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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1

       그래서 했다.

        

       합방.

        

       다만, 합방이라고 해서 내가 게임을 하는 걸 보기만 해서는 지금까지의 방송과 별로 다를 게 없어서, 1부 방송으로 잠깐 함께하는 게임을 하기로 했다.

        

       보통 어르신들께 게임 컨트롤러를 쥐여드리면 적응하기 힘들어하신다. 컨트롤러를 너무 소심하게 움직여서 캐릭터가 거의 움직이지 않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싸워야 하는 경우를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황제가 어디 보통 사람이던가.

        

       나는 이를 악물고 컨트롤러를 조작하고 있었다. 최대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실제 운전은 이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들었다만, 게임은 간소화된 모양이구나.”

        

       우리가 플레이 중인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트 레이싱 게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게임이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다고 누구나 실력이 비슷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사실 나는 이전에는 온라인 게임을 즐기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게임에는…… 그렇게 소질이 없다.

        

       게임 플레이 자체에 내 감정이 마구 휘둘리니까.

        

       “익…… 이이익!”

        

       그건 클레어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감정이 풍부하고 승부욕이 있는 성격이다 보니, 이 게임도 꽤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어쩌면 상대가 황제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클레어도…… 자기 혈통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알고 나서도 ‘난 그레이스야’하고 넘겨버려서 그렇지, 실제로는 그 문제에 대해서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그런 클레어였으니, 황제와 싸울 때 지고 싶지 않겠지.

        

       실제로 황제와 클레어는 1, 2위를 다투는 중이었다. 누가 더 여유롭게 컨트롤러를 움직이는 중이냐고 물으면 당연히 황제였지만.

        

       그리고 나는—

        

       “…….”

        

       “…….”

        

       앨리스와 경쟁 중이었다.

        

       사실 1등과 2등이 너무 앞서가고 있어서 이미 거기까지 가는 건 포기했고, 마지막에만 들어가지 말자는 마음으로 플레이하는 중이었다.

        

       레이싱 게임이지 않은가. 그래도 3위에만 들어가면 트로피는 받는다.

        

       ‘못 받는 한 명’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

        

       “언니한테 트로피를 양보하지 그러니?”

        

       “누가 언니야!?”

        

       앨리스의 말을 클레어가 받아친다. 클레어의 눈은 화면을 향해 있긴 했지만, 귀는 열려있는 모양이다.

        

       [ㅋㅋㅋㅋㅋㅋ]

       [이럴때도 누가 언니인지 두고 싸우네]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자주 싸우느냐?”

        

       “반쯤은 농담이니 그렇게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황제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당연히 내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있었다.

        

       [부녀가 나란히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게 보기 좋네요]

       [ㄹㅇ 이런 컨셉에 어울려주는 아버지가 어딨냐고ㅋㅋㅋㅋ]

        

       “음.”

        

       내가 그 채팅들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황제는 작게 침음을 흘렸다.

        

       사실 클레어와 앨리스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면서 잘 지내고 있었다. 이 논란이 다시 끓어오르게 된 것은 지난번에 황제와의 대화 이후였다. ‘누가 언니인지’ 정하는 과정을 이미 한 번 겪었더니 멈추기가 어려워진 거다.

        

       “어차피 즐기려고 하는 것이니 그냥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그런 것 치고는 손가락이 엄청나게 열심히 움직이는 거 알아?”

        

       앨리스가 나의 말에 반박했지만, 나는 무시하고 엑셀 키를 눌렀다.

        

       “……아!”

        

       하지만 곧, 꾹 다물렸던 나의 입에서 그런 안타까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됐다……!”

        

       앨리스가 그렇게 외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분하다고 생각했는데—

        

       “클레어?”

        

       갑자기 내 차가 1, 2위를 다투는 클레어의 차를 앞질렀다.

        

       “후후.”

        

       클레어는 작게 웃었다.

        

       “언니, 괜찮아. 마지막 등수는 내가 차지할 테니까. 동생으로서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는 이야기다.

        

       “클레어…….”

        

       결국 그 찰나의 순간에 순위가 정해졌다.

        

       황제가 1등, 2등이 앨리스, 3등이 나.

        

       그리고 순위에 들지 못한 클레어.

        

       “나는 괜찮아, 언니. 언니가 이길 수 있었다면……”

        

       “……사실은 아버지한테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까 그냥 뒤로 빠져버린 거 아니야?”

        

       “…….”

        

       아, 그게 맞는 모양이다.

        

       “아버지, 게임 잘하시네요.”

        

       “음…….”

        

       나의 말에 황제가 다시 그런 소리를 흘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모습이 조금 재미있었다.

        

       황제는 저 위 높은 곳에 앉아있는 자. 자기 아래 있는 이들을 움직이는 위치에 있는 이였다.

        

       당연히 고독할 수밖에 없는 자리다.

        

       물론 나는 황제가 그 자리를 즐겼다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평소에는 느껴볼 수 없는 관계라는 게 있는 법이다.

