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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1

        

       복채를 받은 진성은 방긋 웃으며 아그네스를 바라보았다.

         

       아그네스는 못마땅해 보이던 표정은 어디로 간 것인지, 묘하게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진성을 보고 있었다. 물론 그 ‘기대’라는 것이 꼭 긍정적인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 기대에는 가늠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으며, 가늠이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니. 결과에 따라 긍정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도, 불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으리라.’

         

       진성은 익숙하게 느껴지는 아그네스의 시선에 방긋 웃었다.

         

       저 눈빛.

       저 시선.

         

       익숙한 것이며,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술사의 점에 대한 기대와 불신.

       그 두 개가 뒤섞인 표정.

         

       점을 칠 때 자주 보는 눈빛이다.

         

       사람들은 주술사에게 점을 볼 때 기대를 품고 찾아온다.

       하지만 그 기대의 이면에는 반드시 불신이 숨어있다.

       미래에 대해 알기 위해 굳이 점을 보러 주술사를 찾아왔으면서, 반대로 그 점에 대한 불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이다.

         

       그것은 본능과 이성의 충돌이기도 하고, 본능과 본능의 충돌이기도 하고, 이성과 이성의 충돌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상에게 기도하면서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간절함이요.

       그것은 마술을 보면서 즐기는 동시에 그 속임수를 찾아내기 위해 눈을 부릅뜨는 것과 같은 심리이니.

         

       저 눈빛은 그것과 같으니, 참으로 익숙하고도 익숙한 것이라.

         

       “복채는 잘 받았습니다.”

         

       그들이 저런 눈빛으로 보는 것은 가지각색의 이유가 있다.

         

       종교적 이유로 ‘점’을 불신하는 이들이 있다.

       단순히 미신에 대해 꺼림칙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과학을 신봉하며 점이란 허무맹랑한 것이라며 소리치는 이들이 있다.

       점이라는 것을 냉철한 이성의 반대쪽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 배격하는 이들이 있다.

       기인으로 여겨지는 주술사에 대해 꺼림칙함과 공포, 혐오가 점으로까지 번져간 예도 있다.

       주술이 아닌 단순히 재미로서의 점을 본 뒤 그 결과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아 점 자체에 불신이 생긴 이들도 있다.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여겨서 점으로는 미래를 예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은 대단한 존재이니 한낱 점으로는 미래를 엿볼 수 없다는 과대망상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이들도 있다.

         

       가지각색.

         

       그래.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열 명의 이유가 있을 정도다.

         

       그 수많은 이유가 불신이 되고, 그 불신이 공격성이 되고, 점을 봐주는 이에게 향하는 날카로운 말이 되어 꽂히곤 하지.

         

       그런 이들을 입을 꾹 다물게 하는 것.

       기대와 불신이 혼재된 눈빛을 오직 기대만을, 믿음만을 채우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주술의 힘이요, 미래를 짧게나마 엿볼 수 있는 점의 힘이다.

         

       “미욱한 저의 점술에 대한 대가로는 차고도 넘치는 금액입니다. 이 정도 복채를 받았으니…. 어디 보자…. 제 미욱한 솜씨로 어렴풋이나마 미래를 예견해보겠습니다.”

         

       진성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 공간에 있는 ‘손님’들을 전부 눈에 담아두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그네스.

       오딜리아.

       아나스타시아.

       엘라.

         

       진성은 넷의 얼굴을 전부 바라본 뒤 품속에서 카드 뭉치를 꺼냈다.

       그리곤 그것을 테이블 위에 살포시 내려놓더니, 손을 그 위에 얹고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쫙 깔았다.

         

       “와아! 카지노 딜러 같네요!”

         

       별것 아닌 것 같은 손짓에 카드가 부채꼴 형상으로 퍼졌다.

         

       아나스타시아는 그것을 보고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진성은 어린애처럼 탄성을 지르는 아나스타시아를 흐뭇하게 바라본 뒤, 아그네스를 바라보았다.

       아그네스는 능숙하게 카드를 늘어놓은 진성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흥미.’

         

       그래,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관심을 주고 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점이라는 것은 모호한 상징에 숨겨진 뜻을 알아내고, 그것을 문장으로 풀어내야 하는 것. 그 때문에 지리멸렬한 문장의 나열이 될 수도 있고, 모호하고 추상적인 단어들이 가득 들어갈 수도 있다.

         

       게다가 사람이라는 생물이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가는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듣고 싶은 것만 쏙쏙 듣고는 알아서 짜 맞춰서 점괘와는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하는 예도 있었고, 몇몇 단어나 문장에만 귀를 집중한 뒤 그대로 귀를 닫는 일도 있다.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해서 점을 봐주는 이에게 욕설을 내뱉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있으며, 아예 엉터리라고 생각해서 대충 흘려넘기는 일도 많았다.

         

       그런 것을 생각해본다면….

       점은 점을 봐주는 이와 점을 듣는 이.

       이 둘이 모두 충실해야만 하는 일종의 대화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렇기에 진성은 점을 바로 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자신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아그네스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그녀가 자신이 하는 말과 점에 집중하게 하려고 말이다.

