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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1

       

       

       송병오는 축축한 기운이 느껴지는 바지춤을 올리며 생각했다. 

       

       ‘제기랄. 병감에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병감(病監)이라고 해도 일반 감방과 딱히 다를 것은 없었다. 특별한 의료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병원처럼 침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환자들만 모아놓은 감방이기에 별다른 일을 시키지 않으며, 죄수들 중에서 말 잘 듣고 모범적인 죄수들을 뽑아서 간병부 역할을 맡긴다는 차이만 있을 뿐. 

       

       간수의 지시대로 병감의 어느 방 안에 들어오고 보니, 어두운 방 안에는 이따금씩 기침을 콜록거리는 폐병환자며 연신 몸을 긁어대는 피부병 환자 등, 이런저런 환자 죄수들이 등돌려 누워 자고 있었다.

       

       ‘노인! 그 노인은 어디 있는가?’

       

       송병오 녀석이 병감의 감방 안에 들어와 어두운 시야에 적응하며 주변을 살피는 사이, 방의 문을 다시 잠구려던 간수에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슈 상. 저도 병감에 좀 있어도 되겠습니까?”

       

       그 목소리에 문을 잠구고 있던 조선인 간수가 돌아보니, 말을 걸어온 것은 여기까지 송병오를 부축하고 왔던 놈이었다. 형사 노릇을 하다가 잡혀온 강 뭐시기라는 놈이다. 간수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뭐야?” 

       “저도 몸이 아파서……”

       

       간수는 강 형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매일같이 감방 동료들에게 두들겨 맞아서 초췌해진 강 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흥! 그렇게 해라. 한심한 놈!” 

       

       간수는 문을 잠구다 말고는 다시 열어, 강 형사를 방에 밀어넣고는 문을 잠궜다. 그리고는 복도를 병감의 당직 간수에게 말했다.  

       

       『3방에 병인 한 명 추가입니다. 12사 7방의 33호 녀석입니다.』

       『뭐? 그 녀석이라면…… 거짓 병 아니야?』

       『진짜로 아픈 모양입니다. 한 때는 고등계 형사였던 주제에, 맞기나 하고 한심한 놈이라니까요.』 

       

       송병오와 강 형사를 데려온 간수가 비웃으며 말하자, 당직 간수도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자네도 조선인이라서 듣기 안됐지만, 그래서 조선인은 할 수 없다는 거야. 모처럼 사람을 다루는 위치에 올려놓아도, 결국은 자신의 주제에 맞게 돌아가거든.』  

       『흐흐! 그래서 저는 높은 자리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거야말로 저의 천직이지요.』

       『아무렴, 자네만큼 성실하기만 하다면야! 그럼 돌아가 보게.』

       『예. 수고하십시오.』

       

       데려온 간수는 병감을 떠나 사라지고, 병감 당직 간수는 다시금 조는지 자는지 병감의 내부는 이내 조용해졌다. 이따금씩 환자들의 기침 소리나 신음 소리, 코 고는 소리만 들려올 뿐.

       

       “…….”

       

       송병오는 자신과 같은 방에 들어온 강 형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바닥에 앉은 강 형사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간수들이 자신의 흉 보는 소리를 듣고서는 꾹 눌러 참는 느낌이었다. 

       

       송병오는 복도 바깥의 눈치를 보다가, 강 형사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니, 당신은 왜 여기 남은 거요?”

       “큭……. 이봐, 송 빨갱이.”

       

       강 형사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송병오를 한번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둘러봐라. 여기 노인이 있나?”

       

       그 말에, 송병오는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로 다시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콜록거리는 젊은 폐병쟁이. 팔에 ‘기부스’ 붕대를 한 아저씨. 드러난 피부에 소염 습포제를 덕지덕지 붙인 중년……

       

       그러나 ‘노인’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제서야 송병오는 자신이 강 형사에게 속은 것이나 아닐까 덜컥 생각되었고, 화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무슨 고생을 해서 이 병감에 들어왔는데! 

