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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4

    <464 – 걱정할만한 사태>

     

    재단에서 파파의 지령이 오기까지는 의외로 제법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전화야 통신마도구만 들어도 당장 가능하지만 비밀리에 지령을 내리느라 걸리는 시간이 공식라인의 통화와 같을 리가 없기는 했다.

     

    “아~아. 지루해.”

    [그게 무슨 소리니 후배야. 시험 도중에 갑분싸 되는 거 안 보여?]

     

    선배의 말대로 일단은 시험을 보는 중이기는 하다.

     

    ━━━

    [기능독점론]

    -목요일 5교시 17시~21시

    -교수 : 스텐드 밀

    -행정학부, 교양

    ━━━

     

    근데 정답을 다 아는 입장에서 시험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한테는 그냥 받아쓰기 시험 아닌가?

    하도 심심해서 재단식으로 정답을 변형까지 했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난 수강생이 한 명도 없다.

     

    “으으으.”

    “인간적으로 너무 어렵잖아…”

    “머리 터지겠네. 하필 주요기능을 다 뺏겨가지고…”

     

    울상을 짓는 학생들 사이로 매스각키 황녀가 기세등등하게 일어섰다.

     

    “허접 문제♡ 개나 소나 만점 받는 거 아니야~?”

    “…여윽시 황녀님이십니다!”

    “아유… 저희 같은 하급반은 풀기도 벅찹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은근슬쩍 내 책상으로 접근하던 매스각키 2황녀가 움찔했다.

     

    “너, 시험지는 어딨어?”

    “제출했지!”

    “자리에서 일어난 적도 없는데?”

    “종이비행기로 접어서 날렸지롱~”

    “크으읏… 고작 시험 하나 먼저 끝냈다고 기고만장하지 마, 이 허접노디!”

    “허접보다 느린 허접황녀님의 분부, 명심하겠습니닷!”

     

    씩씩거리며 나간 매스각키 황녀의 뒤로 헥토르가 답안지를 제출했다.

    헥토르는 강의실을 떠나는 대신, 자신의 파벌들에게 힌트를 주려고 자리를 지키며 애를 썼다.

    그래봤자 서술형인데 의미가 있나?

     

    “흐아암.”

     

    졸리다. 가서 잠이나 자야지.

    강의실을 나오는데 때마침 자쿠가 세 번째로 정답지를 제출하였다.

    허접자쿠의 정답지 따위 궁금하지도 않은데 그냥 가던 길이나 마저 갈까.

     

    [하비 흉내내기는 벌써 끝이야?]

    “아차.”

     

    피곤해서 깜빡하고 있었네.

    하비의 성정을 고려하면 평상시의 나처럼 남들은 다 내팽개치고 다닐 수는 없지.

    연기는 평상시에 버릇을 들이듯이 몰입해야 결정적인 순간에도 잘 나오기 마련이니, 특별히 선심 써서 자쿠에게 다가갔다.

     

    “시험은 잘 보셨나요? 노력한 만큼 좋은 성적을 받았으면 좋겠네요.”

    “말이라도 고맙군.”

    “괜찮다면 가채점을 도와드릴 수도 있는데 어때요? 자쿠도 성적이 궁금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자쿠가 굉장히 당황했다.

     

    “오늘따라 묘하게 살갑군. 고학년 실험실에서 이상한 포션이라도 마셨나?”

    “아하하. 농담도 참. 자쿠는 너무 짓궂어요. 저는 원래 이렇게 친절했잖아요.”

    “…”

    “문제는 기억나시죠?”

     

    자쿠는 품에서 필사한 문제지를 꺼냈다.

     

    ━━━

    시험시간 – 120분.

     

    1번 문제(10점, 서술형)

    같은 자음 하나로 시작하는 두 글자 기능 다섯 개를 고른 뒤, 하나의 기능으로 나머지 네 개의 기능을 독점하는 방법을 서술하시오.

     

    2번 문제(20점, 서술형)

    위의 다섯 개의 기능에서 독점당한 네 개의 기능 중 하나로 독점구조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서술하시오.

