은 ‘사냥개가 물어온 정보’나 ‘사냥개가 추적에 들어갔다’라는 식으로 그를 언급했다.

         

       “……어쨌든 다른 분들 도움도 컸어요.”

       “후후, 너무 겸손 떨 거 없다. 철가면의 카리스마에 저들이 겁먹은 덕분이니까.”

         

       철가면.

       아나이스는 눈가를 찌푸렸다.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철가면이 뭐예요. 철가면이! 저 같은 소녀의 별명으로 너무 무시무시하지 않나요?”

       “허허, 네 그 마스크가 ‘밀기’의 효과를 키운 건 사실 아니니? 어린 애의 얼굴로 위협했다면 제대로 먹혔겠니? 철가면 덕분에 분위기 조성이 잘 됐고, 덕분에 내 ‘당기기’가 바로 먹혀든 거지.”

         

       그렇게 이번 일에 대한 사후 평가를 나누는 둘.

         

       얼마 안 있어 석탄거래소의 소장이 올라왔다.

       그는 내려간 지 30분도 안 됐는데 술에 취해서는 흐느적거렸다.

         

       “하하, 원래 송별회 용으로 사뒀던 케이크죠! 지금은 축하용! 으하핫!”

         

       그는 피에르와 아나이스 앞에 각각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놓고 다시 파티를 즐기러 갔다.

         

       아나이스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흘겨봤다.

         

       술에 취했기 때문일까.

       그는 아나이스가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그녀는 식사 대신 등에 꼽힌 관으로 영양액을 주입받고 있었다.

       그렇게 된 것은 작년부터였다.

         

       5살 때, 처음 마스크를 썼을 때만 해도 기계는 하루 2시간 정도 호흡을 보조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그녀의 폐는 점점 약해졌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던 작년부터는 아예 한시도 떼놓고 있기 힘들어졌다.

         

       물론 작정하고 식사를 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호흡기를 뗀다고 바로 폐가 활동을 멈추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그 과정에의 번거로움과 어쩌다 한번 식사를 하려고 했을 때, 위가 놀라서 경련을 일으켰던 것을 생각하면 아예 포기하는 게 편했다.

         

       이제 그녀는 달콤함이, 짭짤함이, 씁쓸함이 뭔지 잊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혓바닥을 간질이는 것은 금속 필터를 통해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뿐.

         

       “아냐…….”

         

       이렇게 금속 장치에 묶여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하는 걸까?

       다른 사람과 온기를 나눌 일도 없이?

       그게 내 운명일까.

         

       “아나이스.”

         

       뭐가 상계의 재녀야.

       뭐가 철가면이냐고.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원하는 건 그저……

         

       “아나이스!”

         

       삼촌의 외침.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딘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삼촌.

       그의 눈빛이 순간 아래를 향하는 것을 봤다.

         

       아나이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손에 쥔 포크가 케이크를 찌르다 못해 짓뭉개고 있었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휘적거리다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들어가며 화풀이를 하고 만 것 같다.

         

       그녀는 케이크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접시가 불안하게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흥분은 가라앉았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피에르가 손수건을 건넸다.

         

       “눈물 닦으렴.”

       “아.”

         

       아나이스는 마스크 윗부분을 만졌다.

       그곳에는 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것이었다.

         

       “예쁜 얼굴 다 망가지겠다.”

       “……저 별로 안 예쁜데요.”

       “또, 또.”

         

       아나이스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비비적거렸다.

       조금 아프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눈물을 닦아냈다.

         

       피에르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좋겠다. 좋겠어. 울보라서. 미래의 남편이 보면 뭐라 하겠니?”

       “……제가 결혼할 것 같아요?”

       “독신주의냐?”

         

       피에르의 짓궂은 질문에 아나이스는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저랑 결혼하겠냐는 말이에요…….”

         

       아나이스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마스크에는 특수 비율로 조성된 공기를 주입하기 위한 관이,

       등에는 흉강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도록 기압을 조정하는 관이,

       옆구리에는 영양액을 주입하기 위한 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코와 입을 덮은 금속 마스크에서는 필터 사이로 공기가 새는 소리가,

       뒤편의 기계에서는 동력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났다.

         

       “쯧쯧, 눈빛 봐라. 그래서야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도 잡을 수야 있겠니?”

