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60

    그 일로부터 어느정도 시간을 보내 서클을 진정시킨 후, 서드와 루크는 서로 잠시 떨어져 행동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루크가 곁에 있으면 서드는 아무래도 자꾸만 그 장면, 그 감촉, 그 향기가 떠올라 서클이 쉽사리 진정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서드는 루크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위태로운 지경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제자로서 부덕한 탓에.”

    서드의 목소리에는 대충 들어봐도 면목이 없고 부끄럽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 듬뿍 묻어 있었다.

    “아냐, 나는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거라. 그대가 그렇게 힘들어 할 줄은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그래, 그것은 분명 자신의 잘못이었다.

    이는 서드가 항상 스승이라 부르며 따르는 자신에게 그런 느낌을 받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한 자신의 잘못이크다.

    그동안 서드가 자신에게 품는 시선엔 한번도 사적인 감정이 담긴 적이 없었으므로, 이번에도 으레 그러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것이니까.

    허나 지금의 자신은 마냥 어린아이의 모습이던 예전과는 달리, 15살인 서드와 또래로 보일 정도로 많이 성장한 모습이었다.

    예전과는 느낌이 확실히 다를 수도 있으리라.

    루크는 서드가 자책하지 않도록 자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런 몸이 되었으니까 말이야.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것도 이해는 한다.”

    허나 이런 해프닝으로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던가,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렇잖아도 두명으로 나누어 미행하는 건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정말로 서드가 죄책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고 그대는 녀석을 잘 감시하면서 따라붙는 일에 집중하길 바란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자신은 세이어를, 서드는 사이먼을 맡아 미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저쪽에 소란이 생겼다간 세이어가 어떻게 나올 지 모른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흑마법사가 할 짓은 예측할 수가 없다.

    허나 확실한 것은, 녀석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낙관적인 추론이라는 것.

    그리고 그 위험에 단독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 또한, 현재로서는 자신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게 보아도 최선이었다.

    아직은 세이어가 가진 패를 모르고, 따라서 자신에게 그것을 확실히 받아칠 수 있는 패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으므로.

    만약 이러한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량 학살이라도 벌어진다면, 자신이 가진 여신의 권능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되살리는 것도 매우 곤란해지고 만다.

    신성력은 결코 드러내선 안되는 힘이라는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그 정도 규모의 소생을 공개적으로 벌였다간 분명 엄청난 일이 되리라는 것을 아주 약간만 생각해도 알 수 있으니까.

    그러니 들키지 않고 미행하며 어떻게든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

    따라서 루크는 서드가 과거의 원한을 잊지 못하고 달려드는 일이 없도록 주의시켰다.

    “만일 제압할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섣불리 움직이지 말게. 절대로 들켜서도 안되고, 소란을 피워서도 안돼, 알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서드 또한 그것을 잘 알았기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사이먼의 뒤를 따라 이동했을 뿐, 별다른 질문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 후, 서드는 사이먼이 경호원을 대동하고 사라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루크는 슬쩍 몸을 돌린 뒤, 홀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레니에, 그대도 잘 봐주길 바라네. 혹시라도 서드가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사이먼은 세이어에 비하면야 그다지 위험해 보이는 부분은 없었으나,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는 대비하는 편이 좋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에 대답하는 레니에의 목소리는 그리 곱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까의 일로 상당히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흥.

    레니에가 곧 쏘아붙이듯 목소릴 내었다.

    -왜요, 입 맞춘 사이라서 신경이 쓰이시나보죠?

    “뭐? 아니, 지금 그게 무슨 소린가?”

    레니에의 얼토당토 않은 소리에 루크는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설마, 삐친건가?

    “레니에, 내가 아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이미 다 설명하지 않았나! 당시의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남녀가 눈에띄지 않는 장소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형태의 위장이 그런 것이었을 뿐, 내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니까?”

    그에 레니에는 더더욱 삐친듯한 목소리로 궁시렁거렸다.

    -그래요, 당신의 입술은 아무런 감정이 없어도 맞춰줄 수 있을 정도로 싸구려라는 거죠? 잘 알겠어요.

    레니에의 말에 루크는 더더욱 당혹스러워하며 목소릴 높였다.

    “아, 아니, 실제로 입이 닿았던 것도 아니었잖아! 입술은 커녕, 피부조차 닿지 않았어! 그냥 가면끼리 맞닿았을 뿐이지!”

     

    그러나 레니에는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네, 실제로 닿진 않았죠. 하지만요.

    레니에는 명백이 따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까 그 몸짓이 되게 자연스럽던데요, 마치 벌써 수십번은 해본 사람마냥?

    “뭐, 뭐라고?”

    레니에의 말에 루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레니에의 말은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품 안에 쏙 들어가 옷깃을 잡아당기면서 발돋움을 함과 동시에 입술을 맞추는 행동을 그토록 자연스럽게 한다?

    심지어, 발 한쪽은 수줍게 들어올리며 온전히 몸의 무게를 넘겨오는 그 미묘한 디테일까지 추가해서?

    맹세컨대, 그건 몇백년을 무뚝뚝한 남성으로 살아온 ‘루크’가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었다.

    벌써 몇번이나 직접 경험해본 것이 아니면 말이다.

    -다 알아요, 당신은 이미 몸도 마음도 전부 암컷이 되어버린 거죠. 그 아이같은 타입이 취향이신건가요? 