       

       “이, 이런 되먹지 못한 개자식이……!”

       “푸핫, 푸하핫……”

       

       『조용히 해라!』

       

       간수가 저 멀리서 곤봉으로 벽을 탕탕 두들기고, 송병오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자세로 강 형사를 노려보았다. 다시 조용해진 뒤에 강 형사가 여전히 능글능글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이래서 너는 안 돼, 송 빨갱이. 너는 안 된단 말이야. 이래가지고 네가 그 노인네를 찾을 수나 있겠냐?”

       “……뭐라?”

       “봐라. 이 방만 방이냐? 노인네는 다른 방에 있어.”

       

       그제서야 송병오는 깨달았다. 병감에도 방이 여러 개. 그 중 어떤 방에 그 의문의 노인이 있을지는, 방금 막 병감에 들어온 송병오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그러면 어느 방에.”

       “맨 끝방이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네가 뭘 할 수 있겠냐? 응? 죄수 맘대로 전방(傳房)을 할 수는 없어.” 

       

       강 형사의 말이 맞았다. 죄수가 원한다고 방을 옮길 수는 없는 일. 하지만, 강 형사는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송병오는 다시 저자세로 나서며 누그러진 말씨로 말했다.

       

       “저기, 아까는 내가 말이 심했소. 혹시 뭔가 방법이 있다면……” 

       “봐라, 이 멍청한 송 빨갱이 놈아. 그래서 내가 따라온 것 아니냐. 내가 하는 것을 가만히 보기나 해라.” 

       

       강 형사는 그러더니, 대뜸 소리질렀다.

       

       “간병부! 간슈 상! 아무나 좀 오시오!”

       “뭐야!”

       

       당직 간수와 함께 당직을 서고 있던 간병부 한 명이 달려오고, 그 뒤를 곤봉을 들고 당직 간수가 따라왔다. 강 형사는 송병오를 가리키며 간병부에게 말했다. 

       

       “이 녀석, 냄새가 고약해서 함께 잠을 못 자겠소. 밤새 똥질을 하던 놈인데, 냄새가 저놈 몸이며 옷이며 다 베었소.” 

       “……!”

       

       그 말을 들은 송병오는 이 강 형사라는 놈이 또 자신에게 망신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고 치욕스러웠다. 하지만, 

       

       “뭐? 음…… 확실히 그렇군!” 

       

       송병오를 쳐다보던 간병부는 당직 간수에게 뭐라 뭐라 전하고, 당직 간수도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이쓰, 가도베야에 덴보오사세로(저 놈, 끝 방으로 전방시켜)!』

       

       하고 간병부에게 짧게 지시하고는 가 버렸다. 간병부가 문을 여는 사이, 송병오는 강 형사에게 작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된 영문이요?”

       

       방을 옮기는 전방이란게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닐텐데, 이렇게나 쉽게 되다니? 그것도, 냄새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그 의문의 노인이 있는 끝 방으로? 마치 요술이라도 부린 듯한 이 현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송병오가 묻자, 

       “내가 처음 입감했을 때 말야.” 

       

       강 형사는 입을 열어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큭…… 그 때는 번개 맞고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온 몸에 붕대질을 해서 냄새가 고약했었지. 그래서 나도 이렇게 내쫓겨서, 끝 방에서 그 노인네를 만난 거야.” 

       “예……?”

       “가 보면 알게 돼.”

       

       문을 연 간병부가 송병오를 불렀다. 

       

       “이불 가지고 나오쇼!” 

       

       송병오는 간병부를 따라 병감 복도 끝의 방을 향해 비척거리며 걸어갔다. 그럭저럭 일이 풀려서 신기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한데……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강 형사 저 놈은 어째서 나를 도와주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그리고, 가 보면 알게 된다니?’

       

       하는 두 가지의 문이었다. 그 노인이라는 사람이 어떤 상태길래, 냄새가 나면 그곳으로 옮겨준다는 말인가?

       

       마침내 복도를 걸어 문제의 끝 방 앞에 서자, 간병부가 피식, 하고 비웃으며 말했다. 

