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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0

    <460 – 너무 잘 속인 사람>

     

    <무도회에 입문하자> 중간고사 시험.

    가면무도회.

    초청받은 귀부인들이 잘 관리된 몸매와 부를 과시하며 어린 학생들의 기를 짓누르는 무도회에서 1학년 수강생들은 쭈그리가 되어 있었다.

     

    “다리 가는 것 좀 봐. 저 학생은 무도회에 오기엔 아직 너무 어려보이네요.”

    “저런. 발끝으로 서기가 힘든가봐요. 종아리가 저리 떨리다니 불쌍해라. 시험 보기 힘들 텐데 얼른 쉬게 도와주죠.”

    “그래야겠어요. 저도 얼른 채점하려고요.”

     

    삼삼오오 모여서 채점판을 들고 시험생들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귀부인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학생들을 걱정하는 배려심 깊은 귀부인들이었다.

    물론 시험을 보고 있는 시험생들에게는 사람 피 말리게 만드는 마귀부인들이 따로 없었다.

     

    -너는 다리에 힘도 부족할 정도로 춤 연습을 형편없이 했구나?

    -발끝서기도 못하는 허접한테 뭐 볼 게 더 있다고 기회를 줘? 눈치껏 내려가.

    -네 성적은 조졌단다. 얼른 꺼지렴.

     

    해석하면 눈물이 절로 나오는 폭언의 연속!

    그러나 1학년들은 귀부인들의 앞에서 밀려나고도 쉽사리 다른 장소로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어쩜 좋아. 저긴 제국에서 온 귀부인들이래.”

    “예식점수가 훨씬 깐깐한 그분들?”

    “아… 변방출신 귀부인들도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저길 무슨 낯으로 찾아가냐고…”

     

    입구부터 평가기준이 후한 귀부인들이 포진하고 안으로, 중심으로 향할수록 기준이 가혹해지는 깐깐한 귀부인들이 포진한 가면무도회.

    디스트로이어는 평소라면 얼씬도 하지 않을 무도회장을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았다.

     

    ‘핑크베리로 특정 지을 수 있는 핑크색 머리가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었지.’

     

    귀를 열고 목소리를 하나씩 걸러내는 사이, 1층 무도회장에서는 학생들이 하나씩 걸러지고 있었다.

     

    ‘제법이군. 춤도 이렇게 보니 민첩과 유연성 훈련에 상당히 도움이 되겠어.’

     

    3단계 변방귀족들의 심사조차 넘어서지 못하고 무너지는 학생들과 4단계 제국귀족들의 심사에 가로막힌 학생들과 달리, 유난히 뛰어난 실력을 지닌 학생 한 명이 홀로 5단계 메인홀에 진입했다.

    무두회용으로 가슴 위부터 허벅지 위까지만 덮는 적흑 투톤의 드레스를 흩날리며 속바지가 드러나기를 꺼려하지 않는 거침없는 발놀림.

    심사를 맡은 변방과 제국 귀족부인들의 대표, <무도회에 입문하자> 강의를 가르치는 교수 3인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분당 100스텝의 빠른 템포의 곡에도 10스텝을 더 넣을 정도로 여유가 있네요.”

    “점프, 스핀, 스텝 모두 완벽하네요. 동작을 잇는 코레오시퀸스가 특히 발군입니다. 문화의 집결지, 피렌체 출신이라 그런지 무술과도 조합이 이뤄졌습니다.”

    “흐흫. 이래야 내 제자답지. 4단계는 이만 벗고 5단계 댄싱슈즈에 도전해도 되겠어.”

     

    시선이 중앙에 확 쏠린 덕분에 그 방면으로 향하는 소리를 거침없이 귀에서 지워내며 상당히 많은 소리를 제할 수 있었다.

     

    ‘저기 있군.’

     

    핑크베리 교수는 앙증맞은 트윈테일을 흔들며 드링크를 나르던 웨이터 앞에서 행복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오렌지 맛 말고는 없어?”

    “이미 포도맛, 사과맛, 체리맛, 자몽맛, 망고맛을 전부 드셨습니다.”

