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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3

    원래 정찰과 준비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루크는, 오늘 예기치못한 인물을 둘이나 발견했다.

    루체스트의 수석 연구원인 사이먼과, 흑마법사 세이어.

    이런 상황에 태평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리가 없다.

    간밤에 세이어가 돌아와 무슨 짓을 할 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지만 그렇게되면 말도 없이 밖에서 밤을 지내게 된 꼴이되니, 예르나가 걱정하지 않도록 미리 연락을 취해 놓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친구랑 같이 자고 가려구요. 네,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네, 안녕히 주무세요.”

    -뚝.

    전화가 끊기자, 레니에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는 목소리 톤부터 너무 달라지는게 아닌가요? 누가 들으면 진짜 그 나잇대 소녀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에 루크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그녀가 내게 그걸 바라니까.”

    -마마보이. 새엄마한테 아주 정성이시군요?

    “어쩔 수 없잖아, 그녀가 원체 걱정이 많은 성격인 걸.”

    과거, 자신이 돈가스를 맛있다며 체통도 잊고 너무 빨리 집어먹었던 날.

    그로인해 체한 탓에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약간의 실수와 오해로 서로 엇갈리는 바람에 아이가 사라졌다고 판단한 예르나가 비오는 날 그 비를 쫄딱 맞아가며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아대다, 급기야 경찰서에 가서 난동까지 피웠다고 할 정도이니까.

    물론 루크도 당시에 있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뒷이야기까지는 그녀의 친구이자 경찰관인 시에나에게 전해듣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지라 예르나의 걱정이 그 정도로 심각했던가? 하며 새삼 놀랐던 기억이 난다.

    뭐, 지금이야 자신이 그 때에 비하면 몸집도 커지고 어느정도 자신에 대한 신뢰도 생겼으며(주로 무력적인 부분에서), 그녀 또한 트라우마에서 많이 벗어난 상태라 그 정도까지 과보호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심성과 걱정이 많은 성격인 그녀이기에 말도 없이 밤에 돌아오지 않으면 상당히 걱정을 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이미 받아온 것들도 있고.”

    예르나에겐 항상 고마울 따름이었다.

    난생 처음 본 자신을 정말 자신의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살펴주고, 배려해주고, 걱정해주었으니까.

    그것은 일반적으로 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자신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까지 자신에게 그럴 수 있었다는 건 그야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헌신임이 틀림없다.

    받은대로 행하라, 그 말에 의하면 루크는 항상 예르나에게 행해야하는 입장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레니에는 어느정도 납득한 듯 보이다가, 툭 쏘아뱉듯 투덜거렸다.

    -당신이 예전에 나한테도 그런 말 좀 하고 그래줬으면 좀 좋아. 말도 없이 계획하고, 혼자서 픽 죽어버리고. 그러면 누가 좋아할 줄 알았나본데, 전혀 아니었거든요? 완전 못됐어.

    그에 루크는 순간 말을 잊고 멍하니 있다가, 이내 멋쩍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미안하다. 그 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여신에게 자신의 계획이 들켜선 안 되었으니까.

    만일 여신이 자신의 계획을 알았다면 운명적으로 반드시 실패하고 말았겠지.

    그러니 여신의 사자인 그녀에게도 마찬가지로 숨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여신은 봉인되었고, 여신의 대리자였던 모든 드래곤들은 권한을 잃고 추락하였으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들이 ‘현상유지’에서 벗어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데다가, 레니에 역시 자신의 뜻을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마음껏 펼쳐보일 수 있었다.

     

    뭐, 이제와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레니에는 애초에 그런 걸 바란 적이 없었던 것 같지만….

    이제와서 지난 이야기를 바꿀 수는 없는 법이지.

    그러자 레니에는 그 이야기는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친구와 전시장 구경하다가 정신이 팔려서 지쳐서 자고 간다니. 맞는 말이긴 하지만 거의 거짓말 아닌가요?

    장난치는 듯한 레니에의 목소리. 

    그에 루크도 적당히 가벼운 듯 진지한 척을 하며 대꾸했다.

    “하지만 사실이지.”

    -푸하! 뻔뻔하네요.

    레니에의 지적에 루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무얼, 그대도 이걸 한두번 겪은 일이 아니지않은가.”

    -그건 그래요, 한두번이 아니었죠. 

    이전에도 루크는 ‘마법사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라고 알려진 걸 곧잘 악용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가문에서 혼인 얘기가 나왔을 때도 그렇게 도망쳤다면서요? 뭐라고 했더라, 우물가에 가서 손만 씻고 돌아오겠다고 나가서는 거의 일주일동안 안 돌아오셨다고.