        

       황제는…… 이걸 진짜 ‘아버지’ 자리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어있었다. 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딸의 아버지.

        

       뭐, 한 명은 호칭이 삼촌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쭉 자매처럼 지냈다는 설정이니 대충 딸이라고 해도 좋을 거다.

        

       “다음에는 내가 조금 더 눈치를 챙기마.”

        

       “……이미 1등을 하신 마당에 그렇게 말씀하셔도 아무도 믿지 않을 듯합니다.”

        

       “으음.”

        

       언제나 누구보다 잘나야 하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니 좀 모를 수도 있지.

        

       그렇다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 스타일의 아버지는 또 아닌 모양이다.

        

       정말 짧은 순간이지만, 황제가 그냥 평범하게 현대 사회에 태어났다면 어떤 아버지였을지 생각해보았다.

        

       능력 좋고 좋은 아버지, 였으려나.

        

       ……아니지, 지금 이 황제는 ‘다른 세계의 주인’까지는 될 생각이 없어서 이럴 뿐이다. 아마 이 나라에서 그냥 한국인, 혹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건 태어났다면 반드시 권력을 향해 위로 바득바득 올라갔을 거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지금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했겠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만큼, 황제라는 존재가 가진 캐릭터 성은 확고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게임을 해보시겠습니까? 사두고 아직 해본 적 없는 대전형 게임은 아직 몇 가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꾸나.”

        

       내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 황제는 얼른 그 손을 잡았다.

        

       그것도……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저쪽 세상에서는 서로 정말 열심히 견제하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나는 책상 위에 미리 꺼내 올려둔 소프트웨어를 뒤적이며 말했다.

        

       “이건 대전 액션 게임입니다. 상대방을 맵 밖으로 떨어뜨리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팀을 나눠서 할 수도 있고, 개인전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럼 개인전으로 하자.”

        

       앨리스가 말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황제랑 같은 팀을 하기 싫어하는 티를 내게 되면…… 우리 네 사람 다 불효녀가 되는 거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패륜은 황제 쪽에서 먼저 했는데 말이지.

        

       황제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그 말에는 공감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우리는 개인전으로 플레이하게 되었고—

        

       [실비아님 온라인 게임은 정말 못하시네요]

        

       …….

        

       나는 레이싱게임보다 대전격투 게임에 훨씬 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래도 그렇게 다 같이 게임을 한 것이 꽤 도움이 되었다.

        

       전까지 서먹하던 관계가 훨씬 많이 개선되었다. 역시 친해지는 데는 치고받는 게 제일 좋은 걸까.

        

       “그렇다면 이 게임에서 나는 악역인 것이냐?”

        

       “예…… 뭐,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게임에서는 높은 위치에 있는 이가 악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황제가 아니더라도요.”

        

       “굳이 그렇게 옹호해줄 필요는 없다. 나는 저쪽 세상에서도 악역에 가깝지 않았더냐.”

        

       나의 말에 황제가 껄껄 웃었다.

        

       “…….”

        

       그러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입을 꾹 다무는 것을 보고 앨리스와 클레어가 쓰게 웃었다.

        

       [츤데레딸ㅋㅋㅋ]

       [부녀관계가 정말 보기 좋네요]

        

       쟤네들이 황제가 내 배에 칼을 꽂는 순간을 봤어야 했는데.

        

       그리폰 아니었으면 죽었다고. 진짜로.

        

       “다만, 이번 작품에서 황제의 위치가 조금 애매합니다. 전면적인 적으로 나오기는 조금 그랬겠지요. 전작에서 이미 메인 악역으로 나왔으니까요.”

        

       “그렇다면 솔직히, 나는 전작이 조금 더 궁금하구나.”

        

       “……전작에는 제가 나오지 않습니다만.”

        

       나의 말에 황제는 ‘그럼 어쩔 수 없지’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가면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고 합방이 끝날 것 같아서, 나는 스타트를 눌렀다.

        

       그리고 플레이하기 시작한 지 얼마 뒤—

        

       “그런가. 전함인가.”

        

       황제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너도 저렇게 할 수 있는 것이냐?”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실제로 해보기도 했다. 물론 그건 ‘다른 시간대’에서의 일이었다.

        

       “……그때 그게 네가 한 일이었구나.”

        

       “사실 제가 직접 폭파한 적은 없습니다. 정보를 넘겼죠.”

        

       “제도 위에서 떨어뜨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겠구나.”

        

       “…….”

        

       침투라면 해봤는데. 수류탄도 던져보고. 아무튼 전함 안을 돌아다니며 샅샅이 뒤지고 다닌 적은 있었다.

        

       이제는 시간을 돌릴 수 없으니 그런 짓은 못하지.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했었군.”

        

       황제의 진지한 표정은 또 오랜만이다.

        

       “……게임에 너무 몰입하시지 말아주십시오.”

        

       “아, 미안하다. 아무래도 내가 관련된 일이니 말이다.”

        

       황제는 너스레를 떨었다.

        

       뭐, 이제는 다 끝난 일이긴 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버튼을 눌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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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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