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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0

        

         

       하지만 신비와 불길함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

       어둠 속에 숨어있는 것이 보석인지 뱀인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본디 미지는 공포와 기대를 동시에 품고 있는 법. 그렇기에 사람은 자신의 직관에 따라, 지혜에 따라 움직이며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저 청년의 눈동자에 숨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경고…라.’

         

       그것이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행동은 호의에서 비롯된 것 같다.

         

       아그네스는 그렇게 판단했다.

         

       ‘뭔가를 알고 가지 말라고 말한 것 같은데….’

         

       애초에 경고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는 위험하다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위험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는 호의가 아닌가.

         

       원수에게는 하지 않는 것이 경고고, 아무렴 다치건 죽건 상관없는 이에게도 굳이 힘을 들여서 할 필요가 없는 것이 경고다.

         

       만약 진성이 저 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지 않다면, 호의를 품고 있지 않다면 경고하지 않았으리라. 저 둘의 미래에 어떤 끔찍한 것이 기다리고 있던지, 어떤 재앙이 닥칠 기미가 보이던지 그냥 넘겨버렸겠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

         

       특히나 그녀가 보아온 저 박진성이라는 청년의 일면은…. 나름 오지랖을 부리는 데다가 주위에 호의를 베풀고 다니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진실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보통 ‘좋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호인들이 하는 것처럼 박애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울타리에 들어온 이에게는 아낌없이 베풀되 그 밖의 것들에게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하자면 절제된 호의이며, 선별된 친절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나쁜 건 아니지.’

         

       물론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자기 가족을,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을 우선시하는 게 뭐가 나쁘다는 것인가.

       오히려 보편적이고, 공감이 가는 방식의 사랑이 아닐까?

         

       세상 모든 것은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법.

       사랑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에게서, 친구에게서, 집단의 구성원에서, 국가에서, 인류 그 자체로.

         

       그렇게 확대되고 넓어지는 것이 정상이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하자면 저 박진성이라는 청년이 주는 호의는 분명히 울타리 안에 들어온 이에게 주는 것에 속한 것이겠지.

       세상에 널린 사람들에게 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진하고 분명한 호감.

         

       그 호감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는 못하겠다.

         

       단순히 여동생의 친구가 다치면 여동생이 슬퍼하니까 조언을 한 것인지, 아니면 조금 친해진 사람이니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그렇지 않다면….

         

       ‘흐음….’

         

       아그네스는 엘라를 바라보았다.

       엘라는 물을 막 준 꽃처럼 파릇파릇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고, 조금 주눅이 들어있던 과거의 모습과는 다르게 활발함이 넘쳐나고 있었다. 게다가 눈빛 역시 묘하게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반짝임은 단순히 ‘친구의 오빠’에게 보이는 것이라고 하기 힘든 것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요.’

         

       물론 딱 거기까지.

       끈적하거나 질척한 수준도 아니고, 풋풋하지만 개화한 감정도 아니다. 음욕을 품은 핑크빛 감정도 아니고, 동경이나 경애 등의 빛나는 감정도 아니며, 의존하거나 집착하는 등의 어두컴컴한 감정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꽃봉오리조차 되지 못한…풋풋하다못해 아직 형체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무언가라고 할까.

         

       러시아에서 큰일을 겪고, 진성에게 구해지고….

       그 과정에서 생긴 호감이 저렇게 변한 것이겠지.

         

       다만 그것은 아직은 사랑이라 불리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아그네스가 그동안 보았던 사랑에 빠진 이들의 눈빛은 저렇지 않았으니까.

         

       뭐, 저 감정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탄자니아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그네스는 소중한 제자에서 눈을 떼며 진성에게 물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탄자니아에 가지 못하게 경고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기 위해서.

         

       하지만 진성은 아그네스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방긋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아그네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샤와 엘라에게는 그렇게 신신당부했던 아까와는 다르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진성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긋 웃으면서 눈을 마주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악감정이 있어서 무시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대답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에는 표정에 거리낌이나 망설임이 보이지 않으니….

         

       대체 진성이 왜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네스야. 그렇게 그냥 바라만 보고 있으면 안 된단다!”

         

       그런 아그네스의 의문을 해소해준 것은 오딜리아였다.

         

       오딜리아는 아그네스와 진성이 아이컨택트만 한 채 멀뚱멀뚱 서 있자,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리곤 아그네스를 툭툭 치면서 잘 봐두라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라고 가르치듯 말한 뒤 핸드백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명품 로고가 붙어있는 장지갑에서 지폐를 잔뜩 꺼냈다.

         

       지폐들은 100유로와 200유로짜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얼핏 세어보아도 열 장이 넘어 보이는….

         

       “스승님!”

         

       아그네스는 오딜리아가 집어 든 지폐의 액수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갑자기 돈이라니!