    “그야, 나는 우물가에서 손을 안 씻었으니까.”

    잠시 우물가에 가서 손을 씻고 돌아온다는 듯이 말해놓고, 우물가에 가지 않았다.

    우물가가 아니더라도 손 정도는 얼마든지 씻을 수 있으니까.

    루크는 그렇게 도망쳤다.

    일주일 뒤, 루크의 예의없는 행동에 질린 영애가 영지에서 짐을 싸서 나갈 때까지 말이다.

    -푸하하하! 설마, 그 정도로 그 여자랑 결혼하기 싫었던 거예요?

    레니에가 웃었다.

    지금이야 우스운 이야기였지만, 당시 한편으로서는 상당히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그건 다름아닌, 왕이 직접 주선한 중매에서 그런 짓을 한 거였으니까.

    당시 왕가의 핏줄이 이어져있는 공작이었던 루크의 가문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짓을 하면 반역자로 몰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루크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뭐, 결국 불안정한 나라의 상황과 여러 외부적인 사건이 겹쳐있는 탓에 별 이야기 없이 흐지부지 되었다가 아린세이아에 나라가 합쳐지면서 완전히 끝난 이야기가 되긴 했지만.

    루크가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하고있자, 잠시 후 레니에가 음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 혹시 저 때문인가요?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그녀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향후 그녀가 여왕이 되었을 때, 혹여 정통성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였으니까.

    뭐, 루이 이루시라는 동생이 있기야 했었지만 그 아이는 왕가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없는 입양아였으니.

    그렇기에 자신에게 자식이 있다면 한 나라의 왕권을 찬탈한 것이나 다름없는 레니에에겐 언젠가 어떻게든 분쟁의 씨앗이 되어 돌아올것이 분명했다.

    지금이야 괜찮아도, 자신의 씨앗이 계속 이어진다면 앞으로 몇백년안에는 반드시 쿠데타가 일어났겠지.

    당시 정치에서 정통성은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루크는 그 뒷이야기와 의도까지 일일이 설명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미 방금 전의 대답만으로 충분히 만족한 듯 보이는 레니에의 기분을 떨어트리고 싶지 않아서.

    루크는 괜스레 헛기침을 몇번 하고는 말했다.

    “크흠, 흠. 레니에, 현재 전시장의 상황은 어떻지?”

    레니에는 루크의 말을 돌리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 듯한 행동에 잠깐 웃어준 뒤, 이내 사무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까진 아무런 일도 없어요. 들어온 사람도 없고, 나간 사람도 없고, 무슨 일이 생길 조짐도 없고, 누군가 폐쇄회로의 해킹을 눈치챈 기미도 전혀 없네요. 가끔 순찰중인 경비원을 제외하면 오직 고요와 적막뿐이에요.

    “세이어의 흔적도?”

    -전혀요.

    루크의 걱정과는 달리, 전시장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정말로 세이어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음.”

    루크는 잠시 그와 사이먼이 나눈 대화의 일부를 떠올렸다.

    ‘이번엔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주어진 말만 하면 되는데, 그건 쉽잖아요? 나머지는 제가 할 테니까.’

    ‘그럼 그렇게 알고 저는 이만 돌아가보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기에.’

    그 모든 대화는 분명, ‘무언가’가 일어날 것을 계속해서 암시하고 있었다.

    “오겠지, 반드시.”

    사이먼을 앞에두고서 세이어가 허투루 한 말은 절대 아닐 테니까.

    그렇게 결론을 내린 루크는 잠시 호텔 옥상의 전경을 둘러보며 감상하기 시작했다.

    마나를 건물에 순환시키기 위해 계절에 크게 구애받지않는 잔디나 침엽수를 비롯한 각종 식물들로 채워진 이 호텔의 공중정원은, 투숙객들의 산책로도 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꽤 볼만한 수준의 배치상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가장 효율적인 마나배치를 취하면서, 동시에 미술적인 아름다움까지 동시에 아우르는 세련된 정원.

    그것은 숲과는 다른, 철저하게 마법적으로 계산된 인위적인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비단 그것만이 루크를 매료시킨 아름다움인 것은 아니었다.

    루크는 정원에서 눈을 떼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곧 난간 밖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탑으로 이루어진 숲, 그중 가장 높은 탑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그것이야 말로 진심으로 감탄스러운 절경이었다.

    -멋지네요, 그렇죠?

    “그래, 확실히.”

