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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너 이 새끼가! 거기 안 서?!”

       

       힌드라스타가 냅다 옥상 밖으로 뛰어 내리자 디안이 그 뒤를 따라 몸을 던졌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

       

       바닥에 착지해 몇 바퀴 구른 힌드라스타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뭘 잘못했는지 알려줄 테니까 이리 와!”

       

       “미쳤냐?!”

       

       힌드라스타는 죽을 힘을 다해 북문으로 도망치며 생각했다.

       

       저놈이 어떻게 소문의 근원지가 나인지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카데미를 뜨자.

       

       잡히면 최소 죽음이고 도망치면 운이 좋으면 살 수 있어.

       

       저놈이 저번에 말하길 용사가 여기에 없다고 했으니 곧바로 나를 잡으러 온다고 해도 도망칠 시간은 충분하다.

       

       그놈하고 저 디안놈 모두 추적마법 같은 것은 쓸 줄 모르니 여기서 멀리 떨어진 다른 왕국으로 가면 절대 못 찾을 거야.

       

       만약 나를 찾아낼 능력이 있었다면 전쟁 때 몇 달씩이나 나를 쫓지는 않았겠지.

       

       “안 죽일 테니까 멈춰!”

       

       등 뒤에서 디안의 오싹한 외침을 들으며 힌드라스타는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기도 했다.

       

       전쟁 이후 10년 동안 얌전히 잘 살았는데 또 뭐가 그렇게 동해서는 분탕을 친 걸까….

       

       하지만 분탕을 칠 판이 차려져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잖아!

       

       만약 저놈이 그 인간여자랑 단 둘이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멍청한 검둥이귀쟁이년이 내 앞에서 디안을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았더라면 나도 안 그랬지!

       

       훔친 놈도 잘못이지만 훔칠 수 있게 문을 열어둔 것도 잘못이거든?! 그렇잖아!!

       

       그런데 그 다크엘프는 도대체 저런 미친놈이 뭐가 좋다고? 이해가 안 되네. 어쨌든!!

       

       “마지막 기회다! 지금 안 멈추면 나중에는 멈춰도 혼내준다!”

       

       디안의 협박성 회유에 순간 힌드라스타는 멈춰설뻔 했지만 결국 꿋꿋하게 북문을 지나쳐 밖으로 내달렸다.

       

       여기서 곧장 가면 도심지의 동쪽 모퉁이를 통해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거기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면 절대 찾지 못할 거야.

       

       제아무리 디안이라고 해도 보는 눈이 있는 곳에서 예쁘고 귀여운 여학생을 두들겨 패서 머리채를 끌고 가는 만행을 저지를 만큼 지능이 낮지는 않겠지!

       

       물론 디안은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고 그래서 도심지로 들어가기 전에 힌드라스타를 붙잡았다.

       

       “으아악!”

       

       갑자기 저앞에서 점멸해 나타난 디안을 본 힌드라스타가 비명을 지르며 멈춰섰다.

       

       어찌나 급박하게 멈췄는지 땅이 모두 헤집어지며 포석이 도마뱀 비늘마냥 와지끈 일어섰다.

       

       “살려줘요! 교수가 여학생을 강간하려고 해요! 제발 도와주세요!”

       

       힌드라스타가 애타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녀를 도와줄 이는 없었다.

       

       디안에게서 도망치려고 북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던 게 오히려 자충수.

       

       도망쳐? 무릎 꿇어? 뭘 선택하든 결국 디안에게 얻어맞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자 겁을 더럭 집어 먹은 힌드라스타는 급기야 이성을 잃고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힌드라스타가 오러를 폭발시켰다.

       

       전력을 다해 오러를 끌어모으자 힌드라스타의 팔뚝과 목덜미에 핏줄이 거미줄처럼 돋아나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끓어 오른 오러가 핏줄을 타고 흐르면서 힌드라스타의 온몸이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그물에 뒤덮인 것처럼 변했다.

       

       콰직, 콰직, 콰지직!

       

       오러의 중량을 견디지 못한 포석과 바닥이 움푹움푹 꺼져 들어갔고 핑크색 양갈래 머리는 용암의 화염처럼 거꾸로 활활 타올랐다.

       

       [더는 이런 식으로는 못 살아!!!]

       

       힌드라스타가 인간의 몸으로 드래곤로어를 내지르자 인근의 숲에서 새들이 깍깍대며 일제히 날아 올랐다.

       

       폴리모프한 연약한 여자의 몸이나 그 안은 강대한 화이트 드래곤.

       

       진심으로 힘을 낸다면 어느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따악!

       

       “끼에엑!”

       

       오러를 찢고 들어온 디안의 손가락이 힌드라스타의 이마를 때렸다.

       

       골을 흔드는 충격에 휘청이던 힌드라스타는 가까스로 균형을 회복했다.

       

       만약 오러를 두르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기절….

       

       따악!

       

       두 번째 딱밤에 힌드라스타가 기어이 쓰러졌다.