       그것도 푼돈도 아니고, 고액권 지폐라니!

       심지어 한두 장도 아니다.

       열 장?

       아니…. 열 장이 아니다.

       최소 열 장 이상이다!

         

       현재 환율로 100유로가 한화로 14만 원쯤 한다고 생각해본다면, 지금 그녀가 집어 든 금액은…!

         

       “얘! 고작 이 정도로 뭐 그러니?”

         

       “액수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스승님. 그걸 헤어 박에게 용돈으로 주는 거라면 오히려 더 꺼내라고 하겠는데, 갑자기 그걸 복채라고….”

         

       “네스! 원래 이렇게 하는 거란다. 네가 평소에 점을 안 봐서 잘 모르나 본데….”

         

       하지만 오딜리아는 아그네스가 기겁하며 말리는 것을 오히려 타박했다.

       그리곤 점을 볼 때는 이렇게 하는 게 바르다고, 이런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친절하게 말해주기까지 했다.

         

       아그네스로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애초에 그녀는 주술사에게 점을 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아프리카를 다녀온 이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알비노에 원수라도 졌는지, 아기를 내놓으라며 덤비는 자칭 주술사들을 상대하면서 시달렸으니….

         

       그러나 이것이 아그네스가 주술사를 혐오하거나 기피한다는 것은 아니다.

         

       주술사들이 기인 취급을 받을 만큼 이해하기 힘든 면모도 많고, 개성도 워낙 강해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조차 힘든 것을 생각해본다면…. 아프리카에서 겪은 일은 정말 보기 드문,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고서야 겪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때 상대했던 주술사들이 주술사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의 하찮은 존재라는 것도 그녀가 편견을 가지지 않게 하는 것에도 한몫하기는 했다.

         

       제대로 된 주술사가 어떤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오딜리아에게 듣고, 직접 여행하면서 보았던 아그네스로서는…아프리카에서 만났던 그 주술사들은 주술사라는 단어조차 붙이기 힘든 사기꾼에 가까운 존재들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뭐…. 주술 한두 개 정도는 알고 있기는 했으니, 완전히 사기꾼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주술사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 않겠는가.

       응급처치나 수술 방법 몇 개 알고 있다고 의사나 간호사가 될 수 없듯, 주술 한두 개 아는 것 정도로 주술사라고 지칭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니.

         

       그렇기에 아그네스는 아프리카에서 악몽 같은 경험을 겪은 이후에도 주술사에게 악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법.

         

       그녀의 무의식은 점을 치는 것을 볼 때마다 아프리카에서 그 역겨운 작자들이 점술을 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고, 그때마다 아그네스는 기억과 함께 찾아오는 불쾌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점을 보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뭐 저리 맹목적으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점을 보는 것을 꺼리는 것이 아니다.

       점을 맹신하고, 돈을 갖다 바치는…광신(狂信)적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찌 보면 트라우마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아니 무슨…!”

         

       그렇기에 아그네스는 오딜리아가 오컬트에 집착하는 것을 그리 곱게 보지 않았다.

       주술사도 되지 못하는 사기꾼 같은 작자들에게도 돈을 아낌없이 바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속이 터지기도 했고.

         

       하다못해 제대로 된 주술사에게 받는 것이라면 모를까….

         

       제대로 된 주술사….

         

       아그네스는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잔소리하다가 멈췄다.

         

       ‘제대로 된 주술사….’

         

       사기꾼도 아니고, 가격이 비싼데 효과도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제대로 된 주술사가 있지 않은가.

         

       나이는 어리긴 하지만…엘라를 구하고, 아나스타시아에게 육체를 줄 수 있을 정도의…엄청난 실력을 갖춘 주술사가.

         

       게다가 돈이나 권력에 집착하지도 않고, 먼저 의미심장한 말로 경고해주는 호의를 보일 정도의 친분이 있는 사이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기가 약해서 휘둘리기는커녕, 성격이 고약한 그녀의 스승님마저도 잘 제어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딸 같은 제자들의 은인(恩人).

         

       “…그러네요.”

         

       아그네스는 잔소리를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오딜리아가 손에 쥐고 있는 지폐를 빠르게 낚아챘다.

         

       촤악!

         

       “어?”

         

       그렇게 지폐를 빼앗은 아그네스는 금액을 확인해보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기 지갑에서 지폐를 한 다발 꺼내 그 위에 얹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그것을 진성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 복채랍니다. 받아주시겠어요?”

         

       “기꺼이.”

         

       그리고 진성은 처음부터 이것을 바랐다는 듯 자연스럽게 돈을 받았다.

         

       그렇게 둘의 거래가 이루어졌다.

         

       “으응…?”

         

       당황하는 오딜리아를 뒤로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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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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