         

       “하지만 점을 치기 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진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치 뜸을 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점 대신에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요?”

         

       “네. 재미있는…. 흠. 어쩌면 재미있다기보다는…. 그래요. 재미는 없지만, 흥미는 생기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무슨….”

         

       그것은 장난감을 손에 쥐여줬다가 뺏는 것과 같은 행위였으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진성의 행동이 오히려 점에 대한 기대를 더 증폭시켰다.

         

       “아까 프라우 라이히께서는…. 예. 저에게 질문을 하셨죠.”

         

       “네? 네….”

         

       “무슨 질문을 하셨는지, 다시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게…탄자니아에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질문이었어요.”

         

       “그 질문에 먼저 답해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점이 아니어도 설명해드릴 수 있는 것이니까요.

         

       진성은 덧붙이듯 그렇게 말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라우 라이히께서는 아프리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까?”

         

       “거길 여행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잘 알고 있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네요.”

         

       “이런. 겸손하시군요.”

         

       “글쎄요…. 잘 알고 있다는 표현은…흐응. 그곳에서 평생 산 사람도 대륙 하나를 잘 알고 있다고 하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하하하. 그 말도 맞네요. 한 분야를 평생 연구한 학자조차도 감히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라고 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인데, 어떻게 대륙 하나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프라우 라이히의 말이 옳습니다.”

         

       진성이 가장 먼저 던진 것은 아프리카에 대해서 알고 있냐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냥 알고 있냐고 물으면 될 것을, 진성은 굳이 ‘잘’ 알고 있냐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그네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 질문을 듣고 아그네스가 보일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진성의 의도대로 아그네스는 충실히 답해주었다.

       잘 알고 있냐는 물음에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을뿐더러, 아프리카가 주제가 되자 아까와는 다르게 묘하게 공격성을 보이는 것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흐음. 우몽우극 자위아지 우이승지 시위극우(愚曚愚極 自謂我智 愚而勝智 是謂極愚)라.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이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하는 법이니, 자신을 지혜롭다고 하며 다른 지혜로운 이보다 낫다고 하면 그야말로 지극히 어리석은 이라.’

         

       조금 아는 사람은 자신이 많이 안다고 착각하고, 많이 아는 사람은 자신이 조금 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기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기에 생기는 확신이라.

         

       이는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 불리는 유명한 현상이기도 하다.

         

       ‘보자…. 아프리카에 한정해서 질문을 던졌으나 겸손한 모습을 보였으니 자주 방문하였거나 오랫동안 체류를 하였을 것이요, 태도에 공격성이 보였으니 좋지 않은 일을 겪어 인상이 좋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요, 공격성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오기는 하되 그것을 표출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팔을 움직여 가슴을 가리려는 것이 보였으니 그것에 대해서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음이라.’

         

       진성은 짧은 순간, 아그네스를 관찰했다.

         

       ‘거기에…. 여행을 언급했을 때 눈동자의 방향이 왼쪽 위로 향하는 것을 보았는데…. 오른손잡이인 것을 보아하니 과거를 회상한 것이라. 과거의 회상과 함께 몸이 살짝 옆으로 틀어지는 것을 보았으니 이는 자신의 과거를 입 밖으로 꺼내기 싫어하는 것이로다. 게다가 ‘그곳에서 평생 산 사람도’라는 말을 꺼냈을 때 직접적으로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에 ‘그곳’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아 명확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를 자연스럽게 거부하는 것이 보이니, 무의식에서 아프리카를 기피하는 것이라. 하니 안 좋은 기억이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하며, 평생이라는 단어에 힘이 들어간 것을 보아 그 안 좋은 기억을 안겨준 것은 아프리카를 떠난 적이 없는 현지인이 그 주인공일 가능성이 클 터.’

         

       관찰의 결과가 말했다.

       아그네스가 아프리카에 대해서 그리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아프리카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가득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경험은.

         

       ‘그리고, 좋지 않은 경험으로 보이나 몸의 움직임이 그리 크지를 않다. 그곳에서 상처를 입었다면 상처를 입은 부위를 쓰다듬거나, 그 상처 부위가 움찔 움직이는 것이 보였어야 했으나 그것도 없고…. 육체적으로 위협을 당한 사람이 으레 보일법한 반응 역시 보이지 않으니 육체적인 피해는 없는 듯하고…. 지갑을 쥔 손에 잠시나마 힘이 들어간 것을 보아 소매치기당하거나 강도를 당할 뻔한 경험이 있는 것 같구나. 거기에 눈동자가 잠시 엘라와 아나스타시아 쪽으로 움직였으니…. 그렇군.’

         

       아프리카에서 엘라를 구출했을 때, 그리고 구출한 뒤에 겪은 일과 연관이 있는 것이겠지.

         

       진성은 짧은 질문으로 아그네스에게서 꽤 많은 정보를 뽑아내었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 질문을 좀 고쳐볼까요?”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위협적인 것들’에 대해서 그냥 말해도 될 것 같다고.

         

       “아프리카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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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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