       

       

       # # # # #

       

       

       약 삼십 분 후 우리는 아카데미로 복귀했다.

       

       “빼애애애애앵!!”

       

       뒤에 따라오는 힌드라스타가 우느라 굉장히 시끄럽다.

       

       그러길래 누가 어줍잖게 분탕질하래? 분별력 떨어지는 드래곤 같으니.

       

       일단 이것으로 당분간 저 녀석 입 다물게 하는 건 성공했고.

       

       이제 흙탕물이 된 분위기 다잡고 애들 심리전 관련으로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펠레미아. 나랑 일 좀 같이 하자.”

       

       “어떤 일인가요?”

       

       교수실에 방문하자 펠레미아가 안경을 고쳐쓰며 미소를 지었다.

       

       “소피에 학생 관련인데, 이거 심리전 과목 실습으로 편성하자고.”

       

       “어떤 말씀이신지 대충 알겠네요. 유언비어 유포상황에 대한 대응이죠?”

       

       “정확해. 어떻게 알았어?”

       

       “이 짓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 눈만 봐도 대충 속내를 알 수 있어요.”

       

       “앞으로 네 앞에서는 눈 감고 다녀야겠네.”

       

       “그래도 다 아는 방법이 있죠. 여튼, 어떤 방식으로 하시게요?”

       

       나는 펠레미아에게 내가 생각해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펠레미아는 괜찮은 생각이라며 거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점점 구체화해 나갔다.

       

       그런데 펠레미아가 조금 과하게 계속 이것저것을 물으며 눈을 마주치려고 한다.

       

       왜 이러나 싶어 눈을 마주치자 갑작스럽게 날카로운 무형의 무언가가 쏘아져 들어오다가 튕기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펠레미아가 움찔하면서 뒤로 조금 물러났다. 스읍, 저거… 나한테 기술 쓰네.

       

       내가 자신의 기술을 막아내자 펠레미아는 그 뒤로는 나와 단 한번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 # # # #

       

       

       “이스메라 교수님. 우리 잠깐 얘기 좀 하죠.”

       

       이론학과 수석교수실에 가자 이스메라가 불결한 전염병이라도 옮는 것마냥 기겁하면서 빠르게 뒷걸읆질을 쳤다.

       

       “들어오지 말아요!”

       

       “예?”

       

       “거기서 이야기하세요!”

       

       반응으로 봐서는 이스메라도 애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의 일부를 들은 모양이다.

       

       “내일 학생 전부를 대강당에 모아놓고 교육을 좀 하려고 하는데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건 교장님께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저는 확실히 말씀 드렸어요.”

       

       이스메라의 교수실을 나와 곧바로 교장실로 가니 키르린이 벌떡 일어나 웃는 낯으로 나를 맞이했다.

       

       원래라면 엘프인 이스메라와 다크엘프인 키르린의 반응이 서로 뒤바뀌어야 정상인데.

       

       “디안! 무슨 일이야?”

       

       “교장님. 내일 학생 전부를 대강당에….”

       

       “그렇게 해.”

       

       다짜고짜 키르린이 찬성했다. 

       

       “엥? 아직 말도 안 했는데요?”

       

       “이번 일에 대한 오해를 풀려는 거잖아? 그거라면 나는 대찬성이야.”

       

       그러며 키르린이 얼굴을 붉히고 귀를 추욱 늘어뜨렸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보이는 게 상당히 귀엽다.

       

       다음날, 나는 키르린에게 보고한 대로 학생과 교직원 전원을 대강당으로 집합시켰다.

       

       단상 위로 올라가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느라 잠시 침묵했다.

       

       “조요오오오옹!!”

       

       하지만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오크 브로그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전투함성을 내질렀다.

       

       그 무시무시한 함성에 학생들이 핏기가 싹 가신 채 입을 다물었고 일부 이론학과 교수도 휘청이며 주저앉을뻔했다.

       

       “나 전투수석은 여러분에게 실망했다.”

       

       강당이 조용해지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고작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동안 불철주야 해왔던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 기분이야.”

       

       전투함성에 혼이 쏙 나간 학생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요즘 이상한 말이 돌고 있던데. 그게 무슨 말인지는 직접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학생들을 한번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해당 내용은 전투학과에서 일부러 교내에 흘린 유언비어다.”

       

       “헉…?!”

       

       어디선가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분은 심리전 수업 때 ‘선동’에 대해 배웠을 거다. 거기, 너.”

       

       “네, 넵…!”

       

       앞줄에 앉아 내게 지목당한 학생이 바짝 긴장하며 일어났다.

       

       “선동이 뭐지?”

       

       “나, 남을 부추겨 어떤 일이나 행동에 나서게끔 하는 것입니다…!”

       “여론조작은?”

       

       “개인이나 집단이 개인의 사적인 목적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사실 왜곡이나 허위 사실 등을 통해 여론을 왜곡시키는 행위입니다!”

       

       “잘 알고 있는데!!”

       

       소리치자 학생들이 움찔했다.

