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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2

       “친구 하나를 위해 제국 자체를 위험하게 만들다니,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할 선택은 아니었다.”

        

       “그렇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기는 했을 거다. 다수……가 아니라, 자기 권력을 위해서 다른 이를 희생시키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으니까.

        

       그나마 초대 황제는 인간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 황제는 오로지 그 세상 자체를 가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 장치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도 따지자면 초대 황제의 힘이 아니라 여신의 힘을 강탈하려고 한 거고.

        

       “하지만 무척 너다운 행동이기는 하구나.”

        

       “…….”

        

       나는 컨트롤러를 잡은 채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게 틀렸다는 생각은 한 적 없다. 서로 바라는 바가 달랐을 뿐이지. 결국 네가 이기지 않았느냐.”

        

       “……제가 이기긴 했습니다.”

        

       그 결말을 완전히 짓지 못하고 여기 와있긴 했지만, 확실히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상황이 뒤집힐 것 같지는 않다.

        

       “아주 많은 시도가 있었죠.”

        

       “음.”

        

       황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잠깐 다시 게임 화면을 보았다.

        

       [컨셉 확실하고 ㅋㅋㅋㅋ]

       [조금 전만 해도 그냥 부녀였는데 갑자기 원수 사이가 되었네]

        

       채팅창도 잠깐 보았다.

        

       다들 나와 황제의 대화를 딱히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저 컨셉으로 여기고 있었다.

        

       “폐하라면, 저와 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계획을 확실하게 보강했겠지.”

        

       “몇 번이나 시간을 돌려가면서?”

        

       “그렇다.”

        

       황제는 팔짱을 끼고 앉아 말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네가 미래를 본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비슷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어려운 길이었지. 나는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남들이 한 것이 대단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니 말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겸손하셨습니까?”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게임에서는 이제 전함이 떨어지고 나서 실비아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함 안에 실비아가 있었다면, 실비아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는 전함의 내부 구조를 떠올려보았다.

        

       샅샅이 훑고 다니면서 내부를 열심히 탐색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걸 전부 기억하는 것은 무리다. 나는 시간을 돌리는 내내 전함의 내부를 몸에 익히려고 노력했다.

        

       본능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눈을 감으면 그 내부가 어땠었는지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결과적으로는 폭발시키기도 했다. 내 손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낙하산을 썼을까? 어쩌면 지연식 폭탄을 썼을지 모른다. 폭탄을 설치하고 터지기 전에 발견될 수도 있긴 했지만, 이 실비아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있다. 수백 번 시도하며 한 번만 성공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남들 눈에는 한 번에 성공한 것으로 보일 테니까.

        

       그게 쉽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

        

       아무튼 전함이 떨어지고, 실비아는 실종되었다. 아무도 그녀의 뒤를 쫓지 못했다.

        

       그렇게 남은 아이들이 당황하고 실비아를 걱정하는 부분을 플레이하는 걸, 황제는 꽤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당하는 처지에서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렇습니까?”

        

       황제의 그 말에는 나도 놀랐다. 앨리스도,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아니, ‘당하는 처지에서 생각해본 적 없다’라는 사실에 놀란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황제가 그 말을 하는 이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황제는…… 독선적인 인물이 아닌가. 나름대로 협상도 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힘으로 눌러 밀어버릴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처리하는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자기가 눌러버린 인간들에게 공감하는 듯 말하고 있는 지금 상황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비아 경악한거 봐ㅋㅋㅋ]

       [그 황제가 저런 말을 해서 그런가ㅋㅋㅋ]

       [컨셉이라면 연기해도 될 것 같은 표정]

        

       “그래서, 인제 와서 연민의 감정이 샘솟으십니까?”

        

       “글쎄.”

        

       황제는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게임 속의 앨리스는 불안해했다. 클레어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샤를로트가 말리는 것을 듣고 참았다.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사라진 실비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아마 내가 그랬듯, 황제 아래 있는 비밀 부대의 일원이었을 거다. 황제의 아이들이라는, 남들이 붙여준 이름을 가진.

        

       “그것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구나.”

        

       “어쩌면 여기선 보통 사람이라서 그럴지 모르죠.”

        

       앨리스가 조금은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여기서 황제에게 애정 비슷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앨리스일 거다.

