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64

       그리고, 결국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했던 대로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는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단순히 차를 사거나 사지 않는 문제나, 면허를 따고 따지 않고 하는 이야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슬슬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다.

        

       아마 다음 달 정도면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될 거고, 그때가 되면 밖에 나가서 자라고 해도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날씨가 될 거다.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는 사실 이미 정했다. 우리는 바다 외에 다른 선택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 셋 다 대도시 출신이라 그럴지 모르겠다.

        

       전생에는 서울, 아제르나에서는 제도 론다리움에서 살았던 나는 물론이고, 이 두 사람도 평생을 론다리움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빽빽하게 솟은 건물들 사이에 살다 보면, 시야가 탁 트인 곳으로 가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차는 그냥 중고로 샀다. 거의 신차 정도 되는 차를 중고로 산 이유는, 새 차를 사면 대기시간이 조금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중고차는 그냥 사서 끌고 오면 되는 거니까.

        

       일찍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므로 검사도 말끔하게 마쳤다.

        

       그리고 그사이에 캠핑용품도 이것저것 샀고.

        

       “캠핑이라.”

        

       차를 사기 전, 우리에게 거의 통보받듯 이야기를 들은 황제는 조금 의아한 표정이었다.

        

       “굳이 밖에서 자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

        

       음, 그야말로 그 시절 귀족들이나 할 법한 발상이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긴 하다. 황제가 그 시절 황족이니까.

        

       “소풍을 길게 나가는 셈이죠.”

        

       “그렇다면 해변의 호텔에 가도 되는 일이 아니냐? 이 나라에 그런 곳이 많다고 들었다만.”

        

       그렇다.

        

       사람은 원래 나이가 들면 조금 더 아늑하고 편한 것을 원하게 된다. 물론 나이 먹고 나서야 캠핑에 취미를 붙이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나만 하더라도 어렸을 때는 그냥 다짜고짜 내려가서 주변 모텔 아무 데나 잡고 들어가 친구들과 소주를 깐다거나 했다.

        

       나이 먹으니 그런 짓은 더 못하겠고, 그래서 기왕 가는 거 돈을 더 써서 호텔을 잡곤 했었지.

        

       물론 그것도 더 나이 먹으니 각자 너무 바빠지고, 가정이 생긴 친구들도 있고 해서 시간이 없어져 전혀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혼자라도 여행을 갔다면, 나는 분명 자고 일어나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곳으로 갔을 거다.

        

       “……그런 곳에서 보내는 시간도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차마 황제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었다. 편한 여행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나는 클레어와 앨리스 두 사람과 캠핑을 꼭 해보고 싶긴 했다.

        

       “흠.”

        

       황제는 결국 우리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모양이었지만, 결국에는 우리 생각대로 해주었다.

        

       하긴, 해주지 않으면 어쩌겠어.

        

       ……어쩌긴 어째. 혼자 나가서 살려고 해도 충분히 먹고살 사람인데.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세 사람이 그런 일을 막으려고 해도 막을 방법이 없긴 했다.

        

       황제는 무슨 생각인지 우리와 계속 같은 집을 쓰고 있긴 했지만. 역시 돌아가려는 마음이 더 큰 걸까? 이전에도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뭐,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소 급하게 계획을 잡았다.

        

       그럼에도 어디 하나 이상하게 굴러간 곳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캠핑용품은 사면 된다. 차를 운전할 사람도 있고, 차 자체도 무사히 구했다. 남은 건 장소뿐이었는데, 그 장소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한창 캠핑하는 사람들이 있을 계절이긴 했지만, 천만다행히도 비어있는 캠핑장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인데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이렇게 운 좋은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여신의 농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서 이렇게 살기 좋은데 굳이 돌아가려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런데 막상 안 돌아가고 남으면, 그 이후에는 또 나름대로 보복을 하겠지.

        

       이것도 내 피해망상이려나.

        

       어차피 돌아갈 생각이니 상관은 없지만.

        

       “…….”

        

       조금 급하게, 그리고 매우 빠르게 준비하고 달려오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래도 한 일이 없지는 않다. 우리는 꽤 바쁘게 움직였다.

        

       막상 도착해서 떠올려보니, 그렇게 바쁘게 움직인 가치가 있었다.

        

       “예쁘다…….”

        

       클레어가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오길 잘했다.”

        

       뭐, 운전은 황제가 하긴 했지만 말이야.

        

       황제는 우리 셋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바다, 잠깐 들어가고 싶어.”

        

       “물이 너무 차가울 텐데요.”

        

       “아, 전부 들어가겠다는 소리는 아니야. 그냥 발을 담가보고 싶어서.”

        

       클레어의 말에 나와 앨리스는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세 사람은 샌들을 신은 채 바다로 갔다.

