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6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같이 온다고 했던가?

         

       『 축복을 받은 분들과 어울려 다니다 보니 우연히 원로 한 분과 연이 닿았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그분이 장으로 있는 구락부(倶楽部)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차기 신관님 이야기를 한 번 꺼내보겠습니다. 』

         

       여동생들이 일본에 올 수 없다고 해서 실망하기도 잠시.

       진성에게서 주술을 받은 정치인 한 명이 진성에게 인맥을 만들어주겠다고 연락을 한 것이다.

       그것도 그냥 인맥이 아니라, 일본에서 흑막 정치로 권력을 휘두르는 ‘원로’와 통하는 인맥을 만들어주겠다고 말이다.

         

       『 원로께서 차기 신관님에게 큰 흥미를 느끼고 계십니다. 만약 그분에게도 축복을 걸어주신다면 큰 뒷배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말씀하신 구락부에 돗토리현 정치인과 사업가들도 여럿 보이니 축제 관련해서 손을 뻗기에 좋으실 겁니다. 축제에 신관으로 참여하는 것은 무리라도 이권 정도는 챙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진성은 그 내용에 웃었다.

       정치인은 그가 돗토리현 권력자들과 접촉하려 하는 이유가 유부 축제를 담당하는 신관이 되어 이권을 마음껏 얻으려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하기야 갑자기 차기 신관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다른 지역 축제에 대해 알아보고 그 지역 권력자들과 접촉을 한다면 저렇게 상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구락부, 구락부라.’

         

       구락부.

       클럽(Club)의 일본식 표현.

         

       하지만 클럽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춤 추고 노는 그런 클럽이 아닌, 동호회 같은 모임의 일본식 표현일 뿐이었다.

       하지만 같은 모임이고 같은 동호회라도 어떤 목적으로 누가 만들었냐에 따라 판이해지는 법.

       일본의 실세 권력자가 만든 클럽, 그것도 정력과 쾌락에 미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를 끼고 사는 정치인을 가입시키는 클럽이라면 그 목적은 무엇일까?

         

       ‘어떤 원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정한가 보군.’

         

       정정한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마녀들만 하더라도 할머니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임에도 젊어 보이는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이 널려있었고, 무인의 경우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수염이 길게 늘어질 나이가 되어도 근육질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몇 권력자의 경우 텔로미어의 길이를 연장하는 시술을 통해 수명 자체를 늘려버리고 노화를 늦추기도 했다.

         

       그야말로 재능이 있고 돈이 넘친다면 수명마저 늘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 원로를 통해 시술을 받을 수도 있겠어.’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어지는 문자를 읽었다.

         

       문자에서는 어디 호텔에서 모임을 연다느니, 바닷가에 세워진 호텔인데 풍경이 기가 막힌다느니, 거기에 어떤 그라비아 모델이 참가하고 어떤 AV 배우가 참가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구구절절 이어지고 있었다.

         

       ‘시술, 시술이라.’

         

       마치 이렇게 대단한 클럽이니 반드시 나와달라는 애원처럼 보이는 문자에 진성은 가겠다고 답을 해주었고, 그러자 기뻐하며 며칠 후에 차를 보낼 것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진성은 그 날짜를 가만히 보고는 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을 최대한 빠르게 구해오게나. 각기 20개씩 구해오면 되네. 작은 단지, 괴황지, 주사, 수은, 오징어 먹물, 살아있는 수탉, 코메미소(米味噌) 덩어리, 새끼줄 뭉치, 새끼를 밴 어미쥐, 하얀색 비단, 박달나무를 태워 만든 재, 작은 크기의 인형들…”

         

       그렇게 한참을 말하던 진성은 무언가 떠오른 듯 켄지에게 물었다.

         

       “참, 이 근처에서 사람 많이 빠져 죽은 곳이 있는가?”

         

         

         

        * * *

         

         

         

       새벽 1시.

       진성은 축지를 사용해 켄지에게 추천받은 다리로 향했다.

         

       다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다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실로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바닷바람에 녹이 슨 것처럼 보이는 붉은 기는 마치 핏자국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조명이 고장이 나서 그런 것인지 원래 없는 것인지는 몰라도 불빛 하나 없고 통행하는 차 하나 없는 다리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새벽 1시라는 음기가 강해지는 시간에다, 바닷가에 만들어진 다리라 그런지 해무(海霧)가 깔려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안개 저편에서 누군가가 손짓을 하면서 사람을 홀리지 않을까 걱정되는 두려운 분위기였다.

         

       진성은 다리에 8m가 넘게 세워진 펜스를 쳐다보았다.

       높게 세워진 펜스의 윗부분에는 철조망과 뾰족한 못이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철조망과 못에는 누군가가 넘어가기라도 한 듯 찢어진 옷이나 말라붙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먼지가 잔뜩 쌓여 있어야 하는 철망에는 군데군데 먼지가 옅은 부분이 있었는데, 최근 누군가가 철망을 타고 올라간 것이 틀림이 없으리라.

