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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2

       하린은 화령의 편집자가 되기 전부터 오랫동안 인터넷 방송을 시청해왔다.

       

       VR게임이라는 것이 세상이 퍼져나가던 태동기 때부터 관심을 가졌으니 그녀의 인생 중 절반은 인터넷방송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무방하리라.

       

       과거 슬로우쿡이 방송인들 사이에서 유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는 시간이면 인터넷 방송을 옆에 켜둔 채 공부를 하던 하린은 그들이 슬로우쿡을 플레이하는 걸 모두 다 지켜봤다.

       

       무수한 실패 속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광경을 말이다.

       

       “우와. 망했다.”

       

       그래서 그녀는 화령을 도울 요리사 세 사람의 면면을 봤을 때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4장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요리사 세 명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먹을 수 있기만 하면 되니까 적당히 적당히 하자는 놈 하나.

       

       플레이어와 맞먹으려는 놈 하나.

       

       애초에 일할 의욕이 없는 놈 하나.

       

       어지간한 유저라면 가챠가 망했다며 한 치 망설임 없이 리트를 택했을 상황이었지만 화령은 그러지 않았다.

       

       “우와아…”

       

       창백하게 물들어가는 세 사람의 얼굴을 본 하린은 지금 저들이 무엇을 마주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녀가 화령에게 구를 적에 항상 당했던 것.

       

       등줄기에서부터 올라오는 공포.

       

       화령은 저를 살기라고 이야기했지만 하린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화령이 내뿜는 무언가는 살의라기보다는 죽음의 재현에 가까웠으니까.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떠는 이들의 얼굴을 본 하린은 화령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노답인 사람이라 할지언정 뒤편에서 육식동물이 자길 물어뜯겠다고 달려들면 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시.’

       ‘저어. 이 정도면 먹을 만.’

       ‘선택지를 주지. 비명을 지르고 다시 음식을 만들겠나. 그냥 다시 음식을 만들겠나.’

       ‘그냥 다시 하겠습니다!’

       

       적당히를 외치는 사람은 다신 적당히 하자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화령 선배. 가끔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쉬는 것도.’

       ‘평생 쉬고 싶나? 바란다면 영원히 잠을 알려줄 수 있다만.’

       ‘네?’

       ‘걱정 마라. 아프진 않을 거다. 아픔도 느끼지 못한 채 잠들 테니까.’

       ‘아. 아뇨! 농담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윗사람과 맞먹으려던 이는 자연스레 자기 주제를 파악하게 되었다.

       

       ‘왜요? 어차피 제 가게도 아니잖아요?’

       ‘그래. 맞다. 이 가게는 그대의 것이 아니지.’

       ‘그러니까 전 적당히.’

       ‘허나 그대의 목숨은 그대의 것이지 않나.’

       

       열심히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겠다던 자는 강제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단 30분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했으니.

       

       그 누구도 고칠 수 없을 개노답이라 불리던 세 사람은 서서히 사람의 형상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화령의 기적을 지켜보던 이들은 역시 화령이라며 탄성을 표했지만 하린은 차마 그러지 못했다.

       

       개처럼 구르는 세 사람의 모습에서 자신이 구르던 모습이 비쳐 보였기에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틀 뒤에 또 화령님이랑 훈련을 해야 하네.

       

       …흐아앙. 안 그래도 화령님이 요 며칠 간 밤을 새워가면서 방송을 하는 바람에 편집할 거리가 엄청 쌓여 있는데 거기에 훈련까지 해야 하다니!

       

       내 무술 실력이 늘어나는 건 정말 기쁘지만!

       

       그래서 힘들단 이야기는 못 꺼내겠지만!

       

       그래도 훈련 날이 다가오는 게 너무 두려워!

       

       이번에는 또 얼마나 굴러야 할까!

       

       설아가 오고 나서 훈련이 점점 빡세지는 느낌이라며 하린이 한탄을 하건 말건 화령은 요리사 세 사람을 자신이 만족할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에 주력했다.

