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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1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린 클레브 자작 영애는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납치를 당했다는 사실도. 다른 이에게 대체당했다는 것도. 왜 여기에 있는 지에 대한 것도.

   

   “제. 제가 파트란 영애께 혹시 폐를 끼쳤나요?”

   

   불안함 속에서 눈동자를 떠는 그녀를 보면서 조이는 별 일 아니었다 말하고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찌 보면 잘 된 일이었다. 죽을 뻔 했다는 악몽을 마음에 담은 채 벌벌 떨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나으니까.

   

   그 악몽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 조이는 다음 다과회에서 이야기를 나누자 말하고는 방에서 나왔다.

   

   만약 내가 악몽에 빠져있던 시절에.

   

   눈을 감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그 때.

   

   던전에 들어간단 생각만으로도 벌벌 떨다가 주저앉던 날에.

   

   옆에 루시가 없었다면 난 지금처럼 웃으며 돌아다닐 수 있을까?

   

   “조이.”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과 루시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 옆에서 루시가 조이를 불렀다.

   

   아래에서 반짝이는 붉은 눈 속에는 재밌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얼빵한 멍청이인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생겼어. 항상 바보짓으로 민폐만 끼치던 네가 내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야. 기쁘지? 그치?”

   

   루시는 여느 때처럼 내려다보는 어투로 조이에게 이야기를 했다.

   

   다른 영애들이 이를 보았다면 건방지니 뭐니 하며 투덜거릴 모습이었지만 조이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루시가 지금 하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도 하고. 루시가 여태 해준 걸 생각하면 설령 저게 진심이라도 별 문제가 아니기도 했으니.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어지간한 건 모두 다 홀로 해결하는 루시가 나한테 부탁을 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거겠지.

   

   분명 나한테도 부담스러운 일일 테고.

   

   그렇지만 괜찮아.

   

   루시의 부탁이라면 난 뭐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

   

   여태까지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최선을 다할 거야.

   

   마음을 굳게 먹고 루시의 눈을 보던 조이는 루시가 웃음과 함께 내뱉은 말을 듣고서 일순 굳어버렸다.

   

   “간단해. 얼빵아. 네가 동정 나무를 상대로 펼쳤던 걸 술식으로 만들어주면 돼.”

   

   …

   

   저기.

   

   그거 전혀 간단하지 않은데요?

   

   지금 영애께서 하신 말씀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마법을 밑바닥부터 만들어내라는 말씀이시잖아요.

   

   그것도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까지도 쓸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루시는 조이의 당혹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갤 갸웃거렸다.

   

   “뭐야. 조이. 자신 없어?”

   

   이 분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마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야!?

   

   아니 그럼 지난번에 숲에서 펼친 마법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신 거지?!

   

   조이는 당혹 속에서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우물거렸다.

   

   지난 번 조이가 악신의 권능을 파훼해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녀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기적인지 아니면 여태까지 조이가 쌓아온 노력이 보답을 한 건지는 몰라도 조이는 뭇 사람들이 이적이라 부를 행위를 현실에서 이루어보였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이 스스로 펼치는 마법이기에 가능했던 행위였다.

   

   부족한 부분을 개인의 기량과 마력으로 해결해 보인 그 마법은 오롯이 조이만이 펼칠 수 있는 마법이었던 것이다.

   

   그림으로 따지자면 밑그림도 아니고 대충 스케치만 그려 놓은 그 마법을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술식으로 정립하라니!

   

   그럴 실력이 있었으면 내가 학생노릇을 하고 있겠냐고!

   

   그 정도면 이미 교수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있겠지!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은 차고 넘쳤지만 조이는 차마 그걸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루시의 눈빛이 너무나도 순수했던 것이다.

   

   못 한다는 말로 루시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직접 술식을 쌓아나갈 자신도 없어.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얼마나 얼빵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자신이 없는 걸까? 공작 영애라는 사람이 이렇게 자부심이 없어서야.”

   “아. 아니거든요! 완전 자신 있거든요!”

   

   루시의 도발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드높였던 조이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는 눈동자를 떨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시간을 다루는 신화 속의 대마법사가 아닌 조이는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으니까.

   

   “흐응. 자신이 넘치는 구나?”

   “그. 그게.”

   “설마 위~대하신 파트란 가문의 공작 영애가 힝힝~ 저 도저히 못 하겠어요~ 같은 말을 하진 않겠지?”

   

   루시의 놀림에 입술을 꾹 다문 조이는 도움을 바란단 의미에서 슬며시 페이비에게 눈짓을 했다.

   

   귀족들 사이의 신호에 익숙한 페이비는 어렵잖게 조이의 시선을 포착했다.

   

   제발! 페이비!

   

   루시를 말려줘!

   

   오랫동안 나랑 알고 지낸 너라면 저게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지 알 거 아냐!

   

   제발!

   

   페이비는 조이의 간절한 눈빛을 마주하고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루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페이비! 고마워!

   

   내가 나중에 루시랑 관계된 장신구를 선물!…

   

   “그럼요. 제가 아는 조이는 그럴 사람이 아니랍니다.”

   

   페이비!? 너!?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단 사실에 조이가 동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루시와 페이비는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 이제 얼빵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는지만 기다리면 되려나?”

   “그럴 거에요. 파트란의 피를 이은 조이니까요. 전 믿고 있답니다.”