       

       “냄새가 좀 고약하겠지만 참으쇼. 당신도 냄새 나는 형편인건 똑같으니까!”

       “예?”

       “건들지만 않으면 가만히 있으니까 너무 염려치 마시고.”

       “예에? 그게 무슨……”

       

       송병오는 뭐라고 묻기도 전에 끝 방으로 내던져지듯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둘러보니 어두운 방에는 아무도 없고, 구석에 누군가 한 명 웅크리고 있는 모습만 얼핏 보였는데……

       

       그제서야 송병오는, 자신이 왜 이곳에 옮겨졌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방의 시멘트 바닥에는 토사물이며 온갖 오물이 너저분하게 흘려져 있었고, 구석의 인물 역시 그런 더러운 것을 전신에 묻히고 있던 것이다. 

       

       그 꼬라지만 보아도, 이 끝방의 죄수는 병감의 죄수들도 다들 기피하며, 간수들도 아예 방치에 가깝게 놔두고 있는 그런 죄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방에서 쫓겨난 죄수가 여기로 들어오는 것이구나! 

       

       그리고,

       

       “흐. 흐히. 힛……”

       

       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그 누군가가, 송병오를 향해 슬쩍 몸을 돌렸다. 노인의 모습이 드러났고 송병오는 깜짝 놀랐다. 온 몸과 너덜너덜한 옷이 더러운 것도 더러운 것이지만, 

        

       ‘미친 노인네인가!’ 

       

       송병오가 본 것은, 마치 노망이라도 들린 듯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마치 무인도에 표류했다던 ‘로빈손’ 모양으로 머리카락이며 수염이며 아무렇게나 길게 자라 있었고, 그런 상태로 혼자 흐흐, 하고 실성한 듯이 웃고만 있었다. 

       

       저 노인이 정말로 그런 예지를 한 노인이란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노인은 송병오를 보더니 고개를 들고 헤죽 웃었다. 때마침 좁다란 창문의 틈새로 달빛이 새어들어왔고, 노인을 비추었다. 

       

       훤하게 드러난 노인의 모습을 보고 송병오는 다시 한 번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그것은 노인의 노망 들린 태도도 아니고, 몇개 남지 않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보이는 ‘그로’한 웃음 때문도 아니었다. 

       

       ‘흉터! 목에 흉터가!’

       

       노인의 목에 난 흉터! 노인의 주름지고 늘어진 목에 뚜렷이 남은, 몹시 길다랗고 흉측한 흉터 때문이었다. 

       

       “이, 이보시오! 어르신!” 

       “흐흐, 흐흐흐!”

       

       무섭기도 하고, 혹시나 싶어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정말로 노망 들린 노인네임이 분명했다. 간병부도 말하지 않았던가? 건들지만 않으면 가만히 있으니까 너무 염려치 마시라고……

       

       ‘제기랄! 틀려먹었나? 강 형사가 나를 속였나? 내 결국에는 이럴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의문의 노인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자신의 서러움이 복받쳐오는 송병오였다.

       

       ‘내가 어떤 고통과 치욕을 겪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팔자에도 없던 감방 생활을 하고, 먹기만 하면 똥질을 하게 되어 입에 대지도 않던 우유를 마시고, 결국 몇 번이고 뱃속이 뒤집히고 바지에 흘리기까지 한 고통과 수치를 감내해가며 여기까지 온 송병오였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속인 강 형사 그놈한테 덤벼들고 싶었지만, 그 놈은 다른 방에서 자신을 비웃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송병오의 설움과 분노는 당장 눈 앞에 있는 노인을 향했다. 

       

       “제기랄! 내가, 내가, 이 송가 병오가!” 

       “흐흐. 으히……”

       “노망 들린 노인네 하나 보자고 이 꼴이 되었단 말이야!”

       

       송병오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주전자를 냅다 쥐어들고는, 

       

       — 까앙!

       

       온 힘껏, 노인의 정수리를 내리치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중으로 한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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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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