       

       ‘화령 씨.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아? 이쯤 되면 가게 운영하는 데는 지장 없을 것 같은데.’

       ‘그거야 그렇겠지. 허나 본인은 이 정도에서 만족할 수 없다. 더 나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데 왜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만한 요리를 만들겠다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던 화령은 자기 휘하의 요리사들에게도 같은 엄격함을 강요했으니.

       

       화령의 고행이 끝날 즈음 세 사람의 요리사는 화령의 레시피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 만족스럽군. 진즉에 이랬으면 무어라 할 필요도 없었을 테인데 말이야. 뭐어. 됐다. 애리카. 이제 장사를 시작하자꾸나.’

       

       *

       

       가게의 문이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이 방문한다.

       

       오늘의 첫 손님은 나이가 지긋한 신사인가.

       

       저 얼굴. 기억나는 군. 거리에서 서양의 악기를 연주하던 악사였지. 아마.

       

       “안녕하신가. 애리카 양.”

       

       노인은 자신의 모자를 벗으며 애리카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절도 있는 움직임과 예의바른 어투에서 노인의 인품이 엿보이는 듯 하군.

       

       결코 가벼이 대해도 될 사람은 아닐 것이야.

       

       “물론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스 씨.”

       

       애리카가 노인을 대응하는 걸 보면서 그의 육신을 살핀다.

       

       나이에 비해 몸의 관리를 잘 하기는 했다만 그렇다 한들 쇠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과한 원기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겠군. 적당히 조절을 해야겠어.

       

       그리고 몸 안에 음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가만 내버려 두면 병치례를 겪을 터.

       

       이 부분도 신경을 써두자.

       

       약재에 대한 부분은 이쯤 하면 될 것이고 이제는 맛에 대한 부분이다만 저 노인의 경우에는 좀 더 전통적인 것을 추구하는 편이 나을 것처럼 보인다.

       

       주름 하나 없는 정장과 말끔하게 정리된 수염. 상처 하나 없는 시계가 저 자가 지닌 고집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 놈들아.”

       “예!”

       “네!”

       “옙!”

       “약재는 4번. 맛은 7번으로.”

       

       세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살핀다.

       

       내 여태까지 이 놈들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만 연습과 실전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어떤 괴악한 짓거리를 저지를지 모르는 데 신경을 써야지.

       

       …흐음. 당장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군. 처음이라 기합이 바짝 들어있어서 그런가.

       

       일단은 내버려 두어도 괜찮겠다 판단한 나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 손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와. 저 세 사람이 일을 잘 할 수가 있는 거구나. 신기하네.]

       

       – 트롤링만 안해도 감사하단 이야기 듣던 애들인데.

       – 저 세 노답을 사람으로 만들다니. 역시 화령이다.

       – 메모. 법보다는 눈 앞의 식칼이 무섭다.

       

       “그럼. 즉각적인 처벌이. 어이! 2번이 아니라 3번이다!”

       “죄송합니다!”

       

       – 괴식제조가화령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젠 화령 요리치라고 못 놀리겠는데?]

       

       – 이젠 생긴 것만 그런 게 아니라 걍 진짜 셰프야.

       – 카리스마 장난 아니다.

       – 괴식 만들던 우리 추령님은 어디로 간 걸까.

       

       “지금도 기괴한 음식은 만들어 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지금 더 잘 할 수 있겠군. 과거엔 몰라서 그랬지만 지금은 알고… 약재 5번! 맛 3번! 복창해라!”

       ““약재 5번! 맛 3번!””

       

       – 자영업자입니다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현직 레스토랑 사장입니다. 저희 주방에서 일 할 생각 없으신가요?]

       

       – 찐임?

       – 찐이겠냐.

       – 근데 직원으로 화령 있으면 겁나 든든하긴 하겠다.

       – 자기가 알아서 다 해 줄 것 같잖아.

