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화. 대규모 합병 ( 3 )
콰─────앙!!
용이 날아간 자리에는 방사형의 충격파가 남았다.
소닉 붐이다.
채찍을 제외한다면 판타지 세계에서 소닉 붐을 경험한 최초의 존재가 된 이베르와 케니스, 한스.
《크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ㅡ!!”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어떤 업적을 달성했는지 되새길 여유가 없었다.
음속을 초월한 대가는 처참했다.
캡슐 모양의 막이 바람은 막아줬지만.
미친 듯한 진동과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은 막아주지 못한 탓이다.
심지어 이베르도 음속으로 날아가는 몸을 제어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한스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기절한 것 같다.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악!!》
이베르는 비명을 질렀다.
예상을 월등하게 초월한 추진력이었다.
‘하나 된 분이시여ㅡ!! 이 정도일 거라는 말씀은 없지 않으셨습니까ㅡ!!’
일곱 개의 빛나는 별들 사이로, 엄지를 치켜올리는 거인이 보였다면 기분 탓일까.
《신ㅡ이ㅡ시ㅡ여ㅡ!!》
문득 신이 조금 미워진다면 어떨까.
솔직히 이 정도는 불경이 아닐 것 같다.
콰─────앙!!
음속을 뛰어넘은 비행.
덕분에 대륙 한 바퀴를 돌며 권력자들의 원만한 협조(납치)를 받아내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오에 출발하여 온 대륙을 일주한 다음, 동틀 무렵 만신전에 돌아왔으니.
이 얼마나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인가.
“허억……. 허어억…….”
“사, 살려… 우웁! 우우욱!”
“우웨에에에엑!”
대신 용의 등에서 내린 권력자들이 한동안 헛구역질에 메스꺼움을 호소한 것은.
음속으로 비행한 업적에 비하면 실로 사소한 부작용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신께서 보내주신 용 덕분에 만신전은 정오 무렵까지 가까스로 회의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하나 된 분께서 예고하신 시간이 됐다.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며 정오가 되었다.
“…정오입니다.”
“저, 정말로 그 존재가 이곳에 나, 나타날까요…?”
“마왕…. 마왕 발가르.”
만신전에서 가장 거대한 원탁에 둘러앉은 왕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낮고 차가운 두려움이 서서히 존재감을 부풀렸다.
조용히 적대감과 분노를 불태우는 이도 있었다.
만신전의 인물들이 주로 그러했다.
“올 것입니다. 하나 된 분의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 녀석은 분명 나타나겠지요.”
“…까득.”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발가르에게 패배했던 케니스는 조용히 검을 움켜쥐었다.
패배.
마왕과의 싸움에서 케니스는 몇 번이고 패배했다.
느껴지는 것은 아득히 높은 벽.
끝없는 무력감과 분노.
‘이번에 녀석과 싸워서 나는… 이길 수 있을까?’
무력함과 좌절이 케니스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투욱.
케니스의 손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움켜쥔 주먹이 손바닥을 반쯤 파고들고 있었다.
한스가 조용히 케니스의 손을 붙잡았다.
“케니스. 괜찮겠어?”
“…응. 고마워….”
바짝 굳어있던 케니스의 어깨가 한결 편안해졌다.
데이지가 있었다면 곧장 둘 사이에 끼어들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이와 자격 미달로 이 자리에 끼지 못했다.
쿠웅ㅡ!
가죽 북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허공의 공간이 쩍 찢어졌다.
성난 맹수가 발톱을 휘두른 마냥, 거칠고 날카롭게 찢어진 균열이다.
“허, 흐읍! 오, 온다! 온다ㅡ!!”
“모두 정숙! 정숙하십시오!”
차앙!
회의장을 채우고 있던 성기사들이 창칼을 세우며 균열을 향해 경계를 곤두세웠다.
하나하나가 심연 원정대에서 살아 돌아온 정예 중의 정예였다.
뚜벅.
온다.
다가온다.
회의장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뚜벅.
한 걸음.
또 한 걸음.
균열 너머에서, 거대한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뚜벅.
회의장 내부에는 어느새 싸늘한 냉기가 차올랐다.
거세게 부딪히는 이빨은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추위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뚜벅.
이윽고.
거대하고 압도적인 죽음이, 폭력의 화신이 회의장에 강림했다.
《…이곳이 지상인가.》
삐이ㅡ!
한 손에 앙증맞고 귀여운 새끼 용을 안은 채로.
“…??”
“???”
“……새끼…… 용?”
누군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가 제 입을 틀어막았다.
뭐지 저 용은?
마왕이 왜 새끼 용을 안고 있는 거야?
저게 새끼 용 맞아? 와, 미쳤다. 너무 귀엽다.
로티의 귀여움은 모든 종족에게 평등했다.
평생 신실하게 살아온 성기사들마저 로티에게 시선이 향할 정도였다.
삐이이! 삐이ㅡ! 삑!
로티가 짜리몽땅한 앞발을 들어 올렸다.
반갑다는 인사였다.
회의장을 채우고 있던 팽팽한 긴장감과 싸늘함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이 녀석. 로티, 얌전히 있어라. 그것이 약속이었다.》
삐이….
발가르가 로티에게 주의를 줬다. 로티는 살짝 침울하게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저리도록 안쓰러운 모습에 인간들이 분노했다.
저, 저 피도 눈물도 없이 매정한 녀석.
누가 악마의 제왕 아니랄까 봐 인간미가 하나도 없네.
“크흠.”
《너희들이 인간의 대표인가?》
“그렇ㅡ”
발가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비어있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다음 원탁에 다리를 올렸다.