    고개를 내리면 각각의 건물 옥상들에 조성된 수많은 형태로 꾸며진 공중정원의 인공적으로 배치한 라이트가 그 풍경을 선명하게 모든 형태를 드러내며 각자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중이었고, 

    고개를 들면 은은한 달빛과 함께 수많은 별빛이 마치 쏟아내릴 듯이 수놓여 있는 쪽빛에 물들어가는 하늘이 자신의 눈에 춤을 추듯 담겨온다.

    한쪽으로는 인류의 찬란한 발전이, 그리고 또 한쪽으로는 자연의 위대함이.

    그 서로 다른 반짝임들이 각각에 너무나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던지라, 이 아름다움을 자신만 보고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괜찮을까요?

    “글쎄. 내일 상태를 봐야 알겠지.”

    그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알게된 진실, 그건 서드에게 많은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것은 옆에서 말해도 자신이 결론내리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그 아이가 과연 내일까지 마음을 정할 수 있을까?

    뭐, 여차하면 녀석을 계획에서 배제하는 것도 고려해볼만한 이야기다.

    이런 풍경을 앞에 두고 복잡한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렇게 루크와 레니에가 조용히 풍경을 감상하던 순간.

    -근데요, 루크님. 잊으신건 아니죠?

    “응? 내가 뭘?”

    갑자기 잊다니, 자신이 뭔가 놓친 게 있다는 말인걸까?

    루크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레니에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첼로 연주요. 오늘 집에 가면 해주기로 하셨잖아요.

    “아.”

    루크는 그제야 레니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깨달았다.

    오늘 낮에 했던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여긴 집이 아닌데.”

    자신이 한 말은 분명 ‘돌아가면 한번 연주해주겠다’였지, 자기 전에 한번 들려주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러자 레니에가 불퉁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치, 또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려고 하시는건가요?

    루크가 변명했다.

    “아니, 이건 그게 아니잖아. 제일 중요한 첼로도 지금은 없고 말이야.”

    첼로가 없는데 연주는 대체 어떻게 해줄 수 있다는건가?

    하지만 레니에는 첼로가방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첼로도 있다면요? 가방을 한번 열어보세요.

    그에 루크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첼로가방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왜냐하면, 정말로 첼로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대체 어느 틈에?

    “이게 어떻게 여기에 있지? 이 안에는 분명 아티팩트만이 담겨져있었을텐데?”

    레니에의 답은 명쾌했다.

    -텔레포트썼는데요? 리브한테 집에서 몰래 가져와서 넣어두라고 했어요.

    잠깐, 텔레포트라고?

    “하루에 한번밖에 못 쓰는 걸 그렇게 낭비했단 말이냐?”

    텔레포트의 클래스 연산방식은 엄청난 양의 계산을 필요로한다.

    그것도 마나로 작동하는 리브를 통해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면 그건 분명 단순한 텔레포트가 아니라 공간 자체를 잇는 게이트를 열었다는 얘긴데, 그런 걸 하려면 역천의 모래시계를 통한 시간가속까지 사용해야 하는 계산이기에 하루라는 시간동안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없는 일이 생기고 만다!

    하지만 레니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건 하루 지나기 전에 쓴거라 괜찮아요! 내일 쓸 텔레포트의 스택은 남아있답니다?

    “잠깐, 그럼 이미 오늘 텔레포트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단 건가? 쓸 일이 있었으면 어쩌려고!”

    -네, 하지만 쓸일 없었잖아요?

    레니에의 그것은 마치 ‘하지만 사실이지.’라고 했던 때의 자신의 목소리와 닮아있었다.

    자신을 놀리려는 걸까?

    “아니, 이건 그런 문제가….”

    -그럼 뭐가 문제죠? 루크님이 약속을 지키기 싫다는 거?

    레니에와 말싸움을 하던 루크는 이내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는 수 없지, 한번 움직여볼까.

    그래, 연주 한번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첼로를 주워들고 자리잡은 루크는 다시금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일은 붉은 달인가.”

    부디, 별 일이 없으면 좋겠다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서드의 출생의 비밀?
    그것도 이편에 포함시키려다가 잠깐 뒤로 미뤘습니다.
    이번 회차에 집어넣기엔 너무 덩치가 큰 것 같아서요…….

    사실, 오늘은 늦은 이유가 글때문이 아니라 삽화가 완성하고보니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진 것 같아서 새로그리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닷…….

    처음에 그렸던 것도 나름 디테일이 맘에 들었던거라 미사용 삽화에 올려놨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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