       “……그냥 잡으면 되죠.”

       “연애란 게 그렇게 쉽게 되면 누가 고생하겠니? 연애도 상술하고 같단다. 아까 말한 밀고 당기기 말이다. 그건 남녀 사이에서도 중요해.”

       “그냥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피에르는 원 순진한 소리 다 들었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남녀 사이도 협상이랑 비슷하단다. 상대를 밀고 당기고 손에 쥐고 흔드는 그런 기술이 필요하지.”

         

       그가 주먹을 불끈 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으깨는 시늉을 취했다.

       아나이스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삼촌은 숙모랑 르나르 언니한테 꼼짝 못 하잖아요.”

         

       그녀의 말에 피에르의 주먹에 힘이 풀렸다.

       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크흠, 그으, 그건 말이다…….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까? 다른 모든 걸 잃는다고 해도 아깝지 않은 것 말이다.”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 다른 모든 걸 잃는다고 해도 아깝지 않은 것에는 말이죠……?”

         

       꿈꾸는 듯한 아나이스의 눈빛.

         

       피에르는 이제 위로는 충분하다 여겼다.

       그래서 현실적인 조언을 추가했다.

         

       “아냐, 그걸 기억하거라. 사막을 헤매다가 누군가가 네 앞에 정말 간절히 원하는 물을 들고 나타난다면, 그 안엔 독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는 걸.”

         

         

       ***

         

         

       뭔가 쾅 하고 부서지는 소리에 놀라 아나이스는 잠에서 깼다.

       그녀는 눈을 끔뻑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메트로폴 호텔의 한 객실에 마련한 자신의 집무실.

       시간은 햇빛이 남쪽 창으로 각을 세우고 들어오는 늦은 오전.

         

       그녀는 일하던 도중 깜빡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고 말았다.

         

       구석에선 그녀의 경호원인 총사 포르슈 경이 그녀를 바라보며 슬며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자고 있던 모습을 쭉 지켜본 모양이었다.

         

       “제가 얼마만큼 잤죠?”

       “30분 안 됐습니다.”

         

       많이 잤군.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은 서류 뭉치를 바라봤다.

       자기 전까지 그녀가 확인하던 것이었다.

         

       탄광 경영의……, 석탄 매장량 추정치……, 저탄소(貯炭所) 건축…….

         

       베르그송 상회에서 관리 중인 어느 광산 지대.

       거기서 올라온 서류를 검토하다 그만 잠들고 말았다.

         

       그래서였나. 그런 꿈을 꾼 것은.

         

       10살 때 있었던 몇 주간의 외출.

       저택 밖으로 나다닌 일이 적은 아나이스에게 있어서 그건 몇 안 되는 소중한 추억 중 하나였다.

       몇 안 되는 그것들에 그녀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는 게 우스웠지만.

         

       “방금 소리는 뭐였죠? 포르슈 경이 낸 건가요?”

       “서커스단에서 무슨 연습을 하는 것 같더군요.”

         

       그가 창밖으로 턱을 가리켰다.

       아나이스는 창으로 다가가 정원을 내려다봤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 가꿔져 있던 녹음이 온통 흙으로 뒤범벅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폭죽이나 폭약 같은 뭔가가 크게 터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나이스는 재빨리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찾았다.

       그녀가 찾는 사람의 모습은 금방 눈에 띄었다.

         

       금발에 검은 정장을 입은 잘생긴 청년이 폭발이 일어난 곳 근처에 있었다.

       정장과 망토가 더러워지기는 했으나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다행이라고 막 미소지으려는 순간.

       그녀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망토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드는 보라색 머리의 여인 때문이었다.

       거미 여인, 유라크네.

       서커스단의 단원 중 한 명.

         

       아마 폭발의 순간, 그가 그녀를 망토로 감싸서 보호한 모양이었다.

         

       끼긱.

       아나이스의 손가락이 창문을 가볍게 할퀴며 오므라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1년 8월 15일
    -까마귀맛쿠키 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에서도 뵈었으면 합니다!
    -핑키빈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더 재미있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비공개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장문의 평가와 응원!! 글이 막힐 때, 두 번이나 읽었습니다!! 덕분에 힘이 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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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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