        

       바닷물은 차가웠다. 확실히 그냥 몸을 담갔다가는 몇 초 뒤에 이를 딱딱 부딪치면서 밖으로 뛰쳐나왔을 거다.

        

       하지만 발 정도만 담그는 건 꽤 괜찮은 생각이었다.

        

       바다 특유의 짭조름한 냄새가 느껴졌다.

        

       잠깐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나는 문득 다시 황제 쪽을 돌아보았다.

        

       황제는…… 이렇게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아저씨 같았다.

        

       내가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복장이 뭐 특별하지는 않았다. 집에서 입는 것처럼 목 부분에만 지퍼가 있는 등산복 상의에 신축성 있는 재질로 된 면바지 차림이었다. 그래도 바다에 모래가 많다는 것은 의식했는지 우리처럼 생들을 신고 있었다.

        

       날씨가 살짝 쌀쌀해서 그런지 조금 얇은 패딩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

        

       알았다. 저 패딩 조끼 때문이다. 다른 옷도 전부 아저씨 같긴 했지만, 저 옷이 그야말로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배경도 한몫했다.

        

       나는 지금까지 황제와 밖에 나온 적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오더라도 황제를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다. 굳이 저 사람의 감정을 생각해줄 이유가 없다……라고 판단했던 거다.

        

       하지만 함께 지내면서 이상하게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는 황제를 보았기 때문인지, 괜히 황제가…… 그래, 조금 친숙해 보였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 걸었다.

        

       “언니?”

        

       클레어가 나를 불렀지만, 나는 손을 살짝 저어 보이고는 황제에게 걸어갔다.

        

       잠깐이긴 하지만 바닷물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샌들과 발은 바닷물에 푹 젖어버렸다. 푹푹 빠지는 백사장 모래가 순식간에 발에 들러붙는 게 느껴졌다.

        

       나는 황제 앞까지 갔다.

        

       뭔가 생각에 잠겨있던 황제는 자기 앞을 떡하니 막고 선 나를 보았다.

        

       “바지 걷으시죠.”

        

       내 말에 황제는 잠깐 그 의미를 해석하려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마 해석에 실패한 것 같다.

        

       “그 말은…… 그 말뜻 그대로인 거냐?”

        

       황제는 정말 흔치 않게도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어차피 신발은 물에 젖어도 되는 신발이지 않습니까?”

        

       황제는 나를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나더러 너희처럼 바다에 들어오라는 말이냐?”

        

       “전부 들어오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그냥 발만 적시면 됩니다.”

        

       황제는 다시 한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예. 저희와 왔으니, 저희와 어울려 주셔야겠습니다.”

        

       황제는 다시 한번 나를 보면서 나의 말을 해석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해석에 실패했다.

        

       황제는 천천히 몸을 숙여서 자기 바지를 걷었다.

        

       와, 바지까지 걷으니 진짜 아저씨 같네.

        

       나는 한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억지로 꾹 참은 채 말했다.

        

       “이제 들어가시겠습니까?”

        

       “지금 웃으려 하지 않았느냐?”

        

       “아닙니다.”

        

       “나는 너의 삶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정치를 해왔다만.”

        

       그렇겠지.

        

       하지만 내 전생까지 포함하면 그 정도까지 길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황제도 ‘어리다’라고 표현할 수 있었던 시절일 테니까.

        

       …….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황제는 그 어린 시절에도 정치 공부 같은 거 하고 있었을 것 같네. 앞서 한 말은 취소하겠다.

        

       “아무튼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억지를 부리고 몸을 돌렸다.

        

       내가 앞으로 걷자, 조금 주저주저하면서 내 뒤를 따라오는 황제의 발소리가 들렸다.

        

       “전장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검을 휘두르시던 분이, 왜 그렇게 소심하게 구십니까?”

        

       “필요해서 몸을 적시는 것과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데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더냐?”

        

       “…….”

        

       우와, 이 양반 정말로 말이 안 통하네.

        

       흘끗 시선을 돌려보니 클레어와 앨리스가 이쪽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먼저 바다에 들어갔다. 모래가 가라앉으면서 내 발목 정도까지 물이 올라왔다. 역시 차가웠다. 아마 너무 오래 있으면 발이 시릴 거다.

        

       “물이 시원해서 청량한 기분이 듭니다.”

        

       “…….”

        

       내 말에 황제는 결국 버티는 것을 포기한 듯하다.

        

       그리고 조금 주저하면서 발을 앞으로 내밀어 바다로 들어왔다.

        

       “…….”

        

       “어떻습니까?”

        

       “확실히, 물이 시원하기는 하구나.”

        

       황제는 마지못해 인정했다.

        

       “가끔은 좀 젊게 사시는 것도 건강에 좋습니다. 매일 정치 경제만 생각하면 더 빨리 늙는 법이니까요.”

        

       “그건 근거가 있는 말이냐?”

        

       나는 굳이 대답하진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