이후 회의장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쯧. 버러지들만 모였군. 쓸만한 녀석이 없어.》
분위기는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애초부터 발가르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없는 이들이었기에, 적대감은 순식간에 덩치를 부풀렸다.
“이, 탄탈로스에 처박힐 녀석이…!”
참다못한 케니스가 대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서려 할 때.
로티가 파다닥 날아와 발가르의 얼굴을 챱! 꼬리로 후려쳤다.
삐이이이이! 삐익! 삐이이익! 삐, 삐이!
《이, 이 녀석! 로티! 뭐, 뭐 하는 것이냐! 이 녀석!》
꼬리와 날개로 발가르의 얼굴을 마구 후려치는 모습이.
마치 발가르를 야무지게 두들기며 혼내는 모습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으음.”
덕분에 타이밍을 놓친 케니스가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한스는 잘 참았다고 속삭이며 케니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삐이….
간신히 사그라진 분위기를 확인한 로티가 눈을 문질렀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흥…. 됐다. 흥이 식었군.》
로티 덕분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무사히 끝났다.
발가르는 재미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창칼을 겨누던 성기사들도 조금은 경계를 낮췄다.
그것이 적의까지 감췄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회의장에는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아마도 평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
《……….》
회의실을 지배한 숨 막히는 침묵.
성기사들은 침묵 속에서 분노와 혐오의 눈빛으로 발가르를 노려봤다.
몇 차례의 심연 원정에서 마왕에 대한 적대감이 이미 극에 달한 만신전이었다.
“……불경한 녀석. 찢어 죽이고 불태워도 모자란 녀석.”
《쯧. 하찮은 벌레들이 자꾸 앵앵거리는군.》
만신전이 이해한 마왕은 거대한 시련이다.
끝없이 저항하고 발버둥 치며 이겨내야 하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악의.
그것이 바로 발가르 칸 가르데나, 마왕이다.
그러니 발가르를 바라보는 만신전의 시선이 마냥 고울 수가 없다.
눈앞에 모든 사악의 원흉이 있는데 어찌 고운 눈으로 보겠는가.
발가르와 만신전의 인원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오갔다.
시선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다면 수십에서 수백 번은 서로를 죽였으리라.
‘…공기가 이렇게나 무거웠던가.’
신성 로마니언 제국의 카이사르 황제가 마른침을 삼켰다.
온갖 정치적 수라장을 겪은 황제마저도 이 침묵과 긴장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손에 있는 태양 왕홀이 아니었다면 숨도 쉬기 힘들었을 것이다.
약소국 왕들의 상태는 구태여 말할 것도 없었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지 않는 것이 한계였다.
‘신이여. 부디 빨리 좀 와주소서! 제발!’
카이사르는 절실하게 기도했다.
제발 좀 빨리 오셔서 이 숨 막히는 공기를 좀 어떻게 좀 해주셨으면!
쿠우우웅ㅡ!
일대를 짓누르는 거대한 시선!
존재 자체로 공간을 지배하고, 인과를 비트는 힘이 회의장을 지배했다.
카이사르는 속으로 신에 대한 찬양을 부르짖었다.
마침내!
드디어!
《다들 모였구나.》
거룩한 음성에 모두가 고개를 조아렸다.
한평생 신앙에 몸 바친 노인도, 모든 사악함과 시련을 상징하는 마왕도, 인간의 횃불을 들고 있는 용사도.
《오늘 너희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은, 내 긴히 전해 줄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니. 아이들이여,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사방천지 만물이 진동하며 그분의 입이 되어 우렁차게 외친다.
《별들이 빛을 품기 전, 태초의 신비와 기이함이 땅을 거닐던 시절. 산맥들이 웅장하게 일어서서 바다를 향해 내달리던 시절이 있었노라.》
태초의 시기.
신비의 존재가 땅을 거닐고, 고래는 하늘을 날며, 기이한 것들이 심해를 헤엄치던 때가 있었다.
《지상은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광활했노라. 바다는 배를 타고 수백 번의 하루를 나아가야 했으며, 평야는 가장 빠른 말이 수천 번의 태양을 보며 달려도 끝에 닿지 못했다.》
지금은 잃어버린 유산이 되었다.
모두 부서져 저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아주 불행한 사건이 있었노라. 두렵고 끔찍하며 사악한 악의로 인해… 아름답고 신비롭던 땅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 그리하여 나는, 타락한 땅을 조각내어 가장 깊은 곳에 가두었다. 다른 모든 곳을 구하기 위한 결단이었도다.》
만신전의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신께서 심연을 만드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을 줄이야.
《허나 이제는 때가 되었다. 심연은 지상의 일부가 되리라. 잃어버린 세상이 돌아오리라.》
신께서 우렁차게 선포하시니.
이에 모두가 부복하며 마땅히 말씀을 받들었다.
“하나 된 분이시여! 허나 심연에 도사린 무수한 악의 종자들은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그들이 지상에 올라온다면 끔찍하고 두려운 일들이 무수히 일어날 것이옵니다!”
안토니오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와 하나 된 분에게 아뢰었다.
다른 이들도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연이라는 별세계에 갇혀 있을 적에도 악마들이 기승을 부렸다.
하물며 악마들이 땅 위에서 거닌다고 하면 얼마나 끔찍한 참상이 일어날 것인지.
이건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꿀꺽.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신의 말씀을 기다렸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히에에엑…!!! 서, 설정… 오류…!! 크아아아악!! 주인공의 월급은 너프 당햇슴니다…!! 대신 3년 -> 4년으로 적금을 쌓은 기간이 연장되었습니다…!! 크흑… 저는… 우째서 자꾸 이런 실수…를…!!! 크흐흐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