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화. 대규모 합병 ( 4 )
악마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정의하는 것에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미사여구를 자르고, 온갖 예의 바른 말을 떼어내면 딱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인류의 적.
만나는 족족 대가리를 터뜨려야 마땅한 것들이 바로 악마다.
“악마와 어찌 한 대륙을 밟고 살아갈 수 있겠나이까! 하나 된 분이시여, 부디 지혜를 빌려주시옵소서.”
안토니오의 말은 타당했다.
굶주린 짐승과 한 지붕 아래 자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
신께서 잠시 침묵하셨다.
바람 부는 소리마저 가라앉고, 스산한 숨소리만 들려왔다.
《너, 지혜로운 노인아. 너에게 묻겠노라. 악마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안토니오가 짧게 당황했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 크흠. 악마란 사악하고 고약한 악으로 빚어진 끔찍한 존재들을 일컫습니다.”
《그리하면 다시 묻겠노라. 악마의 근원은 무엇이냐? 악마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눈동자를 굴리던 안토니오가 대답했다.
“악마는… 지성체의 악하고 부정적인 감정에서 탄생하옵니다. 살의, 부정, 분노, 혐오, 질시, 탐욕이 이와 같은 감정입니다.”
몇 차례나 심연을 탐험한 끝에 알아낸 사실이었다.
소수의 대악마들은 과거 그들과 같은 지성체였지만, 대부분의 악마는 심연에 모인 부정적인 감정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너의 말이 옳다. 너에게 다시 묻겠노라. 노인아, 너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어떻게 하느냐? 누군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
“…저는ㅡ”
안토니오가 대답하려 했지만, 하나 된 분께서 끼어들었다.
《악마는 부정적인 감정의 결실이라. 악마들은 질투와 분노, 혐오를 나타내는 족속일지니. 이 고약한 악마들에게서 눈 돌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으냐?》
“…큰 재앙이 일어날 것이옵니다.”
《옳다. 이는 썩어버린 음식 위에 뚜껑을 덮고 모른 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악마란 곪아가는 종기이며, 썩고 부패한 음식이니. 결코 눈 돌리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그리하여 악마는 너희들이 눈 돌린다고 사라지지 않는 모든 시련을 나타냄이며, 이겨내야 하는 모든 사악함을 나타냄이다.》
우우웅ㅡ
신의 말씀과 함께 보이지 않는 파동이 회의실을 채웠다.
별빛으로 이루어진 신묘한 파동이 잔잔하게 흔들리며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한결 침착해진 머리로 생각해보니, 과연.
신의 말씀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안토니오가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사옵니다….”
《이는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것이요, 너희가 행해야 하는 것이다.》
안토니오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나 된 분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악마란 부정적인 감정의 덩어리, 살의와 질시, 혐오, 미움, 질투 등의 총체.
부정적인 감정은 눈 돌리고 모른 체 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 한구석에서 야금야금 자라나며 덩치를 부풀리다가, 어느 순간 마음을 병들게 만든다.
악마도 이와 같다.
눈 닿지 않는 곳에 치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맞서 싸우고, 이겨내고, 해치워야 한다.
“…미욱하고 비루한 노인이 크고 맑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앎이란 발전이요, 무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닐지니. 너희가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뿐이다.》
아!
이 얼마나 옥조와도 같은 말씀이란 말인가.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라.
카이사르 황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이다.
《허나…. 신앙심 깊은 자, 용맹한 전사와 다르게 악마와 맞서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도 있을 터. 이를 위해 만마의 제왕 발가르가 있는 것이니.》
모든 이가 악마와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 한 몸 지키기 어려운 이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한 손으로 로티를 쓰다듬고 있던 발가르는 재빠르게 자세를 정리했다.
《예, 어버이시여. 듣고 있습니다.》
《너는 휘하의 악마들을 엄하게 통솔하여라. 악마들이 적대해야 할 것들을 명확히 구분하여라.》
《받들겠습니다.》
회의실에 앉아 있던 이들은 마왕이 왜 회의에 불려왔는지 깨달았다.
신께서는 악마가 대적할 것들을 명확하게 정리해주시기 위함으로 마왕을 부르신 것이었다.
악마들로 인한 학살극을 걱정하던 많은 이들이 한시름 놓았다.
《앞으로 세 번의 태양이 떠오르는 날. 심연이 지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는 마땅히 돌아와야 할 것이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며, 조각났던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을 나타냄이다.》
“그대의 말씀을 받들겠습니다.”
《인간들의 왕은 돌아가서 전하라. 이는 멸망이 아니며, 종말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새로운 시대를 나타냄이다.》
이를 끝으로 하나 된 분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회의실을 꽉 채우던 압박감이 사라지자, 몇몇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볼 일은 모두 끝났군. 난 가보겠다.》
삐이ㅡ!
발가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균열을 열었다. 로티가 앞발을 척! 들어 올리며 모두에게 인사했다.
“잠까ㅡ”
케니스가 대검을 붙잡고 달려들었지만, 발가르와 로티를 삼킨 균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 *
“후우…. 대충 이 정도면 된 건가?”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다.
그럴듯한 말로 녀석들을 설득하느라 기력을 다 쏟았더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심연과 지상의 대통합 프로젝트, 여기서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누구일까?
조금만 생각해도 너무 뻔한 문제다.
지상에서 멀쩡하게 잘 살아가던 지성체들이 가장 큰 손해를 본다.