   “나도 믿어. 조이가 얼빵한 짓거리를 할 거란 걸 말야.”

   

   *

   

   “어떡하죠. 왕자님.”

   

   아서는 한탄의 말을 내뱉는 조이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지금이라도 루시 알른에게 가서 못 하겠다 그래야지.”

   “그치만 루시가 완전 기대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가서 이야기를 해야지. 그래야 비웃음거리라도 될 거 아니냐. 그게 실망시키는 편보다 낫다.”

   

   공감능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아서의 일갈에 조이가 눈을 치떴지만 차마 입을 열진 못했다.

   

   지금 아서가 한 말은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었으니까.

   

   “성녀님. 당신께서 이를 모르셨을 것 같진 않습니다. 성녀님께서는 신성마법에 조예가 깊으신 만큼 일반적인 마법 또한 잘 다루시니.”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 바보가 얼빵한 짓을 하고 있을 때 좀 말려주셨어야지요.”

   “왜 그래야 하죠?”

   “…예?”

   “영애님께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을 부탁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이 조이에게 부탁을 했다는 것은 조이의 능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 그러니 제가 할 일은 영애님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조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성경에 적힌 내용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아서는 상황이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이해했다.

   

   그러니까 조이가 먼저 자기 자존심에 바보짓을 했고 그걸 성녀님께서 굳힌 건가.

   

   마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루시 알른은 성녀님의 말을 믿고 돌아갔을 거고.

   

   “흐음.”

   

   아서는 페이비가 루시가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믿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페이비가 루시의 말을 들을 때 그녀의 표정은 신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경건했으니까.

   

   그러니만큼 페이비가 루시와 관련되었을 때의 말은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한다는 걸 아서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그녀가 한 말은 마냥 설득력이 없진 않았기에.

   

   여태까지 루시 알른이 우리에게 아예 불가능한 것을 부탁한 적이 있었던가?

   

   그녀가 우리에게 내미는 부탁은 무척이나 힘들고 고되었을 뿐 분명 노력한다면 닿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를 생각해본다면 지금 그녀가 한 부탁도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이란 이야기일 텐데.

   

   “그냥 그 때 했던 그대로 하면 안 돼?”

   

   세 사람이 저 마다의 이유로 입을 다문 순간 프레이가 슬며시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안 됩니다. 켄트 영애.”

   “왜? 그 때 잘 했잖아.”

   “예. 그랬죠. 지금도 그 때의 마법을 재현하라면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마법을 펼치는 것과 마법을 술식으로 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달라?”

   

   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프레이가 고갤 갸웃거리자 조이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설명을 이었다.

   

   “켄트 영애께서는 다른 사람의 검술을 보면 대충 따라할 수 있으시죠?”

   “응.”

   “그럼 한 번 본 검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것도 가능한가요?”

   “…응?”

   “그 검술을 밑바닥부터 분석해서 책으로 만드는 건?”

   “…으으음.”

   “지금 루시가 저한테 부탁한 게 그런 거에요.”

   

   프레이가 자신의 곤란함을 이해했다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지만 프레이의 생각은 달랐다.

   

   “좀 고생하면 가능할 것 같아. 처음 본 검술 가르치는 거.”

   

   검이라는 분야에서는 역사에 남을 만한 재능을 지닌 프레이가 고민 끝에 고개를 주억거린 것이다.

   

   그 대답을 들은 조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가 재차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응? 왜?”

   “프레이 켄트. 넌 그냥 가만히 간식이나 먹고 있어라. 그게 더 도움이 된다.”

   “응. 그럴게.”

   

   프레이가 여느 때처럼 양 볼에 간식을 가득 집어넣고 난 후. 아서는 팔짱을 낀 채로 방금 전에 고민하던 것을 입 밖으로 냈다.

   

   “일단 우리끼리 이 일을 하려는 건 어렵다.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길잡이도 없이 나아가는 건 미친 짓이니까.”

   “그건 저도 알아요. 왕자님. 그렇지만 이걸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하죠?”

   “네 주변에 실력 있는 마법사가 차고 넘치잖나.”

   “제가 술식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평범한 마법이었다면 아무 문제없겠죠. 그렇지만 이번에 제가 만들어야 하는 마법은 악신과 관계된 거라고요.”

   “…이해했다.”

   

   지금 조이가 하려는 것은 악신의 권능을 마법으로 해석하여 술식화 시키려는 것.

   

   이 일을 하려는 의도는 분명 선하지만 의도가 선하다 하여 이를 보는 사람들까지도 이를 좋게 생각하진 않는다.

   

   특히 그게 커다란 권력을 지닌 존재라면 더더욱.

   

   “성녀님께서 옆에 계시니 어느 정도 무마는 되겠지만.”

   “뒤 쪽에서는 계속 이야기가 나오겠죠. 저랑 페이비는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냈으니까요.”

   

   그러니 섣부르게 외부에 도움을 청할 순 없다. 청해서도 안 된다.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조이의 말을 듣고 고민하던 아서는 지난 번 숲에서 만난 인연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숲의 주인께 지혜를 청해볼까.”

   “그 징그러운 여우한테요?”

   “…그 분은 좀.”

   “나도 안다. 그 분께서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존재라는 것은. 그래도 숲의 주인은 숲의 주인이지 않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얼빠여우의 평판은 떨어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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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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