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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3

   자그마한 소란이 지나간 후. 하도 소리를 질러대서 목이 쉬어버린 아서는 산발이 된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리나를 툭툭 건드렸다.

   

   루시의 여러 물건들을 얻었을 때를 상상하며 침을 흘리던 그녀는 아서의 접근에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그렇게까지 불결한 존재인가? 리나의 기겁에 아서가 자잘한 상처를 받았지만 리나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서와 닿은 부분을 툭툭 털어내며 말을 이었다.

   

   “일단.”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허술하다 못해 징그럽다 느껴지던 목소리는 어디로 간 건지 리나의 목소리의 위엄이 서린다.

   

   숲의 주인이라는 지위에 어울리는 위압적인 분위기.

   

   방금 전 리나의 변태 같은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방에 자리한 모두가 그녀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으리라.

   

   “조이 네가 펼치는 마법을 보여봐라. 그걸 봐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네.”

   

   눈을 감고서 심호흡을 한 조이는 연금술사의 앞에서 펼쳤던 자신의 마법을 떠올렸다.

   

   그 때의 기억은 무척이나 선명했다.

   

   그건 조이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이적이었으며 루시가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게 된 시초가 된 마법이었으니까.

   

   얼기설기 얽힌 마법진을 만들어 낸 조이는 눈을 뜨고서 엉망진창인 자신의 마법에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나 어설픈 마법이었나. 제대로 발동된 게 놀라울 지경이네.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생각하며 조이가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마법진이 밝게 빛나며 앞으로 일어날 현상을 예고했지만.

   

   “…어라?”

   

   방 안에는 그 어떤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들이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조이. 뭔가 실수했나?”

   “실수 안 했습니다. 변태 왕자님. 마법은 제대로 발현되었습니다.”

   “얼빵이가 자기 모르게 실수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다시 확인해봐라.”

   “이미 확인 해봤어요. 마법은 분명 제대로 펼쳐졌습니다.”

   “그럼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냐.”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조이와 아서가 서로 투닥거리는 동안 리나는 가만 서서 방 안의 기운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곰방을 꺼내 입에 물었다.

   

   리나의 권능이 담긴 연기는 위를 향해 피어오르다 자연스레 허공에서 흩어져 버렸다.

   

   “흐음.”

   

   그 후에도 리나는 자신의 연기를 피워 올려서 이런저런 시험을 해보았다.

   

   어떤 때에 연기는 리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지만 또 어떤 때에 연기는 허공으로 흩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재밌는 것을 만들었군.”

   

   힘이 담긴 한 마디로 시선을 끌어 모은 리나는 자신의 회백색 연기를 거뒀다.

   

   “이건 단순히 공허의 권능을 파훼하는 마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부분은 건드리는 것이지.”

   

   공허의 권능이 환상을 보여주는 방법은 착각을 기반으로 한다.

   

   공허의 위에 서면 모두가 똑같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에 공허의 권능을 위에 두르면 자연스레 상대방을 착오에 빠트릴 수 있지.

   

   공허의 권능을 파훼하기가 까다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서 무엇을 느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어설프게 공허의 권능을 두른 자들은 어찌저찌 구분해낼 수 있지만 완벽하게 권능을 다루는 자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마법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에 존재감을 부여하는 마법이다.”

   

   아직 조이의 마법은 완벽하지 않다. 즉석에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든 마법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허나 마법 안에 깃들어 있는 발상과 잠재력은 리나마저도 감탄을 하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음.”

   

   마법진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리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본녀가 도와줄 수 있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군.”

   “…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존심을 세우던 리나가 순순히 뒤로 물러서자 조이가 놀라서 되물음을 던졌다.

   

   허나 리나의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곰방 끝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살짝 날이 선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본녀가 조언해봐야 어설픈 잡소리가 될 뿐이다.”

   “그게 무슨.”

   “본녀가 그대들을 도와준다고 이야기했을 때 본녀는 기존의 여러 마법들을 기반으로 하여 그대들에게 조언을 해 줄 생각이었다.”

   

   리나는 마법사가 아니다.

   

   그녀가 다루는 권능은 어디까지나 그녀만의 힘이고 그녀가 지닌 마법적 지식은 긴 세월을 살아옴에 따라 자연스레 쌓인 무언가일 따름이지.

   

   만약 조이가 내민 마법이 어지간한 것이었다면 리나는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그럴 듯한 답을 내어주었을 것이다.

   

   허나 이번 것은 아니었다. 공허의 권능 하나만을 파훼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이 마법은 그녀의 지식에서 벗어나 있었다.

   

   “더 많은 것을 받으려 하시는 것이라면.”

   “멍청한 남자놈아. 본녀가 진정 루시의 자취가 남은 물건을 거머쥘 기회를 가지고서 도박을 하리라고 생각하느냐?”

