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64

    사이먼과의 대화 이후, 서드는 하루가 지난 뒤에도 여전히 복잡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호문클루스인가.’

    연금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인공생명체, 호문클루스.

    자신이 바로 그 호문클루스라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야, 이전부터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으니까.

    처음부터 부모의 얼굴이나 평화로운 일상을 누린 추억따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오래되었다고, 서클이 재배치되는 충격으로 잊어버렸다고 마냥 넘겨버리기에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백지상태.

    감옥과도 같던 살풍경한 시설의 기억을 제외하면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은 한줌도 채 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시설에서 자랐던 인간인 것 처럼.

    그러나 이제와서 그런 사실에 색다른 감정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런 이야기에 슬퍼하고, 원망하며, 증오 할 시간은 진작에 지났으니 말이다.

    따라서 서드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전혀 다른 부분이었다.

    서드가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체실험을 주도했다고 생각했던 그가, 사실은 자신을 시설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

    서드는 잠시 사이먼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다.

    한차례 심문이 끝난 뒤, 루크는 장갑을 고쳐쓰며 사이먼에게서 흥미가 다한 표정으로 서드를 향해 말했다.

    “내 이야기는 끝났다. 서드, 너도 분명 이 자와 하고 싶은 이야기 많이 있을테지? 이제는 네 차례다.”

    확실히,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를 향한 증오가 상당히 무뎌졌다고는 하나, 결국에는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인간.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그리고 자신을 만든 목적이 뭔지 듣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사이먼은 루크가 그의 대답을 재촉하기 위해서 몇가지 따끔한 조치를 취한 탓에 아까까지는 거의 눈이 풀리기 직전이었으나, 루크가 그를 서드에게 건넬 때에는 적당한 치료를 통해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다.

    지금 다가가는 자신을 향해  그의 시선이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뭐, 뭐야, 내가 할 말은 다 했다고. 나도 더는 모른다니까!”

    아직도 심문이 끝나지 않은 거냐는 듯 절규하는 그의 외침에, 서드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난 그딴 걸 묻고싶은 게 아니야.”

    “그럼 대체 뭔데?”

    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짓자, 서드는 그의 앞에서 천천히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너무 급하지도, 또 너무 느리지도 않게.

    -스윽, 달칵…….

    “이 얼굴, 기억하나?”

    “뭐…?”

    그렇게 마침내 드러난 서드의 얼굴을 본 그는 잘 모르겠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가, 이내 눈을 크게 뜨며 경악에 잠겨 외쳤다.

    “너, 너는…! 설마, 죽은 줄 알았는데!”

    죽은 줄 알았다는 그의 말에 서드는 코웃음치며 대답했다.

    그 말고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그나저나, 시간이 꽤 지났고 얼굴도 꽤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몰라봐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 설명할 수고를 덜어 다행인건가.

    “하지만 죽지 않았지.”

    “말도안돼, 분명-.”

    그의 얼굴에 피어난 너무나도 선명한 경악과 혼란.

    너무나 강렬한 감정 탓인지, 잠시후 그는 이내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흐, 흐흐흐, 흐하하하……. 그렇군, 살아있었나……!”

    “…….”

    그의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흐느낌은 그렇게 잠시 이어졌고, 서드는 그것을 건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그것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어차피 그에게 자신이 묻고 싶은 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그의 그런 반응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리 나쁘지 않은 충족감을 주었기 때문에.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그의 말은 서드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뭐?”

    다행?

    대체 무엇이?

    의아한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서드, 이렇게 살아있어 정말로 다행이야.”

    그것은 그토록 끔찍한 짓을 저지른 사람을 눈앞에 두고 내뱉기에는 상당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그에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서드가 빠르게 되물었다.

    그건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건네는 말과 같지 않은가.

    “다행이라니, 무슨 뜻이지? 뭐가 다행이라는 거냐?”

    “역시 모르는 건가…,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스스로 납득한 표정을 짓는 사이먼의 반응에 서드는 더욱 조바심이 났다.

    “시간끌지 말고 지금 당장 설명해, 그게 무슨 뜻인지!”

    의자에 묶여있는 그의 멱살을 부여잡으며 윽박지르듯 협박하는 서드.

    그에 사이먼은 너무나도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 얼마든지.”

    —-

    잠시 후, 듣게 된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건 바로, 자신을 가두고 있던 시설의 벽을 부순 건 우연히 하늘에서 내리친 번개가 아니라, 그가 설치한 폭탄이었다는 것.

    이 후 시설에 남아 그들의 추적을 막기위해 그가 실험 중 불의의 폭발사고에 휘말려 사망했다고 진술해 추적을 따돌린 것.

    자신이 그런 끔찍한 몸상태로나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가 에이레스 마약 유통구조 중간에 섞은 안정제 덕분이었다는 것….

    전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것은 실로 명백했다.

    그야, 심장에 강제로 서클이 새겨진 상태에서 꺼낸 말이었으니.

    실제로도 그가 한말은 이치에도 맞는 것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의문스럽게하던 모든 질문에 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시설은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따금 번개가 치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번개가 자주 내리치는 곳이었다.

    고작 낙뢰에 대한 대비가 없을 리 없지.

    그럼에도 당시 벽이 무너져내릴 수 있었던 건, 누군가 번개소리에 맞춰 폭발을 일으킨 게 실제로도 더욱 타당한 추측이었다.

    또한, 자신은 시설의 중요 프로젝트의 당시 유일한 성공작이었다.

    드래곤하트까지 사용한 극비 실험의 실험체가 탈출하는 대형 이슈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추적이 따라붙지 않은 것은, 돌이켜보면 상당히 의도를 알 수 없는 대응임이 분명했다.