    “너 말고 다른 웨이터들도 나르고 있잖아!”

    “변방구역의 웨이터들은 당근주스나 비트주스, 셀러리주스 등의 야채주스를 나르고 있습니다만…”

    “…거긴 됐어! 아무튼 다른 주스를 내놔!”

     

    불쌍한 웨이터를 달달 볶으며 댄스회장에서 애들 입맛의 달달한 주스나 삥 뜯고 있는 모습이 소문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핑크베리 교수는 실제로 신체연령과 정신연령이 모두 낮은 편이라고 했었지.’

     

    교장이 어디서 주워온 괴상한 교수인지는 몰라도 핑크베리 교수에 대한 교내평가는 냉혹했다.

     

    -사교성이 떨어지는 망할 꼬맹이.

    -어떻게 저딴 게 교수?

    -혹시 만날 일이 있거든 동료교수한테 허접좆밥이라는 말은 쓰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사교성이라고는 밥 말아먹은 능력만 좋은 꼬맹이!

    밥맛인데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잘리지도 않는 눈엣가시처럼 성가신 교수!

     

    ‘과연. 이런 이유로 아카데미에 남아있었군.’

     

    행정기록을 열람했던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교장이 핑크베리 교수를 사용해온 방법을 알아차렸다.

     

    -오늘은 강의 나가기 귀찮으니까 핑크베리 교수에게 변장을 시켜서 대타로 내보내겠다.

    -입에서 불 뿜으라고 하면 불도 뿜을 수 있나? 오. 이걸 하네.

    -내일은 날갯짓으로 산불진압하기도 시켜봐야겠다. 불난 곳이 없다고? 그럼 내가 질러둬야겠군!

     

    교장이 땡땡이를 치거나 자기능력을 얼마나 변장으로 모사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써먹는 거의 심심풀이 장난감 취급!

     

    ‘…이건 핑크베리 교수의 성격이 나쁜 걸 탓할 게 아니라 애 성격을 다 버려버린 교장의 잘못이군.’

     

    나라도 저딴 일을 십년 넘게 겪었으면 성격을 버릴 수밖에 없겠어.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일면식만 있고 인사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핑크베리 교수가 부쩍 불쌍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맛있는 음료를 찾는다면 내 집무실로 놀러 와라. 달달한 음료라면 제법 수집해둔 것들이 있다.”

     

    핑크베리 교수가 굉장히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올려다보았다.

     

    “정말?”

    “정말이다.”

     

    츄릅. 입가에 흐르는 침을 슥슥 닦으며 홀린 듯이 따라오려던 핑크베리 교수가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착한아이는 먹을 걸로 꼬시는 어른을 따라가지 않아! 속셈을 말해. 날 집무실로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평범한 대화다. 욕심을 하나 내자면 오크노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군.”

    “오크노디?”

     

    핑크베리 교수의 얼굴에 작은 장난기가 떠올랐다.

     

    “머리도 똑똑하고 상당히 귀여운 성격에 재주도 성적도 뛰어나고 키는 230cm 정도로 쑥쑥 자랄 잠재력이 보이는 그 오크노디?”

    “…!”

     

    천진난만한 목소리와 달리, 그 내용은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230cm.

    고작 133cm의 오크노디를 보면서 그런 비정상적인 성장을 기대할 사람은 상식적으로 아무도 없다.

    심지어 여자에게 그런 큰 키라니.

    사실상 저주나 다름없는 악담이 아닌가.

    그러나 오크노디에 한해서라면 230cm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 그 오크노디.”

     

    오크노디의 스승으로 추정되는 북부대공.

    그의 신장이 정확히 230cm이었다.

    230cm정도로 쑥쑥 자란다는 표현은 일종의 암호.

    그녀가 북부대공의 제자임을 아느냐는 재단관계자의 표현일 가능성이 극도로 높다.

     

    ‘실수했군.’

     

    디스트로이어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재단관계자일 가능성이 높은 레어그릴스 교수를 피해서 핑크베리 교수를 찾아왔는데, 정작 핑크베리 교수도 재단관계자였다.