       – 현직 요리사입니다. 저희 주방엔 오지 말아 주세요. 과로로 죽고 싶지 않아.

       – 엌ㅋㅋㅋ

       – 저 세 사람처럼 구른다고 생각하면 진짜 끔찍하긴 하다.

       – 안 그래도 주방일 빡세다던데 화령까지 들어오면.

       

       “허어. 본인이 어떤 사람인데 설마 사람을 과로로 죽게 만들겠는가. 정확하게 죽기 직전까지만 굴려줄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게 더 끔찍한데요.]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당 일을 하고 있으려니 주방 쪽으로 처음의 노인이 다가왔다.

       

       모자를 꾹 눌러쓴 그는 바쁜데 실례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목례를 건넸다.

       

       “잘 먹었네. 내가 먹어봤던 요리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어. 거기에 더해 가격까지 훌륭하다니. 자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잘 먹어주었다니 오히려 내 쪽이 기쁘군.”

       “그리고 말이야. 자네의 요리를 먹으니 이상하게도 힘이 나. 하루에 한 시간 연주를 하면 지쳐 쓰러질 것 같았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활대를 움직일 수 있을 듯 해.”

       

       모자 그늘 아래로 비치는 아이 같은 눈동자를 본 나는 처음 코스 요리를 계획했을 때 만들어 두었던 목표가 이루어졌음을 깨달았다.

       

       나의 음식이 이 자의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벼운 걸음으로 가게를 나서는 노인을 살피던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가게 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아. 끝을 볼 때까지 죽어라 달려보자꾸나.

       

       *

       

       “훌륭했어! 손님들이 하나 같이 극찬을 하더라고! 다들 코스 요리를 오늘만 하는 게 아니라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랬다니까!”

       

       잔뜩 흥분해선 내게 소리치는 애리카의 얼굴 옆에 [4장 클리어!] 라는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큰 기쁨은 없었다. 약재를 이용한 코스 요리를 짜내겠단 생각을 했을 때부터 이 결과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 바므우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런 것치곤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는데요.]

       

       “큰 기쁨이 없댔지. 작은 기쁨이 없다 그랬느냐.”

       

       본인이 생각하고 설계한 것이 이루어졌는데 어찌 기쁨이 아예 없을 수 있을까.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을 뿐 본인의 마음 속에는 잔잔한 기쁨이 퍼지고 있느니라.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결국 기쁜 거잖아!]

       

       “어허. 본인이 그렇다면 그렇다는 게야.”

       

       후원에 가벼이 답을 하면서 다음 장으로 가겠냐는 물음에 예를 눌렀다.

       

       이 곳에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이루었으니. 더 이상 이 곳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을 터.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하러 갈 차례다.

       

       본인의 손가락이 ‘예’라는 문구에 닿은 순간 주변의 풍경이 바뀐다.

       

       하루 종일 수많은 이들이 거쳐가며 소란을 모두 사용하는 바람에 고요로 물들어버린 가게에서. 벽돌로 이루어진 거리의 풍경으로.

       

       가게가 잃어버렸던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한 거리 한 가운데에 떨어진 나는 느긋이 주변을 둘러보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허어?”

       

       그 거리는 인간의 형상을 한 짐승의 거리였다.

       

       보드라운 털을 지니고 있으며. 살랑거리는 꼬리들이 바닥을 쓸고.

       

       쫑긋거리는 귀가 소리를 품고.

       

       사납고 선명한 동물의 눈이 존재하는 곳.

       

       그런 광경을 가만 지켜보던 나는 눈을 두어번 끔뻑거리다 나를 향하는 적의 어린 시선들을 느끼고는 품을 뒤져 담배를 꺼내 들었다.

       

       “젠장! 저건 뭐야!”

       “괴물이다! 괴물!”

       “도망쳐! 여기 있다간 죽을 거야!”

       “경비병! 경비병 어디 갔어!”

       “허어. 이것 참.”

       

       이 곳은 천국이며 동시에 지옥인 장소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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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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