    그가 자신을 찾으려고 했다면, 자신은 이렇게몇 년동안이나 숨어서 지낼 수 있을 리 없었다는 것은 실제로 사실이니까.

    그 때문에 그토록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것이니.

    하지만 그게 당시 프로젝트의 주축이 되던 사이먼이 개입한 것이라면 말이 된다.

    당시 그의 발언권과 신뢰는 매우 높았을테니까.

    마지막으로, 그가 마약 유통구조에 개입했다면 자신의 몸이 그 끔찍한 상태로나마 계속해서 연명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이유도 설명이 된다.

    자신의 수명은 분명 탈출당시부터 세어도 그리 길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설에서 탈출하던 당시 훔쳤던 안정제는 최대한 아껴봤자 고작 일년정도 복용이 가능한 수준에 그치는 정도였고, 그 뒤로는 거의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했는데도 육신이 붕괴하지 않고 버텨준 것은, 마약에 무언가 특별한 성분이 없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다.

    비록 사이먼은 자신과 직접적인 커넥션이 생기면 서드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 브로커를 통해 몇개의 다리를 거쳐 약을 옮기는 수고를 하느라 유통과정에서 불순물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이 당시로서 최선이었다는 점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그’에게 눈과 귀는 많았고, 사이먼에게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단순 횡령으로 위장하여 빼돌린 약품을 어떻게든 그의 손에 들어가게 하려면 그럴 수밖에.

    “……..”

    모든 것이 너무나도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그야말로, 모순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라곤 피로 범벅된 시설 내부의 풍경과, 거듭된 실험으로 겪은 고통밖에 없던 그로서는 내용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인 것은 여전했다.

    대체 왜?

    그토록 괴롭게 해왔던 주제에, 그는 왜 갑자기 자신을 탈출시키려고 했다는 말인가?

    자신을 탈출시킨다 한들 무슨 이득은 커녕, 오히려 위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는 목숨을 걸고 자신이 모든 죄를 짊어지면서까지 자신을 시설에서 내보내고 싶었던 걸까?

    그에 대한 사이먼의 대답은 이러했다.

    처음에는 분명 자신도 호기심과 욕망으로 시작한 연구였지만, 실험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자신의 마음이 깎여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그렇게 두번째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떠나보냈을 때에는, 더이상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러하듯,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사랑을 품는 것과마찬가지로, 창조자 또한 피조물에 사랑을 품는 법.

    그래, 사이먼은 어느순간 서드를 자식으로 보게 되었다.

    자신에게 어떠한 이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어느 순간, 단순히 그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

    우스운 답이었다.

    원수라고 생각하고 증오해온 이가, 사실은 뒤에서 자신을 위하던 아비와 다름없는 존재였다니.

    유흥매체의 반전요소로도 너무나 낡아빠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꼴이라니.

    서드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시 시설의 연구원이던 사이먼의 사원증.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원증의 뒷면에 붙은 시설 구석에 앉아 손바닥에 이는 푸른 섬광을 홀린 듯 바라보는 어린 자신의 사진이었다.

    ‘고작 이런 걸로 부모라고 인정할 수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한명쯤은 더 있었다는 것이 마냥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다.

    뭐, 그녀의 약물로 떠나기 전에 심문한 기억을 지웠기에 그는 자신과 그런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때였다.

    -툭.

    돌연 어깨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서드는 그 감촉으로 빠르게 서클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아, 스승님.”

    “그래, 서드. 간밤에 마음은 잘 추스렸느냐?”

    걱정하는 감정이 투명하게 비쳐오는 듯한 그 말투에 서드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에 든 사진을 움켜 쥐며 답했다.

    “예, 물론입니다. 곱씹어보니, 그렇게 고민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더군요. 제가 그를 아버지라고 인정하든, 아니든간에 뭐, 그가 도움이 된건 사실이니까요. 지금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가.”

    그녀는 그의 결론이 어떻든 생각을 존중하겠다는 듯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슬슬 우리도 출발하지. 사이먼이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

    “예, 그래야죠.”

    움켜준 사원증을 바라보는 서드의 입가에 살짝 걸린 웃음을 본 루크는 생각했다.

    이제는 서드도 웃음이 꽤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고.

    “그나저나, 어제 밤의 그 첼로연주. 스승님께서 하신 겁니까?”

    갑자기 뜨끔한 듯 몸을 한차례 떠는 루크의 모습.

    루크는 이내 머쓱한 듯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음…. 그렇다만. 들렸나? 미안하군. 역시 자는 데 방해가 됐지?”

    한밤중에 연주라니, 그건 역시 예의가 아니었지?라고 하며 어딘가로 눈치를 주는 듯한 루크의 반응을 지켜보던 서드는 그게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오히려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그래?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로구나.”

    그러자 ‘그것봐요, 전혀 민폐가 아니었다니까요?’라고 하는 듯한 목소리가 어디서 들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루크는 별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루크가 괜스레 첼로케이스를 고쳐메자, 서드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첼로, 실제로 연주도 하시는 거였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서드가 15살인데 노안이었던 이유는 사실, 호문클루스라 제작된 시간으로 따져서 15살이었기 때문!
    호문클루스는 처음부터 4~5세의 연령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20살 이상!!

    …라는 건 사실 그냥 농담입니다.
    그냥 원래 늙어보이는 얼굴이었어요.

    근데 처음 생각한 건 대충 설명한 뒤에 빠르게 전개하기였는데…….

    ……왜 이제 여기지?

    죄송합니다.

    다음화는 전개든 글이든 더 빨리 낼 수 있게 노력해보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