    심지어 자신이 북부대공 건으로 오크노디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단숨에 핵심을 짚었다.

    이건 과시이자 동시에 경고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좋아. 얼마든지 해줄게. 오크노디에 대한 이야기! 허접좆밥들이랑 이야기하긴 싫지만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허접이 아니니까. 그 아이의 뭐가 궁금해?”

     

    하고 싶은 말이야 있었다.

    교장을 두려워하지 않고 삼대거악의 일축, 재단의 총수 이사장의 손으로부터 해방시켜 오크노디를 자유의 몸으로 만드는 계획에 일조할 생각이 있는지.

    그 아이의 해방이 어떤 식으로 당신에게도 이득이 될 수 있고, 어떤 역할을 바라는지.

     

    ‘쉽게 말할 수 없어.’

     

    재단관계자인 핑크베리 교수가 이사장 파벌인지, 이사장에 반하여 제 세력을 모으기 시작한, 반역을 꾀하는 오크노디의 파벌인지, 이도저도 아닌 중립인지.

    이사장 파벌이라면 정보가 누설되어 오크노디의 앞으로의 큰 그림을 자신이 망치는 꼴이 된다.

     

    ‘그래도 해내야만 해. 적어도 이사장 파벌인지 아닌지를 가려내야겠지.’

     

    재단의 눈이 이미 아카데미에 그가 알던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퍼졌다고 한들, 이대로 포기해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불안에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오크노디는 괘씸한 아이다.”

    “뭐어?!”

    “재단의 입장에서는 애지중지 육성했는데 자꾸만 재단 밖으로 달아나려 하는 파랑새나 다름없지.”

    “몰루… 아니, 그건 맞긴 해.”

    “어린 새를 가둘 새장을 하나 만들어주겠다. 대신 너희도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어라. 이 계약을 받아들이겠는가?”

    “그쪽은 오크노디를 재단에 가두려는 이유가 뭐야?”

     

    디스트로이어는 고민에 빠졌다.

    재단이 약점조차 없는 상대와 순순히 거래에 응할까.

    그럴 리는 없겠지.

    무언가 상호협박이 가능한 약점을 쥐지 않고서는 순순히 거래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고심 끝에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는 거짓 이유를 둘러댔다.

     

    “나는 어린애를 좋아한다.”

    “뭐어어?!”

    “오크노디가 자유로워지면 재단의 눈을 피해 금방 어디론가 사라지겠지. 이 아이가 재단을 떠나지 않는다면 내 눈이 닿는 범위 내에 머무르니, 곁에 둘 기회도 더욱 늘어난다.”

     

    핑크베리 교수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이런 약점을 들으면 놀랄 만도 하겠지.

     

    “그 애의 뭐가 그렇게 좋은데?!”

     

    어차피 일선은 넘었다.

    이제는 어중간하게 끝내는 것이 더 치명적이다.

    이왕 넘어버린 선, 재단처럼 악독한 녀석들도 인정할 정도로 강한 약점을 드러내면 좋겠지.

     

    “재단의 가혹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 그 불우한 과거와 정상적인 삶을 모르는 비틀린 관념, 어딘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이상한 분위기, 뭐든지 간파할 듯이 맑은 눈동자.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

    “한 마디로 나는 <피폐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좋아한다. 오크노디는 완벽한 내 이상향이다. 이 정도면 재단과 협력할 의사가 충분하다는 건 알겠지?”

     

    핑크베리 교수의 입이 떡 벌어진 채로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아니, 아니… 학생을 그런 눈으로 보면 어떡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재단관계자인 네 입장에서는 이만한 약점이 생겼으면 오히려 좋다고 이용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생과 제자의 불순이성교제라니! 오크노디에게는 이미 싱이라는 남자도 있어!”

     

    디스트로이어는 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뭐지 이 반응.

    핑크베리는 설마…

     

    “너, 혹시 이사장의 편이 아니라 오크노디의 편이냐?”

     

    핑크베리가 답을 도출하지 못하고 고장 난 로봇처럼 멈추었다. 어쩌면 디스트로이어의 머릿속과 함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서로를 감쪽같이 속인 연기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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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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