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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 * *

       

       

       여느 날처럼 빨갱이가 지배하던 지역을 순시하며 민심을 다스리며 바쁘게 돌아가던 어느 날.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

       

       

       “내 손녀가 어느새 이렇게 커졌구나. 흐흐흑. 내 손녀가 맞아.”

       

       

       덴마크의 다우마.

       

       그러니까 니콜라이 2세의 아버지이자 선대 차르인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인 마리 소피 프레데리케 다우마가 모스크바까지 찾아왔다.

       

       이 사람, 자매의 아들이 영국의 조지 5세였지.

       

       닮아서 니콜라이 2세가 살아 있는 줄 착각했다고 들었다.

       

       실제 역사에서 내전의 참화에 영국의 도움으로 러시아에서 탈출했다는데, 이 바뀐 역사에서는 이렇게 다시 재건 중인, 모스크바까지 찾아올 수 있었다.

       

       직접 찾아와서 울면서 내 손까지 잡아주고 있다.

       

       아 예카테린부르크까지 빨리 런할걸.

       

       

       “하.할머니?”

       “그래. 내가 네 할미야. 어린 것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흐흑.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죽고, 자매와 남동생이 죽는 것을 봤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괜찮은데 말이다.

       

       나는 직접 시체를 보지 못했거든.

       

       그 개과천선한 볼셰비키 놈들이 내가 못 보게 알아서 해줬으니까.

       

       나중에 모든 것이 정리된 후에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다른 곳으로 이장할지 결정하게 되겠지만.

       

       진짜 아나스타샤라면 놀랐겠지만 나는 아니란 거지.

       

       

       “할머니 전 괜찮아요.”

       “어린 것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직접 그 여린 몸을 끌고 볼셰비키와 싸웠느냐. 흐흐흑. 이 할미가 너를 위해 조지를 설득했단다.”

       “그래요?”

       

       

       영국이 도와 준 이유 중 하나가 이 사람이 도와서인가.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이거 기분이 좀 그런데.

       

       나 이래 보여도 일단 속은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진짜 아나스타샤도 아닌데 이런 건 좀 그러네. 뭔가 양심에 찔린다고 해야 하나.

       

       

       “혼인할 생각은 없는 거니?”

       “혼인이라뇨. 그런 거 할 만큼 러시아 사정이 좋지 못합니다.”

       

       

       뭐 비즈니스적 혼인이라면 해볼 만 하겠지만.

       

       그럴 만한 인간이 없지 않냐는 거지.

       

       독일에는 이혼한 요아힘이 있다지만 나이 한참 많고. 영국도 그리 뭐 썩 괜찮은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즈니스적 결혼이라고 해도 차리나의 위신을 떨어트릴 신랑감이면 곤란하다는 거다.

       

       

       “그럼 후계는 어떻게 할 생각이니?”

       “키릴 대공의 아들인 블라디미르가 있지 않습니까.”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

       

       니콜라이 2세가 죽고, 미하일은 암살에, 알렉세이도 처형되자, 생존한 황족 중, 다음 황위 서열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

       

       아나스타샤의 생존으로 많이 바뀌긴 했지만.

       

       내가 아는 역사대로라면 그에게 아들인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란 대공이 있는 것으로 안다.

       

       물론 지금은 어린아이이지만.

       

       차라리 지금은 어린 블라디미르를 다음 후계로 삼는 게 좋겠지.

       

       지금 뭐 이미 한바탕 혁명으로 죄 죽고, 황위 계승이 지랄 난 상황에서 전러시아의 성녀이자 차리나인 내가 후계로 삼겠다는데 어쩔 것인가.

       

       굳이 왕가 결합이 아닌 귀족 가문과도 혼인할 수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내가 형편 좋은 처지는 아니란 거지.

       

       적당히 내전만 끝내려고 빠지려고 했더니 차리나로 올리지 않나. 심지어 콘스탄티노플까지 탈환해 버렸다.

       

       평화시대라면 모를까.

       

       앞으로 대공황도 대비해야 하고, 입헌군주제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뜯어고칠 점이 많다.

       

       그나마 적백내전으로 한바탕 갈아엎어진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던걸지.

       

       

       “네 아버지가 못한 것을 네가 다 책임질 필요는 없단다. 그런데 왜 그리.”

       “그럴 능력이 되면 하는 게 맞습니다. 이번 내전에서 제가 승리했지만, 언제든 다시 저들은 다시 붉게 물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이걸 단속하겠습니까.”

       

       

       지금은 확실히 입헌군주제를 다져둬야 할 때다.

       

       모두가 차리나로 떠받드는 지금 내가 도망치면 또 어디론가 튄 트로츠키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그도 아니라면 제2의 레닌, 스탈린 등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

       

       애초에 진짜 아나스타샤도 아니고.