     

    3번 문제(30점, 서술형)

    위의 다섯 개의 기능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한 세 개의 기능 중 하나로 나머지 두 개 기능의 독점구조를 모두 무너뜨릴 방법을 서술하시오.

     

    4번 문제(40점, 서술형)

    위의 다섯 개의 기능에서 선택받지 못한 두 개의 기능 중 하나로 앞선 세 개 기능의 독점구조를 모두 무너뜨릴 방법을 서술하시오.

     

    ※단, 각 초성의 기능 다섯 개는 다른 수강생이 먼저 등록한 기능과 중복이 될 수 없으며 하나라도 중복단어가 감지될 시, 모든 단어를 재등록해야 한다.

    ※한번 선정한 초성은 중복단어로 인해 단어재등록을 실시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다.

    ━━━

     

    “복제마법이 걸린 종이로 문제를 본떠서 챙겨왔다.”

    “정답은요?”

    “문제지를 나눠주면서 복사한 거라 정답까지는 적지 못했다. 그래도 내용은 기억해.”

     

    자쿠가 부지런히 펜을 움직였다.

    정답을 외워서 적는다기보다 자신만의 논리를 토대로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에 가깝다.

     

    ━━━

    선택기능

    ㅈ(자쿠) : 지식, 주술, 저주, 조교, 저격

    ━━━

     

    자쿠는 이 문제를 다섯 개의 계층이 각자의 기능을 지니고 다른 계층과 투쟁하는 계층투쟁의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지식을 쌓은 학자.

    주술을 익힌 주술사.

    저주를 연마한 귀족.

    조교를 숙달한 상인.

    저격을 터득한 장교.

     

    ━━━

    정답 1.

    학자는 지식의 벽을 높이 쌓아올려 나머지 모든 기능의 취득에 필요한 학력을 대폭 상향시킴으로 학자들의 기능독점을 꾀할 수 있다.

     

    정답 2.

    주술사는 길흉화복을 점치는 주술의 힘으로 운이 따르는 이를 고위직에 올리고 운이 다한 이를 쫓아내는 주술정치로 권력을 얻고 군림한다.

     

    정답 3.

    귀족은 저주의 힘으로 운을 쇠하게 하거나 기억력에 영향을 미쳐 경쟁자들을 은밀하게 제거하며 시중의 모든 저주에 대한 지식과 흉에 대한 주술을 금기로 지정, 저주를 독점한다.

     

    정답 4.

    상인은 운수가 뛰어난 종족을 집단으로 조교하여 학자와 주술사와 귀족이 쌓아올린 아성을 뛰어넘어 고위직에 자신의 수하를 심을 수 있다.

    고위계층에 도달한 수하들이 상인에게 유리한 법안을 만들고 지원하니, 권력은 가장 뛰어난 조교술을 지닌 상인에게 넘어가며 조교술의 가치가 으뜸이 된다.

    ━━━

     

    중요한 것은 기능이 아니라 그 기능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어떤 기능으로도 작정하면 독점구조를 만들 방법은 어떻게든 생겨나기 마련이다.

    자쿠는 강의에서 얻은 깨달음을 정답으로 담아낸 것이다.

     

    “고득점은 기대해도 되겠네요. 중간고사 걱정은 안하셔도 될 거예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너는 어땠냐. 말하나 마나 같지만… 역시 잘 봤겠지?”

    “알고 싶어요?”

    “학년수석의 정답이니까.”

     

    하비는 아버님의 연구성과를 혁명군에게 공유하기를 꺼려하지 않은 자.

    하비를 연기하려거든 조직원인 자쿠에게 답을 알려주기를 꺼려해서는 안 된다.

     

    ━━━

    정답 1. 2. 3. 4.

    와이히엠하이 재단은 장학생들을 이용해 한 도시의 시의회를 모두 장악했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암흑마나를 심어주며 힘의 균형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타 도시의 권력구도를 정찰하는 외교관.

    옛 시대의 유물을 재봉하는 장인.

    암흑마나의 순도를 정련시키는 암흑마도사.

    재단의 적을 찾아 잠행하는 비밀감찰관.

    재단에서 요구하는 법을 집필하는 집정관.

     

    기능의 상성도 가치도 중요하지 않다.