       

       “장차 제국의 핵심요원으로 활약할 특수임무 아카데미생들이 대체 왜 그런 허무맹랑한 헛소문에 속아 넘어간 거지? 누구 하나 심리전 수업 때의 내용을 상기해 일말의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전투수석은 실망스럽다. 너희들 여기 끌려 왔어?!”

       

       “아닙니다!”

       

       “교수님!”

       

       그때 누군가 용감하게 손을 들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건 다 이해했어요.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디안 교수님과 졸업1반장이 같이 있던 것을 목격했어요.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설마 그것마저 이 모든 것을 위한 연기였다고 하시지는 않으실 거죠?”

       

       “당연히 아니지. 그건 사실이니까.”

       

       “꺄아아악! 말도 안 돼!”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동안 나는 아카데미 수석인 나이틀리 학생을 대상으로 심화과정을 가르쳐 왔다. 매우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는 학생이 나이틀리뿐이었고 일부 특혜로 비춰질 수 있어 지금껏 비밀로 해왔던 거야.”

       

       “심화과정이라고요? 야간침투, 브룬고원 야생마, 아카데미 동문 트롤 모두 다 말씀이신가요? 증거가 있나요?”

       

       “여기 전투학과 교수들이 증인이지. 웨이버 교수, 애나 교수, 오렌디 교수.”

       

       내가 호명한 교수들이 각자 나와 그 모든 현장에 자기들이 동참했음을 증언하자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알겠나? 너희들은 모두 속은 거야. 본 전투수석이 부임 이후 혼신의 힘을 다해 개편해 왔던 모든 것들이 무색하게 말이지.”

       

       학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떨궜고 웃기게도 내 옆에 선 키르린도 자아비판이라도 하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실습용 목검의 끝을 단상 바닥에 딱 내리찍으며 말했다.

       

       “아직 유언비어를 유포해 아카데미를 혼란에 빠뜨리는 주동자는 활동하고 있어. 여기서 본 전투수석은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학생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자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수업 때 배운 내용들을 응용해서 진실을 가려내고 주동자를 찾아내는 것이 전반기 심리전 실습이다. 찾아내는 사람에게는 전반기 심리전 과목 만점을 주겠다. 시험은 당연히 제외.”

       

       “마, 만점?!”

       

       “다만 확실한 근거를 가져와야겠지. 생사람을 잡는 것은 원하지 않아. 기한은 다음주까지. 아카데미의 규모와 인원수를 고려하면 일주일이면 충분해.”

       

       펠레미아는 점수가 짜기로 유명해서 지금까지 심리전 과목에서는 만점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유언비어 유포자를 찾으면 시험도 안 보고 만점을 받는다고 하니 이 정도면 상당히 파격적인 보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이 흥분해 서로 떠들면서 강당이 소란스러워졌다.

       

       이번 소동의 근원은 나와 나이틀리의 애매모호한 관계.

       

       그것을 전투학과 교수들까지 직접 나서서 해명하면서 전혀 신빙성이 없는 허무맹랑한 개소리가 되었다.

       

       그런고로 학생들은 내가 일부러 실습 목적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거짓말을 진짜로 믿게 될 것이고 거기에 파격보상을 제시했으니 이제 눈에 불을 켜고 주동자를 찾아 나서겠지.

       

       물론 힌드라스타를 주동자로 지목하는 학생은 아마 없을 거다.

       

       힌드라스타는 내게 걸릴 때를 대비해 도망칠 구석을 미리 만들어 놨고 힌드라스타의 본래 성향을 모르는 학생들이 그것을 알아챌 리 만무하다.

       

       대신 주동자를 찾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유언비어 유포로 사회 혼란을 조성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빠르게 터득할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해.

       

       다른 전투과목과 달리 심리전은 어떻게 실습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이렇게 또 좋은 기회가 올 줄은 몰랐네.

       

       “자, 잠깐! 지금 무슨 소리예요!”

       

       저쪽에서 나이틀리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다른 애들의 소리에 묻혀 더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한테 할말이 있으면 나중에 따로 오겠지.

       

       그럼 이제 어느 정도 상황을 정리했으니 나는 라이너스네 집에 놀러 갈 준비를 해볼까?

       

       당장 내일 주말에 가기로 약속을 했거든.

       

       일단 그전에 저거 머리 한 대 더 쥐어박고.

       

       “왜 때려!”

       

       “얼굴 보니까 또 열받아서.”

       

       강당 밖에서 서성거리는 힌드라스타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자 힌드라스타가 또 뿌애앵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깐만…. 저거 나 없는 사이에 또 도망칠 수도 있는데….

       

       그냥 트롤 감옥에 같이 넣어버려? 하지만 드래곤에게는 마법이 잘 통하지 않는데….

       

       그러면 이번 주말에는 아예 라이너스네 집에 끌고 가야 하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잠깐 쉬어가는 에피 하나 하고 또 진행하겠습니다… 다음 에피는 ‘라이너스네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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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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