그도 그럴 것이.
악마와 지성체는 공존할 수 없는 관계다.
그런 녀석들이 저 밑바닥 심연에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 이웃집으로 이사를 온다고 하네?
이러면 누구라도 반대한다.
‘일단 악마와 싸워야 하는 이유도 설명해줬고…. 악마가 양학하는 것도 방지하겠다고 말해줬고….’
혹시나 빼먹은 것이 있나 싶어 천천히 헤아렸다.
“음. 일단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겠지.”
과도한 보호는 좋지 않다.
온실 안에서 자란 동물은 결국 온실 밖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법.
결과적으로 신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발가르를 내가 만들었다는 것도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고….’
주기적으로 악마들이 선을 넘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만 하면 될 것 같다.
그건 차차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발가르와 이야기를 나누며 해결하면 된다.
“으그으윽. 어우, 긴장했더니 어깨가 아프네.”
한손에 들고 있던 컨닝 페이퍼를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빼곡하게 글자가 적혀있는 종이인데,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급하게 만든 예상 질문 – 답변 컨닝 페이퍼다.
이거 만드느라 조금 늦었지.
‘ai는 신이다. 나는 무적이고.’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컨닝 페이퍼의 성능은 확실했다.
인간 시대의 끝이 이렇게 또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띠링!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은행에서 온 문자였다.
《고객님의 직장인 전용 우대 적금이 만기가 되었습니다. 최초 선택했던 약정에 따라 해당 계좌로 자동 이체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설명을 참조ㅡ》
총알이 들어왔다. 곧바로 은행 어플에 접속해 잔액을 확인했다.
“……정말 끝났네.”
…적금이 만기 됐다. 장장 4년에 걸친 대장정에 끝을 고한 것이다.
생각보다 기쁘지는 않았다.
“…이 돈이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1억이면 대출을 끼고 전세를 들어갈 수 있다. 자동차도 매끈한 놈으로 하나 뽑을 수 있다.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애써 정신을 부여잡았다.
이건 속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연이 만들어진 이유는 과거의 내가 싸지른 똥 때문이고, 그로 인해 심연과 악마가 만들어졌다.
잊지 말자.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우자.
“설마 1억을 전부 쓰지는 않겠지…. 그렇지?”
영혼의 바다가 나에게 과금을 요구하는 구조는 간단하다.
현재 내 역량에서 불가능한 기적을 일으키려 할 때, 영혼의 바다는 나에게 과금을 유도한다.
하필 과금인 이유?
그건 나도 모른다.
영혼의 바다가 못돼먹은 놈이라 내 돈을 뺏어가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
‘초창기에 비해서 과금 액수가 적어지거나 없어진 부분도 있기는 해.’
이건 전적으로 내 역량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못난 영혼의 바다 녀석.
지금의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은 전성기 시절의 7할.
그렇게 적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지만, 솔직히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저쪽 세상으로 3일이 남았으니까…. 그 사이에 뭔가 더 준비할 수 있는 일이라도 찾아볼까.’
솔직히 그닥 여유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빠르지만 확실하게,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슥, 스윽ㅡ
괜히 인터페이스 이곳저곳 들쑤셨다. 인벤토리도 열어보고, 건물창도 열었다.
“이건….”
그러다 문득 눈길이 닿은 한 곳.
화면 구석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빨간 점이다.
“퀘스트 창이잖아?”
언제 마지막으로 확인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퀘스트 창이다.
이게 아마… 다섯 종족을 찾는 퀘스트였던가.
다섯 종족을 찾던 와중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어느 사이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홀린 듯 퀘스트 창을 열었다.
띠링ㅡ!
퀘스트 : 잊힌 다섯 종족을 찾으세요.
진행 상황 : (5/5 – 진행 중)
보상 : ■
퀘스트 보상은 여전히 가려져 있었다. 이걸 보고있자니 추억이 가물가물 피어올랐다.
다섯 종족을 찾겠다고 온 대륙을 들쑤시고 다녔었다. 덕분에 이런저런 재밌는 일도 많았고, 나름 나쁘지 않았다.
“…이건 좀 불편한데.”
퀘스트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남아있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이 퀘스트는 왜 아직도 진행 중인 거지?’
내가 찾은 종족을 천천히 헤아렸다.
수인… 엘프, 인어랑 오크, 밤의 일족.
“뭐야. 다섯 다 찾은 거 아니야?”
그런데 왜 퀘스트가 안 끝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숨겨진 조건이 있다던가, 일정한 시간이 흘러야 퀘스트가 완료된다는 식으로.
“……할 일도 없는데 이 퀘스트나 좀 찾아볼까.”
만약 현실이 게임이었다면 작은 알림음과 함께 이런 메시지 창이 나타났을 것이다.
띠링ㅡ!
다섯 종족을 모두 찾았음에도 여전히 진행 중으로 나오는 퀘스트를 해결하기.
심연과 지상을 합병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3일.
그 안에 할 일이 생긴 것 같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크윽!! 이 두렵고 사악하며 끔찍한 외??신??이 본색을 드러냈군요…!! 우리 마을에서 나가 이 괴물!! 외신!! 신끼야아아아악!!! 아아, 아아아!! 저 눈! 저 눈이 나에게 속삭이고 있어!!! 크으윽!! 하루 7시간 이상 숙면… 수분을 자주 섭취… 규칙적인 운동… 끼야아아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