       

       

       “이 할미가 도울 일은 없겠느냐.”

       “영국과의 관계 유지에 힘써 주시면 될 듯합니다. 그리고 입헌군주제를 해야 하는데, 영국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거 같아서요.”

       “그래. 내 영국으로 가서 직접 말해 보마.”

       

       

       할머니는 그렇게 손녀를 위해 무엇이든 해 줄 것처럼 다시금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놈들이 형섬국가기는 해도. 입헌 군주제국가 아니냐고.

       

       나는 영국놈들에게서 그 점은 본따도 된다고 본다.

       

       적어도 지금의 러시아에는 필요한 거지.

       

       일단 지금은 핀란드에 있는 키릴 대공에게는 후계 후보로 블라디미르도 생각 중이라고 소식을 보냈다.

       

       그리고 국내가 안정되면 그때 귀국하라고 알렸다.

       

       자, 그럼 다음은 대관식이다.

       

       만주 분할 협정과 더불어 대관식 문제는 지금 러시아에 가장 필요한 것이었으니.

       

       

       “대관식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콘스탄티노플에서 대관식을 치르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황족들이나 귀족들이 다시 러시아로 돌아오고 있으니. 뭐.

       

       진짜 그놈들 때문에 대관식도 오래 걸리고 있다.

       

       아무렴 군대만 있는 곳에서 대관식을 치를 순 없으니까. 표면상으로는 제대로 제정 시절의 위용을 갖추잔 거다.

       

       

       “예. 이미 안톤데니킨 대장이 휘하 백군을 시켜 콘스탄티노플에서 오스만의 물을 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그 사람 진짜 열심히 하네.

       

       아무래도 자기 휘하에 있던 표트르 브란겔에게 밀리는 건 조금 그런 모양이다.

       

       하다못해 제2의 로마에서 오스만 물을 빼겠다 그거지.

       

       

       “이스탄불이라고 부르던 것을 전부 폐지해 버리고 콘스탄티노플로 부르는 쪽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오스만에서는 이스탄불이라고 불리는 그곳.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니예, 콘스탄티누폴리스 등등.

       

       이렇게 다양하게 불리고 있지만. 슬라브어 권에서는 황제의 도시로 차리그라드로 불리기도 했다지.

       

       

       “슬라브어권에 맞게 황제의 도시. 차리그라드로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콘스탄티노플이 아무래도 어감이 좋지 않겠습니까. 차리차도 차리나로 부르지 않습니까.”

       

       

       어차피 부르기 쉬운 대로 하는 게 좋은 법이지.

       

       인간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의 감성이 있지 않냐?

       

       

       “대칸이시여.”

       

       

       이 자리에서 나를 대칸이라 부르는 사람은 유일했다.

       

       그리고리 세묘노프.

       

       대관식 문제로 두마에 당당히 참여한 인물인데, 저 사람 눈이 지금은 마약에 취한 눈 같다.

       

       저 인간 또 저런다.

       

       

       “왜요.”

       “탱그리의 화신이자 몽골제국의 대칸이시여.”

       

       

       무슨 밑밥을 까려고 이 인간이 이러고 있나.

       

       지금 러시아에서 제일 국뽕. 환뽕에 빠진 인간이 이 그리고리 세묘노프다.

       

       실제 역사와 달리 일본과 붙어먹지는 않았지만, 백군의 승리, 몽골제국의 대칸, 콘스탄티노플 수복까지 이어지니 저 인간 눈이 아주 기묘하게 비틀려 있다.

       

       초점이 맞지 않고 눈동자가 위아래로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불안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다.

       

       대체역사 소설 보면 운게른이 미친 남작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운게른이 정상이고 그리고리가 저렇게 미친 광인인가.

       

       

       “말씀하세요. 뭡니까.”

       

       

       이 사람이 이러면 뭔가 무서워.

       

       

       “본디 차르의 칭호는 카이사르에서 따온 것이며 황위 계승자라는 뜻. 황제 그 자체가 아닙니다. 즉, 러시아 제국의 차르는 진정 제국의 주인을 뜻하는 호칭이 아닙니다!”

       

       

       오. 뭔가. 뭔가가 오고 있어.

       

       이 그리고리 세묘노프란 사람 뭔가 미친 말을 할 거 같다.

       

       

       “아니, 이자가 돌았나!”

       “어허, 두마의 분들도 끝까지 제 말을 들으십시오. 이제 옛 동로마의 땅을 수복하였으니, 러시아 정교회의 축복을 받으며 마땅히 전지전능한 로마제국의 황제 임페라토르라 불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라면 동로마 땅만 수복했으니 바실레우스가 맞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지. 뭐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뭐 결국 슬라브어권을 떠나 옛 호칭을 그대로 따온다면 그렇다는 거다.