    쓰고자 하는 기능과 클래스가 앞설 것이고, 때가 되면 다른 기능과 클래스가 뒤따를 것이니.

    ━━━

     

    “이렇게 적었답니다.”

     

    자쿠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정말로 이런 정답을 적었단 말인가? 스텐드 밀 교수는 결코 좋아하지 않을 답인데.”

    “교수님 생각이 무슨 상관인가요? 이게 제가 가진 답인데. 재단본부에 계신 아버님이라도 분명 이렇게 적었을 거랍니다. 후후.”

     

    점수야 조금 까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강의에서 얻은 추가점수가 원체 많아서 상관없다.

     

    “궁금증이 풀렸으면 전 이만 돌아갈게요. 내일도 강의가 남아있거든요.”

     

    내일 기다리는 강의들은 정말 만만찮은 강의들만 둘이 연이어 남아있다.

     

    ━━━

    [자연의 분노]

    -금요일 9시~13시

    -교수 : 위어드

    -마법학부, 교양

    ━━━

     

    ━━━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금요일 14시~18시

    -교수 : 데모니카

    -행정학부, 교양

    ━━━

     

    오전에는 조교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생겼는지 갑자기 돌과 석탄을 먹인다는 소문이 파다한 위어드 교수님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오후에는 지뢰강의를 고르기로 악명 높은 안데르센 대공자와 함께 듣는 데모니카 교수님의 2학기 최고난이도 수준의 시험이 기다린다.

     

    “그럼 전 내일 있을 시험을 준비하느라 이만 돌아갈게요. 자쿠도 부디 평안한 밤이 되기를.”

     

    암울한 내일이 기다리는데도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까지 훌륭하게 끝마친 나, 매우 칭찬해!

     

     

    * * *

     

     

    모브는 함께 시험을 치르던 자쿠보다 한참이 지나서야 답안을 겨우 제출했다.

    야속한 친구는 진즉에 제 갈길 갔으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서 벤치에 앉아 심사숙고하는 자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데서 뭐해? 감기 걸리게.”

    “모브. 오크노디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냐?”

    “오늘따라 예의가 바르긴 했지.”

    “그것 말고.”

    “사탕도 챙겨줬어.”

    “좀 더 근본적인 변화 말이다.”

    “아. 그거 말이지?”

     

    오크노디의 제자인 자신이 몰라볼 리가 없다.

     

    “요즘 들어서 날마다 쓰고 다니는 모자. 애착모자인 걸까? 그럭저럭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름 귀여워 보이더라.”

    “하아. 너한테 물어본 내 잘못이다.”

     

    모브는 친우의 고민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상시하고는 좀 다르기는 한데 그게 그렇게 꼭 나쁘게 봐야 할 일이냐?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아랫사람도 잘 챙겨주고. 좋은 변화일지도 모르잖아. 교수로 취임한 집사님이 교육을 잘하신 거겠지.”

     

    조나 와이히엠하이.

    엄하고 무섭게 생겼지만 아가씨를 아끼는 마음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종종 듣고 있다.

     

    “넌 속 편해서 좋겠다. 불길한 징후가 보였어.”

    “어떤 징후?”

    “감추지를 않았어. 재단은 어떤 기능으로도 권력을 독점하고 그 힘을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는 본심을 시험지에 당당하게 적었다고.”

    “아카데미 교수한테…?”

    “그래. 형식상으로라도 아카데미의 눈치를 보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고. 마치 아카데미를 적대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그건… 정말 좋지 않은 징후네.”

     

    모브의 표정도 자쿠만큼이나 심각해졌다.

     

    “단단히 각오해둬. 시험이 끝나자마자, 어쩌면 남은 시험 도중에 <도서관원정>이나 <종말교단 도비습격전>처럼 우리한테까지 예상치 못하게 곤란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오크노디의 시간표를 떠올린 모브는 자쿠가 무얼 걱정하는지 깨달았다.

     

    “재단집사 조나 와이히엠하이의 마나연단법 시험을 우려하는 거지?”

    “저주받은 안목의 소유자 안데르센 대공자와 수강이 겹친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시험을 우려하는 거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층간소음에 빼앗긴 다음화 소재 ㅠ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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