    하기사, 야생동물처럼 위험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에 큰 키, 과하지 않고 적당히 보기 좋을 정도의 잔근육을 지닌 남성은 어딜 가나 여성들에게 꽤 인기있는 매력적인 남성상이 아닌가.

    그런 아이와 몇개월을 만나며 스승노릇을 해왔다면 깊은 마음 속에 그런 마음이 싹틔우지 않았을까 싶다.

    마법이란 게, 가르쳐주다보면 서클이나 마력의 상태를 보기 위해 가슴을 만진다던가, 머리나 손을 잡는다던가하는 그런 스킨십이 일어나는 것도 꽤 흔한 일이니까.

    아마 그러는 와중에 서서히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에게 조교된 거겠지.

    으레 모든 남녀관계가 그러하듯,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말문이 막힌 루크가 대답이 없자, 레니에는 곧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어쩌면, 제가 너무 늦은 걸까요…

    그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에 루크는 기겁을 하여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외쳤다.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대체?! 맹세컨대, 아직 한번도 그런 적 없다!”

    애초에 서드는 자신에겐 여전히 그저 까마득하게 어린 꼬마로밖에 느껴지지 않았고, 사랑의 대상으로는 더더욱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제자로서 호감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건 순수하게 스승이 제자에게 지니는 정도의 호감이지, 그 이상은 절대 아니다!

    단지, 평소 드라마를 자주 즐겨봐 왔기 때문에 디테일을 살릴 수 있었을 뿐이다!

    이 시대에 키스를 할 때는 당연히 그게 평범한 건 줄 알았지!

    그, 예전에 예르나가 다이튼과 입을 맞추는 걸 우연히 봤을 때도 그랬고…

    그러니 루크로서는 레니에가 ‘그 몸짓’의 완성도에 대해 자신은 그저 본 걸 그대로 따라서 행했을 뿐이라는 답변밖에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루크는 정말로 억울했다.

    만일 여기서 자신이 지은 죄라고 하면 오직 뛰어난 관찰력울 가지고 있었던 것, 오직 그것만이 죄가 되리라.

    하지만 무엇보다 루크가 억울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레니에가 바로 그런 말을 내뱉었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 무지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를 너무나 잘 안다.

    그녀가 내뱉은 말에 담긴 체념에 대한 무게도 너무나 잘 알고.

    그러니 억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비록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그 아이에게 몸을 안기긴 했지만, 단연코 내 마음 속에 그런 애송이에게 뺏길 공간은 요만큼도 없으니까, 앞으로도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 알겠나?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유일한 존재는 오로지 그대뿐이니까!”

    루크는 그렇게 열변을 토하듯 감정을 실어 쏟아냈다.

    그러자 레니에도 더이상 무어라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잠시 후, 멍하니 있던 레니에가 이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그런 낯뜨거운 말을……. 부끄럽지 않아요?

    “전혀, 그대가 원한다면 난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어.”

    -정말요?

    “내가 거짓말하는 것 봤나?”

    -아.

    잠깐의 침묵, 그 후 레니에는 실실 웃는 듯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에, 에헤. 그런거군요?

    “이제 기분은 풀렸나?”

    -네, 이제 알겠어요. 당신이 절 얼마나 사랑하는지! 직접 들으니 되게 기분 좋네요!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이해했으면 해야 할 일에 집중해주게.”

    -알겠어요. 그럼, 저도 뽀뽀 쪽 해줘요.

    루크는 하는 수 없이 휴대전화의 수화부에 대고 입을 맞춰주기로했다.

    그렇게 일부러 쪽, 하는 소리가 나도록 휴대전화에 입을 맞춰준 후.

    “이제 됐지, 응? 이제 가서 일하게.”

    -네!!

    금세 싱글벙글해진 레니에.

    뭔가 작전에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지만, 착각이겠지? 

    그렇게 레니에를 달래놓은 루크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내렸다.

    “……휴, 힘들구만.”

    과연,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여성의 질투란 것인가?

    루크로서는 레니에가 질투가 심한 편인지, 아니면 평범한 것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왜냐하면 루크는 여성과의 결혼은 커녕, 제대로 된 교류조차 없었으니.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여러모로 쉽지 않다는 것.

    —–

    그 광경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한 커플은 서로에게 속닥거렸다.

    “저쪽 커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그러게… 쟤, 너무 불쌍해.”

    아까부터 뭔가 신경쓰여서 보고 있었는데, 통화하는 걸 대충 들어보니 알겠다.

    보나마나, 이미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도 아까 그 무서운 남자한테 협박받아서 사귀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겠지.

    상당히 꼬인거다.

    열심히 자신의 사랑에 대해 설파한 그녀가 애정어린 뽀뽀까지 하며 전화를 끊고는 한숨까지 쉬는 걸 보면, 안타까움에 자신들이 다 가슴이 아플 정도다.

    하지만 외부인인데다 스쳐지나갈 인연인 그들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연민 섞인 시선을 한번 보내고, 부디 그녀가 행복한 결말에 맞이하길 바랄 뿐.

    물론, 아까 지나간 무섭게 생긴 남자에 대한 욕도 좀 하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랜만에 일하는 착각태그…

    여기서 서드는 또 악역인가봅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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