       

       

       “어, 음, 그럼 몽골 대칸 겸직한 것처럼 비잔티움 황제를 겸한다고 하면 되겠죠 뭐. 음.”

       

       

       그래. 그냥 그렇게 하자.

       

       러시아 차르 겸, 몽골 대칸 겸, 비잔티움 황제.

       

       그리스 반응이 가장 궁금하긴 하네.

       

       굳이 지금 상황에서 로마의 정통성을 따지자면 결국 그리스와 러시아가 거론되는데, 내가 뭘 알아야 말이지.

       

       속이 한국 출신인 건 적당히 흘려넘긴다 해도 내가 과연 러시아가 진짜 로마를 계승해서 로마 황위까지 주장할 수 있는지는 좀 의문이긴 한데.

       

       

       “큭큭큭.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중국의 천자군요. 일찍이 대칸의 자리를 겸했던 청 황제의 자리는 이제 의미가 없고, 스스로 중화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어 조선국왕이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가 지금은 일본에 합병당했으니. 마땅히 만주에 피난 온 조선인들을 긁어모아 그들의 황제가.”

       

       

       나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저 사람 앞에서 굳이 더 말했다가는 다음에 또 뭘 갖다 붙일지 모르니까.

       

       저 사람 실제 역사와 달리 살판나니까 더 미쳐 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또 군사적 능력은 있어서 몽골에 툭하면 넘나드는 중국놈들 격퇴하니 저걸 뭐 정신병자로 가둘 수도 없고. 한국사는 대체 언제 배운 거야.

       

       

       “뭐 로마 황제까지 겸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입헌군주제가 되면서 권력을 두마에 이양하셨으니. 전지전능한 황제의 자리를 몇 개를 겸 해서 황실의 명성을 드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일리는 있기는 하다.

       

       권력을 내려놓은 이상,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겠지. 여기에 로마 황제의 자리는 그런 걸 메워줄 테고.

       

       환뽕이라고 하기에는 일리가 있다.

       

       로마. 그 이름에 누가 감히 범접할 수 있겠나.

       

       

       “때마침 일본 외무장관인 우치다 고사이란 자가 만주분할 협정을 맺으려 모스크바까지 왔으니 로마 황제 대관식도 보라고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우치다 고사이?”

       “네. 일본 외무성의 장관으로 만주협정을 위해 예카테린부르크로 직접 왔습니다.”

       

       

       이건 우방국을 만들고 싶은 거라 봐야겠지.

       

       하라 다케시가 우익들로부터 압박받는 것일 수도 있고.

       

       원래는 그 우익들에 암살당할 하라 다케시 총리가 살아남았다.

       

       이건 아마 남만주를 먹을 기회가 찾아와서인가.

       

       

       “일본이 어지간히도 우방국을 만들고 싶은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극동에 영향력을 끼칠만한 나라는 우리뿐이라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놈들 너무 수상한데.

       

       진짜 언제 한번 뒤통수 시원하게 후려치지 않을까 싶단 말이야.

       

       간토 대지진이었나.

       

       간토 대지진에서 조선인 학살 일어나지 않던가.

       

       으음, 미래를 아는 이상 죽을 조선인들은 도와주고 싶으면 돕는 게 좋을 텐데. 한국인 출신도 아니다 보니 도울 방법이 없다.

       

       아나스타샤가 아닌 독립운동가쯤 되어야 빼내든 말든 할 게 아닌가.

       

       빼낼 방법을 찾는 것도 좋지 않나.

       

       괜히 좀 심란하네. 이래서 러시아보다는 한국 쪽 빙의면 좋았을텐데.

       

       

       “음. 뭐 그 문제는 두마에서 알아서 해주세요. 저는 이번에 볼셰비키로 인해 불탄 마을에서 넘어온 고아들에게 배식 좀 하겠습니다.”

       “차르께서 직접 말입니까?”

       “아-직. 대관식 전입니다. 무엇보다 볼셰비키가 마을을 불태운 건 우리와 싸우기 위해 인력과 물자를 벌어들이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 정도는 책임져야겠죠.”

       

       

       그래. 굳이 일본과 협정하는데 나까지 있을 필요도 없지.

       

       민심작이나 하는 것이 낫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축분 문제 및, 다음은 일본 파트도 나와서 끊는 선이 미묘해 이쯤에서 끊었습니다.

    일단 독자분이 알려주신 링크에서 만들어보긴 했습니다만.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 이게 제대로 됐는지 모르지만. 푸른색 빗금 칠한 곳은 아나스타샤가 후일 노리는 마흐노의 아나키스트 자유지구이며, 아래 붉은 색은 앙카라 조약으로 5년후, 투표로 러시아에 통합 예정인 러시아 괴뢰 폰토스 그리스 공화국입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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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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