        

       나는 황제의 아이라는 위치에 있긴 했지만, 꽤 오랫동안 서로의 목을 노렸고, 클레어는 피는 섞였지만, 황제가 키운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인 황제의 관심을 갈구했고, 그래서 삐뚤어질 뻔하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아는 앨리스는 그렇게 삐뚤어진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 세상에선 황제라는 특권이 없으니까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황제라는 미래를 지고 태어났던 저쪽에서의 이야기와는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음…….”

        

       앨리스의 말에 황제는 다시 고민했다.

        

       “나도 태어나던 순간부터 황제였던 것은 아니다.”

        

       [프리퀄이다]

       [듣고 있으니 조금 재미있네요]

       [이정도면 진심이다]

        

       아직도 우리 대화가 캐릭터를 따라하는 건 줄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채팅을 올렸다.

        

       하지만 조금 전보다는 조금은 가라앉은 분위기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어하는 사람은 조금 전보다 적었다.

        

       어쩌면 분위기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분위기라 그럴 것이다.

        

       아무리 컨셉이라도 연기하는 사람들이 정색하고 있으면 저쪽에서도 슬슬 진심인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지.

        

       “수많은 정적이 있었고, 그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나갔다. 외척이 권력을 빼앗게 둘 수는 없었다. 나의 피를 가진 아이는 많아야 했다. 내 계획을 확실하게 성공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가능성이 필요했고, 나는 그걸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했다.

        

       황제의 그 말은, 한 번 들어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음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 차이점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기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나는 내가 한 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그게 내 삶의 전부였으니까.”

        

       권력을 쫓는 삶.

        

       “이쪽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라도 생겼다는 뜻입니까? 삶의 남은 부분 동안 새로 시작해보고 싶은 부분이?”

        

       “……어느정도는,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

        

       “그렇다고 해도, 돌아갔을 때 당신을 이곳에 두고 가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딱 잘라 대답했다.

        

       우리 셋이 황제를 확실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황제는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음모를 꾸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였다. 그런 자를 백 퍼센트 확실하게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그렇기에 황제를 이쪽 세상에 두고 갈 수는 없다.

        

       나는 이쪽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겠지만, 설령 앞으로 이 세상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나는 황제가 이 세상을 먹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다.

        

       ……이 세상에는, 아직 내 가족이 있다. 저쪽에 가서 생긴 가족 말고,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내 동생이 여기 있었다.

        

       아직 다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황제가 혹시라도 남아서 저지를 짓에 그 사람들이 휘말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도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나도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황제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이쪽에서 해보고 싶다는 것은 그다지 위험한 일은 아니니 안심해라.”

        

       “세상을 평화롭고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겠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그 세상을 자기 꼭두각시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던 사람의 말을 온전하게 믿을 멍청이가 세상에 있겠습니까?”

        

       내 말에 황제는 다시 쓰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

        

       잠깐 방송 방에 침묵이 감돌았다.

        

       채팅창도 분위기를 감지하고 물음표가 잔뜩 올라오고 있었다.

        

       “……짜잔!”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클레어가, 갑자기 화면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여기까지 미리 써둔 각본이었습니다! 어떠세요? 그럴싸했나요?”

        

       [ㅋㅋㅋㅋㅋㅋ]

       [그럼그렇지]

       [컨셉인데 너무 진지했던듯]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연기를 하다 보면 몰입하게 되는 성격이라.”

        

       나도 살짝 너스레를 떨듯 말했다.

        

       “그러게. 실비아 너는 연기에 좀 지나치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긴 했어.”

        

       앨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건 진짜 디스잖아. 내가 저쪽 세상에서 컨셉 잡고 있던 걸 말하는 거니까.

        

       “나는 그 연기에 한참 동안 깜빡 속았다만.”

        

       황제가 나를 변호해주었다.

        

       별로 기쁘지는 않았다.

        

       기쁘지는 않았지만…….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

        

       그냥, 지금은 표현하는걸…… 미뤄두도록 하자.

        

       나중에, 조금 더 확실하게 감정이 떠올랐을 때 판단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게임을 계속해나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말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ㅜㅜㅜㅜ

    시간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ㅠㅜㅠㅠ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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