   “…”

   “마음 같아서는 지금 허세를 부려 물건만을 갈취하고 싶으나. 그대들이 루시의 친구들이기에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서의 추궁을 간단히 물리친 리나는 슬며시 조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이는 자신의 마법진을 바라보며 눈을 끔벅거리고 있었다.

   

   본녀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닌 듯 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마법이 그런 종류라는 것을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건가.

   

   “그나마 조언다운 조언을 해주자면 누구를 찾아가더라도 이 마법에 대한 조언을 얻기는 쉽지 않으리란 것이다. 악신들이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지가 몇 백년이 되었는데 저 권능에 대응하는 법을 아는 마법사가 있기나 하겠느냐.”

   

   그런 놈들은 대부분 이미 땅에 묻혔을 것이라는 리나의 단언에 조이의 얼굴에 당혹이 깃들었다.

   

   악신이 이 대지에 내려왔을 무렵부터 살아온 대마법사가 필요하다니. 그런 존재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얼토당토 않은 존재이지 않은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와 별개로 그런 사람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현실 앞에서 조이는 막막함을 느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페이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악신의 추종자들과 싸우는 최전선에 있는 교회의 사람이라면 분명!

   

   “죄송합니다. 조이. 교회 측 사람 중 일반적인 마법에 식견이 있는 사람은 희귀합니다. 심지어 그 몇 안 되는 분들께서도 지금 교회의 일 때문에 바삐 움직이고 계시죠.”

   “그럼 다른 두 분은.”

   “본인에게 그런 인맥이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겠죠.”

   

   조언을 구하러 온 자리에서 막다른 길이라는 단정을 들은 탓에 일행의 분위기는 자연스레 음울해졌다.

   

   이 정도면 그들이 노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어?”

   

   그 때였다. 입술을 우물거리던 페이비가 퍼뜩 고개를 치켜 들더니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페이비. 무슨 일이죠?”

   “영애님의 신성이 느껴져요.”

   “…네?!”

   “이런. 지금 어디 쯤이지?”

   “와아. 루시다.”

   “지금 바로 문 앞에.”

   

   벌컥.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르던 이들은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루시 알른을 보고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들을 더 당혹스럽게 한 것은 루시의 반응이었다.

   

   눈을 깜빡이며 친구들을 둘러보던 루시는 대체 이 상황을 무어라 생각한 건지 경멸의 표정을 지었으니까.

   

   “…극혐.”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1초가 지나 정신을 되찾은 일행은 오해를 풀기 위해 다급히 문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루시! 잠시만요!”

   “영애님! 저희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나쁜 건 변태 왕자님 뿐이야.”

   “시끄럽다! 이전에 합의해놓고 왜 자꾸 나한테만 난리냐!”

   

   *

   

   친구들에게 붙잡히다시피해서 방 안으로 돌아온 나는 친구들과 리나에게 사정을 전해 들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것이었지만 한 가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할아버지. 마법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에요?’

   <…몰랐느냐?>

   ‘제가 어떻게 알아요. 마법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데.’

   

   다른 사람은 오해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오해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내가 마법 관련 시험만 치면 다이스 갓의 힘을 빌리는 걸 두 눈으로 봐놓고 저걸 모른다는 게 이상하잖아.

   

   <…나는 네가 주신의 인도를 받은 줄 알았지.>

   ‘아.’

   

   평상시에 설명하기 귀찮은 게 있으면 모두 다 주신의 인도랍시고 변명한 게 이렇게 돌아왔구나. 진짜 상상도 못했네.

   

   난 그냥 아무것도 몰라서 조이라면 해내겠거니 하고 부탁했을 뿐인데 설마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일 줄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친구들에게도 오해를 했냐 물어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영애님.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지. 허접 성녀. 난 그냥 말을 툭 던져 봤을 뿐이라구?”

   

   그런 친구들에게 진실을 밝히자 조이는 허탈한 듯 한숨을 흘렸고 페이비는 양 볼을 벌겋게 물들였으며 아서는 불편한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프레이는. 음. 여느 때처럼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상하게 불편한 공기 속에서 턱을 괸 나는 어떡하면 좋을 지에 대해 생각했다.

   

   얼빠여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이가 만들어낸 마법은 분명 지금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될 힘을 지니고 있어.

   

   다만 저걸 만든 당사자조차 어떻게 하면 저걸 구체화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

   

   으음. 악신의 권능과 싸우는 데에 익숙하고 거기에 더해 실력 있는 마법사인 사람이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긴 한데.

   

   “허접들. 다음 주에 바깥으로 나갈 준비 해 둬.”

   “…무언가 방도가 있나?”

   “있죠. 불쌍왕자님. 전 찡찡대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당신과 달리 유능하니까요.”

   

   안 그래도 언제 한 번 들릴 생각이었는데 겸사겸사 만나러 가야겠다.

   

   할아버지와 함께 기적을 만들어냈던 당사자를 말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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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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