         

       ‘아주 좋구나.’

         

       진성은 켄지가 추천해준 것이 맞았다는 생각을 하며 흡족한 듯 웃음을 지었다.

         

       현재 그가 위치한 곳은 오텐고쿠 다리.

       심령 스폿으로 몇 번 방송에 나간 적이 있는 곳이며, 유명한 자살 명소이기도 한 곳이었다. 게다가 이름 때문인지 ‘천국 다리’라는 별명까지 붙어있었고, 밤에는 지역 주민이고 관광객이고 얼씬도 하지 않는 장소였다.

         

       『 오텐고쿠 다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버블 경제 시절에 만든 곳인데 공사 중에 신벌이라도 받은 것인지 인부가 끊임없이 죽어 나갔지요. 우여곡절 끝에 완성이 되었는데 그 이후에도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

       『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외부인까지 와서 하루가 멀다 하고 다리 위에서 바다에 몸을 던졌고, 심지어는 다리를 만든 건설사 사장까지 새벽에 다리에서 몸을 던졌다고 하지요. 그래서 시에서 다리에 자살 방지용 철망을 만들었는데도 꾸역꾸역 올라가서 바다에 몸을 던지고, 철조망을 세워놔도 상처 입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던지고….』

       『 그래서 유명한 음양사와 스님을 데려왔는데 바다에 있는 원혼들의 힘이 워낙 강한데다가 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쉽게 손을 쓸 수 없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리 전체에 원혼이 사람을 홀리지 못하도록 결계를 만들고, 주기적으로 공양을 하고 부정을 정화하고 있습니다. 』

       『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매년 외지인이 찾아와서 다리에서 몸을 던지더군요. 그래서 지역 주민들은 절대 이 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외지인도 이 다리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심령스폿 탐사인지 뭔지 하는 목적으로 오는 나사 빠진 것들이 아니면 밤에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

         

       진성은 켄지가 말해준 다리의 연원을 떠올리며 뿌옇게 일어난 해무를 쳐다보았다.

         

       어둠 속임에도 대낮처럼 뚜렷하게 그 하얀 꿈틀거림이 눈에 들어왔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흘러가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그 모습이 사뭇 섬찟해 보였다.

       그리고 그 해무의 아래에 출렁이는 파도가 있었다.

       파도는 철-썩 철-썩 작게 속삭이며 적막이 감도는 밤을 요란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규칙적으로 번져나가는 그 소리는 계속 듣다 보면 사람의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 같기도 하였고, 누군가가 손등으로 박수를 하는 듯 둔탁한 소리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한참이나 듣고 있노라면 포말을 일으키며 출렁이는 파도의 모양이 점점.

         

       점점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파도가 출렁이고 출렁이며 뾰족하게 솟아오른다. 그리고 하얀색 물거품이 일며 그 모습을 바꾸고, 원뿔이 되었던 파도는 곡선을 그리며 다시 바다에 가라앉는다. 그 위에 해무는 꿈틀거리며 춤을 추고, 흘러가듯 움직이며 안개로 만든 강을 떠올리게 만든다.

         

       철-썩.

       철—썩.

       손등 박수 소리.

         

       철-썩.

       물이 부닥치고 터져나가는.

       그 모양을 바꾸며 하얗게 빛나는 소리.

       조명이 없음에도 하얗게 빛나며 어둠 속에 서 있는 진성의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소리.

         

       철썩.

       파도가 손짓한다.

       철썩철썩 소리를 내며 서로 부닥치며 물로 만들어진 손등을 부딪치고, 하얗게 일어난 작은 손이 박수를 계속 규칙적으로 행한다.

         

       철-썩.

       하얀 손 하나.

         

       철-썩.

       하얀 손 또 하나.

         

       철-썩, 철—-썩.

       하얀 손이 솟아난다.

       조금 전까지는 파도였던 것들이 전부 하얀 손으로 변해 솟아나 손등 박수를 치고, 서로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라도 한 듯 일제히 멀어졌다가 일제히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며 손등으로. 손바닥이 아닌 손등으로 제 손들을 부딪쳐 소리를 내었다.

         

       짝-

       짝-!

         

       그리고 마침내 그 소리가 파도의 철썩거림이 아닌 손끼리 부딪쳐서 나는 소리처럼 들리게 되었을 때, 수많은 하얀 손들이 바닷가에서 더 솟아오르며 일제히 손짓하기 시작했다.

       다리 위에 서 있는 진성을 향해.

       이곳으로 오라는 듯 그렇게 손짓을 했다.

         

       그 오싹한 풍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진성은 뭐가 그리 기쁜지 웃음을 흘렸다.

         

       “노다지로구나.”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